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7화 (27/301)

27화

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빈우는 다음 컨테이너를 열었다. 이번에는 무기, 장갑 보병용 총이 들어 있었다. 일반적인 사이즈 보다는 좀 큰 이 총은 빈우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모델이었다. 아마 이것도 과학기술국의 실험제작품일 것이다.

“모니카, 설명해 봐.”

방금 빈우의 손가락 튕김 한 번으로 발생한 폭력을 눈이 동그래져서 구경하던 모니카가 놀라서 대답했다.

“앗! 저, 사실 저희 팀이 작업한 것은 컨커러고 이건 다른 팀이 작업한 거라 저도 잘 몰라요. 아마 직접 보셔야 할 거예요.”

“그래?”

빈우는 총기 거치대의 콘솔에 자신의 ID를 등록하고 직접 무기의 정보를 조회했다. 그리고 알게 된 정보는 맨 처음의 문장부터 빈우를 매료시켰다.

“장갑 보병용 시험형 플라스마 발사기 XPS 라… 호오오! 으응? 가변형 플라스마 유도기구? 이거 설마?”

XPS는 그 이름만으로도 빈우의 가슴을 도가니처럼 뜨겁게 달구었다.

장갑 보병용, 개인용 플라스마 병기라면 앞으로의 보병 전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연방에도 플라스마 무기는 있었다. 함포나 전차 포 같은 대형 병기뿐이지만.

플라스마 무기의 어마어마한 발사 열과 무지막지한 요구 동력은 도저히 장갑복으로는 감당이 안 되었기에 개인 화기로는 개발이 요원했었는데, 지금 빈우의 눈앞에 그 시제품이 있는 것이다.

구 지구제국군이나 샤다이의 전유물이었던 개인용 플라스마 병기를 드디어 우리도 장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잠시. XPS는 보면 볼수록 빈우의 머리를 혼돈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가변형이라, 왜 가변형이지?”

이 총, XPS의 가동 원리는 간단하다. 플라스마를 잡고 가속하기 위해 자기장을 형성하는 총신이, 필요에 따라 접혔다 펴졌다 하면서 변하는 것이다.

라이플 모드에선 총신을 모아 자기장을 안으로 집속해 플라스마를 가속 시켜 발사하고, 실드 모드에선 총신을 펼쳐 플라스마 폭풍을 바깥으로 순환시켜 적의 탄환을 튕겨낸다는 원리다. 참고로 이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총신을 구성하는 부품이 샤다이의 것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컨커러는 샤다이의 방어막이고, XPS는 샤다이의 플라스마 조절기술인가. 근데 이거 둘 다 검증 안 된 거잖아.’

샤다이의 방어막을 운용 가능한 신형 장갑복과 상황에 따라 총으로도 쓰고 방패로도 쓸 수 있는 플라스마 병기.

발상은 좋다. 현실이 시궁창이어서 그렇지.

일단 컨커러는 문제가 있다는 게 위르겐에 의해 밝혀졌다. 그리고 XPS는 실제로 써보진 않았지만, 눈으로 본 스펙 데이터만으로도 뭔가 불안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머릿속으로만 앓아선 해결이 안 되는 법. 빈우는 실제로 사용을 해서 검증해보기 위해 저번 컨테이너에서 컨커러를 하나 부팅시켰다. 다음에는 XPS를 거치대에 올려 둔 채 기동된 컨커러 장갑복과 연결했다. 그러자 장갑복과 플라스마 건이 최초로 연결되며 바로 점검 모드로 들어갔다.

“야아. 이거 뭐 공장에서 바로 들고 왔네.”

빈우는 툴툴거리며 점검 모드의 창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원래 장갑복과 무기는 사용하기 위해 연결하면 서로 인식을 한다. 예를 들어 장갑복이 코일건을 들면 장갑복의 화기 관제 시스템에서 총기의 설명과 설정 상태를 볼 수 있고 총기의 조준점을 장갑복의 시선 중 하나에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컨커러와 XPS의 연결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 시험제작품이다 보니 운용이 완벽하지 않아 설정을 사용자가 직접 해줘야 했다.

“하아.”

두 시험제작품의 개발과 실험 내력을 살펴보자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컨커러는 그나마 뱅가드 연대와 모의전까지 한 녀석이라 어느 정도 틀이 잡히긴 했는데 XPS는 아예 장갑복과 연결해 실사용이나 운용을 해본 기록이 없었다. 그저 실험실의 거치대에서 시험 사격한 게 전부였다.

최소한 운용기록이라도 있다면 그걸 토대로 어떻게 써볼 수가 있겠는데 XPS는 개발, 제작 중인 물건이니 사용하는 처지에서는 속이 타들어 간다.

‘레드우드 사령관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고성능의 실험 무기를 준다 해도 어느 정도 쓸만한 걸 줘야지 이건 아예 빈우의 팀을 테스트 팀으로 취급하는 격이다. 더구나 태스크 포스 373은 리퍼나 샤다이와 교전할 가능성이 큰 부대이기 때문에, 이런 미완성 결함 품들을 다룰 부대가 아니다.

그러나 빈우는 무턱대고 사령관인 레드우드를 씹으려곤 하지 않았다. 레드우드 중장은 연방군의 창설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차근차근 잔뼈가 굵어져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이런 결함 무기들을 팀에 주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 개인용 플라스마 병기입니까!”

한창 컨커러를 살펴보던 아룹과 팀원들이 어느새 빈우의 뒤로 다가와서 이번에는 XPS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꽤 크네요. 컨커러 전용인가? 어머나? 둘 다 첫사랑이야?”

권한을 넘겨받은 파트리샤는 이번엔 XPS를 뜯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들도 내로라하는 베테랑이니 곧 문제점을 찾아낼 거다. 잠시 고민하던 빈우는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기로 했다.

“부팀장, 이거 어떻게 어떻게 생각해요?”

“네? 무슨 말씀입니까?”

빈우는 대답 대신 맨몸으로 XPS를 들고 시연을 보였다. 장갑 보병용 총이라 무겁긴 해도 못 들 건 아니다.

“이게 상황에 따라 가변을 하는데… 이렇게 변한답니다.”

먼저 XPS를 들고 라이플 모드로 사격 자세를 취한 다음 실드 모드로 변형을 시켰다. 그리고 다시 방패에서 총으로 XPS를 원래대로 변형시키고는 아룹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허어.”

그제야 아룹도 문제점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빈우는 XPS를 아룹에게 들려준 다음 모니카를 불렀다.

“모니카, 봤냐? XPS 이거 총으로 쓸 때는 방패로 못 쓰고, 방패로 쓸 때는 총을 못 쓰는데?”

이게 XPS의 문제점이다. 필요에 따라 변형을 한다 쳐도 하나를 쓸 때 다른 하나를 못 쓴다는 것은 꽤 문제가 된다. 더구나 XPS의 변형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가변 도중에는 총과 방패, 둘 다 못 쓰는 시간이 존재한다. 이건 치명적인 문제다.

모니카도 이 사실을 알아듣고 어떻게 변명을 해보려고 했다. 팀은 달라도 같은 과학기술국 소속이니 팔이 안으로 굽었겠지.

“그러면~ 두 개를 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냥 총하고 방패를 따로 들지 왜 엄한 가변형을 두 개나 쓰냐고.”

한숨을 내쉰 빈우는 이번에는 장갑복의 상태 창을 보여주었다.

“야야, 이거 봐라, XPS를 두 개 동시에 들면 컨커러의 출력이 못 버틴다.”

아니나 다를까, XPS를 하나 더 연결하려 하자 장갑복의 HUD에서 동력 부족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뜬다. 개인용이니 뭐니해도 결국은 플라스마 병기. 동력 잡아먹는 귀신이다.

“역시 삼각관계는 안되네용.”

파트리샤는 어떻게든 컨커러에서 XPS를 두 개 장착해 볼 요량으로 장갑복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재부팅 하며 동력을 확보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동력을 끌어모아도 XPS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하면 컨커러의 운동 능력에 지장이 올 수밖에 없다고 나왔다.

“뭐 총을 주 무장으로 하고 방패를 보조로 한다면 그냥 플라스마 소총에 기존의 발포 방패를 쓰면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코일건에 자기장 방패를 쓰면 되는데 말이지.”

빈우가 공장 모드에서 조금 더 개발 이력을 살펴보니 이 가변형 무기에도 프로토타입이 있었다. 초기 모델들은 총과 방패가 각각 따로 이루어져 있어 XPS보다 동력은 적게 먹으며 성능은 더 좋다. 일단 데이터상으론 컨커러는 어찌어찌 이 총과 방패를 동시에 장비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보자면 XPS는 이 두 가지를 합친 개량형-아니 개악형-이라 할 수 있다.

“모니카, 이거 어딨어? 프로토타입들.”

“음, 해체해서 다음 물건 만드는 데 쓰였다네요. 이거.”

모니카가 보여준 자료에 의하면 프로토타입에 쓰였던 샤다이의 부품들을 다시 재사용해서 만든 게 바로 이 XPS였다.

“그렇단 말이지…”

지금까지 레드우드 중장이 한 일은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우선 빈우 자신은 사령관이 직접 쳐들어와 우격다짐으로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에 임명했고, 과학기술국의 모니카 보르자 대위는 거의 납치에 가깝게-아니 그냥 납치로-팀에 넣었으며, 그녀가 알지도 못한 채 가지고 온 것은 미완성인 결함 병기들이다.

일이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심히 궁금하다. 알고 싶어도 대답해 줄 사령관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서 얻어낸 정보로 그다음 단계를 유추해 내는 것이 정보국의 주특기 아닌가. 부머, 컨커러, XPS에 대해서 좀 더 알아낸다면 추리와 사고의 폭이 넓어질 것이고 원하는 대답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모니카. 잠깐 얘기 좀 할까?”

빈우가 그 말을 하며 모니카에게 한 발 내딛자 그것을 신호로 팀원들이 천천히, 그러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아룹이 빈우와 모니카의 사이로 부드럽게 들어왔고 파트리샤는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빈우의 뒤로 돌아갔으며, 대강 팀 내의 분위기를 눈치챈 위르겐은 어느새 손에 고릴라 스패너를 들고 있었다.

빈우도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왜 그러는지는 몰랐다. 결정타는 오르였다.

“팀장, 그녀는 잘못이 없습니다. 분풀이는 부디 사령관에게.”

그제야 빈우는 팀원들이 그렇게 움직인 이유를 알았다.

“아니 나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아마 팀원들은 결함 장비를 받고 빡친 또라이 빈우가 훼까닥 해서 모니카를 패 죽일 거라고 상상한 듯하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움직인 것이다. 하필 움직이는 방식이 대화가 아니라 하극상에 가까웠지만. 아니, 이 팀원들은 이 정도는 하극상으로 생각하지 않겠지.

하마터면 특수부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다구리 당할 뻔했던 빈우가 부하들에게 하소연했다.

“이상한 게 있으면 사령관을 조져야지, 왜 애꿎은 모니카한테 화풀이하겠냐고, 내가.”

그러던 빈우는 문득 조금 전 팀원들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컨커러에서 샤다이 부품이 나왔을 때도 걸어가던 빈우의 뒤로 팀원들이 따라붙었다.

“잠깐, 아까 컨커러 있던 컨테이너에서 내 뒤로 우르르 모인 거, 혹시 나 말리려고 그런 거야?”

“우르르 모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믿었던 부팀장마저 빈우를 정상으로 보진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중장에게 개쌍욕을 박는 소령이 정상으로 보일 리는 없었겠지. 작은 해프닝이 끝나자 팀원들은 저마다 신장비들을 살펴봤고 빈우는 오르를 불렀다.

“함장님, 다른 장비는 블랙 랜스에 없습니까?”

“장갑복과 개인 화기, 장비들의 여분은 아직 없습니다. 이곳 오스카에서 보급받을 예정이었죠. 다만 장갑복은 각자가 들고 왔습니다.”

장갑복은 착용자 개인에게 철저히 세팅된 물건이라 착용자가 움직이면 같이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빈우는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각자 개인 장비와 장갑복은 들고 왔다고 했지?”

“네, 저와 파트리샤는 자기 걸 들고 왔습니다.”

아룹의 대답 다음 빈우가 위르겐을 돌아보자 녀석이 정보창 하나를 빈우에게 띄워주었다. 현재 드론에 의한 장갑복의 운반 상황이다.

“제 것은 거의 도착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올 겁니다.”

“그래? 그럼 어디 팀원들 장갑복 구경 좀 해볼까.”

그러자 아룹과 파트리샤는 격납고 한쪽의 보관소에서 각자 자신의 장갑복을 꺼내왔고, 모니카는 쭈뼛거리며 자신의 장갑복 부머 옆에 섰다.

부팀장인 아룹 라마누잔 원사가 자신의 본대였던 단검뿔 토끼에서 들고 온 장갑복은 그라인더였다. 그라인더는 현재 연방군이 사용하는 장갑복 중에서 단연 최강의 장갑복이라 할 수 있는 고성능의 물건이며, 단검뿔 토끼의 상징이기도 한 장갑복이다. 그 그라인더가 흡집 하나 없는 장갑을 뽐내며 빈우 앞에 서 있었다.

“신품?”

“아뇨, 계속 써오던 겁니다.”

아룹의 그라인더는 어딜봐도 신품처럼 보였다. 아룹같은 베테랑이 사용했다면 오랜 기간 쓰여 세월의 흔적이 보여야 하겠지만, 단검뿔 토끼 같은 특수부대라면 장갑복 같은 개인 장비는 한 번 출격 이후 개인 전용 정비창에 들어가 완전분해 정비를 받고 소모품은 전부 교체한다. 그러니 겉보기로는 신품과 차이가 나질 않는다.

다음으로 파트리샤가 실리콘 나이트에서 가져온 것은 빈우가 처음 보는 장갑복이었다. 특이하게도 외부 장갑 없이 헬레나 겔의 인공 근육만으로 이뤄진 듯 인체의 굴국이 잘 드러나는 장갑복이었다.

“파트리샤, 이건 실리콘 나이트에서 쓰는 거냐?”

“아, 팀장님은 처음 보시나요? 인필트레이터입니다. 우리 쪽에서도 채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파트리샤는 인필트레이터의 정보를 빈우에게 넘겨주었다. 인필트레이터는 이름답게 은밀 기동과 침투 작전을 위한 장갑복으로써 실리콘 나이트의 임무에 최적화된 장갑복이었다. 그렇다고 전투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차세대 인공 근육을 사용한 덕분에 비록 외부 장갑은 없지만, 방어력은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다.

“저, 팀장님. 제 것도 막 도착했습니다.”

위르겐의 말에 빈우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익숙한 장갑복이 드론에 실려 격납고로 들어오고 있었다. 연방 장갑 보병의 대명사라 불리는 어벤져였다.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수많은 생명을 구한 장갑복이다. 어깨에 뱅가드 연대의 마크가 그려진 위르겐의 어벤져는 뱅가드 연대 전용으로 여러 면에서 조정되고 튠업된 버전이다.

이렇게 개조된 어벤져는 빈우에게도 익숙한 물건이다. 울토르 중대에서 클론용으로 조정된 어벤져를 입고 사용했었으니까. 그리고 헬멧을 벗기면 그 안에는 빈우 자신과 똑같은 얼굴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을 것이다.

빈우가 위르겐의 어벤져를 보며 헬멧 안을 상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 적색경보다. 태스크 포스 373이 공격받고 있다는 경보가 블랙 랜스 함 내와 팀원 전원의 두뇌 칩에 울려 퍼졌다.

정확히는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이 오스카 스테이션의 주거 구역에서 기습을 당했다는 정보다.

빈우는 즉시 태스크 포스 373에서의 최초 명령을 내렸다.

“모두 장갑복 입어! 긴급 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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