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이야, 김 팀장.
아까 번갯불에 콩 볶아먹은 이노우에 고토 국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연락해 왔다. 전후 사정 아무런 설명도 없이 너 팔렸으니까 잘해보란 식으로 일방적인 통보를 해놓고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하다니 뻔뻔하다.
뭐 그래야 고토 답지만.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제야 대강 파악이 되더라구. 레드우드 사령관이 좀 서둘러야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묶어놓은 기록 중 몇 가지를 풀기로 했네. 이게 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내 마음, 김 팀장은 잘 알아주겠지?
당시 빈우가 묶였던 기록들은 울토르 프로젝트의 핵심 부분들이다. 그걸 지금 푸는 이유가 뭘까? 게다가 리퍼들과의 전투 기록이라면 지워지지 않았고 트리니티로 잠긴 부분은 아직 풀릴 기미가 없다.
-니미 잘 알죠.
-허허허, 고맙네.
그러면서 고토 국장은 이번에도 자기 할 말만 하고 기록해제를 위한 암호 코드를 던진 다음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빡쳐서 이쪽에서 연락해도 답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내 위로는 이런 사람들뿐일까 하며 골머리를 썩이는 빈우에게 부팀장 아룹의 말이 들려온다.
“팀장님?”
“별거 아닙니다. 방금 정보국에서 정보가 좀 넘어와서 말이죠.”
“오오. 어떤 겁니까?”
빈우는 자신의 기록 중 풀린 것을 훑어보고 있었다. 마카로니 궤도상의 솔리드 베타에서 부상한 다음 잠겼던 기록들은 완전히 모르는 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가는 기록 전후에 모순이 생겨 요원의 사고에 혼선이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 의문을 가진 요원이 잠긴 기록을 강제로 풀려고 시도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세부 내용은 막아두고 대략적인 색인 정보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해두면 만약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방금처럼 단순한 암호 신호 하나로 잠겼던 기록들이 바로 명확해진다.
이번에 풀린 기록들은 울토르 프로젝트에 관한 몇 가지 기록들이다. 이것은 현재 연방 정보사령본부는 물론이고 연방군 전체에 뜨거운 감자가 된 프로젝트다.
그러나 실망스럽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풀린 부분들은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고 곁가지 몇몇에 관한 것들이 고작이었다. 이 시점에서 이런 민감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풀어주는 이노우에 고토의 꿍꿍이는 과연 무엇일까.
민감한 정보란 것에 생각이 닿자 문득 빈우는 리퍼에 관한 것들을 떠올렸다. 레드우드의 말에 의하면 현재까지 리퍼와 직접 조우한 것은 울토르 중대뿐이다. 앞으로 마주쳐야 할 적들에 대해 팀원들은 과연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좀 애매한 것들이라 나중에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부팀장은 우리 임무가 어떤 건지 알고 있습니까?”
“대강은 들었습니다. 리퍼라 명명된 신형 샤다이들이 비홀더 전대에 박살 나서 발 가르단 하스에 쳐박혔고, 우리가 그걸 찾으러 간다는 거 아닙니까?”
옆의 파트리샤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둘 다 그 정도는 알고 있는 듯했다.
“그 리퍼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아직은 기존의 샤다이에 비해 극히 위험하다는 말 밖에 못 들었습니다. 또 연방과 최초로 접촉한 것은 일 년 반 전에 한 비밀 부대와의 전투였다는 것, 그리고 이후로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그래요? 파트리샤는?”
“저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열람 거부가 뜨길래 뭐, 때 되면 가르쳐주겠지 싶어서 참고 있죠.”
단검뿔 토끼와 실리콘 나이트는 연방에서 온갖 비밀스러운 임무를 하는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원들이 알 수 없다면 연방에선 꽤 높은 수준의 정보 제재를 가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레드우드쯤 되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이들이 아직 모르는 것을 보면 팀이 제대로 갖춰질 때까지는 허투루 얘기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바로 제가 그 리퍼들과 싸웠던 생존자입니다.”
“정말입니까?”
“오와우.”
두 사람의 입에서 놀란 감탄이 나오고 눈에는 호기심과 기대가 깃든다. 그리고 왜 빈우가 팀장이 되었는지 더더욱 이해가 간다.
“궁금하겠지만 자세한 것은 사령관님과 팀원들이 다 모이면 하죠.”
“근데 팀장님, 다른 사람들은 언제 다 모인답니까?”
장난스레 손을 들고 까딱까딱 흔드는 파트리샤에게 빈우는 대답할 게 궁해졌다.
“글쎄? 아까 말했다시피 나도 방금 끌려와서 아무것도 못 들었어. 사령관 혼자서 다 하지 싶은데 말이야. 부팀장?”
“저도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대기하라고 하시고는 사람들 데려오겠다며 가셨죠.”
세 명이 레드우드에 대한 뒷담화를 막 시작하려 할 때, 이번에는 오르 함장의 통신이 왔다.
-팀장님. 지금 격납고로 새로운 팀원이 착함하고 있습니다.
아까 레드우드 사령관이 말했던 팀원인 모양이다. 격납고로 온다면 셔틀을 타고 오거나 자신의 기체를 몰고 오는 경우다. 그러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블랙 랜스에 셔틀이 올 리는 없으니 전투 인원일 것이다.
-전투기 쪽 인원인가요? 아니면 전차?
-아니오. 스테이션 쪽에서 장갑복을 입고 옵니다.
그 말을 들은 빈우는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작전 시가 아닌 평시라면 보통 장갑복 같은 무기류는 따로 보내고 몸만 오는데 완전 무장하고 격납고로 오다니. 얘는 또 무슨 관심 종자인지 빈우는 심히 궁금해졌다.
허나 그전에 빈우는 행여 자기가 잠수한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뭔가 새로운 전술이나 교리가 생겼나 싶어 팀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새로 오는 팀원이 장갑복 입고 격납고로 온다는데?”
그 말을 들은 아룹과 파트리샤도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니 그동안 뭐가 크게 바뀐 건 아닌 것 같다.
“보러 갈 사람?”
팀장의 말에 심심했던 일행 전원이 손을 들었다. 빈우가 훈련실을 나가려고 할 때 아나스타샤가 물어왔다.
“주인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빈우는 팀원들에게 자신의 사무보조용인 아나스타샤를 소개하려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니 팀원들이 언제 다 모일지 모를 일이다.
“먼저 방에 가서 짐 정리하고 있어.”
아나스타샤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 *
격납고와 이곳 훈련실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블랙 랜스는 팀원들의 주거 구역을 중심으로 해서 훈련실과 식당, 격납고를 둘러서 구성해 놨기 때문에 각자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자칫 한 방에 대원들이 떼로 몰살당할 수 있는 이런 구조는 구축함이나 순양함보다는 강습함, 상륙정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이라 신속대응을 해야 하는 태스크 포스 373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일행이 격납고에 다다르자 빈우가 본 적이 없는 신형 강화복이 몇 개의 컨테이너를 등 뒤에 달고 착륙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빈우의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날아?’
물론 장갑복에는 제트팩이 있어서 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점프나 고속 이동이지 우주 공간이 아닌 1G 상에서 저렇게 스무스하게 비행하는 기종은 본 적이 없다.
“저건 부머 같군요.”
아룹의 말에 빈우는 해당 정보를 검색해 보았으나 그다지 뜨는 것은 없었다. 과학기술국에서 실험용으로 만든 헤비급 실증기 중 하나에 그런 코드명이 붙어 있기는 했다.
“아는 겁니까?”
“흐음, 제 친구가 기술국에서 테스트 파일럿을 한 적이 있어서 잠깐 들은 거라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샤다이의 기술을 역설계해서 만든 비행형 장갑복이랍니다.”
날아다니는 장갑복이라, 그걸 어디다 쓴데? 라는 게 빈우의 솔직한 감상이었지만 일단 개발만 해놓으면 사용법은 자연히 발견된다는 것이 기술국의 모토였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샤다이의 기술을 역설계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궁금한 것은 빈우만이 아니었는지 파트리샤가 질문을 해왔다.
“샤다이의 기술을 역설계 했다구요? 놀랍기는 한데, 그럼 저거 실험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한테 왔다는 건 실전 배치될 정도로 검증되었다는 거예요, 아니면 여기서 실험을 하겠다는 거예요? 팀장님?”
이번에도 빈우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나도 몰라.”
명색이 팀장이 되어서도 아는 게 없다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있다.
바로 팀장의 권한으로 블랙 랜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원을 조회하는 것이다. 지금 장갑복을 입은 사람은 모니카 보르자 대위로 과학기술국의 실험 중대 소속이었다.
빈우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바로 팀원들에게 넘겼다.
“모니카 보르자~ 25세에 과학기술국 대위라~ 어머? 오호, 이히히.”
금세 파트리샤의 얼굴에 장난기가 돌며 아룹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딱 봐도 뭔가 희한한 수작을 부릴 낌새인데 정작 시선의 피폭자인 부팀장은 그냥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서 있을 뿐이다.
그때 컨테이너를 내린 모니카가 장갑복을 입은 채로 이리로 걸어오기 시작했는데 걷는 폼이 빈우의 생각과는 약간 달랐다. 넓적다리 관절의 가동 방식이 헤비급에서 흔히 보이는 기계식 관절의 움직임이 아니라, 라이트급이나 미들급에서 보이는 헬레나 겔 인공 근육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상체의 움직임도 체중 이동이 외부 장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척추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저거 부하가 심할 텐데. 근육이 신소재인가? 아니면 장갑이 경량화 소재인 건가?’
빈우가 이런저런 상상을 할 때 모니카는 일행의 앞에 와서 헬멧 상부를 열고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모니카 보르자에요. 모니카라고 불러주세요.”
“응? 어, 반갑다. 팀장인 김빈우다.”
모니카의 인사에서는 이상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빈우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은 받아주었다.
기본적인 정보는 두뇌 칩에 의해 서로 보인다고 해도 첫 만남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예의란 게 있는데 방금 같은 경우는 뭔가 달랐다. 뭔가가.
그때 또 다른 불길한 기운이 뒤에서도, 파트리샤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슬쩍 돌아보니 히죽거리는 얼굴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리고 이쪽은 우리 부팀장.”
빈우의 소개에 아룹도 모니카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아룹 라마누잔 원사입니다.”
그리고 모니카도 인사를 했다.
“응, 반갑다. 원사.”
그때 뭔가 터졌다. 빈우의 어이와 파트리샤의 웃음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피해자인 아룹은 무관심한 듯 허허 웃기만 하고 있었다.
“푸흐흡, 크큭.”
뒤에서 파트리샤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 노력한다. 그제야 빈우는 아까 그녀가 왜 그렇게 건수 잡은 개구쟁이처럼 시시덕거렸는지 이해했다. 파트리샤는 모니카가 아룹에게 이런 사달을 낼 것을 예측한 것이다.
‘깜빡했다. 과학기술국에서 대위라면….’
빈우와 모니카가 속한 연방 정보사령본부는 계급 체계가 일반적인 군에 비해 좀, 많이 개판이다.
방첩 활동을 하는 보안국은 내부 수사를 할 때 꿀리지 않기 위해.
첩보 활동을 하는 군사정보국과 정보수집 임무를 맡은 정보분석국은 보안과 기밀 접근을 위해.
그리고 과학기술국은 민간에서 수준 높은 엘리트 섭외와 연구 시 기밀 접근을 위해 계급을 팍팍 찍어준다.
특히나 과학기술국의 경우는 민간 연구소의 인재들을 영입할 때 기본적인 군사 훈련보다는 간단한 신분화 과정을 거치는 게 고작이고, 하는 일도 일반적인 군 생활과는 동떨어진 연구나 기술 업무만 줄곧 맡기 때문에 보편적인 군사 상식이 결여된 인원들이 좀 있었다.
바로 앞의 모니카 보르자 대위 같은 경우가 좋은 예시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대위를 달았다면 아마도 임관할 때부터 바로 대위였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수의 박사 학위나 연구 성과가 그것을 뒷받침 해줬을 것이고 당연히 과학기술국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하는 귀한 인재일 게 뻔하다.
하지만 태스크 포스 373에 온 이상 따라야 하는 규칙과 상식이 있다.
“대위.”
방금 모니카가 저지른 사고는 모르고 저지른 것이다. 그렇기에 빈우는 최대한 부드럽게 사실을 알려주고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다.
“넹.”
귀여운 대답은 그냥 귀엽게 듣기로 하자.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자네가 몰라서 그랬을 것 같아서 가르쳐 주는데 말이야. 방금처럼 원사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돼.”
“왜요? 계급은 제가 위인데요?”
만약 모니카가 일반적인 대위였다면 여기서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앞으로 빈우의 부하가 되어 같이 생활할 사람이자 과학기술국의, 나아가 연방군의 보물이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살펴보니 아예 전투 개조도 않은 민간인의 육체를 하고 있었다. 개조도 않은 몸으로 잘도 헤비급을 입네~ 스치면 뒤지겠네~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잘 타일러서 이끌어 줘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부사관은 결코 장교의 부하가 아니야. 장교가 작전을 수립해 지휘하면 그걸 현장에서 실행하는 계급이 바로 부사관이지. 게다가 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오기 때문에 경험은 당연히 장교보다 위라서 보통은 서로 상호존중을 하는 게 일반적이야. 특히 부팀장인 라마누잔 원사 같은 경우는 군경력이 36년째야, 네 나이보다도 많다고, 팀장인 나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이란 말이야.”
데이터나 문서상으로는 알려주지 않은 지식을 접한 모니카의 얼굴은 점차 굳어져 갔다.
“아~ 그거 혹시… 현장 기술직 준위하고 연구 사무직 소령의 관계 같은 그런… 건가요?”
모니카는 그녀의 경험과 지식에서 가장 어울리는 비유를 했고 그것을 긍정하는 빈우의 표정에서-준위를 아는 애가 그따위로 행동하냐는 표정에서-자신이 무슨 사고를 쳤는지 대번에 깨달았다.
“죄! 죄, 죄송합니다! 원사님! 제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사색이 된 모니카의 사과를 아룹은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하하 아닙니다, 대위님.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곳의 일이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잖습니까. 전 괜찮으니 전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사건이 하나 해결되자 빈우는 다시금 모니카를 환영했다.
“어흠, 태스크 포스 373에 온 것을 환영한다. 대위, 앞으로 우리 팀에서 많은 활약 바란다.”
“네, 환영 감사합니… 어? 네? 뭐라구요?”
모니카가 버벅대는 모습이 조금 수상하다.
“왜 그래? 뭐 잘못되었나?”
“저, 저는 이 컨테이너만 가져다주기로 했는데요? 그리고 다시 돌아갈 거에요. 셔틀이 스테이션 궤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빈우는 즉시 모니카의 정보를 다시 열람해 보았다. 그리고 팀장의 권한으로 모니카의 소속과 동선을 다 파악한 다음 잔인한 선고를 내렸다.
“대위, 너 태우고 온 배. 떠났는데?”
“예엣! 아니 배가 왜 떠나요! 날 두고, 그럴 리가.”
당황하는 버벅대는 모니카에게 빈우는 문서 화면을 하나 띄워주었다.
“저기, 대위? 진정하고, 여기 이 내용이 보이나?”
그것은 모니카 보르자 대위가 과학기술국에서 태스크 포스 373으로 파견되었다는 기밀문서다. 그리고 그 내용 중에는 작전 도중 사망 시에 관련된 사항을 비롯해 별의별 흉악한 것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문서의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던 모니카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고, 급기야 진짜로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는 빈우의 머릿속에선 또 뭔가 불안한 가정이 생겨났다.
“전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마침내 모니카는 울음을 터트렸다. 종일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던 연구원이 졸지에 최전방 특수부대로 파견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빈우의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레드우드 이 양반이 진짜.’
모니카의 경우는 빈우 때 보다 더 심하다. 과학기술국에서 보쌈을 당했는지 아니면 뭔가 딜을 하고 넘겨받았는지는 몰라도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기 지옥 일번지에 떨어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고 울고 있는 모니카를 보면서 그것을 알려준 빈우는 불쌍함을 느꼈다. 모니카와 자기 자신에게.
모니카야 불쌍해도 팀장인 빈우가 퇴짜를 놔서 돌려보내면 된다지만 빈우 자신은 앞으로 이런 처지의 팀원들이 얼마나 더 올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 이런 민간인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당겨가며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뒤에서 파트리샤의 키득이는 웃음이 들리자 빈우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고 곧 아룹의 주먹이 파트리샤의 관자놀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