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2218년 1월 1일. 녹색 연맹의 도시 중 하나인 글림의 거리는 신년축제로 한껏 달아올랐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가는 순간 거리에 있던 군중들이 지른 환호성과 하늘로 쏘아진 폭죽들 소리에 바로 옆 사람의 말소리도 안 들릴 지경이다.
축제가 한창인 거리, 번뜩이는 불빛과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빈우가 걷는다. 붐비는 인파를 헤치고 나아갈 때 누군가가 소매를 잡아끈다.
“오늘은 축제 특가야. 놀고 가.”
뭐가 번뜩인다 했는데 발광 니플 패치를 붙인 여자 스트리퍼다. 빈우가 말없이 서 있자 여자는 보란 듯이 가슴을 흔들어 폭죽 연기가 자욱한 밤하늘에 섬광을 쏘았다. 그녀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시 앞을 봤을 때 이미 빈우는 거기에 없었다. 허나 이런 일이 한두 번 벌어진 게 아닌지 스트리퍼는 아쉬움도 없어 돌아서서 다시 호객행위를 했다.
-모두 비켜주세요! 비켜요, 비켜!
스피커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팡파르 소리가 들리며 거리의 인파가 좌우로 갈라진다. 퍼레이드가 시작된 것이다. 맨 앞에는 축제용으로 장식된 스콜피온 전차가 앞장서서 서행하고 있다.
“녹색 연맹을 위하여!”
전차 위에 올라탄 사내가 크게 외쳤다. 그리고 그에 맞춰 거리의 사람들도 맞받아 소리친다.
“새로운 동지 마카로니를 위하여!”
빈우가 소란을 뒤로하며 계속 걷자 인파는 차츰 한산해져 갔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한 블럭을 건너고 나니 사방은 놀랄 만치 조용해 졌다. 눈부셨던 불빛은 건물의 가장자리에서 일렁이고 그렇게 시끄러웠던 음악은 작아진다. 이제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직이 웅웅거리는 저음뿐이다.
큰길 뒤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찾던 건물이 나온다. 간판도 없는 입구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층 내문 앞에서 비대한 덩치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있다. 덩치는 내려온 빈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오른팔을 들어 자신의 앞에 놓인 금속 접시를 가리켰다. 덩치의 오른 팔뚝이 철컥 열리며 날카로운 칼날이 삐져나와 챙하고 접시를 때린다.
그러나 빈우는 접시에 놓을 물건이 없다는 듯 자신의 재킷 옷깃을 펼쳐 들어 보였다. 덩치는 귀찮은 한숨을 내쉬고 일어나 빈우에게 다가와 건성으로 몸수색을 한다. 위험한 물건이 없어 보이자 덩치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알지?”
빈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덩치는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며 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안쪽에서 버저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안에서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가자 나직한 재즈가 들려오는 어둑한 클럽이 빈우를 맞이한다. 자욱한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사람들은 서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고 스테이지에서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여성형 안드로이드였다.
구석에서 찾던 사람을 발견한 빈우는 곧 그의 옆 테이블로 가 앉았다.
신문 속 십자말풀이에 열중한 사내는 옆에 앉은 빈우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저 재즈와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있을 뿐이다. 곧이어 종업원이 다가와 빈우에게 주문을 물었다.
“맥주 아무거나.”
종업원이 돌아간 뒤 빈우는 동전을 꺼내 테이블 위에 있는 점괘 자판기에 넣고 돌렸다. 돌돌 말려진 점괘가 굴러 나오자 빈우는 그걸 펴서 읽었다. 실제 적혀있는 내용과 전혀 다른 말을.
“금언의 대가는 오직 금이다.”
사내는 연필을 내려놓고 신문의 다음 장을 펼치며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작년 말에 거래된 스콜피온들에 대해 알고 싶어.”
그 말에 정보상은 빈우를 곁눈질로 흘금 보았다.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건 꽤 위험한 정보인데….”
빈우는 호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지폐 한 묶음을 꺼내 냅킨 박스 그늘에 슬쩍 올려놓으며 조용히 덧붙였다.
“자세히.”
빈우가 꺼낸 돈뭉치를 보고도 사내는 잠깐 갈등했다. 방금의 질문은 도시 연맹 사이에서 정보를 사고파는 것과는 달리 자칫하면 연방과 녹색 연맹과의 관계가 심각해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방과 자치정부, 군과 민간, 그 사이에서 박쥐로 살아가는 정보상에겐 돈만 주면 누구나 고객이었다.
곧이어 정보상이 내려놓은 신문이 지폐 위를 덮었다.
“개척 행성 마카로니에서 스콜피온 전차를 사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은 작년 10월쯤이었어. 처음에는 개척 사업에 필요한 중장비를 사려는 건가 싶어서 기쁘게 승낙했지. 마카로니는 연방의 개척 행성이었으니까 우리 녹색 연맹의 기술력이 연방에게 인정받았다고 착각한 거야. 그래서 자부심과 친절함을 버무려 자세한 견적서를 보내주었어.”
그 당시 정보상도 냄새를 맡은 부품 제조업체들의 입찰 경쟁에 정보제공 역으로 끼어 제법 짭짤한 재미를 보았었다.
“그러나 민간 사양의 견적서를 본 마카로니에서는 다시 요청해 왔어. 군사 병기로서의 전차 스콜피온을 사고 싶다는 거였지. 거기다 연방 정부나 개척 업체의 발주가 아니었어. 개척민 대표가 비밀리에 한 주문이었다.”
서로 시선은 마주치지 않고 대화가 이어진다.
“그럼 녹색 연맹이 판 게 아니라 마카로니의 개척민 측에서 먼저 사려고 했단 얘기인가?”
“그렇지, 이상하지 않아? 마카로니는 연방의 직할령인데.”
마카로니는 자치정부 스스로 개척한 도시들의 연합체인 이곳 녹색 연맹과는 달리 연방이 직접 개척한 곳이다. 당연히 점프 게이트나 사회 인프라는 자치정부와는 비교도 안 되고 군사나 행정은 연방의 영토인 만큼 연방의 관할이다. 그런 곳에서 스콜피온 따위는 행성 방어는커녕 경비용으로도 쓰지 못할 성능이다.
“거기서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챈 연맹의 각 도시 시장들은 잠시 생각에 빠졌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마카로니의 개척민들이 지상 병기인 전차를 사려는 걸까, 라고.”
정보상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안드로이드 가수의 노래를 피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답은 간단했지. 자칭 개척민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가 실은 연방 시민이 아니라 되려 연방과 적대적인 자치정부 사람이었거든.”
마카로니 개척 작업에는 몇몇 자치정부가 협력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협력이었고 개척이 끝나고 정산한 다음에는 마카로니에서 떠나기로 계약된 상태였다.
그런 개척민들이, 더구나 연방에 적대적인 개척민들이 지상전 무기를 원한다고 하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연방 개척지에서 연방 정부 몰래 자치정부 개척민들에게 지상전 무기를 팔았다가 들키게 되면 그 불똥은 당연히 물건을 판 녹색 연맹까지 튈 것이고 결국엔 이곳도 활활 타오를 게 뻔하다.
“아직도 생생해. 찬성파와 반대파의 대립이….”
정보상이 그 당시의 혼란함을 되새기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 행성, 녹색 연맹은 개척 도시들의 연합체인 만큼 연방에 우호적인 곳과 적대적인 곳, 중립적인 곳들이 뒤섞여 있다. 때문에, 마카로니와의 수상한 거래에는 격렬한 토론이 오고 갔었다.
“사려고 하니까 그냥 팔자는 부류, 팔 때는 팔아도 연방에 물어는 보자는 부류, 수상하니 거래해선 안 된다는 부류.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파벌 간의 전쟁이었지.”
“여기는 어땠어? 스콜피온을 생산하는 도시였잖아.”
“원래 글림은 연방에 관해서 중립이었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감정이었지. 하지만 공업 도시라도 밥은 먹어야 하니 어쩌겠나. 반대파에서 식량 거래를 빌미로 압박을 해오자 곧 무너졌고…. 아까, 밖에 안 보이던가? 지금은 완전히 연방 적대로 돌아서고 말았어. 단 두 달 만에. 어리석지.”
그때 종업원이 맥주를 가져오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 빈우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다음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농기구용 2대. 실제로는 완전 사양으로 24대를 팔았어. 연방 몰래.”
“고작 24대를 팔면서 연방과의 신용을 팔았다고?”
“그 대신 새로운 도시 연맹의 신용을 산 거지. 그리고 변명거리도 만들어 놨었어. 우리는 농기구용만 팔았고 그것을 마카로니 쪽에서 불법 복제했다고 하기로 서로 말을 맞춰 놓았으니까.”
연방 분리파나 반대파에게 있어서 세를 불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녹색 연맹의 반대파들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마카로니에 스콜피온을 판 것이다.
마카로니에서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전차를 앞세운 무장봉기가 일어나게 된다면 일의 진행이 한결 쉬울 것이고, 그것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연방 반대 세력과 수많은 자재, 기구들이 손에 들어온다. 또 실패해도 그 책임은 마카로니만 뒤집어쓸 뿐 거래가 끝난 녹색 연맹은 잃을 것이 없다. 정말 탐나는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여태 연방이 조용한 것을 보면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연방에 분리, 반대, 적대라.’
정보상의 말을 들으며 빈우는 속으로 웃었다. 자기네들이 뭐라 하던 연방 정부는 이들을 연방 일부이자 자치정부의 하나로 대한다. 무장하고 강력히 적대하는 행성조차 연방의 공식 문건에는 엄연히 연방의 자치 행성이자 영토로 분류되며 점프 게이트를 비롯해 각종 혜택을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대금은?”
“현물 거래로 연방의 자재를 받았지.”
연방의 기계와 자재는 자치정부의 것과 질이 다르다. 그래서 어디서나 수요는 있었다.
“혹시 그 자재 중에 이런 게 있던가?”
빈우가 꺼내 신문 위에 올려놓은 것은 직접 손으로 그린 시즐러, 리퍼, 워프 비스트의 그림들이었다. 이게 진짜 목적이다.
“…자세한 내역은 말해 줄 수 없지만, 당시 거래 품목에 외계종족의 물건은 없었어. 모두 연방의 물건이었다.”
정보에 만족한 빈우는 그림을 도로 집어넣은 다음 신문을 사내 쪽으로 슬쩍 밀었다. 손을 뻗은 정보상은 신문과 지폐를 한꺼번에 잡더니 다시 신문을 펴 십자말풀이에 열중했다.
목적을 달성한 빈우는 자리를 뜨기 위해 자신의 오토바이를 호출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상 한 곳에서 얻은 정보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여러 곳에서 모은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옥석과 허실을 가려내야 비로소 진짜 정보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 * *
빈우가 부른 오토바이는 자율 운행으로 근처까지 와서 큰길에 세워져 있었다. 그곳엔 불청객들 세 명이 먼저 와 있었다.
“햐! 이거 멋진데?”
야구 모자를 쓴 청년이 빈우의 오토바이에 올라타 핸들을 마구 꺾고 있었고 후드티를 입은 청년은 옆에서 낄낄거리며 병나발을 불었다. 그 밑에는 붉은 원피스를 배꼽까지 끌어올린 여자가 약에 취해 입을 헤 벌리고 가로등에 기대어 있다.
불청객들은 자기들끼리 놀다가 오토바이로 다가오는 빈우를 보고는 서로 한번 마주 본 다음 실실 웃었다. 빈우는 자신의 오토바이 앞에 서서 짧게 말했다.
“비켜.”
야구모자가 약 기운에 취해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빈우를 마주 쏘아봤다.
“싫은데?”
옆에서 후드티가 앞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빈우에게 들이민다.
“야 이 새끼야, 키 꺼내.”
원래 정보국 요원들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주변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한다.
그런고로, 빈우는 칼을 들고 있는 후드티의 손을 잡아끌어 야구모자의 배에 깊숙이 찔러넣었다.
“억!”
찔린 야구모자는 한번 몸을 움찔했을 뿐, 빈우에게 어깨를 잡혀 꼼짝도 못 했다.
“씨발! 이… 이거 놔! 놔!”
후드티가 저항해봤지만 소용없다. 빈우에게 붙잡힌 자기 오른손의 칼이 야구모자의 배를 난자해 내장을 쏟아내는 동안 후드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빈우는 널브러지는 야구모자의 오른손을 쥐어 후드티의 목을 졸랐다.
“켁! 케헤헥!”
순식간에 후드티의 혓바닥이 튀어나오고 입술 옆으로 거품이 뿜어져 나온다. 둘이 쓰러지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원피스는 자기의 일행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히죽거리며 보고만 있었다.
빈우는 원피스에게 다가가서 품에서 비강 점막용 분무기를 꺼냈다. 이 거리에서 흔히 파는, 마약이 담긴 일회용 분무기다. 그것을 원피스의 코에 끼우고 버튼을 누르자 안의 내용물이 코안으로 분사된다. 한 개, 두 개, 세 개. 세 개째에 원피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축 늘어졌다.
일을 마무리한 빈우는 일어서서 나머지 분무기들을 바닥에 뿌린 다음 바이크에 올라탔다.
정보국 요원들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현장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한다.
그런고로, 빈우는 약을 놓고 싸우다 자멸한 양아치들을 뒤로 무시한 채 오토바이를 몰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