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롱 훅 프로젝트는 함선 개조에 클론 기술자인 응우옌 중령을 불렀다는 것으로 잠시나마 화제가 됐었다. 자세한 건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그 두 가지 기술을 어떻게 섞느냐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측을 했었다. 빈우는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승무원을 클론으로 쓰려는 갑다, 하고 넘어갔었다.
오르 함장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응우옌 중령은 클론 분야의 전문가이죠. 육체와 의식 둘 다.”
사실 클론 육체 제조는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신과 의식의 정립이 없이 클론의 몸만 필요하다면야. 단 이런 고깃덩어리 클론은 대부분 원본이 되는 사람의 신체 부품이-부상에 의한 교체나 치료가-필요할 때 만들어진다.
그러나 울토르 중대처럼 클론의 육체에 원본의 지식을 복제하는 경우는 그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
현재 연방의 기술로는 원본 뇌의 기억을 클론 뇌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답보 상태이다. 두뇌 칩의 기록을 옮기는 건 쉽다지만 그 기록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경험으로 대응시키는 데에는 꽤 어려움이 있다.
어쨌든 기록과 경험을 복제한 클론들은 원본에 준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기에 울토르 프로젝트는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런 능동적인 클론은 아직 연방에서 불법인 부분이기에 실제로 연방에서 행해지는 클론 시술은 신체 일부를 교체하는 경우나 원본의 뇌를 클론의 육체에 이식하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이식자는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내, 외적 노력이 필요하다.
뇌 이식.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빈우는 하나의 실마리를 잡은 듯싶었다.
“설마하니 함장님은… 이 배에….”
오르 함장은 빈우의 못다 한 질문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의 뇌는 이 배에 이식되어 있습니다. 저는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듯, 블랙 랜스를 움직일 수 있죠.”
뒤에서 아나스타샤가 놀라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빈우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놀랐다. 비인간형 동체에 뇌를 이식하는 것은 그다지 성공률이 높은 방법이 아니다.
“…꽤 힘드셨겠습니다.”
“대단히.”
짧지만 많은 것을 함축한 대답을 하면서 오르 함장은 배의 벽면을 매만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빈우의 눈앞에 선 오르의 몸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인간 형태의 로봇일 것이다.
“저 스스로 지원한 프로젝트였다지만, 현실은 의지와 달리 흘러갔습니다.”
안구가 없는 눈 모양의 시선이 함선 복도를 훑는다. 지금까지 보였던 오르 함장의 움직임들은 인공 지능 허수아비의 행동이나 원격 조종되는 로봇의 것이 아니라 마치 진짜 사람 같아 보였다. 녹색으로 빛나는 오르의 얼굴에서 그가 과거에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고통이라면 빈우도 짐작 가는 것이 있다.
“환상통… 같은 겁니까?”
환상통은 신체 일부를 상실했을 때 사라진 말단부에서 발생한 신경 신호가 뇌에 오류를 일으켜 고통이나 가려움 등의 이상 감각을 겪는 증상으로써, 재생 의술이 발달한 현재라면 보기 힘들고 과거의 기록에서나 찾을 수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신체를 사이버 부품으로 대체하거나 클론 육체로 교체하게 되면 당연히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이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이 있어 시술자는 느끼지도 못하고 새로운 신체에 적응한다.
그러나 인간과 배라는 전례 없는 경우라면? 어떤 예방책이나 대응책도 이론에 불과할 것이고 오르 소령은 스스로가 실험체가 되어 해결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비슷합니다. 미칠 것 같았죠. 예상했던 예방책들은 결국 예상에 불과했습니다. 몸이 있는 상태에서 의지와 사고만으로 배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손쉽게 할 수 있었지만, 뇌를 이식한 다음 육체 없이 배를 실제 손발처럼 움직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우수한 조종사나 조타수들은 두뇌 칩과 배, 비행기들을 연결해 수동 조종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멋들어지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마도 롱 훅 프로젝트는 거기서 연장된 것이겠지만 연장해도 너무 연장했다.
“이제까지 있었던 신체 대응용 OS들을 다 써봤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없었어요. 하긴 당연한 일이죠. 신체의 어느 부위 감각을 배의 어느 시스템에 대응해야 하는지는 상상에 불과했으니까요.”
인간이 인간 형태의 로봇에 들어가는 건 그나마 쉽다. 같은 형태이기에 본인의 움직임에 적응도 쉽고 시술 사례와 적용되는 프로그램도 많아 부작용은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저의 뇌는 보존해둔 원래의 육체로 도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응우옌 중령이 해결책을 하나 내주더군요.”
그러면서 오르 함장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이 육체가, 저의 모습을 한 단말이 해답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빈우는 해결 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인간 형태의 단말에 의식과 신경 신호를 분산시켜 오류를 무마한 겁니까?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방법이었군요.”
설명은 쉽지만, 실행과 실현에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네, 이 단말 육체는 여러분과 저를 연결하듯 저와 배도 연결합니다. 저의 생각에 따라 이 육체가 움직이고, 육체가 보고 느낀 것은 모두 저에게 전달됩니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는 인간 형태의 단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까 오르 함장의 단말은 손가락으로 아나스타샤에 접속해 권한을 변경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저는 숨을 쉬는 감각으로 함내의 대기 순환 시스템을 느끼고, 심장 박동 대신에 동력로의 상태를 캐치합니다. 힘차게 발을 내디디면 융합 추진기가 가열하고 적에게 주먹을 날리려 하면 함포와 미사일들이 장전되지요.”
수의근뿐만 아니라 불수의근 쪽 신경마저 연결했다면 본인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직접적으로 연결된 겁니까?”
“예리하시군요.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제 신체 감각과 함선 사이에는 시스템이 하나가 더 있었지요. 저의 신경과 감각들을 함선 시스템 신호로 번역해 주는 시스템이. 그러나 번역 프로그램을 써보셨으면 알 겁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시킨 대로 말을 하지만 서서히 배워나가면서 자기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지요.”
그것도 본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다르다. 아무리 두뇌 칩 속의 프로그램들이 인간을 돕는다고 해도 당사자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의 저는 배 안에 존재만 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함장실이자 기관실이며 전투 정보실입니다.”
어느 것이나 다 중요한 시설이라 빈우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함장님의 그 단말 육체는 중요한 겁니까?”
오르도 빈우의 질문이 가진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아닙니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소모품이기에 유사시에 구하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단말기를 겸하는 육체라도 몇 가지 유용한 부가 기능들이 있지요. 아까 아나스타샤 양에게 접속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아까 아나스타샤에게 무선 접촉이 아니라 유선 접촉을 했던 손가락을. 그 끝에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일렁이는 파문이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아까의 악수에서도 느꼈고 지금도 봤지만 저런 움직임을 하는 물체를 빈우는 잘 알고 있다.
“혹시 재질은 헬레나 겔입니까?”
헬레나 겔은 장갑복의 인공 근육과 내부 장갑을 담당하는 재질로, 투입되는 전력에 반응해 탄성이 부드러운 액체에서 단단한 고체까지 자유롭게 변한다. 마치 녹말처럼.
“맞습니다. 내부에 몇 가지 시스템이 있지만, 몸은 헬레나 겔입니다.”
“그건 검은색일 텐데 새로운 개량이 가해진 겁니까?”
“아닙니다. 색은 응우옌 중령이 저의 심리상태를 분석해서 맞춰준 겁니다. 제 고향의 색이죠.”
오르 함장이 바로 다음 말로 이어가지 않고 잠시 멈춘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사실 전 제 고향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팀장도 아실 겁니다. 아직도 자치령의 몇몇 곳에선 피부색이나 신체의 차이로 인간을 차별하고 박해한다는 것을.”
얼굴의 윤곽이나 이목구비의 모습을 보면 원래 오르 소령의 피부색은 아주 짙은 쪽이었을 것이다. 제국 이전 시절부터 박해를 받아온 인종의 색이다.
“무채색의 숙소에서 사육되고 초원에 풀려날 때면 노리개 역할을 했던 저에게 풀과 나무의 녹색은 그다지 좋아하는 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늘의 푸른색을 동경했지요. 때문에, 응우옌 중령의 색 선택은 그다지 탐탁지 않았습니다만 그게 정답이란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아마 응우옌 중령은 오르 자신이 터부시했던 기억과 상처들을 부정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의 심리상태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실제 지금까지 오르 함장의 말투와 움직임에서 과거를 부정하거나 꺼리는 기색은 없었다. 있었던 사실 그대로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빈우는 거기서 조금 더 떠볼 요량으로 말을 꺼냈다.
“제 고향의 색은 초록색과 노란색이었습니다.”
“초록색과 노란색이라고요? 흐음, 밀입니까? 쌀?”
두 가지 색만으로 오르 함장은 빈우의 고향이 농업 행성임을 바로 알아맞혔다.
“보리입니다.”
“오, 보리.”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을 보는 오르의 표정은 빈우의 다음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펼쳐진 초록색 보리밭은 해가 뜨고 질 때마다 붉게 변하죠. 바람이 불 때마다 보리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저에게도 장관이었습니다. 그 보리들이 노랗게 익으면 가족들은 바빠집니다. 수확해야 하거든요. 다행히 한꺼번에 수확하지는 않습니다. 구획 별로 수확 시기를 달리해놓기 때문에 짧으면 일 주, 길면 한 달의 간격을 두고 보리를 베지요.”
오르 함장의 시선은 안구가 없었지만, 이쪽을 보는 것 같진 않았다. 아마 머릿속으로 빈우가 말하는 풍경을 상상하고 있으리라.
“수확이 다 끝난 밭에는 일조량 조절용 거울로 빛을 모아 불을 지릅니다. 그러면 남은 보릿짚들이 불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 다음 닷새 정도가 지나면 비가 내리죠.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나스타샤와 저는 별미를 즐기고요.”
“어떤 별미입니까?”
그 대답은 빈우의 눈짓에 아나스타샤가 대신했다. 공범이자 같은 추억을 공유한 메이드는 짓궂은 미소를 자신의 주인에게 한 번 보내고 설명을 시작했다.
“옆 밭에서 다 익은 이삭을 한 움큼 뜯어 잔불이 남은 밭으로 가요. 그리고 아직 숨 쉬는 재 위에 이삭을 올리고 바람을 일으켜 불씨를 조금씩 살리는 거죠.”
오르 함장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몸짓을 곁들여 설명하는 아나스타샤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커져서 이삭을 태우면 그걸 걷어내어 발로 밟아 불을 끈 뒤에 손바닥 사이에 놓고 비벼요. 싹싹. 그다음 탄 겨를 후후 불어내고 익은 보리를 먹는 거죠.”
“그때 아나스타샤의 입은 제대로 바람을 불 수가 없어서 제가 불었죠.”
얄밉게 끼어든 주인에게 아나스타샤는 쏘아붙였다.
“불기 전까지 일은 전~부 다 제가 했고요. 또 먹고 난 다음에 검댕으로 엉망이 된 도련님 얼굴은 누가 닦았는데요.”
빈우와 아나스타샤의 장난기 가득한 추억담을 들은 오르 함장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놀라워요. 영상이 아니라, 말로 설명을 듣다니. 이런 자극은 정말 오래간만에 느끼는 기분입니다.”
오르는 일체의 불편해하는 기색도 없이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하긴 조금만 설명을 해도 홀로그램으로 자료 영상을 띄우는 세상이니 신선했을 것이다.
“자, 이제 다른 팀원들을 만나러 가보죠.”
오르 함장의 말에 빈우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팀원이라고 하면 빈우나 오르의 부하일 것이다. 원래 이런 상황이라면 레드우드 같은 최상급자를 만나는 게 최우선인데 그 양반은 여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레드우드 사령관님은 안 오셨습니까?”
“다른 팀원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빈우는 곤욕을 치를 미래의 동료에게 잠깐의 애도를 표하고는 오르 함장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