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이거 한두 장이 아니잖아. 그리고 이거 개인이 은닉한 거 아냐?”
“에이, 뭘 모르시네, 우리 동네는 원래 이러고 살아요.”
“네 집안 사정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어어? 맞다, 야 인마. 너 정보국 파견 요원이잖아. 파견 요원이 그런 명령서 쓸 수 있냐?”
“이 양반이 중장별을 사람 모가지만 썰어서 땄나? 좀 바깥소식도 듣고 하세요. 원래 보안국 수사는 원래 이렇게 외주를 줍니다. 지금 제가 파견이니까 쓸 수 있지 정보국 소속이었으면 작동하지도 않았을걸요? 뭐 명령서가 작동하는 것을 보니까 괜찮네요. 만약 명령서 효력이 상실되었으면 저도 이 짓 못 해요.”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저 진품 명령서 이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와, 그럼 보안국 새끼들이 격납고에 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파트리샤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났다. 앞으로 벌어질 난장판이 너무나도 기대된다는 모습이다.
“뭐 말로는 정식으로 수사하러 온 게 아니고 영현 회수라니까 자기들은 임무 수행 중이니 뭐니 지랄하며 뻗대겠지. 그래도 피에르 라캉 중령을 감시하던 역이야. 조지면 뭐라도 나올 거다.”
예전에 빈우는 마커스가 보안국을 감사할 때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마커스 녀석은 예의와 규정을 원시인 몽둥이 마냥 휘둘러 보안국 요원들의 대가리를 신나게 깨 먹었는데-한 사람은 실제 투신했다-이제 빈우가 그렇게 되었으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아 참, 파트리샤, 아룹, 위르겐. 세 사람 전부 장갑복 장착.”
“에엑- 귀찮은데에.”
대놓고 귀찮다고 뻗대는 파트리샤를 움직인 것은 빈우의 다음 말이었다.
“깝죽대는 보안국 놈들 있으면 너희가 밟아야 하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트리샤뿐만 아니라 아룹과 위르겐 마저 달려가 장갑복을 입기 시작했다. 역시 연방 최정예 특수부대원들답게 순식간에 장갑복을 장착하고 다시 집합하는 모습에 흐뭇해하던 빈우는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리는 모니카 대위가 있었다.
“응? 모니카. 너는 안 입어도 돼. 그냥 대기다.”
“에? 아뇨 저어, 근데 그런 서류면 보안국을 직접 조사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모니카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당연한 의문이다. 명령 권한이 있으면 본진을 치는 게 효과적이니까.
“아, 이 자율 명령서는 일반 요원이나 지부를 대상으로 하는 거라 보안국을 제대로 수사하려면 의회 거쳐서 정식 명령서가 내려와야 해. 직접 한 번 볼래?”
빈우는 명령서의 빈칸에 글자를 적어 넣어봤다. 수사 대상에 대한 칸이다.
“보안국.”
-불가능.
그러자 바로 명령서가 거부하며 내용이 비활성화된다. 다시 빈우가 그 칸에 다른 내용을 입력해 본다.
“사망한 피에르 라캉 중령의 두뇌 칩 조사.”
-불가능
역시나 이번에도 명령서는 효력이 없음을 어필한다.
“그렇다면 수사 영역을 보안국의 존 도우 대위와 제인 도우 중위, 그리고 타고 온 셔틀로 바꾸면 어떨까?”
-가능.
다시금 명령서의 기능이 활성화된다.
“봤지? 이걸로 수사할 수 있는 건 말단들뿐이야. 하지만 이렇게 제한이 있다고 해도 쓰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지.”
빈우가 마지막으로 최종단계까지 활성화된 명령서를 몇 군데 건드리자 왼팔에 홀로그램 완장이 떠오른다.
-보안국 수사요원
“그억.”
그것을 본 파트리샤가 온몸을 부르르 떠는 게 장갑복 너머로도 보인다. 비단 파트리샤뿐만이 아니라 팀 전원이-함장, 사령관 할 것 없이-치를 떨었다.
“아오.”
사람 좋은 아룹 마저 그라인더의 고개를 휙휙 돌릴 지경이다. 그만큼 보안국의 수사는 연방군 내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셔틀. 들어옵니다.”
녹색 헬레나 겔이 일렁이며 드물게 냉정함을 잃었던 오르 함장이 보안국 셔틀이 함 내부로 들어옴을 알렸다.
그러자 일행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자신들의 원수를 갚을 시간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동안 여기저기 들쑤시며 패악을 부리던 보안국 요원들이 두 배는 흉악하고, 네 배는 사악한 팀장의 앞에서 피똥 싸는 광경을 상상하며 분위기가 훈훈하게 달아오를 때, 오르 함장의 목소리가 그것을 깼다.
“저, 팀장님.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것도 꽤 우려 섞인 목소리다. 지마 오르 함장은 블랙 랜스에 들어오는 보안국 소속 셔틀과 인원을 검사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고 있었다.
“탑승자 둘, 모두 안드로이드입니다.”
블랙 랜스의 셔틀 스캔 결과 창에 존 도우와 제인 도우는 안드로이드로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 정적을 깬 것은 레드우드였다.
“시발 당했다.”
그 말에 팀원들도 잠시 멈칫하다가 레드우드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레드우드는 정보국과 보안국 간의 수 싸움에 혀를 내두르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빈우는 아까부터 죽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안국이 밀고 들어온다고. 즉 빈우가 보안국 내부 수사명령서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호랑이 아가리 안으로 들어오려고 용을 쓰니 빈우가 수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보안국도 만만찮았다. 놈들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강행했던 것이다. 설마 보안국 요원에 안드로이드를 쓸 줄이야.
“어이, 김 팀장. 당했구나.”
“네? 뭐라구요?”
“아니, 저 새끼들 안드로이드잖아?”
“그런데요?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데 정보 사령본부에서도 의외로 안드로이드 많이 씁니다. 보세요. 제 메이드 아나스타샤도 사무보조용으로 쓰이잖습니까. 근데 안드로이드에게 계급까지 주고 굴릴 줄이야…. 이건 좀 참신하네요. 아하, 아까 두뇌 칩 조회가 막힌 것도 이거 때문이었군.”
주변의 걱정과 달리 당사자인 빈우는 태연자약했다.
“괜찮은 거야?”
레드우드의 계속된 걱정은 당연하다. 안드로이드들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돕는 것이지 핵심 업무는 할 수 없다.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이나 보유한 정보도 인간에 비해 엄청나게 제한이 된다. 놈들이 왔다 한들 블랙 랜스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반대로 저쪽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정보가 적다면 이쪽이 수사를 해봐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적을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뇌에 들어있는 정보의 보안등급은 뻔하니까. 즉 보안국은 빈우가 수사명령서를 날리도록 블러핑을 한 셈이다.
그러나 빈우는 레드우드의 걱정을 일축했다.
“당연히 괜찮죠. 사람이건 안드로이드건 상관없습니다. 상대가 보안국 소속이기만 하면 됩니다. 근데 안드로이드라면 더 잘됐네요. 말 빨로 살살 구슬리면 다 토해낼 겁니다.”
그제야 레드우드는 자신의 부하 빈우가 정보국의 AI 전문가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쪽에서 악명이 꽤 높다는 것도.
“혹시 안드로이드를 미끼로 보내 명령서를 허투루 쓰게 한 다음에 제대로 된 인간 요원이 올 가능성은?”
“하이고, 걱정도 많으셔. 그렇게 나온다면 씹고 우리 갈 길 가면 되는 걸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
“흠! 하긴 그건 그렇군.”
그러는 사이 보안국의 셔틀은 착륙해서 지정된 위치로 견인되고 있었다. 불쌍한 안드로이드들은 내려오면 욕 좀 볼 거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어차피 지금 우리 목적은 보안국 수사가 아닙니다. 이런 자율 명령서는 원래 말단 조져서 경고나 견제하기 위한 거지 제대로는 못 써요.
그리고 아까 사령관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우리 팀엔 적이 많다고. 놈들이 수작을 부리면 보안국을 통해서 올 확률이 높아요. 그런 와중에 보안국이 희한한 타이밍에 집적거리니까 앞으로 지랄 못 하게 미리 경고해 놓고 겸사겸사 정보 얻으려고 쇼하는 겁니다. 제대로 수사하려면 저놈들 팔다리 묶어놓고 똥구멍에 명령서 쑤셔 박지, 이렇게 날림으로 판 짜지 않습니다.”
“호오오, 과연 그렇군. 근데 이 새끼들 왜 안 나와?”
빈우와 레드우드가 좀 길게 잡담하는 중인데도 착륙한 셔틀에서 요원들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오르 함장?”
“잠시만요…. 사령관님, 안드로이드들이 전부 작동 정지되어있습니다.”
의외의 사태에 빈우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함장님, 일단 셔틀 주변에 방폭 바리케이드 씌우세요. 위르겐, 사령관님과 비전투 인원 호위해서 방호구획으로 이동. 아룹, 파트리샤, 수상하면 바로 쏴라.”
사령관이 있는 상황이니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다. 이상 상황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빈우가 부랴부랴 장갑복을 입을 때 다시 오르가 알려왔다.
“팀장님, 보안국으로부터 기밀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네, 제가 받지요.”
연결된 회선에는 보안국 국장인 다샤 쿠사키나 준장이 있었다. 언제나 얼음 같고 이노우에 국장에게조차 단 한 치도 밀리지 않았던 여걸이었지만 지금은 꽤 다급해 보였다.
-오래간만일세, 김 소령.
“격조했습니다. 쿠사키나 국장님.”
-그쪽으로 간 셔틀과 안드로이드에는 사소한 착오가 있었어. 즉시 회수팀을 보낼 테니 손대지 말고 그대로 돌려보내게.
‘착오? 돌려보내게?’
보안국에서 이렇게 실수를 인정하고 저자세로 나온다는 것은 무언가가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방금 보안국장은 안드로이드부터 말했지 인간인 라캉 중령에 대해서는 언급도 않았다. 정보의 중요도는 그쪽이 훨씬 높을 텐데도. 중령의 두뇌 칩에 걸린 보안기술을 믿는다손 쳐도 이건 아니다.
“저 안드로이드들은 라캉 중령의 영현을 회수한다 했습니다만.”
-다시 말하지만 착오야. 그런 일에는 역시 사람이 직접 가야지. 전사한 부하에게 안드로이드를 쓰는 무례를 범할 순 없지.
“지금 작동을 멈춘 상태입니다.”
-아, 알고 있네. 그냥 놔두면 되니 신경 쓰지 말게.
착오나 예의 문제라면 먼저 안드로이드에게 명령을 내려 해명한 다음 다시 책임자가 통신해서 사과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안드로이드는 꺼져 있다. 그것은 보안국에서 끈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것일까.
“…국장님. 우리는 어차피 연방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쿠사키나 국장의 안색이 굳었다. 방금 빈우가 한 말은 정보사령본부 직원들의 상투적인 어투다. 다음에 이어질 말과 함께.
“우리 사이에 비밀이 있을 순 없잖습니까?”
정보사령본부의 요원들이 서로 비공식적인 협력을 할 때 하는 말에 보안국장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렇지.
저 침묵은 빈우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을 고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다.
“셔틀과 안드로이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습니다. 대신 피에르 라캉 중령의 두뇌 칩에 접속할 권한을 주십시오.”
이번에는 즉답이 나왔다.
-그건 안돼! 지금의 자네는 정보국 파견 요원일세. 그런 보안등급으론 안돼.
“정보국 자격이 아닙니다. 라캉 중령은 태스크 포스 373에 파견 명령이 났을 텐데요? 저는 373의 팀장 권한으로 보려는 겁니다.”
-구두 명령이잖은가.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상 피에르 라캉 중령은 아직 보안국 요원이야. 나중에 제대로 된 회수팀을 보낼 테니 중령의 영현과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 주게.
“중령의 두뇌 칩에는 우리 측에 알려주기로 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만 알면 됩니다. 부하가 한 약속은 상사가 지키셔야죠.”
-그건 라캉 중령의 독단이야. 인정할 수 없다.
상대방이 이토록 강경하게 나올 때 맞대응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이쪽이 한발 물러나는 편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빈우는 자신의 욕심을 꺾고 보안국장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국장님의 말씀대로 라캉 중령의 두뇌 칩에는 일절 손대지 않겠습니다. 대신 안드로이드를 수사하겠습니다.
-너 이 새끼! 지금 장난치는 거냐!
“명령서대로 행동하는 겁니다만?”
명령서를 들먹이자 쿠사키나 국장도 대답이 궁해졌다.
-김 소령! 다시 한번 생각하게! 안드로이드에게 명령서를 쓰지 마! 이건 명령이다!
이렇게까지 냉정함을 잃은 쿠사키나 국장은 빈우도 처음 본다. 감정이나 손안의 패를 감추는데 능숙한 보안국 사람이 이럴 정도면 저 안드로이드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건 분명했다.
“한 번? 열두 번은 더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실례.”
통신을 끊은 빈우는 팀원들과 합류했다. 이미 완전히 무장한 373의 팀원들은 셔틀을 포위하고 있었다. 셔틀은 완전히 작동 정지 상태로 외부의 개폐 명령도 듣지 않았다.
“파트리샤, 돌입.”
역시 인필트레이터는 이런 일에 최적화된 장갑복이었다. 두세 뼘 되는 공간을 부순 다음 잽싸게 들어간 파트리샤는 즉시 안드로이드 둘을 확보했다.
-목표 확보. 안드로이드들은 그냥 꺼져 있습니다.
“폭발물이나 독극물 반응은?”
-오르 함장님의 검사 그대로입니다. 이상 없습니다, 깨끗해요. AI 바이러스 검사는… 꺼져 있는 중이라 못하겠군요. 보안국 사양이라 이쪽에선 접근이 안 됩니다.
“좋아, 안드로이드 가지고 나와.”
문을 자르고 나온 파트리샤는 정지된 안드로이드 두 기를 격납고 바닥에 눕혀 놨다.
“특별한 이상은 없군.”
파트리샤는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설령 정체 모를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들이 난동을 부린다 해도 이쪽 인원들이면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빈우는 애초에 무슨 사고가 있어 안드로이드가 정지한 거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방금 쿠사키나 준장이 보인 반응은 사태가 좀 심한 장난질이 아닌,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왜 그랬을까? 왜 안드로이드들을 보내고 껐을까? 보안국 국장인 쿠사키나 준장은 안드로이드와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안드로이드를 블랙 랜스로 보낸 것은 누구일까?’
빈우의 생각을 멈춘 것은 위르겐의 보고였다.
“햐, 얘네들 수동으로도 안 켜집니다.”
위르겐은 어떻게든 안드로이드를 기동시켜보려 했지만, 외부의 그 어떠한 명령이나 조작도 듣질 않았다.
“내가 하지.”
빈우는 명령서를 들고 안드로이드 앞에 앉았다. 그리고 명령했다.
“기동.”
자신을 존 도우 대위라고 밝혔던 보안국 소속 안드로이드는 수사명령서에서 나온 최상위 명령을 받아들여 다시 눈을 뜨고 일어섰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경계해 자신을 겨누는 373 팀원들의 총구를 슬쩍 둘러보더니 빈우와 눈이 마주치자 뜬금없이 노래를 불렀다.
“호랑이 힘이 솟아요, 피자 피자!”
안드로이드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황당해하는 팀원들과 달리 빈우는 충격을 받아 굳어버렸다. 어째서 처음 보는 보안국의 안드로이드가 저 노래를 알고 있는가. 그러나 충격은 잠시였다.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은 머리는 수수께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분주히 돌아간다.
지금 안드로이드가 부르는 노래는 약간 다른 점이 있지만 분명 피자 타이거의 마스코트 송이다. 실제 피자 타이거의 마스코트 송은 ‘호랑이 기운은 안 솟습니다. 피자 타이거’다.
틀린 마스코트 송을 듣자 그에 관한 기록이 빈우의 머릿속에서 검색되어 재생된다.
빈우가 피자 타이거의 직원으로 일할 때의 기록이다. 기록 속의 빈우는 스파게티 드래곤의 피에르 라캉 중령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마친 뒤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호라이 히미 쏘사요, 피짜 피짜!”
거실에서 시리얼 회사의 인형 잠옷을 입은 자크 라캉이 혀 짧은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들의 재롱에 마리가 깔깔거리며 웃고 일이 바빠 대신 보낸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도 손뼉을 치며 자크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걸 보고 있는 빈우 자신도 역시 웃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웃음이 진짜 즐거워서 웃은 것인지 아니면 정보국 요원으로 연기한 것인지는 기록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 행복한 기록에서 나온 노래의 원곡을 아는 사람은 우주에서 네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김빈우와 피에르 라캉, 자크 라캉, 마리 라캉. 당시 자리에 있었던 라캉의 허수아비까지 포함한다면 다섯. 그렇다면 그 대답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역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만이 아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멋진 센스인데? 자크, 나중에 커서 아저씨 회사로 와라.”
빈우의 대답을 들은 안드로이드는 노래를 멈추더니 빙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 행동, 표정은 이전의 존 도우의 것이 아니다. 빈우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김빈우 소령님. 그날 식사 이후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틀림없다. 존 도우란 이름의 보안국 안드로이드의 안에 들어있는 AI의 정체는 바로 피에르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