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6화 (16/301)

16화

마리는 식료품 가게 계산대에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비단 마리만이 아니다. 가게 안의 사람들 모두가 뿌듯한 마음으로 쇼핑하고 있었다. 아마 거리에 나와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텅텅 비었다가 꽉꽉 들어찬 매대엔 사람들의 활력이 진열된 것 같고 아직 비어있는 곳에는 곧 노력으로 채울 수 있으리란 희망이 전시된 것만 같았다.

계산을 마친 뒤 마리가 근래에 드물게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를 나오자 반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맞이했다.

“엄마.”

깜짝 놀란 마리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가더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자크,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잖니!”

마리가 걱정할 만큼 아들의 다리는 개척지의 험한 거리를 달리기에는 아직 불편했다.

“계단은 어떻게 내려왔니? 엘리베이터는 아직 안 움직이던데.”

“괜찮아요. 지나가던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걱정하는 엄마와는 달리 아들은 마냥 활기찬 모습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 며칠 간은 더더욱 그렇다. 아마도 마리가 근래에 축 처져 있자 자기 딴에는 기운을 북돋워 줄 생각으로 그러는 것이리라.

아직 어린 아들이지만 대견하단 생각에 마리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뭐 샀는지 보여줄까?”

이번에는 엄마가 아들을 즐겁게 해줄 차례였다. 마리가 장바구니를 슬쩍 펴 보이자 그중 하나가 자크의 시선을 끌었다.

“마가린! 마가린이다! 엄마 이거 진짜예요? 합성 버터 아니죠?”

신나서 마가린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자크에게 마리는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럼, 고래기름으로 만든 천연 마가린이란다. 또 뭐가 있을까아?”

“우와! 빵도 있다! 와아! 신난다. 엄마, 어서 집에 가서 빵에 마가린 발라 먹어요.”

신나서 폴짝폴짝 뛰는 아들의 모습에 마리는 흐뭇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일었다. 이런 일상적인 음식 하나에 아이가 이토록 기뻐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파운드 케이크~ 파운드 케이크~”

가장 좋아했고 또 먹고 싶지만,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음식 이름을 노래 부르며 자크는 마리 앞을 가고 있었다.

모자가 가는 길 앞으로는 하늘로 솟구친 궤도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그 끝에는 점프 게이트가 있다. 한때 거길 통해 수많은 물류가 오갔고 궤도 엘리베이터는 쉴새 없이 오르내렸었다. 그러나 지금 게이트는 닫혀있고 엘리베이터는 멈추었으며 외벽에는 페인트로 개척민들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독립을 원한다.

-연방은 우리 땅에서 떠나라.

개척민들이 독립을 주장하자 연방은 처음에는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의 사용을 제한하는 차단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행성의 개척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기 전에 연방으로부터의 지원이 중단되자 생활이 불편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자치 행성으로부터의 무역마저 끊기자 삶이 힘겨워졌다.

비상용 생필품이나 음식들이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비상용. 생존의 최저한도를 충당시키는 거칠고 투박한 생활에 사람들은 지쳐갔다.

정착 당시 가져왔던 싸구려 합성 음식으로 지낸 지 얼마였을까. 결국에 물에 불린 톱밥 같은 비상식량을 배급받아왔던 날 마리는 울음을 터트린 자크를 껴안고 자신도 한참을 울었었다. 서로가 서로를 달래며 울었던 그 날 밤을 마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허나 개척민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농지를 개간해 작물을 키우고, 농장을 운영해 동물을 기르고, 순환이 끝난 바다에 풀어놓은 어류들을 채집했다. 마침내 발전소가 돌아 공장이 재가동되고 거기서 나온 물건들이 개척지의 시장에 풀려나가면서부터는 드디어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방의 차단 정책은 개척지의 독립을 늦추기만 했을 뿐 막지는 못했다. 이제 개척민들의 힘든 생활은 머지않아 완전히 끝날 것이고 행성의 개발과 발전도 연방의 도움 없이 이뤄져 나갈 것이다.

그 증거로 마리의 눈에 건설 현장들이 다시 재가동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멈춰버린 궤도 엘리베이터 근처의 고층 빌딩들은 입주민들이 떠나서 텅텅 비었지만, 옥상에서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곳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둥 같은 것들이 하늘을 향해 지어지고 있었는데 지금의 마리에겐 그런 것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들었던 아들의 흥얼거림이 더 신경 쓰였다.

‘파운드 케이크라….’

예전이었다면 완제품을 사 먹거나 물질 생성기로 만들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스스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도 친절한 자치정부 출신 개척민 이웃들이 여러 가지 개척 생활 노하우를 알려줬는데 그걸 응용하면 어떻게 가능할 듯싶다.

‘음, 계란은 메추라기 알로 대신할 수 있다고 했었고, 버터는 마가린으로. 그리고 설탕은….’

“미안해요, 엄마.”

자크의 말에 마리는 생각을 멈추고 앞을 보았다. 어느덧 모자는 집의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한때 많은 사람이 살았던 개척민용 5층 간이 주택에 여태까지 사는 사람은 마리 모자뿐이다.

독립에 모든 개척민이 동의한 것은 아니다. 독립에 반대하는 연방의 시민들은 독립 선언 후 하나둘 떠나기 시작해 결국에는 모두 떠나버렸다. 그들이 떠난 다음 개척 사회의 인프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남은 이들은 물자 부족에 겹친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제야 발전소가 가동되긴 했지만, 아직 전력이 사회에 완벽하게 공급되는 것은 아니어서 마리 모자가 사는 집의 엘리베이터는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5층에 사는 마리네 가족은 계단으로 다녀야 했는데 자크는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풀에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다리가 괜찮았어도….”

“그런 말 하지 말렴. 어서 집에 가서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자꾸나. 엄마 도와줄 거지?”

“와아! 진짜요?”

파운드 케이크를 만든다는 말에 자크는 신나서 엄마에게 폭 안겼다. 한 손엔 아들, 나머지 한 손엔 장바구니를 안은 마리는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개척 작업을 마치고 힘든 몸이지만 아들과 짐을 동시에 껴안은 엄마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5층에 도착해서도 마리는 자크를 내려놓지 않고 집 앞까지 걸어갔다.

“엄마, 이제 내려주세요.”

“뭘, 다 왔잖니.”

마리는 보채는 아들을 다시 한번 고쳐 안고 걷다가 집 문 앞에 도착해서야 자크를 내려놓았다.

“고맙습니다.”

문이 열리자 개구쟁이 아들은 냉큼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 자크의 뒤로 마리의 잔소리가 따라 들어갔다.

“자크, 나갔다 오면?”

“손 씻기.”

자크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을 동안 장바구니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마리는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한숨을 푹 쉬었다.

“아휴, 문을 고쳐야 하는데….”

마리는 고장이 나 잘 닫히지 않는 문을 닫기 위해 돌아섰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낯익은, 그러나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 한 명이 마리를 대신해 문을 닫아주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와 문을 잠근 사내는 마리를 보며 한 음절씩 끊어서 말했다.

“마리. 라캉.”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마리는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막 화장실에서 나온 자크가 약간 겁먹은 목소리로 물어볼 때 마리는 그만두라고 말리려 했다. 그러나 말하는 게 늦었는지 그 사내가 빨랐는지 자크는 불청객에게 거세게 걷어차여 부엌까지 날아갔다.

“자, 자크!”

마리는 비명을 지르며 아들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악!”

마리는 뒷머리를 잡혀 그대로 들린 채 부엌으로 들려간 다음 식탁에 얼굴이 짓이겨졌다.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져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 자크의 놀란 비명이 들려온다. 뇌진탕의 충격에 빠져 몽롱해져 가는 마리의 의식을 아들의 비명이 간신히 깨운다.

마리는 피 때문에 코가 막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와중에서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아니 필생적이리라.

“김 소령, 김빈우 소령…. 오해에요.”

그러나 빈우는 마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식탁 위에 장바구니를 올려놓고 내용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고래기름 마가린, 견과류 분말로 만든 빵, 식물 뿌리를 태워 볶은 커피, 옥수수로 만든 감미료….”

그러던 빈우의 시선에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엄마와 그녀에게 기어오는 아들이 보였다.

“엄마, 엄마아아~”

걷어차여 심하게 다친 자크는 겁에 질려 망가진 다리를 하고도 어떻게든 엄마에게 가고 싶어 했다. 마리는 굽어진 바퀴를 질질 끌며 두 팔로 기어오는 자크가 어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안돼. 콜록. 자크… 오지….”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빈우는 자크의 발을 무참하게 밟아 부쉈다.

“아아악!”

모자의 비명으로 가득한 식당에는 구원자만 있을 뿐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아니 이 주택 안에는 아예 사람이 없다. 건물이 속한 구획에서도 거주민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비명이 잦아들 무렵 마리는 간신히, 조금이나마 냉정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고문, 고통, 죽음, 자비, 도주, 자결….’

그러나 지금 마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소름 끼치는 것뿐이었다.

빈우가 자신들을 바로 죽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하는 정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빈우는 심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문이 있을 것이다.

“울토르.”

짧게 뱉어진 빈우의 말에, 마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 그렇게 숨기고 도망 다녔는데 어째서….’

마리는 자신의 몸으로 자크를 안아 덮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몰라요. 진짜예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김 소령. 믿어주세요.”

빈우는 말없이 다가왔고 마리는 발작적으로 울부짖었다.

“제발! 제발! 아이만은! 제 아들만은 손대지 말아 주세요!”

마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빈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녀를 들어 치운 다음 자크를 들어 오븐 쪽으로 걸어갔다.

“정말이에요! 전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제바알! 자크으!”

피와 침이 범벅이 되어 흐르는 입에서는 진실만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쉽게도 구원자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엄마- 무서워.”

빈우의 손에 들린 채 덜덜 떨며 이쪽을 보는 자크의 모습에 마리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마리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킬 때 빈우는 오븐을 열더니 자크를 안에 집어넣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는 마리. 발버둥 치는 자크.

빈우는 살기 위해 오븐 문을 잡고 버티는 자크를 발로 걷어차 안으로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븐을 켰다.

“안돼에!”

간신히 한걸음 땐 마리의 턱에 빈우의 주먹이 꽂혔다. 그녀는 목이 덜컥 꺾이며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어질어질한 그녀의 귓속으로 다시금 빈우의 목소리가 꽂혔다.

“대답하세요.”

그 말에 마리는 소름이 돋으며 정신이 쫙 들었다. 빈우의 뒤로 예열되는 오븐 속에서 발버둥 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리의 정신은 절망감에 지배되어 갔다.

“울토르에 대해 대답하세요.”

빈우가 재차 질문했지만, 산채로 타들어 가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대답은 비명과 울음과 애원뿐이었다. 그런 마리를 보던 빈우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Save yourself-”

빈우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치 행성에서 수렵용으로 쓰이는 가스식 화살 권총이다.

“-From Hell.”

가스가 충전되고 화살이 장전된 총이 마리의 앞에, 식당 바닥에 놓였다. 그 총을 바라보던 마리는 빈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예전이었다면 알았겠지만, 지금은 전혀 모르는 언어다.

그런 마리의 눈빛을 본 빈우가 혀를 찼다.

“역시. 두뇌 칩이 없나.”

-엄마아아아아-!!

그때 뜨거워진 오븐 안에서 자크의 비명이 들렸다.

“자크!”

마리는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빈우는 선택하라는 듯 식당 벽에 기대서서 마리를 보기만 할 뿐이다. 그제야 마리는 빈우의 잔인한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구할 방법은 많습니다.”

쐐기를 박는 듯, 재촉하는 빈우의 말에 마리의 손은 주춤주춤 권총으로 다가갔다.

“아아아아….”

마리는 흐느끼면서 권총을 잡아 쥐었다. 이걸로 저 남자를, 빈우를 쏴죽일 수 있을까? 그리고 아들을 구할 수 있을까?

찰나의 고민에 답은 금세 나왔다.

‘힘내 마리… 넌 할 수 있어. 아들을 구해야 해.’

스스로 굳게 다짐한 마리는 권총을 들어 겨눴다.

-엄마아아아- 뜨거워어어 살려줘어어-!

마침내 불에 타 몸부림치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마리는 방아쇠를 당겼다. 확실한 죽음을 위해 계속해서.

그리고 엄마가 쏜 총에서 발사된 화살촉들이 오븐 문을 뚫고 들어가 아들을 죽였다. 이어지는 화살촉 세례에 자크는 움직임을 멈췄고 마침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비명도, 몸부림치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식당 안에는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아아아악!”

그 정적을 깬 건 마리의 비명이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빈우를 향해.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압축가스에 의해 발사되는 세라믹 화살은 군인인 빈우의 피부 정도에나 상처를 낼뿐, 군용으로 강화된 두개골과 안구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마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성이 아닌 무언가가 그녀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화살이 떨어지고 빈 총에서 방아쇠 당기는 소리만 들려오자 마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총구를 입안에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 역시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빈우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

빈우는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입에서 총을 꺼내고는 다시 질문했다.

“울토르. 말하시오.”

그 질문에 대한 마리의 대답은 분노였다. 자기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죽이게 만든 자에게 엄마의 노호가 쏟아졌다.

“죽여버릴 거야아! 죽여버리겠어! 네가! 네가아!”

분노는 거기서 끝이었다.

마리의 목뼈를 부러뜨린 빈우는 오븐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불에 달궈져 타들어 가고 있던 가정용 도우미 로봇을 꺼냈다. 원통형 몸체에 두 개의 바퀴와 두 개의 작업용 팔이 달린 이 로봇은 화살촉에 맞아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빈우는 로봇을 차근차근 분해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정보들을 하나씩 찾아 나갔다. 뇌 없음. 두뇌 칩 없음. 포지트론 웹 연결 없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허수아비.”

이 로봇은 자크라는 소년의 인격을 본떠 만든 사고복제 AI를 탑재한 허수아비였다. 그런데도 마리는 이 로봇을 제 아들인 자크로 대하고 있었다. 진짜 아들로서.

마리는 이 로봇이 허수아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있었을까.

만약 허수아비인 줄 몰랐다면 마리는 이 로봇을 아들의 뇌나 두뇌 칩을 넣은 육체로 알고 있었을까? 반대로 허수아비라는 것을 알았다면, 대체 무엇이 마리에게 이 로봇을 아들로 보게 하였을까?

이번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빈우는 로봇의 CPU와 메모리 칩을 바닥에 던지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맞은편 건물에는 찢어진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오늘 2217년 12월 25일은 우리 마카로니의 독립 기념 축제가-

끊어진 메시지에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보자 뭔가 희미한 게 보였다. 호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 궤도상의 물체를 확인한 빈우가 혼잣말을 했다.

“내일이나 모레쯤 되겠군.”

그리고 빈우는 구원하지 못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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