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솔직히 빈우는 팀원들의 반응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런 흉악한 작전을 눈앞에 두고도 불평하거나 욕을 할지언정 누구도 포기를 입에 담지 않은 것이다. 과연 레드우드가 고르고 고른 인재들 다웠다.
사실 빈우조차도 아까 발 가르단 하스의 상황을 알게 된 뒤 함장인 오르와 작전 지도를 보면서 골머리를 앓았었다. 이걸 실행할지 포기하고 돌아갈지.
그러나 오브리가도의 사건으로 미루어 볼 때 워프 비스트는 앞으로 연방에 크나큰 위험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커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눈앞에 놓인 단서를 놓치기란 너무나도 아쉬웠다. 또한, 빈우가 예상해보기엔 성공 가능성 역시 제법 높아 보였다. 때문에, 작전을 강행하기로 했고 이에 오르도 동의했다.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빈우는 처음부터 결과를 말하는 대신, 발 가르단 하스의 상황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차츰차츰 악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중간중간에 팀원들의 반대의견이 나오면 하나씩 설명해 주면 됐으니까. 그런데 이놈의 팀원들은 표정만 심각해질 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문제점을 찾아서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고까지 한다.
빈우의 말을 끝으로 잠깐의 정적이 찾아온 가운데 우지가 손을 들었다.
“지금 발 가르단 하스에 추락한 리퍼 함선의 중력장치가 주변의 별들을 죄다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도 끌려가는 것 아닙니까?”
“그건 염려 안 해도 된다.”
그러면서 빈우는 발 가르단 하스에 있는 정찰 위성들의 정보를 보여주었다. 저번 토끼몰이 작전 때 뿌려둔 위성들이다.
현재 연방의 정찰 위성들은 두 태양과 항성계의 모든 행성이 발 가르단 하스로 서서히 끌려들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각자 제 위치에서 정보를 수집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소행성이나 암석군들도 원래의 움직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영향을 받는 것은 발과 하스, 그리고 나머지 8개의 행성과 그 행성의 영향권에 있는 소행성들뿐이었다.
“아까 모니카 대위가 말했지만, 발 가르단 하스에서 이상 중력파는 발견되지 않았다. 추측건대 샤다이의 중력 닻은 일정 이상의 질량을 가진 행성에만 걸려있는 것 같다. 위성이나 소행성들에는, 특히 본 함 블랙 랜스와 비슷한 질량을 지닌 소행성들은 이번 이상 현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이제 화면은 태스크 포스 373이 발 가르단 하스에 돌입할 당시 상황을 예측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확연히 다가온 두 태양과 그 중력영향권이 블랙 랜스의 예상 항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태양인 발과 하스다. 작전 개시 32시간 후 발 하스 1과 6이 발 가르단 하스에 충돌할 예정이다. 그때면 발과 하스의 영향력이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함장님께서 설명하실 것이다.”
설명을 이어받은 오르 함장이 블랙 랜스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본 함의 정보를 미리 열람하신 분들이 계시지만 다시 한번 설명하겠습니다. 블랙 랜스는 구형 구축함 급인 탄호이저 급을 전면 개수한 함으로써, 순양항 급의 장거리 항행능력을 갖추고 있어 작전 시점의 발과 하스의 인력권에서도 충분히 탈출 가능합니다. 다만….”
이어서 블랙 랜스의 발전량과 함 내 에너지 소비량, 그리고 추진기의 연료 잔량과 소모량들이 화면에 떴다. 이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눈살을 찌푸린 것은 파일럿인 우지와 공순이 모니카 두 사람 정도다.
“본 함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리퍼와의 전투에 대비하여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지표면에 추락한 리퍼 함선을 견인해 이 발 하스 항성계에서 이탈해야 합니다. 물론 여유 동력은 있습니다만, 좀 더 여유분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 듭니다.”
오르의 말에서 대강 분위기를 파악한 파트리샤가 손을 들었다.
“저, 함장님?”
“말하세요, 중위.”
“혹시 그거 합니까?”
그 질문을 한 파트리샤의 얼굴은 빈우에게 한가지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변기에 반지를 빠트렸던 어머니가 그걸 주우려고 변기에 손을 집어넣기 직전에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네, 예상에 부응해서 죄송하군요.”
이젠 손을 집어넣은 어머니의 표정이다. 찌푸린 눈썹과 앙다문 입이 똑같다. 그런 파트리샤를 잠시 측은하게 보던 빈우는 시선을 오르에게 돌리며 말했다.
“함장님, 통보도 한 셈이니 실행하시죠.”
“그럴까요?”
오르의 그 말과 동시에 함 내의 중력이 바닥에서 벽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본 함은 작전지역 도착 시각을 앞당기기 위해 고속 항행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함 내 관성 제어장치를 바닥 쪽 중력 생성에서 추진 방향 반대쪽 관성 경감으로 돌립니다.”
원래 배들은 함 내 관성 제어장치를 써서 추진 반대 방향으로 일어나는 관성을 상쇄하고 바닥 쪽으로 설정된 방향으로 중력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지금의 블랙 랜스는 바닥 쪽 중력 발생을 끈 다음 고속으로 가속해 거기서 나온 관성으로 추진 반대 방향에 중력을 발생시키고, 관성 제어장치로 중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원래 체급이 작은 배들이 고속 항행을 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그런데 순양함 급 항행능력을 가진 블랙 랜스가 이 방법을 택했다는 건 현 상황이 꽤 빠듯하다는 것의 방증이었다.
“아, 좋은 시절 끝났네. 모니카, 조심해.”
파트리샤는 이런 일에 익숙지 않은 모니카를 안고 자리로 내려간다.
“고마워, 언니.”
아마 지금쯤이면 원래 복도였던 곳들은 손잡이가 나와 사다리가 되거나, 발판이 튀어나와 계단이 되었을 것이다. 훈련을 받은 대원들은 움직이는 방향과 집기 속에서도 태연하게 자리를 바꾸었다. 어차피 함 내 시설들은 무중력 상황에서도 쓸 수 있게끔 배치를 바꿀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 설계해 놓은 덕이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팀장님.”
자리와 중력이 안정화 되자 모니카가 질문했다.
“발 가르단 하스인들의 구출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이다. 보호구역에 있는 외계종족, 위기상황에 처한 지적생명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모니카는 373의 전투 인원들이 샤다이를 신경 쓰며, 임무를 수행할 동안 비전투 인원인 자신이 구출을 맡게 되리라 생각하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연방의 사람답게 상식적으로.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은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총과 칼로 해결하는 정의의 폭력조직이다.
때문에, 모니카를 바라보는 빈우의 눈에는 냉정함과 안쓰러움이 섞여 있었다.
“안됐지만, 그건 우리 권한 밖의 일이다.”
뜻밖의 말에 모니카는 잠시 당황했다.
“네? 아니, 저기. 보호 행성이에요. 이들은 우리 연방이 보호하겠다고 한 이상 우리가 그들을 지켜줘야 합니다.”
“목줄 채우고 우리에 가두는 게 보호가 아니다. 능력 이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는 것이 보호지.”
“하지만 발 가르단 하스가 이렇게 된 원인이 바로 우리 연방입니다. 연방이 그때 토끼몰이 작전만 하지 않았어도 저 별의 생명체들은 이런 위험에 처하지 않아도 되었다구요.”
모니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방의 보호 정책은 방임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간섭을 배제한 보호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해 처했을 때도 손 놓고 버려둔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위험의 원인이 연방 자신인데도?
“그래. 모니카.”
공허한 빈우의 말이 나직하게 깔려왔다. 그제야 모니카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떤 팀에 속해 있는지를.
“우리의 임무 중 하나가 그 원인을 숨기는 거다.”
애초에 태스크 포스 373은 구조부대가 아니었다. 비밀리에 리퍼의 잔해를 수집하고 연방군이 저질렀던 과오를 수습해서 덮는 부대다.
주위를 둘러본 모니카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언제나 존대하며 정중히 대하던 아룹 원사의 눈빛은 마치 자신을 달래고 타이르는 듯한 눈빛이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 팀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던 파트리샤 중위의 눈빛은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안타까워하는 눈빛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위르겐의 표정은 언제나 가볍게 농담하며 장난을 받아주던 평상시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리고 전문 군인이 아니었기에 동질감을 느꼈던 우지 일병조차 모니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그들의 눈빛을 읽으며 모니카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비상식적인 사람은 바로 자신이란 것을.
“모니카 대위.”
오르 함장이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팀장님은 권한 밖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아쉽게도 블랙 랜스에게도 능력 밖의 일입니다. 본 함에 거주 구, 창고, 그리고 임시로 함 외부에 구획을 증설한다 해도 시간 내에 발 가르단 하스의 모든 생명체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달래주려는 듯한 오르 함장의 배려가 고맙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373에는 구출할 의사가 없던 것이다.
“모니카.”
“네, 팀장님.”
빈우의 약간 높아진 목소리에 모니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우리가 발 가르단 하스에서 목표물을 회수한 다음에는 발 하스 항성계가 어찌 될지 예상할 수 있나?”
모니크는 방금의 일을 잊으려는 듯, 빈우의 질문에 몰두해서 열심히 계산했다.
“리퍼 함선의 작동 원리나 출력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 확실한 대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의 이상 중력 현상이 해결된다 해도 발 가르단 하스의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습니다.”
모니카가 예상해서 계산한 발 하스 항성계의 궤도들이 화면에 올라온다. 그녀의 말대로 정면충돌은 피하고 빗맞는 정도로 끝날 수 있겠지만 행성 표면의 생명체들에겐 그게 그거다.
“발 하스 1과 6에 대한 인력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까지의 관성대로 날아온다면 발 가르단 하스에는 궤멸적인 피해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태양인 발과 하스입니다. 리퍼 함선이 끼쳤던 중력 영향이 사라지더라도, 이 엄청난 질량의 항성 두 개가 옮겨진 위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장에서 그 장치를 본 다음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즉 태스크 포스 373이 발 가르단 하스에서 이상 중력 현상을 보이는 리퍼 함선을 정지시키고 회수한다 해도, 이미 발 하스 항성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기에 원상복구는커녕 사태수습조차도 무리라는 말이다.
“현재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발 가르단 하스에 도착해 리퍼 함선의 오작동을 정지시키고 데이터와 함선 및 기타 부품들을 남김없이 회수하는 것이다. 만일 그러지 못하게 된다면 유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함과 그 잔존물을 완전히 제거한다.”
빈우의 결론은 연방이 저지른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모든 증거를 인멸한다는 얘기다. 거기에 죽어가는 발 가르단 하스인의 구조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모니카 또한 더는 이견을 제시할 여력이 없었다.
“질문 있나?”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실에서 질문은 없었다.
“대략적인 작전 회의는 여기까지 한다. 다음 세부사항에 대한 회의는 이후 좀 더 많은 정보를 모은 다음 하도록 하지. 해산.”
팀원들이 자리를 일어나는 가운데 모니카도 주섬주섬 일어섰다. 그때 누가 그녀 앞에 와서 섰다.
“모니카, 밥 먹으러 가자.”
바로 팀장인 빈우였다.
“네? 밥이요?”
어리둥절하는 모니카 옆으로 파트리샤가 날름 끼어든다.
“왓, 데이트 신청이에요? 실의에 빠진 부하에게 계급을 빌미로 음흉한 손길을 내미는 건가요?”
“우울해하는 부하의 정신 문제 상담도 팀장의 일 아니겠냐.”
“흑, 저도 여린 가슴에 생채기가 났답니다. 요기요기.”
파트리샤가 짐짓 울상을 짓고 가슴팍을 풀어헤치며 들이대자 빈우가 질색을 하며 밀어냈다.
“여려? 방탄 유방 들이밀지 마라. 네 가슴에 난 생채기라면 용접을 해야지, 밥 한 끼로 될 일이 아닐 텐데?”
툭탁툭탁하는 빈우와 파트리샤가 앞서거니, 미소짓는 아룹과 위르겐, 우지가 뒤서거니 하며 모니카를 인도해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이미 아나스타샤와 아를르캥이 준비를 다 마친 상황이었는데 일행이 들어오자 아나스탸사가 방방 뛰며 호들갑을 떤다.
“주인님! 방금 뭐였어요! 죽는 줄 알았다고요.”
울상을 짓는 아나스타샤의 옷과 앞치마가 얼룩덜룩했다. 뭔가 국물을 엎지른 것 같은데 색 종류로 보아 한두 개가 아닌 것 같다. 그녀 같은 베테랑이 이런 실수를 연발할 리는 없으니 지금 상황에서 빈우에게 짚이는 것은 한 가지다.
“저기, 함장님?”
“으음, 한동안 까먹고 있던 시설이어서 말이지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어느새 식당에 생성된 오르 함장은 그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은 민망한 표정이었다. 함 내 관성 제어를 변환할 때는 충분한 고지나 완만한 변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신체를 개조해 식사할 필요가 없었던 오르 함장은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식당을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갑자기 무중력 상태가 되고, 이어서 중력이 벽 쪽으로 향하는 식당과 조리실. 보지 않아도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공범인 빈우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메이드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고생했다.”
“어우, 얄미워, 진짜 얄미워.”
약 올리듯 히죽히죽 웃는 주인의 모습에 방금 벌어진 깽판의 범인이 누군지 알아챈 아나스타샤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이 약이 올라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참으로 유쾌한 주인과 안드로이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니카는 이런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용 안드로이드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제법 많이 봤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빈우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모니카는 식당에 있는 사람 중 자기 혼자만 별종 같아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어두운 우주에는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점들이 무수히 깔려있다. 그 많은 점 몇몇 개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아직 그들의 생각이 중력에 머물고, 사상이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기다려야 할 것이다. 허나 언젠가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별과 별 사이를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우리는 마침내 그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모니카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방금의 모니카는 미래의 친구가 가진 가능성을 빼앗았으며, 도움의 손길조차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