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빈우의 말에 팀원들은 긴장했다. 특수전 사령부가 워프 비스트의 기습을 받아 점프 게이트를 자폭시키고 외부와 고립된 것이 나쁜 소식에 불과하다면, 좆 같은 소식은 대체 얼마나 심할까 싶은 것이다.
“원래 우리 태스크 포스 373이 맡아야 할 임무는 포말하우트 게이트 방면의 보호 행성인 발 가르단 하스에 비밀리에 침투해서, 거기에 추락한 리퍼 함선의 잔해와 정보를 회수하는 것이다.”
인류의 기술력을 몇 단계 상회하는 샤다이의 함선과 장비라면 당연히 고가치 정보다. 샤다이의 특수부대에 해당하는 리퍼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접근이 금지된 보호 행성에 비밀리에 들어가 장비를 회수하는 거로도 모자라,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리퍼와의 전투에 대비해야 하기까지 하니. 당연히 태스크 포스 373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허나 본진이 털렸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한 작전을 강행할 이유가 있나 하고 팀원들이 생각하던 찰나, 그들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빈우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번 임무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작금의 사태로 인해 더더욱 중요해졌다. 발 가르단 하스에서 리퍼 함선의 잔해를 회수하고 정보를 수집한다면, 본래의 목적인 적 기술력 습득은 물론이고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워프 비스트는 특수전 사령부가 문을 걸어 잠글 정도의 고위험 사태다. 현 상황에서는 최우선으로 수집해야 하는 정보이나, 빈우 말대로 이에 대한 정보는 샤다이나 리퍼를 통해서 얻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령부가 봉쇄되었잖습니까. 리퍼 함선을 회수한 다음 어디로 가야 합니까?”
걱정스레 질문하는 모니카에게 동의하듯 우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뒷일을 걱정하는 것은 이 두 사람 정도다. 다른 사람들은 귀환이나 회수에 대한 메뉴얼들을 많이 경험해 봤었기 때문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특수전 사령부의 점프 게이트는 봉쇄되었지만 우리는 해당 메뉴얼에 따라 통합사령부로 귀환하면 된다. 단, 작전행동 도중 24함대와는 일체의 접촉도 금한다.”
오데이셔스와 휘하 함선들의 장병들이 워프 비스트로 변했으니, 24함대 사령부도 그럴 가능성이 클 거라 생각해 내린 판단이었다.
“그들에 대한 정찰이나 수색도 하지 않습니까?”
해당 임무를 맡아야 할 우지가 손을 들었다.
“안됐지만 우리 일이 아니다. 특수전 사령부에서도 연락이 갔을 테니 신경 꺼.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특수전 사령부 탈환이나 24함대의 워프 비스트 공격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발 가르단 하스로 가서 원래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최선이다.”
빈우의 말은 어차피 지금은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간다 한들 이 정도 전력으로는 아무런 보탬이 될 수 없으니 승리를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라는 말이다.
“다른 의견 있는 사람?”
그쯤에서 팀원들은 빈우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부팀장 아룹 라마누잔 원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카롱을 씹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팀이 작전에 나갔을 시 팀장인 빈우가 현장지휘관이 되어 전권을 행사한다. 그런 팀장 옆에는 보좌하고 제어할 사람이 붙는 게 보통이다. 허나 불의의 사태로 팀이 제대로 꾸려지기 전에 출발하는 바람에, 태스크 포스 373은 그런 체계가 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스크 포스 373의 최고 지휘관은 조지 레드우드 중장이지만 현재 연락 두절 상태이고, 참모와 고문역으로 내정된 피에르 라캉 중령은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전사했다. 어차피 이들은 후방 팀이라 작전을 나가게 되면 현장에서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지마 오르 함장은 같은 소령이지만 블랙 랜스의 조함에만 권한이 있고 작전행동에는 빈우의 명령을 따르기로 되어있다. 모니카 보르자 대위는 과학기술 자문역이라 작전권은 따로 없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빈우와 작전에 대해 상의하고 진언을 할 사람은 아룹 원사뿐이다.
“없습니다. 팀장님. 잘 알겠습니다.”
부팀장이 웃으며 대답하자 빈우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작전 목표인 발 가르단 하스의 행성 정보부터 설명한다.”
발 가르단 하스란 생소한 단어를 들은 팀원들은 일단 자신이 가진 정보에서부터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두뇌 칩에서 알려주는 건 이 행성이 연방의 보호구역이라는 기본적인 정보뿐이었다. 그 이상의 것을 알려면 연방의 서버에 접속해야 했고 그러려면 게이트를 통해 통신이 연결되어야 한다. 작전을 위해 침묵 모드에 들어간 현재의 373 팀원들에겐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우리는 워털루 게이트를 나와서 포말하우트 게이트 방면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지금 보게 될 정보는 연방 정보분석국과 포말하우트 게이트의 장거리 정찰 위성에서 보내준 걸 취합한 것이다. 나도 보고 나서 안 것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아주 기본적이고 조금 왜곡된 것이다.”
화면에는 포말하우트 게이트 방면의 많은 항성계 중에서 하나의 항성계가 확대되었다.
“목표지점의 발 하스 항성계는 두 개의 태양이 있는 쌍성계이다. 이 큰 쪽이 발, 작은 쪽이 하스이다. 그리고 9개의 행성이 발과 하스 두 태양 사이를 공전하고 있다.”
화면에는 발과 하스라고 이뤄진 두 개의 태양이 떠올라 있고 그 안으로 9개의 행성이 있었다. 그중 2개가 발을, 다른 3개가 하스를 돌고 있으며 나머지 4개가 두 태양을 번갈아 8자 궤도를 그리며 공전하고 있었다. 빈우가 그중에 하나를 집었다.
“이곳이 우리의 작전지역인 발 가르단 하스이다. 발과 하스의 두 태양 내부 궤도를 번갈아 공전하는 행성이지.”
이어서 화면이 확대되며 행성 표면이 나온다.
“발 가르단 하스의 대기는 강산성이며 온도는 섭씨 300도가량, 장갑복의 센서 부분에 보강이 필요한 수준이다. 지표는 끓어오르다 굳은 발포 상태의 암석군으로 지하에 흐르는 중금속 구름 위에 떠 있는 상태다. 이 지하 금속운의 움직임에 따라 지표는 항시 변하니 이동 시엔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원주민인 발 가르단 하스인은 이렇게 생겼다.”
화면에는 해파리와 문어를 섞어 다시 평균값을 낸듯한 생명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외부에 액체금속 피막이 있고 그 안이 가스로 차 있다. 아마 내부의 가스로 부력을 조절해 뜨는 모양이다.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기관은 없고 전자기장으로 주변을 파악한다고 한다. 이들은 보호구역에 사는 보호 종족이니 우리는 이들의 눈에 결코 띄어선 안 되며 어떠한 접촉도 허락되지 않는다.”
보호 행성에 대한 금제는 꽤 삼엄한 편으로 태스크 포스 373의 파견은 예외 중에서도 극히 예외다. 허나 제아무리 특수전 사령부의 비밀부대라 할지라도 아차 해서 선을 넘었다가는 연방 상원에서 바로 찍어누를 것이다.
“우리는 얘네들한테 들키지 않고 침투해야 하니 장갑복에 대전코팅이나 자장 제거작업을 해야겠네요. 나야 괜찮지만.”
침투 임무가 특기인 파트리샤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룹의 그라인더도 어느 정도 스텔스성이 있지만 위르겐의 어벤져는 특수장비를 해야만 제한적인 스텔스성을 가진다. 빈우가 입을 컨커러는 실험기라 아예 그런 건 없다. 장비에 대한 보강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음…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빈우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비밀 임무에 각 종류의 위장은 필수 불가결 요소인데 팀장이 꺼림칙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팀원들이 그 이상함을 파고들기 전에 빈우가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일단 여기까지가 우리가 가진 발 가르단 하스에 대한 과거 정보다. 지워진 것을 복구했지만 빈 곳이 많더군.”
보호구역임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상세하긴 했으나, 몇몇 군데가 지워져 있는 정보였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자료는 아룹의 머릿속엔 하나뿐이다. 부팀장은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팀장님 그 말씀의 의미는 혹시…?”
“부팀장의 예상대로입니다. 이 정보의 출처는 구 지구제국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왔습니다. 발 가르단 하스란 이름도 아마 원주민들이 부르는 명칭일 겁니다.”
지구제국의 정보 중 지워진 것들이라면 군사 정보다. 그렇다면 발 가르단 하스는 지구제국의 군사 시설이거나 제국군의 시야에 들었던 행성이란 말이다.
“뭐 제국군이라 해도 다 아는 것 같진 않습니다만…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
빈우가 보여주는 장면은 연방군의 토끼몰이 작전이었다. 함대들이 리퍼 함선을 몰아세우다가 루비콘 라인으로 밀어 넣어 싸움을 부추기는 치졸한 작전.
이어서 화면은 리퍼의 함선과 구 지구 제국군의 비홀더 1전대와의 전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폰 돌격 순양함의 포격은 리퍼 함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더니, 이어 중력 닻으로 나포한 다음 3인의 장갑 보병을 함선 내부로 투사해 침투시켰다. 함 외부의 전투가 일방적인 전투였다면 함 내부의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걸리적거린다. 반물질 폭탄 넉넉히 채워서 저기에 떨어트리자.
-연방에선 보호 종족이라고 하던데요?
우주 활극 물에서 나왔던 전쟁영웅 이 섬의 실제 모습은 학살의 현신이었다. 그리고 이 학살의 마지막은 반물질 폭탄을 채운 리퍼 함선을 발 가르단 하스로 추락시키고 폭발시킨 것으로 끝났다.
“와우, 씨발.”
산전수전 다 겪은 파트리샤의 입에서 쌍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보호 행성은 아직 자신들의 과학기술이 항성계를 벗어날 정도가 되지 못해 보호해야 함을 명시한 행성이다. 이는 연방 상원이 직접 지정한 곳이다. 당연히 연방의 확장 사업에서 제외되며 외계종족의 식민 행동에도 직접 연방이 나서서 차단, 보호해 준다.
그런 곳에 반물질 폭탄을 거하게 터트리다니, 그것도 알면서. 팀원 대부분이 비홀더 전대의 지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토끼몰이 작전의 결과로 반물질 폭탄의 폭발이 발 가르단 하스의 대기층과 행성의 자기방어막을 일부 소멸시켜 버렸다. 계산상 35시간이면 회복된다고 하지만 발 가르단 하스의 자전 속도는 17시간이다.”
빈우는 발 가르단 하스의 행성 사진에 자전 방향으로 붉은 줄을 죽죽 두 번 그었다.
“2바퀴는 족히 돌 테니 이쪽 지역은 발의 태양풍과 우주방사선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었을 거다.”
행성의 대기층과 자기장은 태양의 자외선이나 해로운 우주방사선으로부터 지상의 생명체를 보호해 준다. 만약 발 가르단 하스의 생명체들이 처음부터 이것들 없이 자랐다면 모를까, 갑자기 없어졌다면 생명체들에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발 가르단 하스 인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모니카가 연방 시민처럼 생면부지의 외계종족을 걱정했다.
“모른다. 이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없으니. 근데 이 붉은 선에 있는 원주민들은 높은 확률로 튀겨졌을 거라 본다.”
“흐음, 살아남은 원주민들이 위협적이거나 적대적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이를 염두에 두고 작전에 임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룹은 폭심지 주변을 살펴봤다. 반물질 폭탄은 대기와 자기장뿐만이 아니라 지표면도 소멸시켜 내부의 중금속 구름을 밖으로 뿜어내게 했다. 다행히 리퍼의 함선은 구멍 안으로 들어가다가 내부에서 비중이 높은 암석군에 걸렸는지, 가장자리에 함체의 일부를 걸치고 있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안일했죠. 그런데 이 사태 이후의 현재의 발 가르단 하스는 이렇습니다.”
빈우가 화면에 현재의 발 가르단 하스를 띄웠다. 태스크 포스 373의 작전 목표는 발과 하스, 두 태양의 가운데 지점에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장면이 정지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팀원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찰위성의 보고에 따르면 발 가르단 하스는 3일 전 발을 스윙 바이 하여, 인력 권에서 벗어난 다음 하스의 궤도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원인 불명의 이유로 공전을 멈추고 두 태양 사이에 정지해있다.”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목표지점은 두 태양 사이에 멈춰서서 직화 바비큐가 되는 상황이다. 방금 걱정했던 조그만 구멍을 통한 2회전 방사선 태닝은 이제 우스갯감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이것이 목표 주변의 현재 상황이다. 폭발의 여파로 지표에 구멍이 생겨 지하의 산성 금속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며, 두 태양 사이에서 태양열은 물론이고 조석효과도 기차게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초속 50m로 몰아치는 섭씨 400도의 강산성 폭풍우를 뚫고 가야 하는 거다.”
갑갑해지는 작전지역이다. 장갑복을 입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겠지만 이건 스텔스 장비를 하고 들어가는 침투 임무다. 게다가 저기선 장갑복 벗었다간 강화군인 이라도 순식간에 요단강 편도 티켓을 발급받을 것이다.
빈우도 팀원들과 마찬가지 심정인지 한숨을 쉬며 작전도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할만하지 않나요? 잽싸게 들어가서 물건 챙기고 뜹시다.”
위르겐이 호기롭게 말했다. 신속 기동을 모토로 하는 뱅가드 연대원이 할법한 이야기다.
“그래, 말 잘했다 위르겐. 정말 잽싸게 치고 빠져야 한다.”
그리고 빈우는 굳은 표정으로 화면에 발과 하스, 그리고 발 가르단 하스의 연속 화면을 띄웠다. 뭐라 말만 하면 팀장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다음 상황을 보여주니 입을 열기가 무섭다.
“이게 발 가르단 하스의 사흘 전 모습.”
이어 화면을 넘겼다.
“이게 이틀 전.”
“어라?”
얼빠진 소리가 모니카의 입에서 나온다. 그럴 법도 한 게 발과 하스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발 하스 항성계의 모습이다.”
두 태양이 발 가르단 하스를 가운데에 놓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항성 둘이 쥐꼬리만 한 행성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냐 안되냐를 떠나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발 가르단 하스가 폭발로 인해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되기라도 한 겁니까? 그러면 근처에 갔다간 끌려가 버릴 텐데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위르겐에게 대답해주는 것은 모니카였다.
“아뇨, 일단 빛의 왜곡 현상은 안보이고 중력파에도 이상 반응이 없어요.”
화면의 데이터를 살펴보던 모니카가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료화면을 조작하여 다른 화면을 띄워 보여준다.
“음, 아마도 추락한 리퍼 함선의 영향이 아닐까요?”
조심스레 낸 의견에 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모니카는 움츠러들었다.
“지금 우리 중에서 과학적 지식이, 또 샤다이에 관한 지식이 너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설명해 줘. 모니카.”
빈우의 격려에 모니카는 호흡을 한번 고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샤다이들의 점프는 우리의 점프와는 개념이 틀려요. 우리는 게이트를 열고 그 게이트를 통해 다른 게이트로 점프하죠. 하지만 샤다이는 게이트를 쓰지 않아요.”
모니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서 샤다이와 연방의 점프 방법을 비교한 자료를 띄웠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샤다이는 질량이 있는 지점을 정하고 그곳에 중력 표식을 거는 것으로 점프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다음은 목적지와 자신 간의 인력을 극대화해 쌍방 간의 중력우물을 만들어 그 속을 통과한다는 게 현 가설입니다.”
“잠깐, 그 정도의 중력 우물이면 중력 렌즈 현상이 나올 데텐? 하지만 샤다이의 점프에는 아무런 징후가 없잖아.”
파트리샤의 말마따나 이제껏 샤다이의 점프 전후에 이상 중력파나 광학적인 왜곡 현상은 없었다.
“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인데 리퍼들이 폭발 직전, 최후의 순간에 점프해서 도망치려 했다면 그 장치들이 발과 하스를 목적지들로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항성계 내에서 가장 질량이 크니까요.”
“하지만 실패했지.”
나직한 빈우의 목소리에 모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폭발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진 못했지만, 중력 닻이 각각 발과 하스에 걸렸고 중간에 있는 발 가르단 하스로 끌려오는 것 같습니다. 출력의 규모로 본다면 허무맹랑하겠지만 일단은 지금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배 한 척에서 항성 두 개를 끌어오는 출력을 낸다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가설로써 들을만한 가치는 있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빈우와 오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겠지. 설명 고맙다, 모니카.”
빈우가 올린 다음 화면에는 발 하스 항성계의 행성 궤도들이 나왔다. 발의 궤도를 도는 2개의 행성, 하스의 궤도를 도는 3개의 행성, 그리고 발 가르단 하스와 같이 내부 공전 궤도를 도는 나머지 3개의 행성마저도 각자의 공전 궤도가 조금씩 뒤틀려 있었다. 그걸 보는 팀원들의 얼굴도 조금씩 뒤틀려간다.
“얘들도 모종의 영향으로 인해 궤도가 바뀌어 있다. 아마 모니카 대위의 설명대로 리퍼 함선의 중력 닻 영향이겠지. 아마 닥치는 대로 목적지를 잡은 것 같다. 그리고 추정궤도는 이렇다.”
아니나 다를까 항성계 내의 모든 행성이 발 가르단 하스로 집중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일단은 원래 공전 궤도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비틀어진 각도로 운행된 궤도를 컴퓨터가 계산해 보여주자, 발과 하스를 포함한 모든 행성이 작전 목표인 발 가르단 하스와 충돌할 예정이었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팀원들의 한숨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빈우는 작전 설명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갔다.
“다들 진정하고. 음.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최초의 충돌은, 발을 공전하는 발 하스 1과 하스를 공전하는 발 하스 6이 동시에 발 가르단 하스와 부딪히는 것이라 예상한다. 최초 충돌 예상 시간은… 우리가 발 가르단 하스에 도착하고 32시간 후다.”
빈우의 말을 끝으로 회의실에는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결론을 내면 작전지역은 섭씨 400도의 강산성 폭풍우가 초속 50m로 몰아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양쪽에 점점 가까워지는 태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는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리퍼를 뒤지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간, 32시간 뒤엔 형제 행성 둘이 앞뒤로 꼬라 박히는 상황에 휘말릴 터였다. 물론 게 중 최고 대미는 회수 목표가 태양 두 개를 끌어들이고도 힘이 넘쳐, 항성계의 모든 행성을 빨아들이는 폭주한 리퍼 함선이라는 부분이었다.
“좆 같네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 아룹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다.
“전 거짓말 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