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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61화 (61/301)

61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지만 지금의 오르와 블랙 랜스에겐 통하지 않는 말이다. 반격을 해야 할 부포들은 적탄을 요격하는 데 급급하고, 탄환이 떨어진 부유 포대들을 사라진 장갑 드론 대신 방패 용도로 쓰고 있는 상황이다.

샤다이 전열함의 포는 연방 전함의 주포에 버금가거나 능가한다. 그런 것이 놈에겐 72문이나 달려있다. 반면 블랙 랜스의 함축 코일건은 전함의 주포에 약간 모자란다. 그런 것이 1문이 있다. 화력에서부터 압도적인 열세인 상황에 여기까지 버틴 것만 해도 블랙 랜스와 오르, 그리고 우지의 실력이 증명되었다.

만약 블랙 랜스가 좀 더 넓은 행동반경을 가질 수 있었다면 기동력을 살려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궤도 상의 엄호가 없어진 지상 병력은 적의 궤도 포격에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사라져 버릴 게 분명했다. 개죽음당할 게 뻔한 지상팀을 내버려 두고 작전구역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3번 부유 포대 손실.

경고 메시지와 함께 오르의 머릿속으로 불쾌한 감각이 다시금 생겨난다. 환지통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자에게 물려 창을 든 오른손이 뜯겨 나갈 때도 이런 감각이 아니었다. 그때는 격통이 전신을 내달렸다. 코뿔소에게 배가 꿰여 바닥을 나뒹굴 때도 이런 감각이 아니었다. 그때는 죽음의 공포가 머릿속에 차올랐다.

허나 부유 포대를 잃은 지금은 창을 든 손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우기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다.

샤다이들의 집중공격을 받는 현재, 함선의 각 부위에선 맡은 자리를 담당한 인공지능들이 알맞은 대처를 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발생하자, 혼자서 구축함을 전부 다루는 블랙 랜스의 단점이 드러났다.

손상 부위의 응급처치와 수리는 그렇다고 쳐도 롱소드에 작전 지시를 내릴 만한 겨를조차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함장인 오르가 샤다이와의 전투에 총력을 기울이자, 지상팀을 백업 할 여력마저 사라졌단 것이다. 기존의 함선이었다면 전담부서나 팀이 따로 있어 블랙 랜스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지상팀과 교신하고 지원을 했겠지만, 지금의 오르에겐 그럴 시간도, 인원도 없었다.

-함장님.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우지에게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투기 한 대만으로 적 함대의 화망을 분산시키고 날아오는 포격을 중간에 요격하는 등, 오늘 보여준 우지의 활약상은 그의 조부이자 전쟁영웅인 시에 쉰의 재림이라 불릴 만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아직은 안됩니다. 지상팀이 안전한 회수를 할 때까지….

오르는 말을 채 마치지 못했다. 전열함들의 화망이 블랙 랜스의 움직임을 몰아간다. 그 틈을 노려 모니터함의 거포가 작열한다. 압도적인 화력 앞에 방어 기동이 제대로 이루어 질 리 없다. 두 문의 부유 포대가 직격을 막고 사라지자 남은 플라스마들이 일렁이며 블랙 랜스 곁을 스친다.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데미지를 블랙 랜스 함체에, 그리고 오르의 신경망에 주었다. 고통과는 다른 단절감이 지마 오르의 전신을 난도질한다.

그리고 그때, 특이한 전기신호가 오르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케가미 소이치로?

지상에 있을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의 이름이 태스크 포스 373의 기밀 회선을 통해 오르의 머릿속에 직접 들려온다.

-너는 이케가미 소이치로인가?

-팀장님? 이쪽은 한계입니다. 지상팀은 언제 탈출할 수 있습니까?

-…이케가미 소이치로….

방금의 포격으로 전자 장비들이 입은 피해가 막심한 탓인지 아니면 지금도 이어지는 포격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통신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오르는 날아오는 포격을 최대한 덜 아프게 맞으면서 지상팀의 상황을 곁눈질했다. 다행히 만만치 않아 보였던 지상팀의 전세도 어느 정도 해결된 듯싶다. 그러니 방금처럼 통신을 넣었으리라. 이제는 탈출할 시간이다.

-팀장님, 김빈우 팀장님.

그러나 블랙 랜스의 호출에도 지상팀의 답신은 없었다. 통신장비가 피해를 입은 것도 있지만 지금 이곳은-블랙 랜스의 주변은-플라스마가 점차 과포화 상태로 치닫는 중이다. 대기권 아래와 통신이 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우지 일병. 이제 지상팀을 구출하러 갑시다.

통신이 제대로 닿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블랙 랜스의 움직임을 본 롱소드가 급히 따라붙었다. 이 전투기도 X자로 달린 4개의 추진기가 이제 2개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 제대로 된 작전 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만신창이가 된 구축함과 전투기가 지상의 아군을 구하기 위해 대기권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 * *

-아니, 왜 블랙 랜스가-

위르겐의 이어질 말은 대충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대기권 진입을 시도했냐’ 겠지만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의문은 모함의 현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저 상태로 샤다이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을지가 새로운 의문이 되었다.

-간당간당한데….

파트리샤가 중얼거렸다. 지상팀의 두뇌 통신 회선으로 막연한 불안감이 떠돈다. 지금 지상팀을 태운 셔틀이 최대 출력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과연 블랙 랜스에 닿을 수 있을지 불안한 것이다.

-우지! 우지야!

대기권을 강하해 이쪽으로 날아오는 롱소드가 보이자 모니카의 기쁜 소리를 내었지만, 곧 잦아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에….

2기밖에 남지 않은 추진기, 곳곳에 녹아 내부가 보이는 동체, 간신히 균형을 잡는 보조 추진기 등. 언제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체의 상태에 걱정부터 든다.

-우지, 괜찮나?

롱소드와 지상팀은 두뇌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일반 통신으로 빈우가 호출한다.

-네! 어떻게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대답은 잘한다. 그리고 셔틀의 밑으로 날아가던 롱소드의 남은 추진기 2개 중 하나가 폭발하며 떨어져 나가 기체가 빙글 돈다.

-우지!

우지는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기체의 밸런스를 바로잡은 뒤 셔틀 밑으로 날아와 동체를 받쳤다. 그런 다음 남은 마지막 남은 하나의 추진기를 최고출력으로 밀어붙였다.

-꽉 잡으십쇼!

우지의 외침과 함께 셔틀이 급가속하며 떠오른다. 셔틀 좌우에 달린 2기의 추진기보다 월등한 롱소드의 추력에 지상팀원들이 셔틀 안에서 요동쳤다.

-된 건가요? 이제 우리 탈출할 수 있나요?

안도하는 모니카의 물음에 빈우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글쎄올시다.

블랙 랜스는 대기권에 돌입하다가 발 가르단 하스의 대기와의 마찰로 튕겨 나간단 계획을 세웠었다. 롱소드와 셔틀은 그 궤도를 따라 올라가 착함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둘의 궤도가 맞물리지 않는다. 셔틀의 추력과 롱소드의 추력을 모조리 합해도 시간과 거리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블랙 랜스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자신의 추력이 아닌 행성 대기권의 반발력으로 튕겨 나가는 만큼 블랙랜스는 이 속도를 조절하기 힘들었다. 또 지금과 같이 만신창이가 된 함의 상태로 억지로 속도를 조절하려 했다간 최악의 경우 행성 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할지도 모른다.

-저건!

그때 빈우는 블랙 랜스에서 뭔가 가느다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류 케이블!

오르 함장도 셔틀이 제시간에 궤도에 오르지 못할 것을 알고 함선끼리 혹은 항구와 연결할 때 쓰는 계류 케이블을 뽑아 내린 것이다. 이제 저 케이블과 셔틀이 연결되기만 한다면 발 가르단 하스에서 탈출할 수 있다. 케이블 끝에는 연결부의 미세조정을 위한 추진기들이 있었고 이 녀석들은 정확한 도킹을 위해 열심히 분사하며 연결 각도를 잡고 있었다.

-어어? 팀장님, 이거 주변 중력 수치가….

부머를 타고 있는 모니카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점프 반응이에요!

이어진 비명과 함께 셔틀 저 위쪽으로 다수의 점프가 일어나며 스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놈들은 373의 머리 위로, 셔틀 쪽으로 강하해 내려온다.

-이것들이 씹지랄을! 위르겐!

빈우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위르겐이 셔틀의 문을 열고 나갔고 빈우도 뒤따라 셔틀의 위로 올라갔다.

-파트리샤와 부팀장은 안을 지켜요.

빈우와 위르겐은 셔틀의 위에서 내려오는 샤다이 보병들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격추시킬 필요는 없다. 단지 내려오는 궤도를 빗나갈 정도로만 쳐내면 된다. 반중력으로 날아오르는 리퍼라면 모를까, 비행능력이 없는 스팸들은 지금 자유 낙하로 내려오는 중이니 한발씩 쏴 쳐내기만 하면 셔틀에 접근할 능력이 없다.

한발 한발에 스팸들은 튕겨 나가 발 가르단 하스로 추락한다. 그러나 떨어지는 놈들이 발악하며 시즐러를 쏘는 게 성가시다. 예나 지금이나 형편없는 사격 실력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플라스마 무기다. 저 눈먼 공격에 한 발이라도 맞는다면 이쪽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저 썅것들이!

아니나 다를까, 터져 나오는 위르겐의 욕설에 빈우가 돌아보자 거기엔 스팸의 사격에 스쳐 녹아내린 계류 케이블의 추진기가 보인다. 다행히 케이블과 연결구는 무사하지만, 자세 제어용 추진기가 저 상태면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고 셔틀과 도킹할 수 없다. 실제로 계류 케이블은 세찬 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지! 방향 맞출 수 있겠냐?

빈우는 물어보고도 혀를 찼다. 지금 롱소드는 밑에서 셔틀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이라 추진기를 볼 수 없다. 만약 우지가 두뇌 통신에 들어와 있었다면 다른 팀원의 시야를 공유해 도킹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빈우는 컨커러의 제트팩을 최대 출력으로 해서 셔틀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추진기를 잡으려 했지만 휘청하고 흔들리더니 저 멀리 날아간다.

-팀장님!

위르겐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으나 빈우는 추진을 멈추지 않고 더 날아올라 한참 위쪽의 케이블을 잡아챘다. 그리고 그걸 타고 주욱 미끄러져 내려와 연결부를 잡고 매달려, 자신의 제트팩으로 자세 제어를 했다.

그때, 셔틀의 연결부에 계류 케이블을 갖다 대려는 빈우의 곁눈질로 자신에게 레일건을 겨누는 위르겐의 어벤져가 보인다. 동시에 위르겐의 시선으로는 하나의 은빛 형상이 번뜩이는 게 잡힌다.

발사된 레일건의 탄환은 빈우의 뒤로 날아갔지만, 목표에 닿지도 못하고 소멸되었다. 그리고 리퍼가 빈우를 지나쳐 셔틀의 위에 착지했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봤던 움직임이 아니다. 방금 발 가르단 하스의 지상에서 봤던 움직임도 아니다. 저것은 예전에 포말하우트 게이트의 점프공간 안에서 보았던 리퍼들의, 마치 잘 제련된 칼날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셔틀 위에 리퍼!

위르겐이 경고와 함께 리퍼와 근접전을 벌인다. 허나 빈우는 셔틀을 케이블에 연결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중이라 도와줄 형편이 안된다. 노련한 부팀장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 서둘러 셔틀 위로 올라온다.

-크으억!

리퍼의 손짓 한 번에 중포병 사양 어벤져의 대형 방패가 지워지고 위르겐의 신체 신호가 비상으로 치닫는다.

그때 빈우가 케이블의 연결구를 셔틀에 가져다 댔다. 두 개의 결합부가 마주 걸린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왜 나를 노리지 않고 그냥 지나쳤지?’

아룹이 플라스마 도끼와 진동 나이프를 들고 덤비지만, 리퍼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손바닥을 셔틀 동체에 대었다. 그걸 보고 빈우는 깨달았다. 저게 바로 불안의 원인이었다.

-부팀장! 셔틀 안으로 들어가요!

빈우가 연결을 마치고 셔틀 위로 뛰어올랐을 때 리퍼도 셔틀 천장을 녹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모니카의 비명. 부머의 상태 신호가 적색으로 바뀐다.

파트리샤의 기합 소리. 인필트레이터의 상태도 순식간에 황색이 되더니 이어 양팔이 적색이 된다.

빈우가 셔틀 안으로 들어갈 때 본 것은 이케가미 소이치로를 옆구리에 끼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리퍼였다.

-일단 블랙 랜스와 탈출해요! 제 회수는 매뉴얼대로.

빈우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리퍼를 쫓아 셔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발 가르단 하스로 떨어져 가는 리퍼의 뒤를 거칠게 쏘아져 내려가 덮쳤다. 동시에 진동 나이프로 놈의 목을 노렸지만 오히려 나이프의 날만 상한다.

-모가지가 단단해 슬픈 씹새끼여.

놈은 추격해온 빈우를 힐긋 돌아보더니 손바닥을 슬며시 펴 이쪽으로 내밀었다. 무엇이든 녹이고 소멸시켜버리는-적어도 연방의 재질이라면 막을 수 없는-고열의 손바닥이다. 빈우는 진동 나이프로 놈의 손목을 쳐서 막은 다음 그 반동으로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우주복을 베었다. 정확히는 허리다. 우주복 허리에 달린 장비 벨트가 잘려나가자 틈이 발생했다. 빈우는 그 사이를 파고들어 이케가미 의원을 리퍼의 품에서 빼내었다. 그리고 리퍼를 발로 차며 발 가르단 하스의 폭풍 속으로 날아 아래로 강하했다.

리퍼의 중력제어 기술은 분명히 뛰어나다. 그러나 추력이 아닌 중력으로 떠오르는 만큼 외력의 간섭에는 약해서, 지금의 발 가르단 하스 같이 폭풍이 몰아치는 곳에서는 제대로 된 비행을 할 수 없다. 둘 사이의 거리는 계속해서 멀어졌다. 모래와 자갈이 섞인 강풍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빈우는 리퍼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이케가미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빈우의 부름에 이케가미 의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헬멧을 통해서 본 의원은 눈을 감고 기절해 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또 우주복에 접속해 의원의 현재 상태를 보니 썩 좋지 않았다. 일단은 어딘가 안전한 곳에 착륙해서 그의 치료부터 다시 해야 할 성 싶다.

착륙지점을 찾으며 내려가던 빈우는 태스크 포스 373의 현재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블랙 랜스는 셔틀은 무사히 회수해 발 가르단 하스를 이탈했고 샤다이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데도 성공했다. 빈우와 이케가미 의원은 발 가르단 하스에 있고 곧 있으면 지표면에 착지한다.

그리고 27시간 뒤, 발 하스 1과 발 하스 6이 이곳 발 가르단 하스에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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