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아는 사이지?
레드우드의 물음에 빈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같은 정보사령본부 산하의 부서이지만 활동하는 분야가 다르기에 가깝고도 먼 사이다.
-네, 피에르 라캉 중령과는 정보국 시절부터 알던 사람이고….
빈우가 군사정보국의 유령회사인 피자 타이거에 있을 때 피에르 라캉은 보안국의 유령회사인 스파게티 드래곤의 사원이었다.
정보사령본부의 원활한 대외 활동을 위해 만든 이 두 유령회사는 겉으로는 라이벌 회사로 보이기 위해, 인접한 상권에 경쟁적으로 입점하는 방법으로 점차 접촉을 늘려나가 종내에는 비공식적인 정보교환 및 합동 비밀 작전을 하기도 했다.
또 나아가 협업이란 명목으로 상대방의 회사에 사원을 파견함으로써 각자에게 제한된 영역, 즉 군사정보국의 작전은 적대적 외계 종족에게만 한한다 라던가, 보안국은 연방군 내부만을 보안 감사한다, 들을 우회할 수 있었다.
거기다 라캉 중령과는 울토르 프로젝트를 같이 한 사이다. 당시 보안국은 정보국과 과학기술국을 감사한다는 명목으로 라캉 중령을 붙였었고 그는 훌륭하게 자기 일을 해냈다. 고토 국장이 라캉 중령의 엄격한 조사에 빡쳐서 길길이 날뛰는 것을 볼 정도로.
가정에선 온화하고 다정한 아버지이지만 업무에선 언제나 냉정하고 절도있는 보안국 요원. 그게 피에르 라캉이었으며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건 빈우가 잠수하기 전이었다. 닷새 전 솔리드 베타에서 본 것은 피에르 라캉의 행동 패턴을 흉내 낸 허수아비였기에.
-오늘도 만났었습니다.
아까 만났던 피에르 라캉은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아내와 아들의 실종에 그 정도로 망가질 사람 같진 않아 보였는데 사람 일이란 모를 일이다.
-그래?
레드우드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같은 스테이션에 있었으니 마주칠 수도 있는 일이다.
-보안국이나 그런 곳에서 팀원이 더 올 것 같았는데 설마 이 양반인 줄은 몰랐습니다.
현재 태스크 포스 373에서 연방 정보사령본부의 사람은 군사정보국의 김빈우 소령, 과학기술국의 모니카 보르자 대위가 있다. 빈우는 여기에 더해서 내부의 안보와 방첩을 담당하는 보안국의 인원이 후방 참모로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그게 라캉 중령이었을 줄이야.
아까까지만 해도 넋이 나간 채 아내와 아들을 찾던 피에르 라캉은 아주 평안한 얼굴로 죽어 있었다. 마치 죽음을 받아들인 양.
주변을 봐도 싸우거나 저항한 흔적은 없었다.
-습격받았을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문밖으로 나가니 갑자기 샤다이들이 스텔스 풀고 들이닥치더라. 내가 앞으로 나서며 길을 열긴 했는데 라캉 중령은 못 따라왔었어. 하지만 구할 여력이 없었지.
아마 라캉 중령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포기하고 순순히 죽었을지도 모른다. 빈우의 말에 가족의 죽음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드우드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제아무리 연방의 강화 병사라 해도 맨몸으로 무장한 샤다이를 상대할 수는 없다. 시에 우지만이라도 데리고 도망친 것이 당시의 레드우드로선 최선이었을 것이다.
빈우는 혹시나 쓸만한 기록이 있을까 싶어 라캉 중령의 두뇌 칩에 접속하려 시도했지만, 예상대로 보안국의 암호로 잠겨 있었다.
만약 라캉 중령이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이라면 빈우가 가진 팀장의 권한으로 보안국의 자료 외적인 부분에는 접속할 수 있겠지만, 피에르 라캉의 합류는 어디까지나 레드우드의 구두 명령에 따른 것이었고 미처 오르 함장을 통한 정식 절차를 받지도 않아서, 현재는 보안국 소속이다.
당시 마지막의 자료나 기록을 보고 싶으면 보안국에 정식으로 요청을 해야 할 것이다. 빡빡한 그쪽에선 온갖 검열과 삭제를 한 다음에 넘겨주겠지.
-그런데 용케 라캉 중령을 영입할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폐인이 되었던데 말이죠.
피에르 라캉이 아까 빈우와 만났던 상태 그대로라면 태스크 포스 373에 들어온다 한들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력 지상주의자인 레드우드는 방금 그를 직접 만나놓고도 팀에 받아들였다.
레드우드는 피에르 라캉의 무엇이 태스크 포스 373에 필요하다고 여겼을까.
레드우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빈우의 의문에 대해 대답했다.
-라캉 중령은 태스크 포스 373의 설립 전부터 접촉한 사람이야. 알다시피 나는 리퍼의 최초 등장 후 전문 대응팀의 설립을 주장했지. 그러나 연방의 영역에선 활동하지 않던 놈이라 사령부에서도 그다지 적극적으론 나서지 않았어. 아까 봤다시피 몰이만 했을 뿐.
확실히 리퍼가 위험한 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방이 굳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라캉 중령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 왔어. 뭐 그때만 해도 멀쩡했지. 중령은 자기가 대응팀에 꼭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면서 팀을 만들게 되면 거기에 들어오고 싶다 하더군.
빈우는 그 말을 들으며 라캉 중령의 시신을 등에 실었다. 그다지 강화를 하지 않는 육체라 가볍다.
-근데 말이야…. 아무래도 우리 팀으로 오는 게 꼭 도망 오려는 분위기 같았어.
“풋. 설마 보안국 사람의 의중을 읽었단 말입니까?”
마치 네가? 라는 듯한 빈우의 헛웃음에 레드우드가 발끈한다.
-이 새끼야, 내가 정치놀음이나 밥그릇 싸움 같은 것엔 맹탕이라고 해도 꽁으로 별을 딴 게 아니야. 그 정도 눈치는 있단 말이다.
하긴 병에서 시작해 일생을 군에 바쳐가며 중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니 그 정도 감각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너도 알 거다. 이주 전 리퍼가 루비콘 전대에 공격받아 발 가르단 하스에 떨어져 버린걸. 이래저래 대사건이지. 그래서 묵혀두었던 태스크 포스 373이 바로 창설될 수 있었다. 이전부터 꾸준히 준비를 해뒀던 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
그제야 빈우는 레드우드가 어떻게 닷새 전에 부상한 자신을 알고 잡아챘는지 이해가 갔다. 이 노병은 이미 여기저기에 후보자와 자원을 물색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해두었고 물이 들어오자 바로 노를 저은 것이다. 그리고 라캉 중령은 자신의 허수아비에게서 빈우의 부상을 알게 된 후 레드우드에게 추천을 넣었을 것이다.
리퍼와 전투 후 생존한 빈우를,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날 마카로니의 학살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빈우를.
-그리고 사령관님은 약속대로 라캉 중령을 팀에 받아들였고요. 한데 라캉 중령이 가졌다는 정보가 뭡니까?
어지간히 중요한 게 아니고서야 레드우드가 무리해서라도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으니 보통 자료는 아닐 것이다. 샤다이의 시신과 부품들을 마저 등에 실어 올리던 빈우는 레드우드의 다음 말에 일순 멈칫했다.
-리퍼와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야.
말없이 짐을 다 실은 빈우가 일어서서 걷자 레드우드도 뒤를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한 라캉 중령은 현재 연방에서 워프 비스트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모은 사람이기도 하지.
그건 좀 이상하다. 원래 보안국은 외부의 첩보 공격으로부터 군을 지키고 군내 정보 기강을 잡는 부서다. 샤다이에 관한 정보라면 직접적인 정보전을 하는 군사정보국이나 연방군의 모든 정보와 자료를 모아 분석하는 정보분석국이 더 나을 것이다.
아니, 정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연방 중앙정보국이 더 깊고 넓은 수준의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연방 중앙정보국은 연방의 수많은 정보 조직 중에서도 다른 행정 기관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정보기관이다. 국방부 산하 일개 부서에 불과한 정보국이나 보안국, 나아가 상위 부서인 정보사령본부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피에르 라캉은 대체 어떻게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모은 것일까. 보안국이라면 국방부 내의 모든 정보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자료로 레드우드와 거래를 했을 성싶진 않다. 그 정도라면 레드우드도 접근 가능한 자료일 테니.
-그 리퍼와 워프 비스트에 관한 정보, 소스는 어딥니까?
-나도 몰라. 팀에 들어오면 전부 공개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때에는 일부만 봤다. 하지만 확실히 군의 것은 아니었어.
빈우의 머릿속에서 퍼즐들이 차곡차곡 맞춰져 간다. 전혀 연관이 없던 사실들이 하나의 답을 향해 모인다.
현재 극비 중의 극비라 일부 장성이나 고위 관료만이 알고 있는 워프 비스트의 자료를 피에르 라캉 중령은 구했다. 어떻게? 어디에서?
방첩이라면 연방에서 첫째가는 보안국의 피에르 라캉 중령이 독립적인 태스크 포스, 리퍼 대응팀을 만들어 그리로 도망치고 싶다고 했다. 왜? 누구로부터?
조지 레드우드는 리퍼 대응팀인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을 자신이 직접 발품을 뛰어 면접하고 모집했다. 보안을 위해서. 특수전 사령부의 부사령관이자 연방군 중장이 대체 누구로부터?
오늘 일어난 오스카 스테이션의 전투는 연방의 영역 내에 샤다이들이 기습을 해 일어난 전투다. 점프의 반응은 없었고 근처에 샤다이 함선의 반응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설마하니 조력자가 있는 걸까?
의문과 질문을 모아보니 그 초점에서 답이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나온 답이 오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오답도 정답을 향한 과정임을 빈우는 잘 알고 있다.
-연방 내부에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샤다이와 손을 잡은?
빈우의 말을 들은 레드우드는 영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적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샤다이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모르겠다. 그게 가능이나 하냐?
레드우드 말마따나 연방은 이제까지 샤다이와 대화를 몇 번이나 시도했었지만 제대로 된 적은 없었다. 잠깐만의 교섭이 고작이고 그 끝도 대부분 전투로 마무리되었다. 이러니 레드우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보국에선 비밀리에 샤다이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고 이런 부서가 연방에 몇 군데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군가가 모종의 이유로 움직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게 내가 혼자서 설친 이유다. 지금 우리 프로젝트에는 반대세력이 꽤 많아.
샤다이에 대응하는 태스크 포스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과연 어디일까, 그리고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알기에는 아직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등 뒤에 적이 많군요. 어딘지 짐작이 가십니까?
-아니. 다들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고 끄나풀을 풀어서 방해하는 중이라서 말이지. 꽤 교묘해. 그런데 갑자기 샤다이 얘기는 왜 나오는 거냐?
-글쎄요. 주어진 자료로 추리를 하다 보니 그런 가설이 나왔습니다. 원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그러려니 해 주십쇼.
-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무튼, 팀장을 잘 뽑았어.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겁니다.
빈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드우드는 자신의 적 중 누군가가 샤다이와 내통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흥미가 갔다. 자리가 자리니만큼 이런저런 얘기도 들었던 레드우드였기에 처음 듣는 건 아니었지만, 그 성격과 경험상 이제까진 헛소리라고 일축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선별한 팀장의 가설이라면 그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만약 샤다이와 내통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과연 어디일까? 모르긴 해도 샤다이나 리퍼, 워프 비스트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레드우드는 문득 빈우 등 뒤에 실린 라캉 중령의 얼굴을 보았다. 리퍼와 워프 비스트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과 거래를 하려 했던 보안국 중령. 시신치고는 꽤 평안한 얼굴이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초췌했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편안한 얼굴이구먼…. 헌데 이 친구,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점점 망가져 가더라. 딱히 물어보진 않았는데 꽤 힘들어하는 게 보였어. 뭐 짐작 가는 거 있냐?”
레드우드가 육성으로 한 질문에 빈우는 다시 기밀 통신으로 대답했다. 이 뜻은 앞으로 행여라도 주변에 알리기 싫은 내용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잘은 모르지만, 듣기로는 처와 아들이 떠났답니다.
-저런? 언제?
레드우드도 즉시 통신으로 대화를 돌렸다.
-오늘 나눈 얘기로는 17일 전이었다는군요.
그 말을 들은 레드우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 이상하군. 중령이 점차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두어 달은 되었으니. 아니 반대로 망가지는 라캉 중령 때문에 가족들이 떠났을 수도 있겠군. 참, 유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김 팀장, 그건 내가 하지.
이제 빈우가 대화를 기밀 통신으로 바꾼 이유가 시작되었다.
-실은 아까 스테이션에서 라캉 중령을 만났을 때 본인에게서 들은 겁니다만… 아내 마리 라캉과 아들 자크 라캉이 마카로니로 갔답니다.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되자 천하의 레드우드 사령관도 약간 놀랐는지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시 걸으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질문했다.
-너, 혹시 짚이는 거 있냐?
그 말은 울토르 중대원으로서 마카로니에 갔던 빈우에게 라캉 모자의 상태를 묻는 것이다.
-아뇨. 아직은. 아무것도요.
마리 라캉과 자크 라캉은 17일 전 피에르 라캉을 떠났다. 피에르 라캉이 아내와 아들의 마지막 위치와 그곳이 마카로니라는 것을 알아낸 건 오늘이다. 그리고 마카로니는 5일 전 울토르 중대의 공격에 행성에 살던 모든 자치정부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당시 클론 중대원들은 두뇌 칩이 없는 자치정부 주민들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아 모두 죽였고, 당시 라캉 모자는 추적을 피하려고 두뇌 칩을 뺀 상태였다.
아직 정확한 사실은 모르지만, 이 모자가 무슨 일을 당했을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문득 빈우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비약이 일어났다.
피에르 라캉 중령은 리퍼와 워프 비스트에 관한 자료가 있고, 마리와 자크는 마카로니로 갔다. 마카로니와 샤다이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일까? 아니 실제로 마카로니에는 샤다이가 나타났었고 개척민 중 하나는 샤다이의 무기인 시즐러로 무장했었다. 만약 거기 있던 개척민들이 방금 봤던 워프 비스트로 변했다면? 상대가 일반 샤다이가 아니라 리퍼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직 비약과 억지가 심한 가설이라 보다 많은 자료와 정보,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태스크 포스 373의 수습과 오스카 스테이션의 뒷정리이다.
빈우는 나머지 생각은 다음에 정리하기로 하고 피에르 라캉의 시신과 샤다이의 부품들을 회수해서 블랙 랜스로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