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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55화 (55/301)

55화

만약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일반인이었다면 빈우는 앞뒤 안 따지고 일단 체포해서 강제로 데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게, 상대가 애매하고 상황이 모호하다.

“의원님, 이곳 발 가르단 하스는 보호 행성이라 함부로 들어와선 안 되는 곳입니다. 그건 잘 알고 계시지요?”

빈우의 말에 이케가미 상원의원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상원의원은 연방의 시민이면 누구나 되는 하원의원과 다르다. 그들은 연방 직할 행성에서 기여도와 인구비례로 후보에 선출된 후 투표로 뽑히며 행성 주지사에 버금갈 정도의 고위직이다.

군 계급으로 따지자면 4성 장군, 대장급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맡았었던 상원 의장은 무려 연방 의전서열 2위, 대통령 바로 다음 자리다. 감히 빈우같은 일개 소령 나부랭이가 지금처럼 언감생심 잡수작을 걸만한 지위가 아닌 것이다.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혹시 의원님께서 이곳에 달리 목적을 가지고 미리 허가를 받고 오신 겁니까?”

예상대로 겁먹은 상원의원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십니까? 제가 이끄는 팀은 비밀 작전을 위해 제한적인 허가를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주십시오. 뭐, 정 궁금하시다면야 나중에 정식으로 문의하시면 사령부에서 얼마든지 알려드리겠지요.”

현재 상황에선 그 어떤 비밀 작전팀이라 할지라도 즉시 이케가미 의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중히 모셔가는 게 상식적인 반응이겠지만, 빈우의 상식은 그러지 않았다. 눈앞의 상황이 수상하다고 경보를 울려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심히 파볼 수밖에.

“일단은 규정상 의원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헌데 수행원이나 경호원은 없습니까?”

상원의원이 경호원도 없이 보호 행성에 홀로 있다는 건 좀 수상하지만 어떻게 납득할 수는 있다. 상원의원이라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연방에 공헌한 사람들이고 그중에는 기행을 벌이는 사람이 꽤 많이 있으니까.

그러나 전임 상원의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연방의 기밀과 중요정책들을 다루었던 터라 직위에서 내려가도 최고 중요 인물이다. 그렇기에 연방 최고의 경호팀이 항시 밀착 경호한다. 그러나 이케가미 의원이나 이 거주지 주변에는 경호팀이나 호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 혼자일세.”

경계하듯 짧은 대답이 수상하다. 더욱이 정상적인 연방 시민이라면 연방 군인들을 이렇게 적대하고 겁먹을 리가 없다.

연방의 고위직인 이케가미 의원이기에 잘 알 것이다. 군인들이 연방의 시민에게 있어 얼마나 든든한 방패인지를, 또한 연방의 적에게 있어 얼마나 잔인한 창인지를.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빈우를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해서 무서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연방의 적이라고 생각해서 무서워하는 것일까.

“안심하십시오, 의원님.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헌데… 등 뒤의 발 가르단 하스인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자네가 알 필요 없네!”

이케가미 의원이 보인 것은 궁지에 몰린 자가 보이는 성난 반응이었다. 과거의 그였다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반응이다.

눈앞의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조금 이상했다. 과거 울토르 프로젝트를 지시했던 철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과거 빈우의 희생과 노고를 치하하며 의욕에 차 프로젝트를 지휘했었던 그는 지금은 무언가 부서진 사람 같다. 빈우는 자신이 잠수하고 있었던 사이, 그에게 대체 무슨 일 일어난 것일까 궁금했다.

“알겠습니다. 이 이상 그에 대해선 물어보진 않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의장님, 아 실례했습니다. 의원님께선 언제부터 여기 계신 겁니까?”

그 질문에 이케가미 의원은 묵묵부답이었다. 허나 이미 빈우는 이 거주지 컴퓨터에 몰래 접속하여 건축기록들을 대충 훑어본 상태다.

발 가르단 하스에 이 거주지가 최초로 지어진 것은 일 년 전이고 도중 여기저기 옮겨졌던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 동굴로 온 것은 열흘 전이다.

덧붙여 리퍼가 추락한 것은 4주 전이다.

전 상원의장인 상원의원이 수행원도 없이 보호 행성에 잠적해 있고,

우연히 거기로 리퍼 함선을 토끼몰이하고,

또 리퍼들이 타이밍 좋게 루비콘 라인을 지나던 비홀더 전대에 박살 나 행성으로 떨어지고.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누가 철저히 짜놓은 계획이다.

그것이 빈우가 내린 결론이었다.

‘헌데 왜? 전 상원의장을 암살하려면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위장할 필요가 있나? 아니면 사고로 위장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태스크 포스 373이 비밀리에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아니, 애초에 대 리퍼 부대인 373이 창설 초기부터 방해를 받은 이유가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여기엔 더 위험한 것이 있다고, 그것을 빨리 밝혀야 한다고 지식과 경험과 본능이 합창하기 시작했다. 빈우로서는 자신과 팀과 연방을 위해 눈앞의 사내에게서 좀 더 정보를 뽑아내야 했다. 그럴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모시도록 하죠. 셔틀을 여기로 부르겠습니다. 그것을 타고 궤도상에 있는 저희 배로 가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팀은 작전을 마저 완료토록 하겠습니다.”

대답이 없다. 말도 고갯짓도 없다. 이케가미 의원은 등 뒤의 발 가르단 하스인을 지키며 이리저리 상황을 살피고 있을 뿐이다.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지만, 장갑 보병 셋을 상대로는 여의치 않겠지.

-오르 함장님, 비상상황입니다. 지상에서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을 발견했습니다. 조속한 회수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비상상황이군요. 즉시 셔틀 하나를 내려보내겠습니다.

블랙 랜스와의 통신을 끊은 빈우는 다시 이케가미 상원의원을 보았다.

상대가 저렇게 경계를 하는 상황이라 빈우는 가볍게 얘기를 해서, 신변 이야기부터 시작해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정보가 될만한 이야기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셔틀이 올 동안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제가 말동무라도 해드릴까요?”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건 말건 빈우는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이건 벼군요. 의원님께서 예전에 벼농사를 지으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빈우는 책장으로 걸어가더니 빈 공간에 놓인 사진들 쪽으로 시선을 놓았다. 그가 가리킨 사진엔 끝없이 펼쳐진 논과 젊은 시절의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찍혀 있었고, 그 옆으로도 몇 개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빈우는 그 위로 가볍게 손가락을 쓸고 지나가며 말했다.

“저희 집은 보리농사를 했습니다.”

아직 이케가미 의원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만 아룹 부팀장의 동요가 미약하게 전해진다. 아마도 과거 모셨던 전 상원의장이 빈우에게 치이고 있으니 심기가 조금은 불편할 것이다.

“전설의 보릿고개 아십니까? 가을에 수확했던 벼가 다 떨어지고, 아직 보리가 여물지 않은 봄의 춘궁기를.”

장갑복의 손가락이 동료 의원들과 찍은 사진을 지날 때도 상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경계하는 눈빛으로 빈우를 볼 뿐이다.

“어릴 때 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사시사철 동서남북으로 보리가 나는데 왜 보리가 없을까 라고. 또 벼란 작물이 그렇게 귀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가볍게 웃는 빈우의 손가락이 여러 사진을 지나칠 때 소이치로의 눈에서 약간의 흔들림이 일었다. 정보 요원의 광각시야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반응했던 시점의 사진으로 손가락을 되돌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에는 볏단을 한가득 안고 빠진 앞니를 자랑하듯 함박웃음을 짓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마도 가족사진이겠지.

“혹시 따님인가요?”

“딸은 관계없어!”

발작적으로 튀어나온 비명에 오히려 중무장한 팀원들이 압도될 지경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의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모양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빈우는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사진 속 여자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왼손에 든 사진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동시에 눈에 안 띄게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달린 진동 나이프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이케가미 의원이 아까 권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빈우의 거친 몸동작과는 달리 의자에선 아무런 소리도, 흔들림도 나지 않았다. 숙련된 장갑보병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묘기다.

“의자가 튼튼하군요. 좋은 의자입니다.”

그리고 쓰다듬던 의자를 약간 당겨 앉으며 허리를 숙였다.

“의원님. 무얼 그리 경계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해적이나 외계인 같은 적이 아닙니다. 연방의 시민들을 지키는 군인들이죠.”

그리고 빈우가 다시 허리를 일으킬 때 안전장치를 푼 진동 나이프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빈우의 말과 이케가미 의원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장내에 강렬한 금속성 소음이 울려 퍼진다.

“아니,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빈우는 웃는 낯으로 천천히 나이프를 주워 올렸다. 그리고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가운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이 이케가미 의원을 향했는지 그 뒤의 발 가르단 하스인을 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그냥 칼입니다.”

빈우는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제가 예전에 한 번 보여드리지 않았던가요?”

분명히 빈우는 진동 나이프 사용법을 시연한 적이 있다. 몇몇 의원들 앞에서 포로가 된 위은쓸납학을 도륙했고 그 모습을 본 이케가미 의장은 대단히 감탄해서 손뼉까지 쳤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무엇이 인간을 저렇게까지 바꾸었을까? 하는 게 나이프를 갈무리하는 빈우의 속마음이었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아룹은 비밀 팀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걸 후회했다. 자신이 얼굴만 보였어도 전 상원의장이 저렇게까지 겁먹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의장 임기 후반기에 교대로 경호팀으로 들어가 짧은 시간이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지냈기에 아룹과 이케가미는 제법 각별한 사이다.

허나 지금 아룹의 소속은 태스크 포스 373이며 그의 직속 상관은 과거에 모셨던 경호대상을 서서히 죄어가고 있는 김빈우 소령이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나름 정중했지만, 그 속에 숨은 의도는 명백히 협박이었다.

“아무튼, 4주 전의 대형사고로부터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때 이케가미 의원이 반응했다.

“그 폭발….”

빈우는 경청하겠다는 듯이 전 상원 의장에게 집중했다.

“네, 말씀하실 것이라도….”

“그때의 폭발. 네놈들의 짓이었나?”

낮은 으르렁거림과 불꽃 튀는 눈빛. 전 상원 의장은 오래간만에 자신의 박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거 연방의 이인자로서 의회를 휘어잡았었던 면모가 조금이나마 드러나자 세 명의 장갑 보병들이, 또 주도권을 잡으려던 빈우가 잠시 위축된다. 그러나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연방 민의의 대변자이자 의회의 일원인 상원의원이 강하게 나온다면 무력단체의 중간 계급에 불과한 빈우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지금 빈우처럼 배 째라 식으로 나대는 게 미친 짓이다.

그러나 빈우의 눈에는 그의 한계가 여실히 보였다. 과거의 이케가미 상원의장은 결코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상대를 압박하지 않았다. 적을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다.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그저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나갈 뿐이었다. 마치 태산같이 굳건한 그의 위용에, 적들은 부딪히다 스스로 무너지거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물러났었다.

빈우도 그런 이케가미 의장에게 압도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과거 빈우는 반복되는 고된 작전과 면종복배하는 군사정보국의 풍조에 차츰 피폐해져만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고난 반골 기질이 점차 머리를 치켜들었고 윗사람들과 자주 치고받았었다. 그런 빈우였지만 단 한 사람, 이케가미 상원의장에게는 결코 이를 드러내지 않았었다. 이는 감화되거나 복종, 충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덤비지 않은 것뿐이지.

‘그랬던 걸물이 지금은 이렇게 영락해버려 내가 얼핏 보인 송곳니에 이토록 과민반응을 보이다니….’

그런 생각이 빈우의 대답을 약간 늦추었다.

“아닙니다. 4 주전의 사건은 저희 팀이 한 일이 아닙니다. 저와 제 팀은 당시의 사고를 뒷수습하기 위해 여기로 파견된 겁니다.”

“그럼 누가 한 일인가?”

한숨 가다듬은 이케가미는 서서히 자신의 옛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상원의원인 내게도?”

“직급이 아니라 권한의 문제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정식으로 신청하시면 얼마든지 정보열람이 가능할 겁니다.”

슬쩍 화살을 피한 빈우를 노려보던 이케가미 의원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질문한다.

“자네는 이 행성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나 있나?”

질문의 페이스가 저쪽으로 넘어간 듯하다. 하지만 ‘나는 답을 원한다’가 아니라 ‘같이 답을 알아보자’는 뉘앙스다. 애초에 말 상대를 해주겠다고 한 것도 있고 펌프에서 물을 뽑아내려면 처음에는 물을 부어줘야 한다.

“알고 싶으십니까?”

“자네들 말버릇 중에 이런 게 있었지? 어차피 우리는 연방을 위해 일하지 않나?”

알다마다. 방금 그가 한 말은 정보사령본부 직원들의 상투적인 어투다. 다음에 이어질 말과 함께.

“우리들 사이에 비밀이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기브 앤 테이크가 성립일지는 앞으로의 대화에 달렸다. 빈우가 조심스레 다음 대답의 첫 단어를 고르고 있을 때 동력로 조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모니카의 다급함이 통신 너머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지금 빈우의 눈앞에 있는 일을 마무리 짓는 게 우선이다.

-모니카, 잠시만.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

-팀장님, 이쪽도 중요합니다.

그쪽도 꽤 급했는지 모니카는 빈우의 말을 끊고 통신을 하고 있었다.

-이 리퍼 함선에 동력 반응이 없습니다.

모니카가 공유한 화면에는 리퍼 함선의 동력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함선 내부 구조물이 깨끗하게 사라진 흔적은 반물질 폭탄의 쌍소멸이 이곳에서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확실히 당시의 기록을 보면 비홀더 전 대원 세 명은 반물질 폭탄을 가지고 각각 동력로, 추진기, 무기고로 갔었고 그다음 함선을 발 가르단 하스로 추락시키며 폭탄을 기폭 시켰었다. 그 정도 반물질 폭탄이 내부에서 터졌다면 함선은 당연히 작동 불능의 껍데기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스크 포스 373은 발 가르단 하스 항성계에 일어난 이상 현상을 직접 확인했다. 그렇기에 추락한 리퍼 함선을 가장 가능성 큰 원인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직접 확인한 리퍼 함선에는 동력로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원리로 발 가르단 하스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첩첩산중에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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