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원래 모니카 같은 인력은 현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태스크 포스 373의 현장팀이 있어야 할 곳이 여기 블랙 랜스라면 그녀 같은 연구 인력들은 참모들과 같이 후방-특수전 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모니카 보르자 대위가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없기에 그녀가 공포에 떨며 우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레드우드가 그녀를 끌고 온 방식이었다.
“진정해, 대위.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아무런 통보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지. 내가 사령관께 말해 보겠어.”
빈우는 우는 모니카를 달래며 격납고에 자리를 마련해 앉힌 다음 우선 자신의 메이드 아나스타샤부터 불렀다.
-아샤. 보내자마자 미안한데 지금 바로 격납고로 와줄 수 있어?
-네, 무슨 일인가요, 주인님?
-음, 부당한 현실에 마주쳐 공황에 빠진 대위 대우 여성 연구원 한 분이 계시는데…. 네가 와서 좀 달래드리고 숙소로 안내해드려.
-네, 알겠습니다. 즉시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다음 빈우는 바로 회선을 자신의 직속 상사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에게 연결했다.
-사령관님. 모니카 보르자 대위, 꼭 필요합니까?
-응, 뭔 소리야? 걔 벌써 도착했어? 아니, 혹시 퇴짜놓으려고? 안돼! 모니카는 절대 안 돼! 꼭 붙잡아.
‘아이구야.’
방금 통신은 모니카에게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레드우드 사령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니카를 태스크 포스 373에 집어넣고 싶은 모양이었다.
지금 레드우드 사령관은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는 중인지 통신이 띄엄띄엄 이어졌다.
-근데 위르겐은 안 왔냐? 아까 간다고 했는데.
-온다고 했던 사람이 위르겐이라구요? 보르자 대위 아니었습니까?
-아니, 위르겐 도른베르거라고 뱅가드 소속인데 그 녀석 아까 거기로 보냈어.
일 처리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빈우는 뭔가 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나, 현재 레드우드 사령관은 팀장인 빈우에게 팀원은 물론이고 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럴 수도 있다. 현장 지휘관에게 큰 권한이 없다면 대부분의 일 처리는 사령관이나 참모가 하고 현장에선 주어진 명령을 묵묵히 수행하면 된다. 근데 이 경우 현장 지휘관은 보통 부사관이나 위관급이 맡는다.
둘,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빈우는 정보국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 준장조차 직접 호출할 수 없는 중요 기밀 시설에 있으며, 그 기밀 시설의 책임자인 오르 소령은 빈우에게 통신이 왔을 때 거부권이 있음을 암시했다. 이는 팀장 빈우를 보는 주변의 인식이 장성급에 맞먹는다는 뜻이다. 적어도 오르 소령은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뭔가 결론을 도출해 내기엔 아직 자료가 부족하지만, 자료는 찾으면 되는 법이다.
“아니! 시발! 진심! 조직 관리! 좆같이 하네!”
대로한 빈우는 사령관에게 육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빈우가 레드우드와의 개인 통신이 아니라 주변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회선을 공개해놓고 쌍욕을 퍼붓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고 빈우가 욕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 식겁했다.
“어이, 중장님. 현장 팀장인 나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저 꼴리는 대로 사람 잡아다가 던져주면 내가 뭘 어쩌라고? 적어도 인선에 대한 기초적인 윤곽은 알려줘야 할 거 아뇨! 시발.”
소령이 직속 상관인 중장에게 개 쌍욕을 퍼붓는 진귀한 풍경에 배짱 두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특수 부대원들도 어찌 말리거나 끼어볼 틈도 없이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레드우드라면 격노해서 맞받아칠 게 당연하니까.
“아유, 새끼 성깔하고는. 진정해 인마. 나중에 내가 다 얘기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놀랍게도 레드우드는 마주 폭발하는 게 아니라 이해한다는 듯, 한발 물러서서 타이르고 있었다. 이것도 좀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천하의 레드우드가 말이다.
레드우드가 빈우를 이렇게 대우한다는 것은 태스크 포스 373의 사령관인 그가 현장 지휘관인 빈우를 자신의 전권 대리인으로 놓고 팀을 꾸리고 있으며, 그건 빈우의 권한과 위상이 사령관에 버금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레드우드가 이렇게 손수 비밀리에 행동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대원의 정보 노출을 극히 꺼리는 것이다. 적으로부터.
우선 빈우에게 팀원 후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해당 후보의 신원을 보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반대의 뜻도 있다.
빈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것. 빈우가 서류만 본다면 모를까 직접 팀원 면접을 하게 된다면 그 후보는 빈우와 만나게 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빈우의 행적이 노출된다. 물론 비밀 엄수를 위한 기밀처리를 하겠지만 레드우드는 그런 사태를 아예 미리 방지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해서 정보를 감춰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라이벌 군부 세력? 아니면 외계인과의 우호 세력?
태스크 포스 373의 첫 임무가 연방군의 수작 때문에 보호 행성에 샤다이 함선이 추락하고 반물질 폭탄이 터진 것을 수습하는 것이라고 예정되어있으니 시작부터 적이 많을 것은 당연지사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빈우의 다음 팀원은 보안국에서 오지 않을까 예상해보았다. 군 내부의 안보와 첩보를 담당하는 보안국의 인원이 온다면 그쪽과의 파이프 라인이 생기게 될 것이고, 앞으로 일어날 내부의 적과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빈우도 지금의 대화에서 유리한 고지에 섰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대기하겠습니다.”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고 다시 냉정함을 되찾은 빈우가 대화를 마무리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아룹은 대략적인 역학관계를 깨달았는지 신중한 표정이 되었고,
파트리샤는 어안이 벙벙한 듯 빈우를 바라고 있었으며,
모니카는 더욱 겁을 먹은 채 입을 막고 울음을 끅끅 참고 있었다.
“어어, 대위. 침착해. 일단 심호흡을. 야!”
빈우가 모니카를 어떻게 달래보려 할 때 다시 오르 함장의 말이 들려왔다. 통신이 아니라 육성으로.
“늦어서 죄송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느라.”
그러면서 오르 함장의 육체가 격납고 바닥에서 쑥 솟아올랐다. 하필이면 모니카 앞에서.
“꺄아아!”
기겁해서 뒤로 넘어가는 모니카를 오르 함장이 잡아주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그런 오르의 몸은 아까와는 달리 군복을 입지 않은 녹색 헬레나 겔 육체 그대로였다. 아마 오르 함장은 단말 육체를 배 안 곳곳에 놔두었을 것이고 이건 그중 하나일 것이다.
“모니카 대위. 인사가 늦어서 죄송하군요. 블랙 랜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함장인 지마 오르입니다. 갑작스럽겠지만 필요한 절차가 있어서요. 두뇌 칩에 접속할 수 있을까요?”
오르 함장은 어버버 하는 모니카의 뒤통수에 손가락을 대어 그녀의 칩 기록을 갱신했다. 그제야 들어오고 허락되는 정보에 모니카는 진정과 당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화… 확실히 놀라운 배에요. 롱 훅 프로젝트는 어, 관심이 컸던 프로젝트니까요. 응우옌 중령님과도 얘기해 본 적이, 아니, 아니 저 엄마하고 연락할래요. 엄마하고 연락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모니카는 자신의 엄마와의 회선을 열 수가 없었다. 태스크 포스 373에 파견된 이상 외부와의 연락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고 그것은 팀장이나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검열을 거친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소령님, 팀장니임. 제발 저 엄마 좀, 엄마 좀 보게 해주세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빈우에게 매달리는 모니카를 파트리샤가 어떻게든 달래고 있을 때 다행히 아나스타샤가 격납고에 도착했다.
“자, 대위님 진정하세요.”
아나스타샤가 손수건으로 모니카의 얼굴을 닦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떻게든 달래려 했다.
“엉엉엉, 누구야 넌?”
“팀장님의 사무보조용 안드로이드인 아나스타샤라고 합니다.”
주변의 흉험한 특수부대원들 대신 상냥한 여성형 메이드가 곁에서 말을 걸어주자 모니카도 서서히 진정되고 있었다.
한숨 돌린다, 싶었을 때 오르 함장이 빈우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꺼냈다.
“모니카 대위에 관한 건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과학기술국의 셔틀에서 장갑복이 올 때까지 아무런 정보도 없더군요.”
블랙 랜스는 태스크 포스 373의 기함으로서 함장인 오르는 빈우와 맞먹을 정도의 기밀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알 수 없었다는 것은 방금의 거래는-모니카 대위의 전출은-꽤 은밀하고 음험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거래의 주역인 레드우드 중장도 도착을 모르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쪽에서 우리 정보를 빼가려고 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거의.”
“팀에 대해서?”
“배에 대해서.”
블랙 랜스와 오르를 새로이 탄생시킨 롱 훅 프로젝트는 과학기술국의 것이다. 그런데 방금 과학기술국 소속의 셔틀이 접근해서 이쪽의 정보를 빼가려고 했다면 뭔가 아귀가 안 맞는다. 맞추려면 새로운 가정이 필요하다. 방금의 셔틀은 롱 훅 프로젝트와는 다른-아마도- 적대적인 파벌이나 소속이란 것.
“팀장님, 지금 새로운 팀원이 격납고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빈우의 생각을 깬 것은 오르의 알림이었다.
“지금요? 이번에는 어떻게 오고 있습니까?”
“목숨이 걸린 듯 달려오고 있군요.”
오르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격납고 입구로 전력 질주해 들어오는 한 사나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바로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였다.
* * *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는 자신의 가슴둘레가 키보다 더 커진 듯한 고양감을 가지고 우주항을 걸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전설적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이 자신을 불러준 것이다.
위르겐은 뱅가드 소속으로서 저번 작전에서 레드우드의 밑에서 움직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잠시 얘기를 나눴던 레드우드 중장이 언젠가 한 번 부르겠다고 말을 했었고 지금에야 부른 것이다.
조지 레드우드는 연방군 창설 때부터 일병으로 시작해 중장까지 올라간 전설적인 군인으로서 그 존재 자체로 연방군의 역사라 할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맹장이 불러줬으니 어찌 가슴이 뛰지 않으랴.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도착해 대기하다가 레드우드의 명령을 받고 항구로 이동한 위르겐의 눈에 마침내 블랙 랜스가 보였다. 그때 갑작스러운 레드우드의 통신이 들어왔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유사 이래, 그리고 앞으로도 상사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말 중 상위 10위에는 꼭 들어갈 말이다.
-네, 각하. 지금 항구에 도착해서 말씀하신 위치로 가고 있습니다.
침착하게 대답한 위르겐은 동시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달려 이 새끼야. 네 윗 대가리 지금 뚜껑 열렸다.
그리고 위르겐은 전력 질주했다. 다른 누가 아닌 무려 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이자 태스크 포스 373의 사령관인 레드우드 중장이 한 경고다. 그가 경고했다면 위르겐이 빨리 만나야 할 직속 상관은 그를 조져버릴 권력과 폭력을 가지고 있으며, 재수 없게도 지금은 그게 발동될 확률이 높은 타이밍이란 것이다.
강화 육체를 최고로 채찍질해 달리는 위르겐의 눈에 블랙 랜스와 격납고가 보인다. 격납고는 열려 있으며 거기로 사람 몇 명이 보인다. 자세히 보기 위해 확대를 하자 웬걸, 바로 차단이 걸려 버렸다. 이곳은 보안 구역이라 두뇌 칩의 조회는 할 수 없다 쳐도 저쪽 센서에서 위르겐의 안구에 저출력 레이저와 전자파를 쏘아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입구로? 아니면 격납고로?’
자신의 현재와 앞날을 결정짓는 선택에서 위르겐은 격납고를 골랐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 격납고로 들어간 다음에는 재빨리 주변을 훑어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녹색으로 빛나는 안드로이드였고 그 옆에는 가슴에 해골 휘장을 단 소령이 있었다. 닉스 레벨 3. 그가 바로 직속 상관이 될 사람이겠지. 그리고 사이보그로 추정되는 원사와 비전투원 중위, 마지막으로 장갑복 이너 슈트를 입고 의자에 앉은 사람은 여자라는 것 외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장갑복 여인 앞에 앉아서 안 보였던 인물이 이쪽을 보며 몸을 일으키자 위르겐 목에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외침이 터져 나왔다.
“오오오! 쿠델카 모델!”
메이드 용 안드로이드 중에서 가장 인간답다는 쿠델카 모델이 바로 위르겐의 눈앞에 있었다. 생체 부품의 비율도 비율이지만 쿠델카 모델 특유의 AI 학습 패턴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성이 발화하여 연방이 가진 안드로이드 중에서 가장 인간다워진다.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좋아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겐 최고의 모델이었고 위르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어 다시는 살 수 없는 꿈의 안드로이드가! 남아있는 모델 전부 자신만의 매력과 개성을 뽐낸다는 환상의 안드로이드가 바로 내 앞에!”
흥분한 것도 한순간, 위르겐은 자신이 친 사고를 깨닫고 얼어버렸다.
그리고 녹색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자신에게 걸어올 때까지도 차렷 자세로 얼어있었다.
“실례합니다. 위르겐 상사. 잠시 두뇌 칩에 접속하겠습니다.”
심기가 불편한 위르겐은 안드로이드에게 퉁명스레 대답했다.
“빨리 끝내.”
곧이어 접속과 정보 공개가 끝나자 알몸의 안드로이드가 함장인 오르 소령이란 것을 알게 된 위르겐은 말 그대로 굳어버렸고 자신에게 걸어오는 팀장 김빈우 소령-메이드 아나스타샤의 주인-이 정말로 사신 같아 보였다.
“태스크 포스 373에 온 것을 환영한다.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
빈우는 새로 온 팀원이 아나스타샤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인 걸 알게 되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 앞에서 대답도 못 한 채 굳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고선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명색이 뱅가드 연대란 놈이 이렇게 굳을 정도면 보통 충격이 아닐 것이다.
‘이 불쌍한 새끼는 또 무슨 사연을 달고 납치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