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그 더러운 일을 할 팀이 바로 태스크 포스 373이야.”
태스크 포스란 특정 임무를 위해 임시로 만드는 팀이다. 허나 특수전 사령부에는 이미 다수의 특수 부대가 있다. 비밀리에 침투하여 고가치 목표를 타격하거나 회수하는 단검뿔 토끼, 신속 기동타격을 하는 뱅가드 연대, 연방외 구역에서 게릴라 임무를 하는 실리콘 아머 등. 어느 하나 연방군 최고의 특수 부대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 태스크 포스를 만드는 이유는 이들이 맡을 임무가 특수한 성격을 띠어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필요한 경우다. 해서 여러 부대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만들고 해당 임무가 완료되면 태스크 포스는 해산되고 팀원들은 원대 복귀한다.
그러나 방금 레드우드 중장의 말에 의하면 태스크 포스 373은 회수팀이 아니라 추적팀이라 했고 발 가르단 하스에 있는 리퍼 잔해를 회수한 후에도 계속 활동한다고 했다. 뭔가 더러운 활동을.
“근데 왜 접니까? 저 말고도 쟁쟁한 인물들 많을 텐데요?”
“물론 선정기준이 있지. 첫째, 샤다이와 전투 경험이 있을 것. 그런데 심지어 빈우 넌 리퍼들과 직접 싸워본 적이 있잖아. 연방에서 유일하게. 귀중한 경험이지.”
아쉽게도 지금의 빈우는 그 경험을 100% 살릴 수가 없다. 울토르 중대의 지휘관으로서 리퍼와 싸웠던 당시의 기록은 있지만, 도중의 핵심 부분이 트리니티 패턴으로 잠겨있는 것이다. 리퍼의 공격을 받고 화면이 꺼진 다음부터 클론으로 잠수할 때까지의 기록은 정해진 생활을 해야 풀리는 트리니티 패턴으로 잠겨져 있다.
“둘째, 닉스 레벨 3을 수료할 것.”
닉스 레벨 3단계는 단순한 전투 훈련이 아니다. 닉스 1단계가 각종 병기 사용법이나 개인 전투술에 관한 것이라면 2단계는 소규모 병력의 지휘와 연계, 팀단위 전술에 관한 것으로 확장된다. 3단계는 거기서 더 나아가 주어진 상황에서 승리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연방의 모든 자원과 인류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3단계를 수료한 재원들은 적의 팔다리를 자를 때면 진동 나이프부터 연방 세법까지 망라해서 사용하고 적을 추적하기 위해서라면 우주권 전투기부터 심리 역사학까지 다룰 수 있다.
태스크 포스 373이 맡아야 할 임무가 미지의 영역이란 것을 볼 때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만 예상치 못했던 위험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소령일 것.”
그 말에 빈우는 설마 태스크 포스 373이 무슨 전투 비행단 같은 건 줄 알았다.
“설마 팀원 전원이요?”
“아니, 너 한 사람만.”
그러면서 레드우드 중장이 자신을 콕 집어 가리키자 빈우는 좀 납득이 가는 것 같았다.
보통 특수전 사령부가 만드는 태스크 포스의 지휘관은 중장이나 대장이고 현장 책임자는 소령이 맡는다. 즉 여기까지 내건 조건으로 보아 레드우드 중장은 팀원이 아니라 팀장으로서의 빈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보국 요원이 타 부서가 주관하는 태스크 포스에서 팀장을 맡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팀 맡으라고 얘기는 하셨지만… 특수전 사령부 소속이 아닌 외부인이 팀장 맡는 경우가 있습니까?”
“내가 사령관인데 내 맘이지.”
하긴 특수전 사령부의 태스크 포스 지휘관은 자기 팀원들을 꾸리기 위해서 꽤 높은 수준의 인사 권한과 재량권을 가진다. 그리고 정보국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 국장과 미리 이야기되었다고 하니 빈우가 레드우드 중장이 꾸리는 태스크 포스에 팔려가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 것 같다.
잠시 빈우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되새겨 보았다. 머릿속에 잠겨있는 트리니티 패턴은 빈우 자신에게나 정보국, 연방 모두에게 중요하고 치명적인 자료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어떤 생활을 해야 풀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다. 당사자인 빈우 조차.
현재 외부 파견 요원이 되어 언제 어디로 팔려갈지 모르는 상황이란 것을 숙지하고 있었기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순응하려 했던 빈우였지만, 울토르를 공격한 신형 샤다이를 추적하기 위해 구성된 태스크 포스로 파견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빡세다.
과연 일이 이렇게 굴러갈 것을 과거의 자신이 예측했을까. 아니, 적어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빈우는 즉시 자신의 상관인 이노우에 고토 준장과의 회선을 열어보았다.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현 상황을 보고할 필요도 있었다. 다행히 회선은 바로 연결되었다.
“국장님. 지금 레드우드 중장님께서 태스크 포스 건으로 오셨습니다만.”
-엥? 벌써? 빠르기도 하지. 혹시 중장님이 거기 계신가?
“네. 제 앞에 계십니다.”
-잘됐네. 자세한 얘기는 중장님께 들었겠지? 건투를 비네. 김 소령.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빈우가 채 무슨 말을-예를 들어 시발 좀 일찍 말하라고, 같은 말을-하기도 전에 회선이 끊겼다. 이미 윗선에서 자기들끼리 얘기는 다 되어 있으니 너는 그냥 까라는 대로 까라는 흐름이다. 이런 일이 있으면 좀 빨리 알려줬으면 싶었지만, 이노우에 준장에게도 레드우드 중장의 이리도 빠른 움직임은 예상외인 듯싶었다.
그리고 이노우에 국장의 반응을 보니 중요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빈우를 파견 보내는 것에 대해선 정보국 내에서 이미 정해진 것 같고 일이 여기까지 왔으니 선택권은 없다.
“하겠습니다.”
“자식. 쓸데없이 질질 끌고 말이야.”
당연하다는 듯이 레드우드 중장이 씩 웃는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질을 주셨으면 제가 직접 찾아뵈었을 텐데, 굳이 여기 오스카 스테이션까지 오실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빈우가 특수전 사령부로 출두하란 명령을 받았더라면 좀 더 여러 가지 준비나 대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슨 소리냐. 내가 불러서 네가 여기 왔는데.”
“네?”
레드우드 중장의 반응을 보니 이미 빈우가 마카로니를 떠나 이동하던 도중에 정보국과 특수전 사령부 간의 이야기가 샤바샤바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타고 있던 사람도 영문 모른 채 목적지가 여기 오스카 스테이션으로 바뀐 거겠지.
마커스에게서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으니 아마 녀석도 몰랐을 것이다. 알았으면 귀띔이라도 해줬을 테니까.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면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리던 사실 하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우주항에서 보았던 사이클론 어뢰. 이 질량 가속 병기는 대 샤다이 특제품이라 다른 곳에선 쓰이지 않는다. 이런 병기가 있다는 것은 곧 샤다이와 맞붙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설마 여기 오스카 스테이션에 태스크 포스 373이 와 있는 겁니까?”
“내가 여기 있으니 당연하잖아. 아까 막 도착했다.”
레드우드 중장의 말에 빈우는 기가 찼다. 모함이 오스카 스테이션에 있는 상황에 소령 하나 오라고 하면 될 것을 중장이 직접 행차한 상황이다.
“아니 그렇다면 배로 날 부르지 왜 제 방에 와서 행패십니까?”
“쓸모없는 녀석을 내 배에 태울 필요는 없어.”
빈우의 말을 다 쳐낸 레드우드 중장은 힘차게 일어섰다.
“자, 이제 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설마 배로?”
“당연하지, 인마.”
절차고 나발이고 서두르는 자신의 직속 상관의 행패에 빈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짐 좀 챙깁시다.”
“오냐, 있을 건 다 있으니까 필요한 것만 챙겨와. 30분 후에 보자.”
그러면서 레드우드는 태스크 포스 373의 모함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약식 출입증을 주고 방을 나섰다. 지금 빈우가 373의 현장 지휘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구두 임명이었고 정식 절차는 모함의 기밀 구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전자 정보로 된 출입증을 두뇌 칩에 각인한 빈우는 미간을 주무르며 뒤로 푹 기대었다. 이 복잡한 상황을 조금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 방 안으로 들어온 아나스타샤는 그런 주인을 보고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놔두고 조용히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낸 아나스타샤가 커피라도 준비할까요, 라고 물으려고 할 때 빈우가 일어섰다.
“아샤.”
“네, 주인님.”
주인의 부름에 아나스타샤가 긴장하면서 대답했다.
“난 이제부터 특수전 사령부 소속 팀으로 간다. 같이 갈래?”
갑작스러운 빈우의 질문에 아나스타샤는 잠시 멍하니 섰다. 울 듯한 표정도 잠시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네! 갈래요! 저도 갈 거예요!”
간신히 재회한 주인과 또 떨어지기 싫다는 의지는 꽉 쥐어진 두 손만 봐도 알 수 있다.
“짐 챙겨.”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나스타샤는 풀어놓은 짐들을 도로 싸기 시작했다. 메이드는 의욕에 가득 차 시작했건만 뒤에서 날아온 주인의 말은 그녀를 절망케 했다.
“참, 아샤, 필요한 것만 챙겨. 어디 보자. 10분 뒤에 나간다.”
“아아악! 안돼요! 조금만 더! 으흐에엥. 기껏 다 풀어놨는데 도로 싸래! 이게 무슨 경우야.”
울상이 되어 바리바리 짐을 포장하는 아나스타샤를 보고 빙긋 웃은 빈우는, 간단한 개인 사물만을 챙기고 우주항 보관소에 남아 있던 개인 화기들을 모함으로 보내도록 절차를 밟았다. 그다음 ‘정보국식’ 뒷정리를 했다. 딱히 할 필요는 없었지만 버릇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커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통신을 켰다. 서로 백업을 하기로 했으니 정보교환을 하는 것은 필수다.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해 주세요.’
그러나 마커스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건 정보국 임무를 나가 당분간 연락을 할 수 없다는 암호 메시지다. 지금의 마커스라면 자기와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미리 빈우에게 언질을 줬을 것이다.
뭔가 찝찝했지만 빈우는 모함으로 가서 다시 알아보거나 메시지를 남기기로 하고 아나스타샤를 재촉했다.
“일단 나머지는 스테이션 쪽에 말해서 보관소에 넣어달라고 해. 다 챙겼으면 나가자.”
“이건 괜찮죠?”
징징대며 마법 소녀 피스메이커 인형을 챙기던 아나스타샤는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맞고 빈우에게 끌려갔다.
* * *
단출하게 한 손에 들 짐만 챙긴 두 사람은 우주항에 도착해 레드우드 중장이 알려준 곳으로 갔다.
아까 빈우가 스미스 가족과 왔던 우주항이지만 지금은 더 깊은 곳, 민간인들은 올 수 없는 통제구역으로 가고 있다. 꽤 먼 곳이라 자동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아나스타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주인님. 저 잠시….”
“응, 도착할 때까지 쉬어.”
아나스타샤가 말하려는 것은 빈우도 알았다. 통제구역이 다가오자 승인받지 않은 안드로이드인 그녀의 인공지능이 제한받기 시작한 것이다. 허가증을 받은 빈우의 물품이라 주인을 따라 들어올 수는 있지만, 인공지능의 능동적인 행동과 사고는 나중에 인증을 받은 다음에야 가능하게 된다.
쿠델카 타입 특유의 희미한 미소만 남고 무표정이 된 아나스타샤는 이제 빈우를 따라 이동하는 로봇에 불과하게 되었다.
레드우드 중장이 알려준 위치는 군사 구역 중에서도 따로 떨어진 곳이었고 도착하자 거기엔 구축함이 한 척 정박해 있었다. 순양함이나 강습함이 아닌 것은 의외였지만 자세한 것은 안에 들어가면 알게 될 것이다.
배의 입구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현재 빈우의 상태로는 그쪽의 두뇌 칩 정보가 뜨질 않았다. 아마도 태스크 포스 373의 사람이라 기밀이 걸려 있겠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녹색으로 빛나는 사나이가 빈우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김빈우 소령. 본 함의 함장 지마 오르입니다.”
“반갑습니다. 함장님.”
오르 함장은 상호 간의 경례 대신 악수를 위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은 빈우는 즉시 정보가 갱신되는 것을 느꼈다.
태스크 포스 373의 이동 기지도 한 이 구축함의 이름은 블랙 랜스였다. 이윽고 정보 갱신이 완료됐다. 빈우는 정식으로 태스크 포스 373의 화력조 팀장이 되었고 그에 걸맞은 권한과 기밀 접속 취급 인가가 떨어졌다.
원래대로라면 외부와 차단된 함내 기밀실에서 행해져야 할 정보 이동이 이렇게 밖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의외지만, 접촉만으로 이런 정보 처리가 된다는 게 더 놀랍다. 아마 특징적인 외모를 가진 함장의 특수한 능력이리라.
지마 오르 소령의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얼굴과 손, 신발은 신지 않은 맨발-는 반질반질한 녹색의 금속 재질이었다. 처음 봤을 땐 우주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한 신체개조라고 추측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구축함과 오르 함장은 연방군의 구형 함정 전면 개수 프로젝트 중 하나인 ‘롱 훅’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단편적인 정보만 잠시 훑어보고 있을 때 오르 함장이 말을 걸어왔다.
“이쪽의 안드로이드는 무엇입니까?”
“비서이자 가족입니다.”
“이런, 실례했군요. 아나스타샤 양, 잠시 제가 접속해도 될까요?”
오르 함장이 부드럽게 권유하자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먼저 빈우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으로 주인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빈우가 고개를 끄덕여 허가하자 자신의 접속 단자를 드러냈다. 오르 함장은 그 단자에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직접 대었다.
그것만으로 아나스타샤의 인공지능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능동 상태로 바뀐 아나스타샤는 그동안 자신이 수집했던 정보를 토대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마 오르 함장님. 김빈우 소령님을 모시는 아나스타샤라고 합니다.”
“어서 와요. 블랙 랜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안드로이드 메이드에게 미소와 함께 인사하는 사람은 연방에서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함장님은 안드로이드에 관대하시군요.”
“살아온 환경과 관계가 있죠. 자, 걸으며 얘기할까요?”
오르 함장의 안내로 함 내부로 들어간 두 사람은 의외로 사람이 없는 것에 놀랐다.
“와아아, 이 배 정말 대단하군요.”
빈우의 개인 비서로 임명된 아나스타샤에게도 기본적인 정보가 전해졌는지,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배들과 다른 점을 깨닫고 감탄을 하고 있었다.
“팀장도 롱 훅 프로젝트는 들어보셨지요?”
앞서서 걷는 오르 함장의 질문은 빈우의 전력을 알고 있는 듯한 질문이었다.
“노후된 구형 함선의 전력화 프로젝트란 것만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 빈우는 어차피 한솥밥 먹을 처지인데 더 가릴 게 없다 싶었다.
“응우옌 중령이 참가했었죠.”
군사정보국의 클론 기술 전문가인 응우옌 티 빈 중령은 울토르 프로젝트 말고도 이 롱 훅 프로젝트에도 참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