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오스카 4 스테이션은 오스카 항성계 내의 행성 간 이동을 돕는 중계 기지로서 연방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군과 민간의 복합 우주선 정거장이다.
솔리드 베타에서 내린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다음 명령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신변 정리를 하며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빈우는 지난 일여 년간 실종 중이었던데다 마카로니의 대형 사고와 연관이 깊어 파견 요원으로 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처리가 필요했다.
빈우는 군 시설에서 몇 가지 사무를 보고 외곽 복도를 걷다가 잠시 멈춰서 벽으로 걸어갔다. 오스카 스테이션의 바깥을 한 바퀴 도는 외곽 복도의 벽면은 전부 거대한 투명창이고 군데군데 휴식을 위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엔 좋다.
그리고 꼬리에 붙은 불청객을 상대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조금 전부터 빈우의 시야 바깥에서 뒤를 밟는 미심쩍은 사람이 있었다. 미심쩍은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두뇌 칩 반응이 잠겨 있다는 것. 간단한 개인 신상이 뜨는 두뇌 칩의 정보가 닫혀있다는 것은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과 같다. 이상은 해도 수상한 것은 아니다.
둘째는 이게 미행 같아 보이진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람은 그냥 일정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오고 있을 뿐이다.
의자에 앉아 식탁 위의 과자 몇 개를 집어 든 빈우가 이번엔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하던 차에 뜬금없이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빈우가 시선을 돌리자 그쪽에서 민간인인 ‘콘래드 스미스’가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었다. 자치 정부 출신으로 45세의 남성인 그는 5일 전에 연방의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현재 가족과 함께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하던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시간을 내어 경유한 이 스테이션을 견학하고 있었다. 콘래드의 약간 뒤에서 이쪽을 보는 사람들은 아내인 테레사 스미스와 아들 빈센트 스미스로 마찬가지 연방의 시민 5일 차다.
이상이 콘래드 스미스의 두뇌 칩이 공개하고 있는 정보였다.
그가 주춤주춤 다가오자 빈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시민이 된 지 닷새밖에 되지 않은 데다 군 시설을 방문한 민간인에겐 그에 맞는 에티켓으로 대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콘래드 스미스 씨. 김빈우 소령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콘래드는 초면에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악수를 청하는 빈우에게 조금 놀랐으나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아, 그렇군요. 네. 반갑습니다. 콘래드 스미스입니다.”
군 시설은 보안이 필요하기에 민간인들이 군사지역에 들어갈 경우, 이처럼 두뇌 칩에 들어있는 개인 정보가 어느 정도 공개가 된다. 그래서 군인들은 민간인들의 정보를 대부분 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배려가 필요하다.
“허허, 이거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꼭 발가벗겨진 기분입니다.”
자치 정부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어 뒤늦게 연방 시민인 된 그에게는 아직 두뇌 칩의 활용이나 인식이 미숙하다.
“아직 닷새밖에 되지 않았잖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리고 연방에서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이 정도의 개인 정보는 항시 공개하는 곳도 있지요.”
“그게 정말인가요?”
두뇌 칩 없이 살던 콘래드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흠, 자치 정부 식으로 하면 전자 명함이나 SNS가 상시 켜져 있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콘래드 가족의 정보 공개 정도는 양반이다. 화성 번화가에 가보면 거긴 숫제 개인이 풀어놓은 정보들의 전자 폭풍우가 몰아치는 곳이다. 정신 사나워서 회선을 꺼놓으면 그걸 또 신기해하는 토박이들이 둘러싸서 사람 혼을 빼놓는다.
“그렇군요. 아! 실은 제 아들 녀석이 전투기를 보고 싶다고 해서요.”
“아하.”
빈우가 맞장구를 치며 슬쩍 뒤를 보니 엄마인 테레사에게 꽉 잡혀 있는 빈센트의 손에는 롱소드 전투기 모형이 들려져 있었다. 부루퉁한 얼굴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짓는 그 나이 또래의 표정이었다.
빈우가 알아본 바로는 스미스 가족은 오스카 스테이션의 견학을 요청했고 스테이션 관리소 측은 견학용 프로그램을 깔아주었다. 두뇌 칩의 프로그램이 스미스 가족을 스테이션 여기저기로 안내해 주었을 테지만 상대는 시민권을 딴 지 5일밖에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프로그램이나 두뇌 칩의 사용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안내인을 붙여주지 않고 프로그램만 덜렁 던져준 것은 좀 무신경한 처사였다.
거기다 중요한 목적이었던 전투기의 견학은 거부당했다. 물론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일반인은 군용 병기들을 접할 기회가 잘 없지만 그런 것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안된다고 하니 스미스 가족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런 사실들은 빈우가 조회해서 알아본 것들이지만 지금 여기서는 당사자들 앞에서 음성이나 시각 정보로 다시 알려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잠시 실례. 흠, 과연. 전투기 견학을 신청하셨는데 거부당했군요.”
빈우는 홀로그램을 띄워 스미스 가족이 볼 수 있게끔 그들의 정보들을 보여주었다. 바깥에서라면 군인인 그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군 시설에 들어온 이상 시민들의 개인 정보는 어느 정도까지 공개되고 조회할 수 있다.
“아쉽게도 행사 기간이나 장소가 아니면 군사 병기를 보기는 힘듭니다. 연방 시민이라 할지라도요.”
“네,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나 싶어서….”
그래서 콘래드는 근처에서 만난 군인인 빈우에게 물어본 것이리라. 거기다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으니 어느 정도 권한이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건 빈우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빈우는 이 스테이션 소속이 아니고, 전투기 병과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마침 빈우로서도 귀찮은 꼬리가 붙었던 터라 잘 되었다 싶었다.
“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다만 가까이서 직접 보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말은 콘래드에게 말했지만 빈우의 눈웃음은 뒤쪽의 빈센트에게 향해 있었다. 축 처져있던 빈센트가 단번에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알겠습니다. 여러분, 따라오시죠.”
빈우는 가족 세 명을 이끌고 우주항 쪽으로 갔다. 항구는 조금 멀기에 일행은 트램으로 이동했고 그 안에서 호기심 많은 아빠와 아들은 빈우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물론 빈우는 그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 부자들을 만족시켜 주었다.
“저기, 그런데… 회선이나 개인 정보를 닫아 놓으면 안 될까요?”
남편과 아들의 질문이 뜸해진 틈을 타 조심스레 묻는 테레사 스미스에게도 빈우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닫아 놓아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보안이 필요한 곳, 예를 들어 여기 같은 군사 시설에서는 저절로 열리는 점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닫히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억지로 닫으려 지는 마십시오. 거동 수상자로 보여 헌병들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빈우의 대답에 테레사는 움찔하더니 쭈뼛쭈뼛 용기를 내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연방에선 경찰들이 사람을 막 구속할 수도 있나요? 무선으로? 여기선 경찰들이 스위치만 누르면 사람이 꼼짝 못 한다면서요?”
테레사의 의문은 자치 정부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것 중 하나이다. 빈우도 백 번은 넘게 들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친절하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체포 프로그램 말씀이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행범이거나 영장이 없는 이상 프로그램은 절대 작동하지 않습니다.”
빈우의 말에 안심하는 엄마의 옆으로 아들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군인들은 어떻게 하나요? 무슨 프로그램을 써요? 이런 기지에 도둑이 들면 뭐로 잡아요?”
순수하게 질문한 빈센트에게 마저 ‘우린 그냥 대가리를 날려버린단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하하하, 당연히 정당한 절차를 거쳐 체포한 다음 경찰에 인도해야지. 우리 군인은 민간인 여러분께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어요. 군대는 연방을 위협하는 외계 세력으로부터 연방의 안전과 시민분들, 자치 정부 주민분들을 지키기 위해 있거든.”
그제야 스미스 부인은 조금 안심한 모습이다.
트램이 도착하자 빈우는 스미스 일가를 자신의 보관소 쪽으로 안내했다. 빈우의 사물 몇 가지는 아직 우주항 보관소에 있고 이곳은 인솔자만 있으면 민간인도 별다른 절차 없이 올 수 있는 구역이다.
“우와! 와아아!”
빈센트는 후다닥 달려가더니 보관소의 창에 이마를 맞대고 전투기들을 보았다. 오스카 스테이션의 군사 시설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보관소 너머에는 바로 전투기 격납고가 있었다.
“롱소드! 할버드!”
지금의 빈센트를 보면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표현이 실제처럼 느껴진다. 전투기 이름을 외치며 창에 머리를 비비는 개구쟁이의 기세는 진짜 이마로 강화유리를 뚫어버릴 것 같다.
그 모습에 빈우는 마치 자신의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빈우도 저렇게 군사 무기를 보고 군을 동경했고 군에 입대했었으니.
연방 구역이었지만 외곽 농업 행성이 고향이었던 빈우는 우람한 장갑복과 늘씬한 전투기를 보며 어린 시절의 심심함을 달랬고 커서는 유년기의 트라우마에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상이 현실이 되었을 무렵, 꿈을 잃어버린 소년은 후회감으로 가득 찬 청년이 되었다.
“진짜 사이클론 어뢰다.”
놀란 빈센트의 외침에 빈우는 그쪽을, 스미스 가족들을 쳐다보았다.
옆에선 아들이 신나서 들떠 있고 아버지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며 뒤에서는 어머니가 못 말린다는 듯, 그러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빈우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대접이 변변찮아서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정말 감사합니다.”
빈우는 음식물 생성기에서 민간인 용으로 조절된 다과 몇 가지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권했다. 생성기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을 의심스럽게 보던 테레사도 한 입 먹어보더니 입에 맞는 듯 전투기에 정신이 팔린 아들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30분 뒤 빈센트의 팔을 다시 잡아끈 것은 빈우였다. 이 개구쟁이는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냈다가 한 번 제지당했으며, 그다음에는 자기가 봤던 것을 두뇌 칩에 기록하려다가 빈우에게 걸려 부모에게 혼쭐이 났다. 종내에는 빈우가 흥분한 빈센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홍보용 전자 책자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예정에 없던 군 시설 소개를 마친 빈우는 군사지역에서 나와 스미스 일가를 다시 민간 구역에 돌려보낸 다음 다시 한번 두뇌 칩 반응을 체크해 보았다.
‘아직도냐.’
아까 빈우의 시선을 끌었던 사람이 빈우의 뒤를 계속 따라붙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두뇌 칩의 정체를 감춘 사람이 군사 시설 내를 돌아다니면 보안 프로그램에 걸려 한바탕 소란이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그럴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빈우는 생각을 바꿔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따라오던 사람은 빈우의 행동에 잠시 멈칫했지만 계속 이쪽으로 걸어왔다. 차츰차츰 거리가 좁혀지고 마침내 멀리서 따라오던 이의 얼굴을 맨눈으로 확인한 빈우는 좀 의외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조금 더 걷더니 근처의 가게로 들어갔다. 빈우의 예전 홈그라운드라고 할 피자 타이거의 오스카 스테이션 지점이다.
빈우가 자리를 잡고 앉을 무렵 그 사람도 곧이어 피자 가게로 들어왔다.
“앉으시죠. 라캉 중령님.”
피에르 라캉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예전에 홀로그램으로 보았던 허수아비에 비하면 산송장이라 할 지경이다.
같은 정보사령본부 산하지만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견원지간처럼 다투는 두 부서다. 거기다 라캉 중령과 빈우의 사이도 썩 좋지는 않았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을 빈우는 내버려 두지 못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빈우에게 라캉 중령은 사진을 하나 내밀었다. 홀로그램이 아니라 사진이다.
“누군지 알아보겠나?”
사진에는 피에르 라캉의 아내인 마리 라캉과 아들인 자크 라캉이 찍혀 있었다. 정보국 시절의 만남이라 빈우는 기록으로만 알고 있다. 마리 라캉과 자크 라캉의 영상은 지금 눈앞의 사진과 일치한다.
“사모님과 자크 아닙니까?”
“그래 내 처와… 아들일세. 다행히 알아보는군.”
빈우가 피자 타이거의 사원이었을 때 피에르 라캉은 스파게티 드래곤의 사원으로서 업무 협업차 종종 만났었고, 그 가족들과도 사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걸 아는 피에르 중령이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이 질문을 했다는 것은 파견 요원이 된 빈우의 기록이 잠긴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울토르 프로젝트의 관계자였으니 이후 보고를 받았겠지.
그러나 빈우는 그것보다 다른 것을 물었다.
“두 분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나?”
뜬금없는 질문에 빈우는 불안해졌다. 아무리 정보국이 관할을 넘나들며 여기저기 들쑤신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색지대의 일이고 이런 건 관할 외다. 오히려 이런 건 보안국의 일이다.
“죄송합니다만, 중령님. 이건 오히려 중령님 쪽 전문이 아닐는지요?”
빈우의 질문과 대답에 피에르는 이쪽을 보았다. 불안감과 무력감에 찌든 눈이다. 보안국 중령쯤 되는 사람이 저런 눈을 하려면 보통 사태로는 안된다.
“처가 아이를 데리고 떠났네. 17일 전에.”
단순히 별거는 아닐 것이다. 어지간한 애처가라도 그런 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는다.
“처도 보안국 요원이었어.”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정보다. 첩보 부서에 일하는 사람은 보안상의 이유로 보안이 확실한 사람이나 동종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랬군요.”
알고는 있었지만 빈우는 예의상 대답했다.
“추적했지.”
아마 공식적인 추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보사령본부의 추적에서 2주 넘게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피에르 중령 정도 되는 사람이 17일 동안 못 찾았다면 상대가 작정하고 도망쳤다는 얘기다.
“오늘에야 알았다네.”
그리고 피에르 중령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꽉 감긴 눈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 싫어서겠지.
“…마지막 장소가 마카로니였다는 걸.”
그 말에 빈우도 굳었다.
“아내와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