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44화 (44/301)

44화

그 미소를 본 레드우드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테스트에서 빈우의 팀원들이 시슬의 며느리와 손녀에게 무기를 들이대고 협박했을 때 그녀가 참았던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개인의 일이고 실제로 피해는 없었으니까.

그때 캐서린 시슬 대장은 자신이 밀고 있는 24함대 측이 밀려나고 있음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고, 오히려 손녀의 미소를 보고 웃기까지 했었다.

방금 일어난 실탄 사용 사고에선 더하다.

24함대는 시슬이나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하위 부대가 아니다. 소여 소장이 계급이 낮고 2선 부대의 지휘관이라 그렇지 엄연히 포말하우트 게이트 방면 사령부 소속의 타 부대다.

그런 타 부대의 전함 주 추진기를 박살 내는 대형 사고를 자기 부대 소속 팀이 낸 데다-태스크 포스 373은 어찌 되었건 엄연히 특수전 사령부 소속이다-자신의 계획을 확실하게 망가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아까처럼 상쾌하게 웃을 뿐이다.

‘자신의 끄나풀과 계획이 수포가 되었는데 캐시가 웃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웃었다는 것은 이 상황이 캐시의 바람대로 흘러갔다는 가능성이 크다는 뜻인데….’

하나하나 곱씹어 따지고 보니 아까 사령관실에서 했던 대화마저도 조금 수상했다. 그때 시슬 사령관은 태스크 포스 373에 24함대를 붙여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권유했다. 레드우드가 완곡히 거절했음에도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게 끝이다.

만약 시슬 대장이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거두절미하고 직설적으로 꽂아 넣었을 것이다.

“꼴 좋군. 전함이 전투기 한 기를 못 이겨서 항행 불가 판정을 받아?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특수전 사령부의 작전에 참여하려 했단 말이냐! 부끄러운 줄 알라.”

이런 식으로.

지금 캐서린 시슬은 나직한 목소리로 분노를 뿜어내며, 초상집 분위기인 24함대를 아예 줄초상 치를 기세로 씹어댔다. 여기에 끼어들었다가는 누구든 뼈도 못 추릴 기세라 레드우드조차 조용히 구경만 할 뿐이다.

-시슬 대장님, 속이 후련해 보이시네요.

빈우의 통신이 들려오자 레드우드는 이를 갈았다.

-내 속은 열불이 나 터질 지경이다. 너 이 새끼, 방금 저거 일부러 그런 거지? 작정하고 실탄 쓴 거 맞지?

-당연하잖습니까. 설마 그게 실수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되려 적반하장격으로 무슨 소리 하냐는 듯한 빈우의 말에 레드우드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확실히 아까 빈우는 조금 과격한 테스트로 24함대를 떨어트릴 것이라고 했다. 겸사겸사 캐서린 시슬을 떠본다고 하면서 ‘어쩌면 사소한 실탄 사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언질을 줬었다.

전우의 손녀딸에게 총을 겨누는 기막힌 계획까지 들은 마당이라, 설마 두 모녀에게 총을 쏠 거냐고 기겁하는 레드우드를 향해 빈우는 미쳤냐면서 전함에 쏠 거라고 못 박았다. 방어력이 뛰어난 전함에 ‘실수’로 실탄을 좀 쏴봤자 ‘사소한 사고’로 끝나겠지 싶어 레드우드는 불안해하면서도 허락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항행 불능 상태가 된 전함 오데이셔스의 주 추진기를 보면 사고는 맞지만 사소한 건 절대 아니었다.

-너 인마. 상대방 떠보려고 자극하는 건 좋은데, 만약에 이번에 시슬 사령관이 미쳐서 날뛰었으면 어쨌으려고 저딴 미친 짓을 하는 거냐?

-보이드 캄프 테스트 비슷한 거라 보시면 됩니다. 주어지는 조건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답을 추론하는 거죠.

-뭔 테스트? 미친놈이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지랄은 거기까지 하고. 내 말은 이거 잘못했으면 저쪽에 건수를 줄 수 있었단 말이다.

레드우드의 말이 맞았다. 결과적으로 시슬이 이쪽 편을 들면서 상황이 잘 풀린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일이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시슬은 오히려 빈우가 저질렀던 일련의 사건들을 빌미 삼아 태스크 포스 373에 여러 가지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걱정도 팔자시네. 제가 다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 놓고 저지른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래, 이제 들어나 보자. 그 빠져나갈 구멍이란 게 대체 뭐냐?

-중장님이 시켰다고 뒤집어씌운 다음 여기서 바로 블랙 랜스 타고 발 가르단 하스로 도망치는 겁니다.

-씹새끼가….

따지고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다. 일단 작전에 들어간 특수부대는 직속 상관이나 담당 지원팀 외에는 접근하기 힘들다. 빈우 쪽에서 보안을 이유로 침묵에 들어가면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부사령관이자 태스크 포스 373의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이중삼중으로 뒤집어쓴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리고 중장님도 대략 짐작하지 않으셨습니까?

빈우의 말대로 레드우드는 아까 보여준 시슬의 반응에서 그녀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 시슬 사령관이 결국 우리 편이었다는 거 아니냐.

그 말에 빈우는 잠시 침묵했는데 레드우드로선 꽤 불편한 정적이었다.

-거참. 정이라는 게 무섭네. 그렇게 당해놓고도 팔이 안으로 굽다니.

그리고 이어진 빈우의 말은 레드우드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덮어두려던 것을 헤집었다.

-아마도 시슬 대장은 우리하고 저쪽을 두고 저울질했을 겁니다. 저쪽, 그러니까 24함대의 뒷배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특수전 사령부의 사령관에게 무시 못 할 영향력을 주는 놈들이겠죠.

증거는 없지만, 상황이 대강 맞아떨어진다.

처음부터 시슬이 태스크 포스 373의 편이었다 하기엔 노골적으로 계획에 끼어들어 족쇄를 채우려 했고, 그렇다고 24함대의 편이었다 하기엔 너무 방치한 데다 오히려 그쪽의 탈락을 기꺼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캐서린 시슬은 전우의 팀인 373과 청탁이 들어온 24함대를 동등한 선에 놓고 어느 것을 선택할지 비교했다는 것.

-다행인 것은 시슬 사령관이 저쪽을 버리고 이쪽으로 갈아탔다는 겁니다. 하긴 양다리 걸치던 연인에게 고백받아봐야 뭐하겠습니까만.

-새끼가 선 넘네.

-거, 사선을 제집 드나들듯 오가던 분이 고작 이런 거로 엄살입니까.

그러면서 빈우가 시슬의 앞으로 나섰다.

“각하.”

겉보기엔 달라진 점이 없으나 이제까지 보이던 껄렁껄렁한 양아치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가 헬멧에서 새어 나왔다.

“이제 결론을 내주시죠.”

끼어든 빈우의 말에 시슬은 레드우드와 빈우를 한번 번갈아 보더니 레드우드에게 사과했다.

“제가 하마터면 모자란 인원들을 붙여 부사령관의 팀에 누를 끼칠 뻔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령관께서 모처럼 신경을 써주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레드우드도 그답지 부드러이 대답했다. 이렇게 태스크 포스 373과 그 지원부대 건은 잘 넘어가는 듯했다.

“그게 끝입니까?”

빈우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이 당돌한 말에 시슬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빈우는 재차 말했다.

“차후에도 제 팀에 사령관님의 입김이 닿을 일이 생깁니까?”

당돌한 것을 넘어 겁대가리를 상실한 질문이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즉답. 그러나 해석하자면 이것은 캐서린 시슬 자신의 방해는 없다는 대답이다. 그 이상의 것은 여기서 빈우가 묻기엔 적절하지 않다.

-이다음은 맡기겠습니다.

-흠. 그러지.

빈우는 적절한 대상자인 조지 레드우드에게 다음을 떠넘기며 슬쩍 자리를 피했다.

“기다려!”

그때 벤자민 소여 소장의 새된 비명이 빈우를 불러 세웠다.

“네놈이 감히, 감히 내 배에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냐!”

흥분한 소여 소장이 길길이 날뛰었다. 하긴 고의든 실수든 빈우가 테스트를 하며 전함에 꽤 큰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처리는 레드우드나 시슬의 선에서 이뤄질 일이니 빈우에게 따질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이건 분풀이였다. 시슬의 서슬 퍼런 분노에 눌려 롱소드의 레일건에 대해서는 뭐라 한마디도 못 해 답답한데, 그녀의 기세가 워낙 사나워 따지긴 무서우니 테스트를 진행한 빈우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빈우로서는 다 된 일에 코 빠트릴 필요가 없으니 되도록 원만하게 끝을 맺으려고 했다.

“유감이군요. 그건 실수입니다.”

“개소리 집어치워!”

자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시슬의 앞에서 추태를 보인데다 자신의 기함마저 저런 피해를 보았으니 벤자민 소여가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분노가 낙수효과를 일으켰는지 24함대의 간부들과 장갑보병대원들이 흉흉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빈우 쪽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실제로 뭘 하려는 것은 아니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병풍 삼아 항의를 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거늘. 지금 이놈들은 누구 앞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

흘깃 눈치를 보니 레드우드가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려 시슬에게 귓속말을 하는 게 보인다. 입술을 읽어보니 대강 죽이지 말라, 참으라 하는 것 같다. 하긴 이따위 일에 시슬이나 레드우드가 나설 필요는 없다. 쌍심지를 켠 시슬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빈우가 명령을 내렸다.

“납득시켜.”

대답 대신 위르겐의 어벤져가 힘차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종아리에 달린 노즐이 부딪쳐 쨍하는 소리가 났다. 사병용과 장갑의 재질이 일부 다른 장교용 어벤져의 특징이다.

폼과 위압을 동시에 뿜어내는 어벤져 특유의 제스쳐였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소여에겐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면 모를까.

“너? 너구나! 김빈우 이 새끼!”

벤자민 소여의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빈우로서는 얼씨구 싶다. 위르겐은 자신의 어벤져를 도색만 새로 해서 입고 왔다. 위르겐이 속한 뱅가드에는 장교용 어벤져가 지급된다. 소여는 눈앞의 멀끔한 어벤져가 장교용임을 알게 되자 저자가 빈우라고 넘겨짚은 것 같았다. 근데 그걸 알았다손 치더라도 기밀에 속하는 김빈우라는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다니. 고급장교로서의 자각이 있기나 한지 기가 막힌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반응을 하기도 전에 위르겐이 앞으로 튀어 나가 선두에 선 장갑 보병, 찰리 매버릭 중령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불행히도 매버릭 중령은 헬멧을 내린 상태가 아니었기에 코가 함몰됨과 동시에 뒤통수를 바닥에 처박았다.

“어어? 대장님?”

“이 미친 새끼가!”

오데이셔스의 장갑 보병들은 40명가량이지만 대부분이 2선 장갑복 헬브링어를 장착하고 있었다. 어벤져를 입은 것은 대장인 매버릭 중령을 포함한 지휘관급 몇몇뿐이었다. 그리고 알맹이를 보더라도 24함대의 장갑 보병들은 훈련도나 신체 강화도 면에서 1선급 대원들보다는 조금 떨어지며, 눈앞의 위르겐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 새끼 뭐야! 아악!”

“둘러싸! 둘러싸서 붙잡아!”

난장판의 주역인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는 뱅가드 연대에서도 손꼽히는 재원이다. 입고 있는 장갑복도 연방의 주력 장갑복, 미들급의 걸작품이랄 수 있는 어벤져였다. 그것도 장교용을 개인에게 맞게 최적화 튜닝을 한 상태이니 40 대 1이라도 해볼 만하다.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무기를 안 쓰고 맨손 격투로 맞붙고 있으나 한쪽만 일방적으로 피를 흘리는 꼴이 숫제 늑대와 양의 싸움 같다.

그 광경에 뭐라고 하려던 캐서린 시슬은 입을 닫더니 조용히 자리에 앉아 24함 대원들이 강제로 납득 당하는 과정을 구경했다. 그리고 레드우드는 시슬이 폭발해서 날뛸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옆에서 소방수 역할로 대기했다. 위르겐이 특수전 사령부가 어떤 곳인지를 몸소 가르쳐 주는 소란을 틈타 빈우는 어느새 사라졌다.

* * *

얼마 뒤 빈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특수전 사령부 깊숙한 곳의 특수 감금구역이었다. 이곳은 저번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생포한 샤다이를 가둬놓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곳이다. 정작 생포한 당사자인 빈우는 373팀의 일로 바빠 코빼기도 비추지 못해 여기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소령님. 허가증은… 아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앞에 서 있던 경비 중 하나가 빈우의 앞으로 나섰다가 그의 정체를 알고는 즉시 뒤로 물러서 문을 열어주었다.

이 리퍼용 특수 감금구역은 레드우드의 관할 아래 있어 373의 팀장인 빈우는 별다른 절차 없이 바로 면회할 수 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되는 터라 빈우는 그 전에 위르겐과 레드우드 쪽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였고 한창 뒷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너무 빠른데.’

시선을 돌려놓은 절호의 찬스에 음흉한 짓 좀 하려던 빈우는 혀를 찼다. 그리고 다시 안쪽의 두터운 장갑 문을 밀고 들어가 신체 검색대를 지났다. 그라인더를 입은 장갑 보병들이 빈우를 맞이했다. 거기서 다시 한번 검사를 거친 다음에야 빈우는 리퍼를 만날 수 있었다.

여성형 샤다이는 지금 빈우가 있는 면회실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독립 감옥에 감금된 채, 3개의 카메라로 감시당하고 있다. 이 카메라들은 각각 정면, 방 안쪽 구석, 그리고 바로 리퍼 앞의 탁자에 옆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안녕?”

빈우의 인사에 화면 속의 샤다이가 고개를 들어 스피커와 카메라를 본다.

“그 목소리….”

야바위로 자신을 생포한 빈우의 목소리를 기억했는지 샤다이는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아, 그때의 유에네스로군. 무슨 일이지?”

“얼마 안 있으면 난 잠시 이곳을 떠나게 되거든. 그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들린 거야.”

“…거짓말은 아니네. 그리고?”

한번 당했던 게 제법 호됐던 터라 샤다이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인간형 종족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인간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외계종족은 샤다이가 처음이다. 길쭉한 귀와 푸른색 피부만 아니라면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그러나 샤다이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뒤에서 약간의 소란이 벌어졌다. 이상함을 감지한 빈우가 슬쩍 돌아봤다. 경비 임무를 맡은 그라인더 둘은 부동자세로 있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록을 담당하면 요원들이 당황해서 분주하게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이 생포된 샤다이는 감금된 이후 외부의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무시했다고 들었는데 빈우의 말에는 반응하니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달아오른 흥분은 이어서 나온 빈우의 말에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워프 비스트에 대해서 알려줘.”

기밀 중의 기밀. 갑작스레 허들이 높아진 빈우의 질문에 기록 요원들은 일순 경악해서 손을 멈췄다. 그들은 차마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곁눈질로 빈우를 훔쳐볼 뿐이다.

그리고 마침 그 말에 화면 너머의 샤다이가 고개를 움직여 카메라를 보았다.

샤다이는 정면의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방 안쪽 구석의 카메라를 뒤돌아봤으며, 탁자에 달린 측면 카메라 쪽에는 고개를 돌린 옆얼굴이 나왔다. 각기 다른 각도의 세 화면에서 동시에 송출되는 샤다이 눈과 빈우의 눈이 마주쳤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빈우는 내심 놀랐다. 설마 샤다이의 정신공격인가 싶었으나 그건 아닌 듯싶다.

다시 화면을 보니 샤다이는 정면 카메라만을 통해 이쪽을 보고 있다.

빈우는 자신의 기록과 면회실의 기록을 재빨리 돌려보았다. 그러나 기록 속의 샤다이도 정면 카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빈우의 놀라움은 화면 너머의 샤다이에게도 전해진 듯싶다.

“너 설마?”

그쪽에서는 화면이 없어 이쪽을 볼 수 없지만 어떻게든 빈우의 동요를 느낀 것 같았다. 그리고 샤다이는 측은하다는 표정을 화면 너머로 지어 보였다.

“겁먹지 마. 방금 것은 내가 보여준 게 아니야. 당신이 본 거지. 그리고 선택한 것은 되돌아볼 수 없어. 그건 과거가 아니니까.”

기묘한 말을 한 샤다이는 자세를 고쳐앉더니 말을 이어갔다.

“워프 비스트라. 선친께 들은 적이 있어. 재미있는 단어의 조합이었다고. 혹시 선친에게 그 말을 한 게 너였나?”

일단 빈우 본인에겐 그런 말을 한 기억이나 기록은 없다. 샤다이를 상대로 워프 비스트란 단어를 말하기는커녕 그 단어와 실물을 접한 것조차 최근의 일이다. 허나 머릿속에 있는 트리니티 패턴 보안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다.

“그들은 너무…. 젖은 자들이지. 그리고 다른 말로는 계단에서 내려와 돌아온 사람들이야.”

“그것은 너무…. 비유가 심한데. 알기 쉽게 말해 줄래?”

빈우의 흉내에 샤다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런 모습들이 마치 인간 같다.

“선친께서 말씀하셨지. 이해와 판단은 듣는 자의 몫이기에 말하는 자는 그것을 배려할 의무가 없다고. 재주껏 알아 들어봐. 참, 다음에 선친을 만난다면 당신에 대해 꼭 말해 줘야겠어. 진실을 말하면서도 속이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야.”

발 가르단 하스로 떠나기 전 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왔건만 너무나 민감한 정보들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지금은 시기가 그리 좋은 것 같진 않다. 일단은 빠지기로 마음먹은 빈우는 물러서기로 했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니 버거운데. 나중에 혼자 찬찬히 곱씹어 봐야겠어. 그리고 보답 삼아 작별 인사로 하나 알려주지. 선친이란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야. 다음에는 다른 말을 써보도록 해.”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알아, 당신들의 단어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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