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포박해!”
빈우의 외침에 팀원 전원이 달려들어 기절한 리퍼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포박했다. 견인용 탄소 케이블이나 선외 접착용 자기 패드는 물론이고 스테이션의 보수용 발포 점착액까지 뿌려 아예 꽁꽁 싸매 버렸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리퍼의 출력이라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 자식, 말 빨로 잡은 거냐? 대단한 놈.”
어느새 레드우드가 옆에 와서 감탄하고 있었다.
“어디 빨빨 기어 나옵니까. 들어가요.”
“거기보다 여기가 더 안전할걸?”
하기야 민간인 세 명보다 장갑 보병 네 명에게 둘러싸인 게 더 안전하겠지. 살아있는 리퍼를 생포한 것을 본 레드우드는 흥분해 있었다. 리퍼의 부품을 비밀리에 회수하기 위해 창설한 부대가 첫날부터 아예 리퍼를 생포해 버렸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허나 곧 진정한 레드우드가 뒤에 따라온 새로운 팀원을 소개했다.
“이쪽이 새로운 팀원, 시에 우지 이병이다.”
“바, 반갑습니다. 시에 우지입니다.”
여기저기 그을리고 상처가 난 청년 한 명이 버벅거리며 인사하는 모습에 빈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병이란 계급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레드우드가 뽑았다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지 이병에게서는 두뇌 칩 반응이 뜨질 않는다. 게다가 하는 행동이 영 군인 같지 않다. 설마 이번에는 자치정부의 사람을 강제 징집한 건가 싶어서 뭘 물어보려고 할 때 뒤쪽 대피실에서 민간인 가족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빈우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 아까 도움을 청했던 콘래드 일가다. 부상과 공포에 싸인 그들에게서 우주항에서의 명랑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아직 나오시면 위험합니다.”
레드우드가 나오는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잔해에 깔렸다가 구출되어 응급치료를 받은 콘래드 스미스는 아내와 아들의 부축을 받고 걸어와 가까이에 있던 레드우드의 팔을 붙잡고 부탁을 했다.
“빈우, 김빈우 소령님을 불러주세요.”
의외의 인물에게서 팀장의 이름을 들은 위르겐은 자신도 모르게 빈우 쪽을 돌아보았다. 모든 팀원 중에서 혼자서만. 그러나 빈우는 물론이고 다른 팀원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서 있을 뿐이다. 다만 팀장이 통신 회선에서 작게 혀를 찼을 뿐.
-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위르겐은 곧바로 자세를 바로했다.
스미스 가족이 빈우가 무슨 사이건, 언제 만났건 간에 그때의 빈우와 지금의 빈우는 분명히 다르다.
연방의 군인 김빈우 소령은 연방의 시민 누구에게나 친절한 인사와 상냥한 봉사를 하겠지만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 김빈우는 일반인은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존재다.
“실례지만 그분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아는 이라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친절한 미소를 띤 레드우드가 정중하게 물어보고 있다.
-어머, 나 저거 찍었어.
파트리샤 얘는 지 대가리에 총알이 박혀도 그걸 소재로 농담 따먹기를 할 년이다.
“오늘 스테이션에서 만난 분입니다. 아주 친절한 분이셨어요. 우릴 꼭 도와주실 겁니다.”
자치정부에서 연방으로 귀화한 지 얼마 안 되는 스미스 가족이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디 의지할 데가 없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만 저도 이 스테이션의 사람은 아니라서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그러면서 팀원들에게 살짝 눈짓을 보내는 게 민간인은 스테이션에 넘기고 우리는 챙길 거 챙겨서 내빼자는 분위기다. 그게 맞는 일이고.
-위르겐. 저분들을 안전한 곳까지 모셔다드려.
빈우의 명령에 위르겐이 허둥지둥 나선다.
-헬멧 열지 말고.
이어진 팀장의 말에 뱅가드의 정예 대원은 열리는 헬멧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부대의 특징에서 오는 차이다. 단검뿔 토끼나 실리콘 나이트는 비밀 임무를 맡는 부대라 민간인을 소 닭 보듯 하지만, 뱅가드는 주로 통상 작전을 맡고 대민 행사도 종종 하는 편이라 위르겐은 평상시 버릇으로 얼굴을 보이려 했던 것이다.
“어흠, 저를 따라오십시오.”
위르겐이 콘래드를 부축하며 안내하자 스미스 일가가 주춤주춤 따라나섰다.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딸꾹질을 하는 빈센트의 눈이 다시 호기심을 띄며 어벤져를 바라본다. 다른 팀원들을 보는 겁먹은 시선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빈우는 위르겐에게 스미스 가족의 인도를 맡긴 것이다.
컨커러는 실험제작품이고 그라인더나 인필트레이터는 특수부대들이나 쓰는 장갑복이라서 민간인을 대하긴 조금 껄끄럽다.
하지만 어벤져는 연방의 주력 장갑복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얼굴도장을 찍은 터라 비교적 친숙하며 인기도 좋다. 피자 타이거나 스파게티 드래곤에서 피규어 행사를 열면 부동의 1위는 어벤져였다.
“빈센트, 어벤져구나. 진짜 봤지?”
“응! 아빠, 이거 진짜 어벤져야.”
콘래드는 다친 몸으로도 아들을 달랬고 빈센트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았는지 함박웃음으로 답했다.
한데 스미스 가족이 지나갈 때 구석에 속박되어 있던 리퍼가 잠깐 움직였다. 잘못 보거나 기분 탓이 아니다. 빈우가 코일건을 들어 겨냥했다. 리퍼의 뒤로 접혔던 헬멧이 다시 머리에 씌워지며 방어막이 강제로 작동했고 그 즉시 묶어놨던 것들이 전부 고온에 녹아 증발한다.
-리퍼!
빈우의 경고에 팀원들은 즉각 반응했다. 아룹과 파트리샤는 레드우드 중장을, 위르겐은 스미스 가족을 자신의 뒤에 놓고 빈우가 지정한 표적에 코일건을 난사했다. 그러나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리퍼는 자신의 구속을 풀고 일어나 태스크 포스 373의 집중사격을 받으면서도 스미스 가족에게 달려들었다. 전신에 플라스마 방어막이 쳐져 움직일 때마다 스치는 모든 것이 녹아서 사라진다.
리퍼와 스미스 가족 사이에 있던 위르겐은 리퍼가 휘두르는 팔을 왼손의 방패로 분명히 막았다. 그리고 막은 뒤 반격을 하려고 미리 오른손에 나이프를 준비해 두었지만 휘두를 새도 없이 압도적인 출력차에 밀려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내열 방패의 프레임조차 녹아버릴 지경이니 조금만 더 버텼으면 위르겐의 왼팔도 녹았을 것이다.
방해물을 치운 리퍼는 곧바로 빈센트 일가에게 고온으로 달아오른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아버지인 콘래드는 옆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껴안고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행동이다. 일 년 전, 솔리드 베타에서 저 손아귀에 잡힌 울토르 중대원들은 남김없이 폭사했다. 하물며 맨몸의 민간인이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때 빈우가 끼어들어 두 손바닥을 코일건으로 막았다.
-팀장님!
“김 팀장!”
팀원들의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총이 녹아 흩어진다. 그리고 빈우가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리퍼의 손이 컨커러의 팔에 닿았다.
“큭.”
각오하고 이를 악문 빈우였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퍼의 손이 컨커러의 팔에 막혔다. 정확히는 리퍼의 플라스마가 컨커러가 장착한 샤다이의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이다.
얻어걸린 승기를 타고 반격을 하려는 순간, 빈우는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움직일 수가 없다. 혹시 리퍼의 공격 때문인가 싶었지만 장갑복의 동력계와 구동계는 정상이다. 그때 위르겐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평범하게 사격하다가 근접전으로 들어갔는데, 완전히 죽 쑤던데요? 초짜처럼 장갑복에 휘둘리다 제풀에 쓰러지거나, 힘 한 번 제대로 못써보고 제압당하곤 했습니다. 상대 테스트 파일럿도 꽤 베테랑 같아 보이던데 아마 장갑복의 문제로 추정되었습니다.’
이거 백 퍼센트 샤다이 방어막이 작동하면서 생긴 문제다. 그러건 말건 빈우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리퍼를 대피실로 날려 보내. 그리고 긴급 사출!
파트리샤가 달려나가며 아룹에게 받은 레이저 캐논의 방열판으로 리퍼의 배를 후려갈겼고 떨어져 나간 놈에게 아룹의 두 너클 가드가 강렬하게 명중한다.
그리고 리퍼가 열린 대피실 안으로 날아 들어가자 즉시 문이 닫혔고 그와 동시에 스테이션으로부터 분리되어 우주 공간으로 사출되었다.
-블랙 랜스. 리퍼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블랙 랜스가 리퍼가 든 대피실을 견인했다.
아무리 연방보다 뛰어난 샤다이의 기술력에 더더욱 특출난 리퍼라고 해도 장갑복은 장갑복이다. 발버둥 치고 대피실을 뚫고 나온다 쳐도 구축함의 포격에는 버틸 수 없다.
죽다 살아난 스미스 일가는 서로 껴안고 벌벌 떨고 있었다. 오늘은 그들에게 있어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안심하세요.
그제야 장갑복의 동력을 끄고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된 빈우가 스미스 가족에게 다가가 변조된 목소리로나마 안심시키려 했다. 만약 빈우 자신이 여기서 정체를 밝힌다면 그들은 좀 더 안심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불현듯 콘래드의 머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리고 뜯어져 나간 아버지의 목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구친다.
“아악! 엄마! 아파아!”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트는 빈센트의 배에 테레사의 손이 꽂혀있다. 놀란 빈우가 테레사의 손을 잡자 그녀가, 아니 그것이 빈우를 돌아보았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겁을 먹고 주변을 살피던 테레사의 눈은 허옇게 되어 이리저리 뒤룩거린다. 빈우가 내온 다과를 조심스레 맛보던 입에선 날카로운 이빨들이 솟아 나온다. 사랑스럽게 아들을 꼭 안아주던 팔은 그 아들의 배를 뚫고 들어가 강화 병사의 완력에 저항하고 있다.
테레사 스미스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하는 모습을 본 빈우의 머릿속에선 가라앉았던 한 프로그램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지금 빈우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파트리샤! 제압해!
빈우의 외침에 파트리샤의 인필트레이더가 테레사였던 괴물에게 덤벼들었다.
-뭐지? 무슨 일이야? 샤다이가 방금 뭐 이상한 짓을 했나?
파트리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괴물을 후려쳐 바닥에 넘어뜨린 뒤 발로 밟아 못 움직이게 했고, 아룹은 여전히 레드우드의 앞을 철통같이 지키면서도 괴물을 향해 코일건을 겨눴으며, 빈우는 엄마였던 괴물의 손에서 빈센트를 구해내 바닥에 눕혀서 상태를 살펴봤다.
배가 뚫린 중상이지만 일단 빈센트의 두뇌 칩을 생존모드로 전환하면서 치료할 준비를 했다.
갑자기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예상외의 상황에서도 태스크 포스 373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위르겐! 괜찮나? 이리와.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어느새 회복한 위르겐은 빈우 옆으로 달려왔다.
“우지, 내 뒤에서 나오지 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절한 미소를 짓던 레드우드는 험악한 표정이 되어 자신의 뒤로 우지를 숨긴다. 그 표정은 이 상황에 놀랐다기보다는 각오하던 것을 드디어 마주했다는 것에 가까웠다.
-팀장님, 이쪽 좀 보셔야겠습니다.
아룹이 가리키는 곳에선 목이 없는 콘래드의 시신이 꿈틀대며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목의 상처가 뒤틀리며 찢어지며 새로운 입이 나오더니 관절이 꺾이며 바둥거리다가 새로운 다리가 되었다.
-쏴.
빈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코일건의 폭풍에 콘래드의 시신은 갈가리 찢겼다. 아버지였던 존재가 고기 조각으로 변모해 휘날려 복도에, 군인들의 장갑복에, 아들과 아내의 몸에 들러붙는다.
-뭔가의 생체병기 계열 공격일지도 몰라. 위르겐, 내 옆에서 경계해.
-네.
위르겐은 배에서 피를 흘리는 빈센트의 위에 서서 코일건을 겨눴다. 입에서 피거품을 헐떡거리는 아이에게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어벤져가 총을 겨누는 모습이 빈우에겐 슬퍼 보였다.
“엄마… 아파…. 나 아파… 엄마.”
고통 속에서 엄마를 찾는 빈센트를 빈우가 철저히 조사했다. 센서에는 감염이나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다. 이 이상 알아보려면 연구소의 장비가 필요하다.
-위르겐. 응급 팩.
빈우의 컨커러에는 아직 응급 용품이 탑재되어 있지 않아 부하들에게서 구할 수밖에 없다. 위르겐이 급히 응급 팩을 꺼내 아이에게 조치를 취한다. 그때 움찔했던 빈센트에게서 쉰 목소리가 들린다.
“소령님… 살려주세요. 소령님….”
빈우는 자신도 모르게 헬멧을 벗었나 싶어 얼굴을 매만졌다. 다행히 헬멧은 그대로다. 빈센트는 그저 오늘 만났던 멋진 군인 형을 찾았을 뿐이었다. 아이는 손가락을 힘겹게 놀려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아까 빈우가 줬던 팸플릿들이 쏟아져 피가 흥건한 바닥에 흩뿌려진다. 그리고 빈우의 연락처가 적힌 전자 명함도.
-팀장님! 이거 안 되겠어요.
파트리샤가 밟고 있던 테레사는 이미 인간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완전히 괴물로 변한 테레사는 금방이라도 파트리샤를 밀치고 일어날 것만 같다. 그 괴물의 정체가 뭐든 강화복의 출력과 비등한 힘을 가진 놈이란 건 확실하다. 샤다이와 전투, 우주 공간에 확보한 리퍼, 상처를 입은 민간인. 이 상황에서 생포하기는 무리다.
-죽여.
빈우의 그 말 한마디에 테레사였던 괴물은 파트리샤의 진동 블레이드에 도륙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자신도 죽어가는 빈센트에게 살리기 위한 응급 주사가 꽂혔다. 이제 마이크로 머신들이 들어가 손상된 장기들을 치료할 것이다.
-팀장님, 이거 이상한데요….
위르겐이 응급 패드로 보여준 상황은 심각했다. 빈센트의 몸으로 들어간 마이크로 머신들이 점차 행동불능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지간한 병균이나 미생물쯤은 잡아먹는 응급용 마이크로 머신이다. 이걸 잡으려면 보통 킬러 머신으로는 불가능하다.
“켁… 케헥.”
빈센트의 목에서 밭은기침이 나오며 몸이 뒤로 휘었다. 손가락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이고 손톱들이 튀어나온다.
-제길 이 애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위르겐이 일어나 코일건을 고쳐잡자 빈우가 먼저 진동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미안하다 빈센트. 정말 미안하구나.’
이제 빈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악! 빈우야! 버튼을 눌러!”
버튼을 누르면 엄마가 살듯이, 나이프를 휘두르면 아이가 죽는다.
엄마가 죽어갈 때 아무것도 못 했던 겁쟁이는 언제까지 따라올까.
허연 눈을 번뜩거리며 그르렁대는 빈센트의 급소 곳곳을 진동 나이프가 훑고 지나갔다. 그제야 아이는 부모를 따라갔다.
우주항에서 신나게 웃던 개구쟁이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지? 혹시 아는 사람 있나?
나이프를 집어넣으며 일어난 빈우의 질문에 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사태를 누군들 알겠는가.
헬멧을 벗은 빈우는 레드우드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 모르십니까?
레드우드는 이 사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팀원들의 시선이 모이자 사령관은 명령을 내렸다.
“오르 함장, 리퍼는 잠깐 블랙 랜스 외부에 견인하고 있게, 그리고 화력 팀은 샤다이의 시신과 부품들은 모두 회수하도록. 이 ‘워프 비스트’ 사체도 블랙 랜스로 옮긴다. 김 팀장. 자넨 나 좀 따라오게. 마지막 팀원을 데리러 가야지.”
레드우드는 인간이 변한 괴물을 워프 비스트라고 불렀다. 적어도 특수전사령부의 부사령관은 알고 있는 사실이란 뜻이다.
빠르게 뒷정리를 시작한 팀원들을 뒤로하고 빈우와 레드우드는 마지막 팀원이 있었던 방으로 향했다.
“괜찮겠습니까? 아직 샤다이 하나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쯤 되면 없을 거야. 놈들이 숨어서 게릴라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너도 알잖아?”
샤다이는 숨어있다가 기습을 하긴 해도 몸을 숨기며 치고 빠지거나 하진 않았다. 게다가 의심되는 곳마다 뿌렸던 점착액에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빈우는 말없이 굳어진 점착액들을 부수며 나아갔고 레드우드가 그 뒤를 따라갔다.
어느 정도 팀원들로부터 멀어졌을 때 레드우드로부터 기밀통신이 들어왔다.
-이건 극비 중의 극비야. 일 년 반 전부터 샤다이들이 이상한 방법을 쓰기 시작했어. 인간을 괴물로 변이시키는 거지. 거기에 당한 사람들은 아까 봤던 것처럼 워프 비스트로 변해.
-변이요? 감염 같은 겁니까?
아까 리퍼가 달려들고 얼마 안 있다가 스미스 가족들은 괴물, 워프 비스트로 변이했다. 그러나 당시 센서의 검사 결과로는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었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왜, 어떻게, 누구를. 아무것도 몰라. 아는 거라곤 샤다이가 가까이 오고 인간들이 괴물로 변하는 거지. 그것도 마주칠 때마다 전부 그런 건 아냐. 현재까지의 변이 사례는 3건이 고작. 이제 4건이지. 피해자는 전부 민간인들이었어.
잠시 생각하던 빈우는 단단하게 굳은 점착액 구조물을 발로 차며 질문했다. 아마 개인적인 감정이 조금이나마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왜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심각한 정보라면 미리 알려주셨어야죠.
그러나 정보국 요원인 빈우조차도 워프 비스트에 대해 지금까지 상부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마커스에게서 조차도 언급이 없던 사실이다. 파견 요원이 되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런 치명적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 정보의 기밀 등급이 대단히 높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기밀 중의 기밀이야. 현재까진 장성급이나 정부의 고위급들만 알고 있는 정보지. 생각해 봐. 샤다이가 인간을 저런 괴물로 바꾼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 것 같나? 그리고 팀원들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으니 말하려고 했었어.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지.
레드우드의 말대로라면 워프 비스트 건은 아마 빈우가 파견 요원이 아니었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마커스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워프 비스트가 일년 반 전부터 발생했다고요? 울토르 중대가 리퍼에게 기습당한 것과 시기가 비슷하군요. 둘의 연관성은 없습니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그걸 알기엔 사례가 너무 적어.
마침내 두 사람은 레드우드가 팀원들과 함께 샤다이에게 습격당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 앞의 복도는 빈우와 위르겐이 대기하던 리퍼를 놓친 곳이다. 돌입했을 때 죽였던 샤다이는 점착액 기둥에 붙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가슴부터 잘려나간 시신이 누워 있었다. 새로 온 태스크 포스 373의 대원이다.
그러나 그 얼굴을 본 빈우는 굳었다.
“라캉 중령….”
전사한 팀원은 바로 피에르 라캉 중령이었다. 아내와 아들을 찾아 빈우에게 부탁하던 그가 새로운 팀원으로 와 여기에 죽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