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60화 (60/301)

60화

-파트리샤. 너 여기 들어갈 수 있냐?

빈우가 가리킨 곳은 갈라진 암벽 사이였다. 장갑복의 팔뚝이 겨우 들어갈 좁은 틈이다.

-보시다시피.

파트리샤와 인필트레이터는 몸을 변형시켜 부드럽게 그 틈을 들어갔다.

-좋아, 여기까지 갈 수 있겠어?

빈우가 돌풍 속에서 어떻게든 반향음을 수집해 목표지점을 잡아 파트리샤에게 보내주었다. 샤다이들이 있는 근처까지 나 있는 이 틈으로 인필트레이터가 침투한다면 이 악천후 속에선 완벽한 기습이 될 터였다.

-갈 수는 있겠는데 무장은 못 들고 가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제트팩이나 레일건은 그렇다고 쳐도 근접병기 하나 못 가지고 간다면 숨어드는 의미가 없다.

-그럼 다른 수를 써야지.

빈우와 파트리샤는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이동하며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고지대의 샤다이 3기를 중심으로 9시 방향의 라이노, 6시 방향의 아룹조, 3시 방향의 빈우조가 포위망을 형성했다.

현재 모함인 블랙 랜스가 벌이고 있는 사투 밑에선 샤다이 3기가 373 팀원들이 탈 귀환용 셔틀을 포착한 상황이다. 저 셔틀마저 파괴된다면 지금으로선 블랙 랜스로 돌아갈 방법이 없으므로, 한시라도 바삐 적을 처리하고 셔틀로 탈출해야 한다.

점차 다가가며 폭풍 속에서 목표를 확실히 포착한 빈우가 차갑게, 나직이 말했다.

-리퍼다.

스팸 2기 옆에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한 샤다이 장갑복이 있었다. 곡선이 많은 은색 장갑의 형태로 같은 샤다이 계통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으나, 보통의 샤다이 장갑복보다 훨씬 실전적인 형태였다.

-아, 썅.

통신상으로 위르겐이 나직이 욕을 한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놈에게 된통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태스크 포스 373은 이미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리퍼와 전투한 경험이 있다. 그때 리퍼가 보통의 스팸을 월등히 뛰어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었다.

다만 팀장인 빈우는 그 당시의 리퍼는 좀 어리바리했었다고 말했고, 실제 리퍼의 전투 영상을 보여주며 놈들의 위험성에 대해 누누이 경고했다. 진짜 리퍼는 우리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허나 상대가 리퍼라고 해도 모함이 오늘내일하는 지금으로선 작전을 변경할 여유가 없다.

-내 신호에 따라 목표를 노려.

제일 먼저 공격을 시작한 건 9시 방향에 있는 라이노 2기였다. 2문의 코일건을 가진 라이노들이 사격을 퍼붓자 고지대 주변이 포화에 휩싸이며 샤다이들이 휘청한다.

-위르겐.

이어 중포병 사양의 어벤져에서 포격이 날아간다. 강풍을 헤치고 날아간 레일건 탄두가 스팸 하나에 명중해 놈을 뒤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다음 탄을 넘어진 놈의 머리에 쏴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갑자기 리퍼가 앞으로 나오더니 자신의 손바닥으로 레일건 탄두를 막았다. 고온에 노출된 탄두는 녹기도 전에 기화해 라이덴프로스트 현상을 보이며 돌풍 속으로 날아갔다.

-계속 쏴, 우리가 접근한다.

9시의 라이노와 6시의 아룹 조가 샤다이들을 교차 사격 범위에 넣고 좌우로 흔들고 있을 때 3시 방향의 빈우 조가 놈들의 뒤를 노리고 서서히 다가갔다. 대 샤다이 전투에서는 사격전보다는 근접전이 더욱 효과가 좋기에, 일단 사격으로 놈들의 정신을 빼놓은 다음 빈우와 파트리샤가 접근해서 마무리를 지으려는 계획이었다.

-저 자식들, 안 움직이는데요?

위르겐이 포격을 쏟아붓는 말했다. 녀석의 말대로 놈들에게선 딱히 반격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스팸 둘이 시즐러로 몇 번 쏘기는 했지만, 곧바로 리퍼가 제지했고 샤다이 세 놈은 자기들끼리 방어해가며 373의 공격을 버티기만 할 뿐이다.

-저거 방패 아닙니까?

아룹의 지적대로 스팸 둘은 처음 보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놈들이 앞으로 내민 왼 팔뚝에는 뭔가 두툼한 장치가 있었다. 공격이 날아갈 때마다 거기서 꽤 큰 방어막 반응이 보인다. 이제까지 자신의 방어막과 장갑만을 믿던 놈들이 드디어 방패까지 들고나온 것이다. 골치 아프다. 허나 그보다 더 골치 아픈 것은 놈들이 방패 뒤에 숨어서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작정하고 셔틀을 노리는 건가.

아니면 매복해서 다가오는 아군을 경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촉박한 지금으로선 골치 아픈 상황이다.

-파트리샤.

스팸 한 놈이 라이노와 위르겐의 포격을 막다가 아룹의 집중사격에 방패가 한계에 달했는지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빈우가 사격명령을 내렸고 곧이어 파트리샤의 저격이 날아갔다. 왼쪽 어깨에 공격을 맞은 놈이 바닥으로 넘어지자 리퍼가 달려가 녀석을 일으켰고 곧이어 빈우 쪽으로 시즐러를 들어 겨눴다.

-피해!

연방의 전차포에 비견될 위력의 포격이 스치고 지나가자 엄폐물로 삼았던 암석이 터지고, 녹고, 달아오른다. 그래도 빈우가 솔리드 베타에서 당했던 리퍼의 공격에 비하면 약하다. 그 당시 놈들이 쐈던 플라스마는 이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그 공격에 빈우조가 약간 위축되었을 때 리퍼가 시즐러를 땅에 꽂으며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저 새끼가 돌았나.

그 모습을 본 위르겐이 사격을 한 박자 쉰 다음 모든 무장으로 전탄 때려 갈길 준비를 할 때 빈우가 말렸다.

-기다려. 통신이 잡힌다.

저 리퍼는 지금 여러 주파수로 음성통신을 송출하고 있었다. 빈우는 공격을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그것을 수신해 팀원들의 회선에 들려주었다.

-아인 테스나 메이 고바넨 이케가미 소이치로!

샤다이어는 모르지만 하나는 알겠다. 이케가미 소이치로 란 단어다. 팀원들의 궁금증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빈우가 해석해 주었다. 오직 373 팀원들만이 들을 수 있는 회선으로만.

-이케가미 소이치로를 달라는데?

빈우의 번역에 팀원들의 대답은 콧방귀였다.

-지랄. 와서 가져가 보시지.

팀장의 제지만 아니었다면 위르겐은 방아쇠를 당겼어도 열두 번은 더 당겼을 것이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여기 있는 모두 연방의 영토와 시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군에 들어와 지옥 같은 훈련을 거쳐 실제 지옥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 중에서 순순히 호위대상을 적에게 넘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빈우는 팀원들에게 채 말해주지 않은 몇 가지에 대해 곱씹고 있었다.

첫째, 저들은 이케가미 소이치로에 대해서 알고 있다. 나쁜 의미로든, 더더욱 나쁜 의미로든.

둘째, 방금 말의 진짜 뜻. 물론 빈우의 해석에 거짓은 없었다. 두뇌 통신을 하고 있는 마당에 거짓말하기는 힘들고, 팀원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다만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을 숨겼을 뿐이다.

방금 리퍼가 한 말의 뉘앙스는 이케가미 소이치로를 내놓아라 같은 협박이 아니라 모셔가겠다는 정중한 어투였다.

‘저들은 이케가미 의원에 대해 알고 있어. 헌데 그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위치인가? 샤다이들에게서?’

최소한 이케가미 의원과 샤다이의 관계는 적대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렇기에 빈우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방금의 대화를 373 팀원들의 회선으로만 번역해준 것이다. 혹 이케가미 의원의 귀에 들어간다면 무슨 반응이 나올지 모른다.

빈우는 팀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리퍼는 대답을 기다리는 이때, 잠시간의 소강상태를 깬 것은 파트리샤였다.

-저것들이 말을 건다면 우리도 할 수 있겠네. 팀장님, 뭐 좋은 수 없을까요?

여기서 파트리샤가 말한 좋은 수는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보였던 빈우의 야바위를 뜻한다. 그때 빈우가 말발로 리퍼 하나를 구워삶아 생포하는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이번에도 팀장이 현란한 혀 놀림으로 현재 상황을 타개하길 바랐다. 빈우는 기꺼이 기대에 부응했다.

-흐음, 요힌 음 에루님 스하나, 정도는 어떨까?

-요힌-음-에루님-스한- 그거 무슨 뜻이에요?

-스하나, 니네 엄마 ㄱ-기 맛있더라.

-니네 엄마 뭐?

샤다이어를 몇 번 중얼거리는 파트리샤에게 빈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알려주었다.

-고기.

빈우의 말에 파트리샤가 깔깔대더니 아까의 주파수로 방금 들은 욕설을 크게 외쳤다.

-요힌 음 에루님 스하나!

파트리샤가 그렇게 외치자 그 말을 들은 샤다이들이 잠시 멈칫하더니-곧이어 부들부들하더니-고지대에서 미친 듯이 달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장갑복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분기탱천한 기세가 흉흉하다.

-어? 어라아?

기대 이상의 열렬한 호응에 말을 꺼낸 파트리샤가 되려 당황했다. 원래 놈들이 기어 나오라고 도발을 한 거긴 한데 이건 너무 과잉반응이다. 파트리샤는 앞으로 나서는 놈을 하나둘 저격하다가 날아오는 공격에 밀려 뒷걸음질 치더니 급기야는 뒤로 나동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내기해도 좋아. 그 단어 고기 아니에요! 절대 고기 아니라고!

-아니, 그 왜 특수부위 있잖아. 너한테도 있는 거.

빈우가 급히 인필트레이터의 뒷덜미를 잡고 도망갔다. 파트리샤는 질질 끌려가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특수부위 어디? 위에? 아래?

-…아래.

한 타이밍 늦은 빈우의 대답에 파트리사가 길길이 날뛴다.

-야 이 씹! 보X! 보X! 왜 보X 라고 말을 못 해!

-아니, 두뇌 통신에 모니카도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

-어머, 이 씨바랄!

상황은 다시금 개판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샤다이들이 3시의 빈우 쪽으로 우르르 몰려 내려가자 9시에 있던 라이노들이 빈우의 명령대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냅다 달렸다. 셔틀은 그새 6시의 아룹조에게 날아가 착륙했다.

-의원님, 대위님, 어서 타십시오.

일단 이케가미 의원과 모니카부터 셔틀에 태운 다음 아룹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엄호를 하며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달려가서 합류해 샤다이를 칠 것인가. 마음 같아선 모니카와 이케가미 의원을 셔틀에 두고 위르겐과 함께 지원하러 가고 싶지만, 비전투 인원 두 명만 놔두고 가기엔 발 가르단 하스의 상황이 너무나도 개판이었다. 베테랑인 아룹 라마누잔이 보기에도 돌발상황의 연속인 것이다.

그리고 개판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저쪽에선 빗발치는 플라스마 포격과 흩날리는 용암의 비 아래 파트리샤가 바닥에 누운 채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레일건 개머리판으로 자기 사타구니를 찍으며 ‘여기, 이거’라면서 온갖 상소리를 내뱉고 있다. 그녀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던 빈우는 그 와중에도 곳곳에 수류탄을 지뢰처럼 까놔 따라오는 샤다이들은 엿 먹일 궁리를 하고 있다.

-저거 좀 보세요.

한풀 꺾인 파트리샤의 말에 빈우가 돌아봤다. 잔뜩 약 오른 스팸 하나가 시즐러를 꼬나 들고 가파른 경사를 달려 내려오다 발이 꼬여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걸 뛰어넘은 리퍼는 빈우조를 잡기 위해 예의 반중력 비행으로 붕 날아올랐다가 돌풍에 휩쓸려 저만치 날아간다.

-저 새끼도 만만찮은데. 부팀장!

아차 하는 순간에 혼자 서게 된 스팸 하나에게 집중사격이 쏟아진다. 놈은 방패를 들고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오른쪽 관자놀이에 꽂힌 아룹의 저격이 결정타였다. 반동으로 휘청하는 찰나에 마무리로 위르겐의 집중사격이 쏟아져 끝장을 냈다.

넘어지는 바람에 동료 하나를 순식간에 잃은 스팸이 허둥지둥 일어나 방패를 들고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사이 잽싸게 고지대를 차지한 라이노가 아래로 사격을 해 놈을 바닥에 자빠트렸다. 그 위로는 어느새 돌아온 리퍼가 도망치는 빈우조를 노리고 뛰어온다.

빈우는 넘어진 스팸을 마무리하는 대신에 XPS를 사격 모드로 해서 쏘았다. XPS의 플라스마는 시즐러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플라스마를 쏘는 무기이고 그런 만큼 샤다이에겐 전혀 안 먹히는 무기다.

허나 빈우가 노렸던 곳은 리퍼의 착지 예정지점이었다. 거기에 플라스마의 포격이 명중하자, 폭발과 함께 제법 큰 구멍이 생기며 그 속으로 리퍼가 빠졌다.

-다로! 헨칼라!

노기와 살기로 뒤죽박죽된 리퍼의 욕설이 통신으로 들려온다. 놈은 빈우와 파트리샤의 사격을 받으면서도 구멍 가장자리를 잡고 아득바득 기어올라 클레이모어를 꺼냈다. 그리고 검날을 수직으로 세워 파트리샤가 쏜 탄환들을 플라스마 칼날로 다 튕겨냈다.

-내가 간다.

빈우는 자신이 접근전을 시도하니 사격을 멈추라고 하면서 리퍼 앞으로 나섰다. 잔뜩 성이 난 리퍼가 일도양단할 기세로 클레이모어로 들어 올릴 때 빈우는 왼손으로 허벅지에 있던 플라스마 도끼를 언더스로로 던졌다.

샤다이에겐 통하지 않을 빈약한 위력의 플라스마 무기이지만, 도끼의 날 부분이 리퍼의 클레이모어와 닿자 그 부분만 잠깐 플라스마가 사라진다. 그리고 빈우는 언더스로로 던졌던 왼손을 그대로 앞으로 내밀어 클레이모어의 날 부분을 잡았고, 리퍼를 잡아당겨 놈의 배에 코일건 한 사발을 퍼부어줬다. 마무리로 앞차기를 해 다시 구덩이 속으로 밀어 차넣었다.

-이건 제가 마무리 하겠습니다.

셔틀을 타고 날아오는 위르겐이 남은 스팸 하나에 마지막 남은 대 샤다이 미사일을 쏘았다. 미사일이라고 해봐야 한 뼘 크기의 초소형 무탄두 미사일이지만 오직 샤다이를 노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제품이다.

발사된 7발 중 3발의 미사일이 강풍을 이기고 날아가 목표물의 방어막에 닿았고, 그 즉시 2차 추진기를 분사해 방어막을 비집고 들어갔다. 탄두 부분은 샤다이의 장갑과 부딪히자 마모되며 자기 첨예화 과정을 거쳐 계속 날카로워짐과 동시에 가장 저항이 적은 부분을 찾아 이리저리 맴돈다.

마침내 가슴에 맞았던 미사일들이 순식간에 스팸의 턱 밑 쪽으로 미끄러져 돌진해 들어가 놈의 숨통을 끊었다.

-어서 타십시오.

셔틀이 빈우와 파트리샤의 근처에 도착했고 아룹이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셔틀에 탄 빈우는 상공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불길에 휩싸인 채 대기권을 강하하는 블랙 랜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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