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33화 (33/301)

33화

허나 레드우드 중장은 진정하질 못했다. 보안국과의 통신을 연결한 그는 으르렁대며 일갈했다.

“태스크 포스 373의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이다! 현재 본 함은 작전 중이며 그 이상의 접근은 금지한다.”

레드우드는 아예 상종하지 않겠다는 듯 강경한 대응을 했다. 보안국은 연방군 어디든 조사할 권한이 있지만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비밀임무 부대는 얘기가 다르다. 놈들이 이쪽과 접촉하려면 작전이 다 끝난 다음이거나 특수전 사령부와 정보 사령본부 간의 합의가 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한 번만 더 깝치면 박살 내겠다는 기세로 씩씩대는 사령관 앞의 화면에서는 보안국의 젊은 남자 장교가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드우드 사령관 각하. 저는 보안국의 존 도우 대위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같은 소속의 제인 도우 중위입니다. 각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온 것은 말씀드린 대로 피에르 라캉 중령의 영현을 회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전우를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야이-.”

레드우드가 다시 뭐라고 할 때 빈우가 슬쩍 나서며 제지했다.

“사령관님, 고정하시고 여기는 제게 맡기시죠.”

“흥.”

솔직히 이런 일에는 빈우가 전문이다. 게다가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같은 정보사령본부 산하의 부서에다가 평소에도 친하게 치고받는 사이라 서로서로 잘 안다. 그래서 이해하고 뒤로 물러나려는 레드우드였건만 이어지는 빈우의 통신에 눈을 부릅떴다.

-일단 보안국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러자 길길이 날뛸 것 같았던 레드우드는 다행히 인상만 찡그릴 뿐 별말 없이 팔짱만 낀 채 빈우의 뒤에 섰다. 이게 조지 레드우드의 장점 중 하나다. 이 노병은 원체 호전적이고 불같은 성격이지만 동시에 자기가 인정한 상대의 말은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점이 있다.

암묵적으로 이뤄진 사령관의 허락하에 여기서부터는 현장 팀장 김빈우가 대화를 이어받았다. 그전에 잠깐 조사를 하고.

‘존 도우와 제인 도우가 진짜 본명일 수 있나?’

임무 중에 가명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군에게까지 정체를 숨긴다는 것은 제법 문제가 된다. 그것도 특수전 사령부 부사령관을 상대로 했다간 후폭풍이 장난 아닐 것이다.

부부인지 남매인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나 가명이요 라고 하는 이름인지라 빈우는 상대의 ID를 살펴보았다. 군사통신의 사용에는 당연히 보안이 필수라 송·수신자의 정보가 정확하게 기록되며, 통신에 밝힌 정보와 실사용자 두뇌 칩 정보가 다를 경우 경고가 뜬다.

‘두뇌 칩 조회를 막았어? 우리를 상대로?’

두 요원의 두뇌 칩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막혀있지만, 보안국의 임무라는 이유로 경고는 뜨질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것으로 존 도우 대위와 제인 도우 중위가 보안국 요원임은 분명해졌다. 상대방의 정체가 뭐든 일단 겉으로 보안국의 명찰을 달고 있는 이상 이제부터의 흐름은 빈우가 가져갈 수 있다.

“이쪽은 특수전 사령부의 태스크 포스 373 팀장인 김빈우 소령이다. 보안국은 피에르 라캉 중령의 영현 회수 외에 다른 용건은 없나?”

-없습니다.

짧은 대답에 짧게 생각을 마무리한 빈우는 레드우드를 향해 눈짓해서 보안국 셔틀을 받아들이자고 했고 레드우드는 오르 함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존 도우 대위, 착함을 허가한다.”

오르 함장이 통신을 끊자 빈우가 좀 찜찜하단 표정으로 레드우드에게 말했다.

“이거 조금 수상한데요?”

“뭐? 설마 저놈들이 샤다이와 짝짜꿍이라도 했다는 거냐?”

사령관의 이 반응은 아까 둘이서 나눴던 가설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린 것은 아니고 저들을 합법적으로 조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나온 것이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제가 수상하다고 한 것은 얘들이 왜 지금 여기서, 제가 있는 태스크 포스 373의 블랙 랜스에 오냐는 겁니다.”

아쉽게도 빈우의 가진 의문에 레드우드는 곧바로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부하가 설명할 것을 기대하고 귀를 기울였다.

“제가 마카로니에서 부상했을 때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가 거기 있었으니 저의 부상 소식은 당연히 보안국에 전해졌을 겁니다. 당연히 그 동네에선 비상이 떨어졌겠죠. 그리고 오늘 라캉 중령이 저를 찾아왔었으니, 보안국도 높은 확률로 제가 오스카 스테이션에 있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곰곰이 따져보던 빈우가 말을 이었다.

“아니, 설령 모른다고 해도 제가 방금 대화에서 여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보안국에서 일부러 제가 있는 373에, 이 블랙 랜스에 대가리를 들이민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요?”

심각한 얼굴로 설명하는 빈우와 달리 지금 레드우드의 표정은 이 새끼가 도대체 뭐 라는겨, 정도 되겠다. 이는 레드우드가 정보사령본부 내부의 파워 게임에 별 관심이 없고, 빈우가 자세한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팀원들과 함장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빈우와 레드우드 간의 심각한 분위기만 아니었어도 질문 세례가 쇄도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드우드의 질문은 표정을 보아하니 궁금해서 라기보다는 예의상 말을 계속해보라는 뜻이다. 그제야 빈우도 뭔가 대화의 핀트가 안 맞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사령관님. 저 이러라고 뽑은 거 아닙니까?”

“응? 뭐를? 그래, 확실히 네가 나보다 말 빨이 좋긴 하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푸는 것들 등등. 하지만 그런 건 라캉 중령이 더 잘하지 않나? 내가 널 뽑은 이유는 아까 말했잖아.”

그러면서 레드우드는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해골 휘장을 톡톡 두들겼다. 분명히 아까 레드우드가 빈우를 찜한 이유는 샤다이와 전투 경험이 있을 것, 닉스 레벨 3을 수료할 것, 소령일 것. 이 세 가지였다. 그리고 조지 레드우드는 성격상 말을 꾸미거나 그런 거로 뒤통수를 칠 위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빈우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 이유만으로 저를 데려온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아까부터 무슨 말 하는 건데?”

빈우의 윗니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손가락은 콧등을 어루만졌으며 눈과 눈썹은 깊게 찡그려졌다. 혼자 헛다리 집고 생쇼를 했으니 뻘쭘한 것이다.

“하아, 그게 뭔지는 말보다 직접 보시죠.”

가타부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한 빈우는 즉시 자신의 메이드 아나스타샤를 불렀다.

“아샤. 내 기밀 케이스 가지고 격납고로 와.”

-넷, 주인님.

꽤 중요한 명령인 듯 긴장한 표정의 아나스타샤가 통신 화면에서 사라지자 빈우가 몸을 돌렸다.

“사령관님, 우리도 격납고로 가서 손님 맞이합시다.”

“저기, 우리도 가도 되나요?”

뭔가 대형사고가 터질 것을 감지한 파트리샤가 눈망울을 초롱이며 손을 들자 빈우는 쓰게 웃었다.

“오지 말라면 안 올 거냐?”

호기심을 못 이긴 팀원들이 우르르 빈우와 레드우드를 따라나섰다. 잠시 후 팀 전원이 모인 격납고에 아나스타샤가 검은색의 케이스를 가져오자 일동의 시선이 거기에 집중되었다.

“주인님, 여기 있습니다.”

“음, 고마워. 아샤.”

그러면서 빈우는 케이스의 겉면을 쓱 쓰다듬었다. 얼마 전만 해도 오스카 스테이션의 우주항 보관소에 내버려 두었던 중요 물건이다.

“어? 이거, 정보국 물건 맞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보안 케이스.”

케이스를 알아본 모니카의 질문에 빈우가 미소를 짓는다.

“알아보네, 모니카?”

“정보국의 의뢰를 받은 적이 있어요. 해체 작업하는 거요.”

뾰로통한 모니카의 표정이 그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 검은색 보안 케이스는 정보국에서 중요한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장비로써, 열기 힘든 건 물론이거니와 강제로 열려고 하면 안의 물건들을 소각하는 기능도 있다.

빈우의 기밀 케이스와 그 내용물들은 주인이 실종되었을 때 모두 동결되어 정보국으로 회수되었으며 빈우가 다시 돌아온 된 지금에도 그것에 대한 사용 권한이 없다.

당연하다. 기밀 케이스와 그 내용물은 정보국의 소유이며 파견 요원의 보안등급으로는 사용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금 빈우가 들고 있는 케이스와 그 내용물은 빈우 개인의 것이란 뜻이다. 딱히 드문 건 아니다. 정보국 요원들은 각자 비장의 수를 숨겨놓고 있으니까.

빈우가 케이스를 열자 그 안에는 명령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것도 보통 명령서가 아니다. 명령서 스스로 주변의 정보를 수집해 상황을 판단한 다음 명령의 유, 무효를 정하거나 미리 설정된 대로 명령의 내용을 변환하는 기능을 가진 자율 명령서다.

이것은 상위 부대와 연락이 쉽지 않은 상황-주로 점프 게이트 소실 같은 사고-에서도 명령의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각 방면 사령본부에서 만드는 물건이다.

지금, 이 명령서들은 블랙 랜스의 격납고에 드러나 주변과 연결해 현 상황에서 자신이 유효한지 아닌지를 즉시 파악해 활성화였고, 그러지 않은 몇몇은 다시 아무것도 없는 회로판으로 돌아갔다.

“씹새끼가.”

담대한 레드우드가 이런 말을 할 정도니 빈우가 친 사고의 스케일이 짐작이 간다. 지금 빈우는 각 사령본부의 명령서를 가지고 지니고 것이다. 한 두 장은 이해가 간다. 레드우드도 휘하 부하들에게 백지명령서를 내려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빈우처럼 아예 쌓아놓고 장사하듯 굴리는 놈은 없다.

“하 시발. 이 새끼, 네가 아까 말하던 게 이거였구나?”

“아니, 전 사령관님이 이런 거 알고 뽑으신 줄 알았죠. 어디 보자 감사, 감사… 아, 여기 있네.”

찾던 물건을 꺼낸 빈우는 케이스를 닫고 미소를 지었지만, 팀장의 손에 들린 명령서의 제목을 본 팀원들은 그러지 못했다. 정예 특수부대 요원들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굳어가고, 얼어가고, 썩어들어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얀마, 너 이거 어디서 구했냐?”

레드우드조차 얼빠진 목소리다. 지금 빈우가 손에 들고 팔랑거리고 있는 건 무려 ‘보안국 내부수사 명령서’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빈우를 보안국 감사 인원으로 임명한다는 정보사령본부 사령관, 수사 권한을 위임한다는 보안국 국장, 그리고 파견한다는 정보국 국장의 서명들이 찍힌 진품이다.

보안국은 연방군 내부의 방첩과 보안을 책임지며 수상한 곳이 있으면 영장이고 나발이고 바로바로 들이닥쳐 조사한다.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니 타 부서들과 사이가 좋을 리가 있나.

그렇다면 이 안하무인의 보안국은 누가 수사를 하는가? 해답은 바로 외부 인력에 위임한다, 되시겠다. 정보사령본부는 하위 부서인 보안국에 대한 감사 및 수사를 정보분석국, 군사정보국, 과학기술국 등에서 인원을 차출해 맡겼으며 이는 각 부서 간의 견제와 조율, 제동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어디서 구했냐고오!”

“어디서는 잘 모르겠고, 그냥 예전에 받아놓은 겁니다.”

“참 쉽게도 말한다. 근데 너 실종이었는데 문서효력 살아있네?”

블랙 랜스의 회선에 노출된 명령서는 아직 파기되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았고 이는 이 명령서가 아직 유효하다는 의미다.

“이 바닥에서 사람이 있다가도 없고, 죽었다가도 살아나는 경우가 꽤 많아서요. 제가 실종되었을 때는 효력이 정지되었겠지만, 다시 돌아왔으니 효력도 살아났겠죠.”

실제로 정보국에서는 잠수한 요원을 회수할 때도 이 명령서 양식을 종종 쓰는데, 요원이 잠수했을 때는 명령서가 비활성화되어있다가 후일 단독으로 부상한 요원과 접촉하게 되면, 즉시 활성화되어 소유자의 신원을 보증하고 인근 부대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식이다.

“그런 중요한 문서 회수하지 않았다고?”

“중요한 건 당연히 회수했죠. 이건 제 개인용이고, 그치 아나스타샤?”

빈우가 돌아보자 아나스타샤가 우물쭈물하며 레드 우드에게 답했다.

“정보부 물건은 전부 회수당했고, 이것은, 저… 마커스 소령님이 숨겨주셨습니다.”

레드우드가 빈우와 아나스타샤를 번갈아 보는 표정은 ‘이런 미친놈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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