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오브리가도에 위치한 특수전 사령부는 지상과 궤도의 두 기지로 나뉘어 있다. 이 두 곳은 궤도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함선들은 궤도 기지에 정박하게 된다. 홀 수 번 항구는 단검뿔 토끼, 실리콘 나이트, 뱅가드 연대 등 특수전 사령부의 직할부대나, 그에 준하는 최정예 부대의 함만 입항할 수 있었다. 그 외 다른 손님들은 짝수 번 항구를 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경의 24함대의 기함인 전함 오데이셔스와 호위로 같이 온 순양함과 구축함들은 3번 항구에 정박했다. 주위에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졌다.
게다가 이곳은 기밀등급이 높은 특수전 사령부다. 그렇다는 건 작년 즈음에 24함대가 담당한 포말하우트 방면에서 정보국 소속의 비밀부대가 신형 샤다이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얘기나, 2주 전 보호 구역인 발 가르단 하스 주변에서 샤다이와 24함대가 조우했다는 정보 정도는 암암리에나마 돌아다닌단 소리다. 그러니 시선이 24함대로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주위의 많은 관심을 받는 24함대의 배들이 입항한 3번 항구는, 현재 사령관인 캐서린 시슬의 명령 하에 관계자 외에는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전함 오데이셔스와 항구가 접한 최하층 갑판에는 태스크 포스 373과 24함대 대원들, 그리고 특수전 사령부의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모여 있었다.
“제군들, 안녕하신가.”
어벤져를 입은 빈우와 위르겐이 24함 대원들 앞으로 나섰다. 모인 이들은 사령관인 소여 소장과 오데이셔스의 승무원 중 함장 이하 간부, 그리고 장갑 보병들을 포함 50여 명뿐이다. 얼굴이 부서진 부관은 아직 치료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장갑복의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데다, 두뇌 칩의 정보마저 닫혀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자 24함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테스트의 담당자란 사실에 이를 납득했다. 좌중을 둘러보던 빈우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뒤치다꺼리를 하고자 깡촌에서 먼 길 기어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런데 본관이 좀 성격이 예민해서요. 뒤쪽으로 금붕어 똥 같은 것들이 대롱거리면 일에 집중을 못 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테스트다 뭐다 이런 건 다 명목상 개소리고, 댁들 쳐내려고 하는 게 제 본심이니 부디 협조 해주십쇼.”
“뭐 이 새끼야!”
“어디서 개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진정해. 저런 도발에 말려들지 마!”
욱한 24함대의 간부들과 휘하 장병들의 기세가 흉흉해졌지만 벤자민 소여 사령관이 나서서 말렸다. 이번 테스트는 그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앞으로 맡게 될 발 가르단 하스에서의 작전은, 변경 2선 지역을 전전하던 24함대에 있어 간신히 연결된 중앙과 특수전 사령부와의 연결고리이다. 잘만 되면 중앙으로의 진출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간신히 진정한 좌중은 빈우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노기등등한 시선이었으나 당사자는 신경도 안 쓰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자, 첫 번째 테스트를 하기 전에 질문 하나. 장갑 보병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질문에 머뭇거리는 것도 잠깐, 오데이셔스의 장갑 보병 사이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연방 최강의! 무적의 지상 병력입니다.”
“지랄하네. 평지에서 전차 만나봐라, 네놈 아가리에 처박힌 아이스크림보다 빨리 녹을 거다.”
비웃음 섞인 반박을 받고 녀석이 수그러든다. 이어서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인간에게 우주 공간에서의 생존을 보장하고 전투를 가능케 한 병과입니다.”
“야 이 등신아! 그러면 전투기 쓰지 왜 장갑 보병을 쓰겠냐.”
한심함과 짜증스러움이 반씩 섞인 일갈이었다. 머쓱해져 물러나는 녀석의 뒤로 중위 한 놈이 기세등등하게 밀고 나왔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용사들을….”
“너어는 새끼야아! 짬밥을 똥구멍으로 빨아먹어서 지금 입으로 똥 싸는 거니?”
세 번이나 오답을 받자 오데이셔스 측에서는 대답이 궁해졌다. 그때 장갑 보병의 대열 중 맨 앞에 서 있던 24함대 장갑보병대 대장 찰리 매버릭 중령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지상에 내려가 줄넘기하는 붉은 머리 여자아이의 입에서 사탕을 뺏어 올 수 있다.”
“그래, 씨발! 잘 아네. 너 인마 정답이다. 어쭈, 그래도 인물이 있네?”
빈우의 삿대질을 받는 정답자, 매버릭 중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그는 간신히 참아냈다.
방금 매버릭 중령이 한 말은 장갑 보병의 케케묵은 금언이자 존재 이유였다. 다른 병과에 비해 화력이나 방어력, 기동력 등이 떨어지는 장갑 보병의 존재 이유. 그것은 바로 민감한 지역에 은밀하게 들어가서 모호하고 정밀한 작전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장갑복은 인간이 사는 곳에 인간이 들어가서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덕분에 이것을 입은 장갑 보병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그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연방은 샤다이를 포함한 외계종족과의 전쟁을 치를 때 우주전에서 밀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상전에서만큼은 인간 특유의 끈질김과 교활함으로 승리를 갈취해왔다.
“그럼 뭘 테스트할지도 알겠네?”
빈우는 즉시 화면에 무언가를 띄웠다. 오브리가도에 퍼져있는 정찰 위성들의 지상정찰 결과다.
“자, 여기에.”
빈우가 확대한 곳에는 특수전 사령부에서 꽤 떨어진 민간 지역의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녀가 있었다.
“이렇게 생긴 여자애가 사탕을 먹고 있습니다.”
엄마 주위를 신나게 달리는 여자애는 예닐곱 살은 되어 보였고 입에는 막대사탕 하나가 물려있었다.
“빨간 머리는 아니고 줄넘기도 안 하고 있지만, 사탕을 뺏어오세요.”
빈우의 말이 끝나자 알 만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기겁했다.
그리고 내막을 모르는 이들도 다음 이어진 빈우의 말에 기겁했다.
“사령관 각하. 손녀분을 작전 대상으로 삼아도 되겠지요?”
즉 빈우는 특수전 사령부 사령관인 캐서린 시슬 대장의 손녀인 나디아 시슬을 작전 대상으로 삼아, 그녀가 물고 있는 사탕을 뺏어오라는 테스트를 구상한 것이다.
“물론. 며느리한테는 나중에 내가 말해놓지.”
의외로 시슬 대장은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썩어들어간 것은 옆에 있는 레드우드 중장의 얼굴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지금 즉시 강하해서 저 사탕을 뺏어올 것. 단 일체의 폭력 및 강제 행위는 불허. 그리고 당연히 훈련 내용이나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도 발설 금지다.”
오데이셔스의 장갑 보병들이 내비치는 기색은 어처구니없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빈우는 알 바냐는 태도로 여상히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요약하자면 나디아 시슬 양은 우리가 누군지 알아서도 안 되고, 자기가 언제 사탕을 뺏겼는지 몰라야 한단 얘기야. 작전 짤 시간 5분이면 충분하지? 그리고 10분 뒤면 너희들 손에 사탕이 있어야 해. 자자, 시작.”
그러나 빈우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24함대 측에선 선뜻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테스트라고 해서 전투력 테스트인 줄 알았는데 해괴망측한 걸 주절거리고 있으니, 완전히 애들 장난이라고 느낀 것이다.
“아니 왜 그래? 장갑 보병이 하는 일이 뭐야? 일단 꼬라박는 거잖아? 박아라~ 박아라~”
“이딴 게 무슨 테스트란 건가? 사탕을 뺏어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참다못한 소여 소장이 일갈하며 나섰고 빈우는 정중하고도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모릅니까? 댁들은 ‘알려져선 안 되는’ 비밀부대의 지원부대로 편성될 예정이야. 그러면 앞서간 팀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결원이 생기면 보충해줘야 하지. 그런데 말이야, 지원해줘야 할 애들이 할 일이 이런 거거든. 못하겠어? 그럼 그만두세요들.”
소여 소장은 시슬 사령관을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지만, 사병부터 특수부대원의 길을 걸어온 여걸의 반응은 냉담했다.
“안 하고 뭐 하나?”
믿었던 동아줄이 자신들을 외면하자 소여 소장은 다급히 부하들을 닦달했다. 그렇게 24함대의 해병대원들은 매버릭 중령을 중심으로 모여서 작전을 짜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될 턱이 있나.
이리저리 계획을 짜봐도 안 될 건 안 된다. 당장 가서 뺏어온다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지만, 저 조건에 맞게 들키지 않고 평화적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에~ 시간 초과. 안타깝게도 탈락입니다.”
낄낄대며 까불대는 빈우에게 소여 소장이 항의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테스트는 집어치워! 가능성이 있는 걸 하라고 해야지 처음부터 불가능한 걸 내놓고 이런 횡포를 하다니! 납득할 수 없다.”
“에이 설마 우리가 못하는 것을 댁들에게 시키겠어요? 근데 그럴 줄 알았어. 시범을 보여줄 테니 잘들 보셔.”
그리고 돌아선 빈우는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시작해.”
빈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오브리가도 궤도 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블랙 랜스에서 강하 포드 하나가 사출되었다.
훈련이란 명목으로 시슬 대장이 민간 구역 담당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받아 놓은 터라, 포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기권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점차 민간 구역으로 궤도를 바꾸어 내려가다가 고고도에서 두 기의 어벤져를 사출했다. 사출된 어벤져는 목표물 근처로 정밀 강하하여 저고도에서 제트팩을 써서 감속, 나디아 시슬로부터 1km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목표 발견.
화면에는 어벤져의 센서가 잡은 나디아 시슬이 보인다. 2기의 어벤져는 공원 수풀 속을 빠르게 해치며 나갔다. 곧 목표물에 접근을 완료한 어벤져는 5미터 거리를 두고 그 둘을 따라가며 명령을 기다렸다.
“아유, 이 개구쟁이야. 엄마 말 안 듣지?”
엄마인 제나 시슬이 쓴웃음을 지으며 딸을 따라가며 타일러도 나디아는 들을 기색이 없었다.
“아냐! 이거 두 개째야, 두 개째.”
그러면서 나디아는 사탕 하나를 꼬물꼬물 까서 빠진 앞니 사이로 쏘옥 집어넣으며 장난스레 웃었다.
“아까도 두 개째라고 했잖아?”
제나가 잡으려 하자 나디아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까르륵 웃으면서 엄마의 손에서 달아났다. 그러자 제나도 잡을 듯 말듯 성큼성큼 다가가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이힛, 엄마. 나 잡아봐라~”
술래잡기하며 노는 모녀의 모습이 어벤져의 카메라에 찍혀 궤도 기지의 테스트 현장으로 여과 없이 송출됐다. 이를 알 턱이 없는 나디아와 제나는 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공원을 신나게 달렸다.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질려버린 소여 소장의 말을 시슬 대장이 뒤따라 덮는다.
“보호자이고 책임자인 내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빈우가 다음 명령을 내렸다.
“돌입.”
짧은 명령과 함께 어벤져 하나가 수풀을 헤치고 튀어나와 모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오후우우우우! 나는! 우주 샤다이 대마왕이다!”
아룹이 입은 어벤져는 크롬 도금이 되어 전신이 은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어느새 피자 타이거 점원의 옷으로 갈아입은 파트리샤가 그 뒤를 따랐다. 뒤에서 무인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파트리샤의 어벤져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랑이 기운은 안 솟습니다. 피자 타이거!
신나는 음악을 깔고 춤추며 다가오는 은색 어벤져에 나디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 자신을 우주 샤다이 대마왕이라 밝힌 어벤져는 손가락을 들어 나디아를 겨눴다.
“헤이! 쏘녀! 뛰지 말란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뛰는 그대! 편식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그대! 나 샤댜이 대마왕의 부하가 될 자격이 있도다.”
과장된 포즈를 잡아가며 으름장을 놓는 어벤져를 본 나디아 시슬의 반응은 격렬했다.
“우와! 멋져!”
그리고 누구 손녀 아니랄까 봐 환호를 지르며 달려들어 어벤져의 허벅지에 태클을 걸었다.
“대마왕님! 저 부하하고 싶어요. 부하 시켜 주세요.”
“앗, 아니, 잠깐만.”
허벅지에 꼬마 숙녀가 찰싹 붙자 은빛 샤다이 어벤져가 뒤뚱거렸다. 그 모습에 제나는 박장대소를 하다가 다가오는 여자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나, 이 행사 아직도 하네요?”
그러자 파트리샤도 마주 웃으며 제나에게 팸플릿과 시식용 피자를 건네준다.
“네. 저번에 반응이 좋아서 연장했습니다.”
그다음 냅킨을 꺼내어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집어 들었다.
“아 이런. 딸이 떨어트렸나 봐요. 제가 치울게요.”
“아닙니다. 고객님.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피자 타이거의 직원, 파트리샤는 활짝 웃어 보였다. 바닥을 뒹군 사탕은 자연스럽게 냅킨에 둘러싸여 허리에 달린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앗아아, 어머님, 고객님. 따님을 좀, 앗!”
거구의 어벤져가 허리에도 안 오는 아이의 주먹질에 이리저리 비틀댄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장난스러운 광경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궤도 기지에서 내막을 알고 보는 이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룹의 어벤져는 무장을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푼 상태로 나디아를 목표로 삼아놨으며, 뒤에서 무인 조종으로 설정된 파트리샤의 어벤져는 나디아의 어머니 제나를 조준하고 있었다.
애초에 훈련 목표로 삼는다고 허락을 받았다곤 했지만 이건 완전히 공갈 협박이다. 지금 빈우는 배 째고 등도 따보시지, 라는 심보로 가족을 인질 삼아 시슬 대장에게 개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막장 상황을 보고 있는 빈우의 직속 상관 조지 레드우드 중장의 가슴은 타들어 갔다.
이곳은 특수전 사령부. 거칠고 막 나가기로 우주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 흉기들만 모은 곳들이라,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껄껄 웃을 위인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 칼이 자기 가족에게 간다면? 마찬가지로 껄껄 웃으며 칼 든 놈 모가지를 꺾어놓을 사람들이다. 지금 캐서린 시슬이 이 광경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참으로 용하다.
뭣보다 이런 거 저런 걸 다 떠나서-가족인 시술 대장의 허락이고 뭐고 간에-군인이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는 짓을 저질렀다간 위아래로 줄줄이 징계 코스 확정이다. 빈우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저지른다고 장담을 했지만 이건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저 새끼가 진짜….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레드우드는 한탄 섞인 혼잣말을 하며 슬금슬금 목표물의 보호자 되시는 분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의외로 캐서린 시슬은 흐뭇한 할머니의 미소를 띠고 손녀의 재롱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잘 웃네….”
그리고 빈우도 시슬 대장의 미소를 조용히 바라보며 자신의 가설과 계획을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