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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52화 (52/301)

52화

빈우는 총방패를 내리고 안에 든 발포 장갑을 꺼낸 다음 주변에서 위은쓸납학의 알들을 마구잡이로 집어 방패 프레임 안에 채워 넣었다. 즉석에서 만든 고기 방패, 아니 알 방패다.

-까꿍이다, 씹새야!

빈우가 알 방패를 들고 뛰쳐나와 코일건을 난사하자 위은쓸납학은 허둥대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옜다 씨발, 내 양심의 선물이다!

언제 만들었는지, 수류탄과 알들을 덕트테이프로 빙빙 감아놓은 특제 집속 수류탄이 던져졌다. 전차 급 위은쓸납학은 알들을 받아내기 위해 방패를 버리고 두 손을 황급히 내밀었고 곧 이은 폭발에 내민 두 손을 잃었다.

-그아아아아!

빈우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이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제트팩을 사용해 머리까지 올라간 다음 투구의 눈구멍에 코일건을 밀어 넣고 연사했다. 피 분수가 솟구치며 장갑이 벌어지자 빈우는 수류탄을 하나 꺼내 그 안으로 집어넣고 거리를 벌렸다. 폭발과 함께 놈이 허물어져 내렸다.

내려선 빈우는 두 번째로 덤비는 놈을 향해 마지막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의 후폭풍으로 주변의 알들이 산산조각이 났지만, 빈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미사일의 폭발에 방패가 부서지자 주춤하던 위은쓸납학은 이내 총을 들어 빈우를 겨눴다. 그러나 차마 알 방패 뒤에 숨은 빈우를 쏠 수는 없었는지 머뭇거렸다. 발사하는 순간 알부터 박살나리라는 걸 아는 것이다.

총을 내려놓은 놈이 울부짖으며 거대한 칼날을 앞세워 돌격해 왔다.

빈우는 뒷걸음질 쳐 알 보관대를 등지며 코일건을 연사했다. 코일건의 사격을 맞으며 다가온 위은쓸납학은 빈우의 앞에서 급히 멈췄고 흉흉한 칼날도 마음껏 휘두르지 못했다. 여기서 칼날을 자칫 잘못 휘둘렀다간 알들이 무더기로 터져나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워어어어!

분노에 그르렁대는 놈이 두 손으로 빈우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장갑 보병은 제트팩을 써서 머리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 매달려 진동 나이프를 찔러넣고, 뛰어내리면서는 무릎 뒤쪽으로 코일건을 쏴 넣었다. 휘청이며 앞무릎을 꿇는 놈에게 마무리를 가하려는 찰나 마지막 놈이 튀어나와 칼등으로 빈우를 쳐 날렸다.

고통은 없다. 그 의미는 두뇌 칩에서 일정 이상의 고통을 차단했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뜻한다.

허리를 맞고 날아간 빈우는 알 보관대에 처박혔다. 장갑복에서 경보음이 들려 나오고 여기저기서 부상 경보가 뜬다. 그러나 악착같이 자세를 추스르고 방패를 내밀어 코일건으로 탄막을 뿌렸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반격의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놈은 빈우의 방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주 총을 쐈다. 정신적으로는 막대할지언정 물리적으로는 빈약한 방어력을 지닌 방패는 금방 박살이 났고, 빈우도 뒤로 쓰러졌다. 그 여파로 주변의 알들도 터져나간다. 이놈은 일단 알의 안위보다는 빈우를 먼저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너 좀 한다, 씨발놈아?”

넘어진 채 이를 악무는 빈우의 어벤져 장갑복 각 부위에 위험 경고음이 뜬다. 동시에 고위험 공격이 날아오고 있다는 것 또한 경고한다. 제트팩을 써 내려치는 칼날을 뒤로 미끄러져 피한 빈우는 다시 일어서 진동 나이프를 꼬나 들고 돌격했다.

한 합을 마주하고 뒤로 빠지는 빈우의 시선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금의 주 복도에서 다수의 전차 급들이 추가로 밀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빈우 혼자서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전력이다.

진동 나이프를 다시 쥐는 빈우의 시선에, 그리고 간신히 피한 위은쓸납학의 칼날 저 너머에, 마커스가 보인다.

녀석은 장갑복의 헬멧을 벗고 쉬바 더미 앞에 서 있었다. 갈색 군집을 이루어 마커스의 앞에 모인 쉬바에선 가느다란 촉수들이 뻗어 나와 그의 민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대상을 판별하려는 듯이.

그리고 마커스가 검지를 들자 촉수들도 그의 손가락을 마주 보았다.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촉수들이 움직였다.

마침내 마커스가 손가락을 들어 이쪽을 가리키자 촉수들의 시선 또한 이쪽을 향했다. 놈들은 대형 위은쓸납학과 인간의 사투를 느꼈다.

쉬바 군체는 즉시 이쪽으로 날아와 덮쳤다. 미세한 나노 머신의 무리가 중장갑 사이를 파고든다. 그리고 안으로부터 갉아먹고 동료들을 복제한다. 위은쓸납학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과 분노, 증오와 공포의 비명을 들으며 빈우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 복도로 증원 온 놈들도 동족의 살로 만든 갈색 폭풍우에 휩쓸려 몸부림치다 산채로 녹아 죽어갔다. 그 처참한 광경 앞에 빈우는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다.

-히야아- 이거 놀랄 노자군.

아까 울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애원하던 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빈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빈우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마커스에게도 들렸는지 녀석의 표정도 경직되어가는 게 보인다.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던 게 언제냐는 듯 빈우 쪽으로 걸어오는 그의 목소리엔, 울음기가 싹 가셔있다. 오히려 녀석은 실실 웃고 있기까지 했다.

-김빈우 중위, 마커스 타이 중위. 아주 인상적이야.

이곳은 원래 친분이 있던 빈우와 마커스 외에는 서로 계급이나 이름도 몰라 콜사인만 부르던 비밀작전팀이다. 게다가 방금 통신은 두 사람에게만 연결된 회선이었다. 이럴 권한은 팀장이나 지휘관급에게만 있다.

-소개가 늦었군. 반갑네, 이노우에 고토 중령일세. 이 팀의 감사역이라고 할까? 아무튼, 올해는 풍년이구먼.

흐뭇해하는 이노우에 고토의 그 말은 오늘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광경보다 섬찟했다. 아까 보았던 진심 어린 호소와 눈물은 전부 연기였단 말인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비정상적인 살육의 현장에서 헬멧을 연 고토의 얼굴은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어서 현실감이 없다.

고토가 다가와 바닥에 쓰러진 빈우를 일으켜 세운다.

빈우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장갑복의 감촉을 느낄 수 없다. 몸을 잡아당기는 중력이 역시 사라진 것처럼 몽롱했다. 마치 꿈처럼. 귀에 스펀지를 끼운 양 갈색 나노 머신들이 보육소 안에서 태풍이 되어 몰아치는 소리는 먹먹하게 들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라인더 무리가 들이닥쳐 위은쓸납학들을 도살하는 광경도 마치 물속의 해초처럼 흐릿하게 일렁인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인상적이었어.”

고토가 빈우를 일으켜서 다시 앉혀준 곳은 귀환하는 셔틀의 좌석이었다. 그제야 빈우는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 빈우와 마커스, 이노우에 고토 세 명은 팀원들과는 따로 떨어져 셔틀의 다른 칸에 타고 있었다. 지쳐서 축 처진 빈우와 마커스와는 달리 고토는 쌩쌩해 보였다. 사실 두 명도 육체적 보다는 정신적으로 더 지쳐있었다.

“자네들이라면 닉스 레벨 3을 노려볼 만하겠어.”

이노우에 중령의 말에 눈매가 날카로워진 마커스가 퍼뜩 고개를 든다. 아까의 풍년이란 말과 방금 닉스 레벨 3이란 단어를 합쳐서 나온 결론에 반응한 것이다.

“네? 이노우에 중령님, 그렇다면 이번 작전이 닉스 레벨의 시험이란 말입니까? 우리 팀이 한 게 시험이라고요?”

날 선 마커스의 말에 고토가 친절하게 설명한다.

“아니 아니 아니, 모두 실제로 일어난 기밀 작전이야. 물론 커리큘럼에 포함된 거였긴 하지마는. 따지고 보면 일석이조인 셈이지. 참, 그리고 우리는 같은 작전을 하면서 한솥밥 먹은 전우 아닌가? 앞으론 친근하게 고토라고 불러주게나.”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대답이 없자 고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닉스 레벨 1과 2가 단순한 훈련으로 뽑는 것과는 달리 레벨 3은 실전에서의 성과를 보고 추려내는 걸세. 이번 작전은 그 시작점이기도 하지. 앞으로의 성과를 보고 후보가 된 자네들을 발탁해서 훈련시킬지 어떨지를 정할 거야. 그래, 후보자로서 닉스 레벨 3의 요원들에게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빈우와 마커스는 그냥 멍하니 있었다. 타 종족의 유생을 생물병기로 써 만들어 학살하는 비밀작전을 한 다음 갑작스레 닉스 레벨 3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느껴진다. 아니 그것보다 고토의 앞에선 섣불리 대답하기가 꺼려졌다.

두 사람이 침묵하자 고토는 스스로 대답했다.

“레벨 3의 전략 병기들에게 있어서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강화복이나 무기들은 단지 장신구에 불과해.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들이지.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네. 어떠한 역경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적의 상처를 만들고 끝없이 후벼 파는 교활함. 케케묵은 정신론에 관한 게 아냐. 독트린에 관한 거지.”

확실히 연방군은 다른 종족과의 전투에서 저 두 가지를 무기로 썼다. 아군이 기술적이나 군사적으로 열세인 경우면 당연하다는 듯이, 우월한 경우면 더더욱 적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렸다. 없으면 어떻게든 만들어 줄기차게 쑤셔댔다. 끈질기고 잔인하게.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범들이 성인군자로 보일 지경으로.

그렇다면 아까 보육소에서 고토가 연기를 한 이유도 짐작이 갔다. 실력은 이미 다 봤으니 마음이 여린 팀원들을 미리 쳐내거나 두각을 나타낼 이를 찾기 위해 판을 깐 것일 터다.

“김빈우 중위, 자네가 방금 보여준 무용은 정말 대단했어. 마치 뭐랄까, 연방의 영웅 조지 레드우드의 재림 같았네.”

“흥, 침대에 누워 골골할 노친네 말요?”

“엥? 그 양반 아직 현역인데?”

고개를 갸웃하던 고토의 시선이 이번에는 마커스를 향했다. 빈우를 볼 때와는 온도가 다르다.

“에헴, 그리고 마커스 타이 중위. 자네는 조사를 참 잘했더구먼. 오히려 ‘우리 과’ 같아 보인단 말이지. 허허허.”

입은 웃지만, 눈은 결코 웃지 않는다. 쉬바에 관한 것은 일개 중위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쉬바에 대해선 대체 어떻게 알았나? 나도 그런 사용법은 모른단 말이지? 정말로-내가 더 놀랐다구.”

“조사했습니다.”

마커스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왜?”

질문은 답이 끝나기 전에 이어졌다.

“살기 위해서.”

“어떻게?”

서서히 다가앉는 고토를 아랑곳하지 않고 마커스는 시선을 허공에 고정한 채 정직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응응.”

만족한 듯 미소를 띠며 다시 의자에 기대 누워 고개를 주억이는 고토의 표정은 ‘역시 우리 과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무튼, 작전이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일세. 사상자 하나 없이 작전이 마무리된 데다 후보자를 두 명이나 뽑다니 정말 행운이야앙.”

발을 동동 구르며 손뼉 치는 모습이 이 상황을 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참 자네들, 이번 작전은 어떻던가? 느낀 바 없나? 아니면 역시 좀 부담이 되었나?”

시시덕거리는 고토를 보다 못한 빈우가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어떻긴 니미. 개뿔도 모르고 똥오줌 못 가리는 애새끼들 모아다가 좆 같은 곳에 박아넣고 좆 같은 거 시키더구먼. 선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지구제국병기 쓰는 작전 따위 세상에는 알려지면 안 되니까 전사한 팀원들은 훈련 중 사망으로 처리했겠죠?”

“그건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거 아닌가? 봤다시피 비밀리에 단검뿔 토끼가 따라붙지 않았던가.”

“비밀리에 붙어서 뭐하시게? 실패하면 이어받게? 아니면 수틀렸을 때 우리 입막음하려고?”

“자네들은 모두 닉스 레벨 2의 재원들이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지 않겠나.”

저 만약의 사태를 다른 뜻으로 해석한다면 빈우의 질문을 딱히 부정한 것은 아니게 된다.

“그리고 쉬바? 개 씨발이다. 다른 방법 내버려 두고 그딴 걸 쓴 이유는 뻔하지. 애초에 저 하마 새끼들이랑 평화조약 맺을 생각이 없었지? 위은쓸납학이 저자세로 항복하려는 낌새를 보이니까 악에 받쳐 결사 항전하도록 약을 푼 거잖아.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말하겠지. 비홀더 전대의 예기치 못한 간섭으로 양 종족 간의 교섭이 불발되어 정말 유감이다. 앞으로의 전투는 어쩔 수 없다. 틀려?”

확실히 지구제국의 병기가 쓰였다면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비홀더 전대를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전과가 워낙에 화려한 탓에 순순히 납득하고 말리라. ‘아, 우리 연방은 평화를 원하지만, 주변이 도와주질 않는구나’라고.

“암암,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상대의 마음이 약해지면 우리가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고토는 자신의 예상보다 예리한 빈우의 판단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머리도 제법이야. 진짜 풍년이군.”

그렇게 웃는 고토의 얼굴에 침 뱉듯이 빈우가 으르렁댔다.

“풍년? 지랄이 풍년이다.”

“빈우야, 중령한테 그런 말버릇은….”

격해지는 빈우의 옆에서 마커스가 말리지만 그 이유는 오직 친구를 위해서다.

“뭘, 이제까지 반말 잘했는데? 그리고 또 언제 볼 거라고.”

퉁명스러운 빈우의 말에 고토는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쓰게 웃었다.

“으응, 나는 자네들이랑 앞으로 좀 더 보고 싶은데 말이야.”

“까 잡수셔.”

그리고 빈우는 에너지바를 하나 까서 입에 물었다. 고단백 고칼로리의 초콜릿 바가 허공에서 덜덜 떨리느라 입안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짜증이 난 빈우가 에너지바를 확 잘라 먹자 이번엔 손에 남은 에너지바가 부들부들 진동한다. 빈우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다.

“전투 OS가 관리를 못 할 정도면 좀 심각한데 말이야.”

이노우에 중령이 부드럽게 빈우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차가운 눈은 관리를 못 하는 건 빈우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용한 프로그램을 하나 알고 있네만. 구식이라 그렇지 효과는 확실하다네.”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빈우는 손을 빼내고 주먹을 꽉 쥐어 억지로 경련을 억눌렀다.

“으음~? 강화 군인의 육체에 근육통이 오던가?”

느물느물 웃는 고토의 얼굴은 이제껏 빈우가 겪어온 것과는 다른 공포를 선사하고 있었다. 의자에 기대앉는 고토가 한마디 덧붙였다.

“저길 보게나. 햐~ 장관이구먼.”

셔틀의 창에서 보인 위은쓸납학의 지표는 아비규환, 지옥도 그 자체였다. 애초에 교리상 후퇴가 없는 뱅가드 연대의 선발대는 악착같이 시가지로 파고들어 개싸움을 벌였고, 방어를 위해 시가전을 한 위은쓸납학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사지에 들어간 셈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세로 몰려 후퇴를 거듭하던 위은쓸납학의 진영이 공세로 바뀌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도외시하고 뱅가드 쪽으로 돌격을 시작한 것이다. 빈우와 마커스는 그 이유가 짐작이 갔다. 놈들이 그 소식을 들은 것이다. 자신의 자손들이, 종족의 미래가 연방의 생물병기로 쓰인 소식을.

위은쓸납학의 분노에 찬 반격이 시작되었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연방의 최정예이자 연방의 창끝인 뱅가드 연대다. 뱅가드 연대는 적의 반격에 마주 돌진하면서 진형을 뒤섞어 난전을 유도했다. 기세를 몰아 돌격해 들어왔던 위은쓸납학들은 고립되어 하나둘씩, 이어서 열씩 스물씩 죽어 나갔다. 저게 백, 이백이 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거기서 시선을 뗀 빈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손 안에선 허리에 돌기가 난 전사계급의 유생이 꼬물거리며 빈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날 보고 뭐랬어? 원죄?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유생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쉬바가 날아오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바닥이, 천장이, 의자가 전부 갈색의 나노 머신이 되어 흘러내린다. 손안의 유생이 점차 커져 전차 급의 성체가 되고, 빈우에게 칼날을 들이밀다가 갈색 살덩이가 되어 허물어져 죽어간다. 저게 놈에게 정해진 미래였다.

그렇다면 빈우 자신에게 정해진 미래는 무엇인가?

항복하러 온 외계종족 사절을 중간에서 암살해 전쟁을 부추기고,

매파의 외계종족 관료를 비둘기파의 소행으로 위장해 암살하고,

결국엔 개척 행성 마카로니에서 자국의 민간인을 학살할 것이다.

불타오르는 마카로니. 피보라가 번지는 주차장. 울면서 도움을 청하는 여자아이.

‘멈춰! 우린 인간을 죽여선 안 돼! 저들은 인간이야!’

그러나 이번에도 빈우는 말하지 못했다.

“주인님?”

눈을 뜨자 아나스타샤가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빈우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아나스타샤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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