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테스트로 시작했다가 갑작스러운 난투극으로 번진 상황이 마무리 지어진 후,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시슬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민간 구역에 대한 군용 병기의 투사, 24함대 소속 전함 오데이셔스의 주 추진기 파손, 24함대 장갑 보병들과 위르겐 상사 간의 강도 높은 근접전 훈련 등등에 대한 문서가 이곳의 책임자, 특수전 사령관 캐서린 시슬 대장 앞에 나열되어 있었다.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 앞에서 일을 돕던 레드우드가 멋쩍은 표정으로 퉁명스레 말했다. 딱히 시슬에게 했다기보다는 지나가듯이 흘린 말이다.
그리고 시슬은 그 말을 냉큼 주워다가 살을 붙여 돌려준다.
“선배님과 외부인을 놓고 저울질한 판국에 무슨 염치로 말을 한단 말입니까? 또 미리 알려줬다 한들 선배님 깜냥에 제대로 되겠습니까? 사달이 나도 열두 번이 났지요. 참, 그러고 보니 선배님도 저한테 아무 말 안 했잖습니까?”
차마 부정 못 한 레드우드는 끙하는 신음과 함께 애꿎은 팔짱만 세게 꼈다. 실제로 시슬이 특수전 사령부에 모종의 압박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했다면-도움을 청한다는 얘기가 들어왔다면-레드우드는 계급장 떼고 자기 측근들을 몰아 수상한 곳을 순회공연 하면서 걸리는 족족 벌집 쑤시듯 후벼 파 놨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계급장을 달 수 없었으리라.
또 시슬의 말대로 레드우드 역시 자신의 팀인 태스크 포스 373에 갖은 훼방이 들어왔었을 때 상관인 시슬에게 입도 뻥끗하지 않았었다. 특수전 사령관에게 말할 레벨의 이야기도 아니거니와, 레드우드의 성격상 이런 질척질척한 일은 자기 선에서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령관과 저는 경우가 다르지요. 그리고 저울질이라니….”
굳이 따지자면 레드우드와 태스크 포스 373의 경우는 외부에서 알게 모르게 방해가 들어온 것이고, 시슬의 경우는 정규 루트를 통해 직접 압박이 들어와 전우와 끄나풀을 손에 놓고 비교하도록 강제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시슬이 본인의 입으로 레드우드와 그 팀을 저울질하고 버리는 패로 놨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빈우의 예상을 듣고도 설마 했던 레드우드였지만 본인에게 직접 확인을 받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런 선배를 보며 시슬은 히죽 웃었다.
“예전에 선배님이 사령관 자리를 고사했을 때, 전 선배님이 엄살 부리거나 귀찮은 일을 피하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갑자기 시슬이 말을 돌렸다.
“그, 그랬나?”
과거 레드우드는 본인이 한 조직의 장이 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란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후배인 시슬에게 사령관의 지위를 양보했었던 것이다. 허나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서 정치 싸움을 하는 것에 넌더리가 나서 사령관 자리를 포기한 면도 없잖아 있다.
“저도 이 자리에 서고 나서야 보이더랍니다. 처음 별을 달고 난 다음부터 웬만큼 머리 위의 세계에 시달렸다고 생각했지만, 특수전 사령부 사령관은 또 달랐어요.”
시슬의 말에 레드우드도 격하게 동감했다. 과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을 때 주변에서는 제 일보다 더욱 기뻐해 주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레드우드는 자신의 세계와 상식이 파괴되는 것만 같았다.
혈기와 충의로 연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진급을 거듭해 준장까지 올랐건만. 그때부터의 싸움은 총 보다는 펜, 장갑복 보단 정복을 입고 치러야 했으며 싸워야 할 대상은 과거 자기가 지켜왔던 속칭 ‘높으신 분들’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전투는 늘 해왔던 일이지만 면전에 대고 혀를 놀리는 싸움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또한, 높은 자리에서 멀리 봐야 하는 장성들의 특성상 레드우드는 현장에서 점차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윗선의 간섭은 계급이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가끔은 대령으로 남아있을 걸 하는 후회도 한다.
“하기야 저도 대령으로 남아있을 걸 했었습니다만.”
“어이쿠, 그러면 선배님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레드우드의 푸념 섞인 농담을 시슬은 웃으며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겐 이는 결코 웃을 수 있는 농담이 아니다. 현재 이들의 선후배들이 제독이나 장관으로 있는 상황에, 사병에서 대령까지 기어 올라간 레드우드가 장성을 포기하고 현장에서 구르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는 그를 제재할 방법도, 사람도 없다. 한다고 해도 레드우드의 위선에서 흐지부지되고 말겠지.
의회와 국방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이어지던 외계 종족과의 전투에서 레드우드는 연전연승했고, 이에 따라 그가 속했던 단검뿔 토끼의 전신인 웃는 해골이 그의 준 사병화 돼갔다. 이 과정을 그들은 그리 탐탁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잔뼈 굵은 이 노병을 통합전투사령부나 국방부로 불러 책상 위에 앉혀 고삐를 채우려 했었다. 당시 제독이나 대장으로 올라갔던 전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드우드는 어떻게든 특수전 사령부에 남을 수 있었고, 자신의 요람을 지키기 위해 시슬에게 사령관의 지위를 양보했었다.
그랬건만 믿었던 캐서린 시슬이 자신과 자신의 팀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적대하려 했다는 사실에 레드우드는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다.
“이 자리에 와서 권한이 막강해 졌지만, 책임은 더더욱 막중해진 터라 운신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시슬은 커피잔을 단숨에 비운 다음 책상에 세게 내려놓았다.
특수전 사령부는 연방 최정예 특수부대의 집결지인 만큼 비공식, 비정규전 등등 알려져선 안 되는 전투들을 도맡아 처리한다. 때문에, 장갑 보병이 위주가 되는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예산 편성이나 대우는 각 사령부 중에서도 최고다. 동시에 그 수장이 가지게 되는 권한 만큼 따라오는 책임과 제약도 최고 레벨이다.
“그야 피차 아는 사실 아니오.”
빈 잔을 다시 레드우드가 채워준다. 둘은 커피잔에 담긴 보드카로 건배를 했다. 시슬은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말을 이어갔다.
“음, 저도 선배님 팀에 예전부터 방해가 들어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습니다만…. 잡기엔 그것의 꼬리가 미묘하게 회색 영역에 걸쳐있었고 또, 선배님이 별말씀 안 하셔서 때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레드우드는 지금도 절로 이가 갈린다. 방해라는 게 뻔하고 심증은 확실한데 아무리 후벼 파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이다.
“한데 이번에 제게 접근한 쪽은 당근과 재갈을 들고 왔습니다.”
“재갈을?”
빈 보드카 병을 치우고 다른 술을 찾던 레드우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누군가를 길들일 때는 당근과 채찍이라 해서 당근이라면 보상을, 채찍이라면 제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재갈이라고 하면 말의 입에 채워 마구다. 이는 상부에서 의무나 책임, 규약들을 이용해서 군을 강제할 때를 비꼬는 장교들의 은어다.
시슬이 레드우드의 편을 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길게 운을 뗀 것은 자신의 처지를 되새기며 변명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서로의 상황을 자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개개인이 뛰어난 병사이며 동시에 장성이란 계급에 있으면서도 더 큰 물결에는 무력하게 쓸려나가는 상황 말이다.
그때 문밖의 비서 안드로이드에게서 연락이 왔다.
“각하, 벤자민 소여 소장이 지금 여기서 면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막 본론으로 들어가려던 레드우드와 시슬 두 사람의 눈살이 동시에 찌푸려진다. 그런 꼴을 당하고 또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들이미는 소여의 모습이 꼴사나운 것이다. 아까 근접전 훈련이 끝난 오데이셔스의 갑판에서 373 팀원 단 한 명에게 강제로 납득 당한 모습이 측은해 부드럽게 타일렀던 게 오히려 화근이었던 성싶다.
“아직 나한테 재갈이 채워져 있다 착각하는 모양이군요.”
시슬이 혀를 차며 밖에 일렀다. 그와의 얘기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
퉁명스레 말한 다음 시슬은 레드우드 쪽으로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김빈우 소령을 부르는 게 이야기하기 편하겠습니다.”
갑자기 천방지축 예측불허 사고뭉치 부하의 이름을 들은 레드우드의 눈이 동그래진다.
“어? 김 팀장이 이 일과 연관 있소?”
“없지는 않지요. 김 소령이 정보국 출신이지요? 게다가 울토르 프로젝트의 현장 책임자였다지 않습니까. 그를 통해 확인할 게 있습니다.”
울토르 프로젝트라면 클론 병사에 관련된 기밀 프로젝트다. 레드우드는 그게 지금 이야기-상부에서 시슬에게 당근과 재갈을 들고 온 것-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고 싶었으나 빈우를 부르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다.
한데 레드우드는 지금 부를 부하를 생각하니 헛웃음부터 나왔다. 오데이셔스의 장갑 보병들과 위르겐이 한판 뜰 때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서 몰랐는데, 나중에 안 보여서 부르려 했더니 리퍼 감금구역에 갔다가 나오는 중이랬다. 물론 빈우에게는 권한이 있으니 거기 가더라도 무슨 문제가 있겠냐마는, 자기가 안 보는 사이 또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몰라 당최 안심할 수가 없다.
‘하여튼 이놈은 한시라도 눈을 떼면 안 돼.’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통신을 열던 레드우드가 멈칫했다.
그리고 욕부터 나온다.
“거 십새끼.”
“무슨 일입니까?”
시슬의 질문에 레드우드가 한숨을 푸욱 내쉰다.
“373 이놈들, 아까 출항했소.”
“뭐요? 허허. 참.”
그 말에 산전수전 다 겪은 캐서린 시슬마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저런 사고를 쳐 놓고도 직속 상관에게 보고 한마디 없이 작전을 핑계로 도망쳐 버리다니. 담이 큰 건지 뇌가 작은 건지 도무지 모를 지경이다.
“아니, 내가 예전부터 준비되는 대로 작전 시작하라고도 했었고, 이번에 24함대와 일이 틀어지면 바로 작전 핑계로 내빼겠다고 지 입으로 말하긴 했는데. 진짜 이놈, 난 놈이외다.”
“제 앞마당에서 그딴 짓을 해놓고도 얼굴 한 번 안 비치고 바로 빠져나갔단 말입니까? 배짱 한 번 좋네요.”
태스크 포스 373 같이 기밀을 요하는 특수부대는 일단 작전에 들어가면 아예 모습을 감추고 침묵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후방에 있는 같은 팀이나 직속 상관 외에는 연락이 불가하고 같은 아군도 위치조차 알 수 없다.
즉 캐서린 시슬 대장이라고 해도 작전에 들어간 373 팀에 바로 연락을 할 수는 없다. 반드시 레드우드나 후방 팀을 거쳐야만 연락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빈우는 시슬의 며느리와 손녀에게 총을 겨눈 것도 모자라, 그녀가 데려온 손님들을 개박살 낸 다음 입 싹 닫고 모습을 감춰버린 셈이다.
허탈해하는 시슬은 그렇다고 쳐도 직속 상관인 레드우드는 오죽 민망할까. 그것도 후배이자 상관인 시슬의 앞이니 더할 것이다.
“한데 선배님, 김 소령이라면 지금 일이 풀려나가는 상황을 눈치챘을 법도 한데 왜 갑자기 도망을 친 걸까요?”
지금 시슬은 빈우가 사고를 치고 떠난 게 괘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떠난 이유가 궁금했다. 빈우는 시슬이 보인 약간의 반응만으로도 주변이 돌아가는 상황을 유추해낼 정도로 노련한 정보국 요원이다. 그라면 레드우드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스스로 정보를 수집해 시슬 주변에서 벌어진 파워 게임을 대강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레드우드에게 연락이나 보고도 없이 작전을 나간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확실한 건 이 새끼 이거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친 건 아닐 거외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또 다른 사고를 쳤거나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그때 시슬의 손에서 잔이 떨어졌다. 깨지진 않아도 쨍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어허, 너무 역정 내지 마시오. 나하고는 라인이 연결되어 있으니 지금 연락해보리다.”
후배가 열 받아 저러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레드우드가 부랴부랴 비상 통신으로 연락을 하려 했다. 그러나 시슬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질끈 감긴 두 눈을 감싸고 입술이 달싹거린다.
“계단을…. 계단을 내려온 자들이…. 돌아온다.”
지금 시슬의 책상에는 쏟아진 술이 뿌려져 있지만 강화된 군인이 술에 취할 리는 없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레드우드가 시슬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사령관! 정신 차리시오, 사령관! 캐시!”
“내 이름은, 알탄훼아나…. 나는…. 감옥에, 여기에 있다. 당신이 가둔…. 김빈우…. 나를…. 리퍼.”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시슬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 낸 레드우드가 눈을 흡떴다.
“샤다이!”
지금 시슬은 샤다이의 정신공격을 받는 게 분명했다. 기존의 데이터에 의거해 안전거리를 충분히, 넘치도록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리퍼는 그 먼 특수 감옥에서 여기 사령관실에 있는 시슬에게 정신공격을 가한 것이다.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것이 일반 샤다이가 아니라 리퍼라고 하면 납득간다.
“선배, 샤다이가…. 들어왔소, 들어다오. 명령을… 워프….”
시슬은 자신의 말과 머릿속에 침범한 샤다이의 말을 번갈아 뱉었다. 놈들의 정신공격에 저항하려 하는 것이다. 레드우드는 시슬이 꽉 잡은 자신의 팔에서 느껴지는 힘에서 그녀가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캐시, 샤다이다. 정신 차려. 샤다이의 의식을 몰아내.”
레드우드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려는 샤다이와 싸우는 시슬을 격려했다. 그러면서 리퍼가 있는 감옥에 명령을 내렸다.
“부사령관 조지 레드우드다. 지금 즉시 수감한 샤다이를 사살하라! 지금 즉시 사살해!”
그러나 감옥 쪽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레드우드다! 응답하라!”
아무리 호출해도 감옥 쪽의 통신은 조용했다.
그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 소란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비서 안드로이드를 밀쳐내고 막무가내로 방안으로 들어온 것은 24함대 사령관 벤자민 소여 소장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사령관 집무실에 침입한 불청객을 보고 레드우드가 일어섰다. 아까 분명히 축객령을 내렸음에도, 시슬에게 변고가 난 시점에서 난동을 피우니 레드우드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약속, 약속과는 다릅, 니다.”
지금 소여 소장은 문가에 서서 비틀거리며 꺽꺽대고 있었다.
“썩 나가. 음?”
일갈하려던 레드우드는 소여 소장의 상태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레드우드는 소여의 성화에 못 이겨 비서가 문을 열어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문은 억지로 열려있고 비서 안드로이드는 여기저기 파손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벤자민 소여의 상태가 이상하다.
“그흐어으어-”
눈에 백태가 낀 듯 허옇다. 헤 벌린 입에서 침과 함께 이가 흐른다. 그리고 이가 빠진 자리에 날카로운 이빨들이 돋아난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도 한 번 봤던 현상이다.
“워프 비스트!”
레드우드가 노성을 지르며 허리에서 코일 피스톨을 뽑아 난사해 벤자민 소여였던 워프 비스트를 산산조각으로 분쇄했다.
“비상! 사령관실이 기습당했다!”
레드우드가 비상을 알림과 동시에 다른 비상이 울려 퍼진다.
-3번 항구에 적 발견! 3번 항구에 적 발견! 오데이셔스에서 정체불명의 적들이 나온다. 아군이 변이한 것으로 추정. 반복한다, 3번 항구-
“이런 씨부랄.”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정도가 있지 연방군 특수전 사령부에 워프 비스트 출현이라니 군이 발칵 뒤집힐 일이다.
3번 항구의 화면을 보니 오데이셔스에서 워프 비스트들이 떼를 지어 뛰쳐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일단 수상하면 다 죽이고 보는 특수부대원들은 상대의 정체가 뭐건 간에 모조리 쏴 재끼고 있었지만, 중과부적이라 수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부사령관 조지 레드우드다! 지금 즉시 3번 항구를 봉쇄한다. 항구 저지선에 있는 방어 포탑들을 무차별 사격 모드로 설정해 저지선에 접근하는 것들은 피아식별 없이 모두 죽여라. 3번 항구에 있는 대원들은 별도의 지시가 없는 한 그 자리에서 버티며 구출을 기다린다. 가까운 전투 병력은 3번 항구 저지선에 집결해서 포탑의 봉쇄를 지원한다. 또한, 정체불명의 적들과 교전하는 대원들은 감염에 주의하라! 놈들과는 최대한 거리를 유지해! 절대 접근하지 마.”
현재 워프 비스트는 연방의 최고 기밀 중의 하나다. 지금 특수전 사령부 3번 항구에 출현한 것을 포함해 총 5번 발견된 이 괴물들의 신체 능력은 장갑복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워프 비스트의 진정한 무서움은 이 괴물들이 인간이 변이해서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감염 원인과 경로도 파악하지 못하고 막연히 샤다이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3번 항구 안에 있는 인원들의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조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레드우드는 긴급 대응팀을 호출해 리퍼를 가둔 특수 감옥으로 출동시켰다. 당연히 보이는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과 함께.
“조지, 코드 시에라 줄루 델타… 발령을.”
한창 병력을 분배하고 명령을 내릴 때 뒤에서 시슬의 말이 들려왔다. 레드우드는 급히 돌아가서 그녀를 부축했다. 시슬 대장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는지 정보창을 띄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레드우드는 창을 조작하는 시슬을 막고 물어보았다.
“확실해, 캐시? 시에라 줄루 델타라고?”
시에라 줄루 델타는 특수전 사령부가 적의 공격을 받아 점프 포인트마저 탈취당할 우려가 있을 때 내리는 최종 명령이다. 실행되는 즉시 점프 포인트를 자폭시킨다. 그렇게 된다면 특수전 사령부가 위치한 궤도기지와 지상기지는 물론이요, 행성 오브리가도와 주변의 민간인들까지 외부로부터 고립시킨다.
“나디아에겐…. 할머니가…. 미안….”
부들대는 시슬이 간신히 내뱉은 말에 레드우드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시슬은 기지의 대원들을 포함해 행성에 있는 민간인들, 더불어 자신의 며느리와 손녀가 있음에도 탈출의 여지를 주지 않고 바로 봉쇄 명령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