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이케가미 의원이 입은 허리의 부상이 잘 낫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더 이상 군용 마이크로 머신을 투입할 순 없다. 이놈들은 인체 내에서 자신들의 비중이 일정 이상이 되면, 사용자의 상태가 중상이라고 인식하고 비상 행동에 들어간다. 문제는 이 일련의 행동들이 사용자가 강화 군인이라는 전제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다. 놈들에게 있어서 비상 행동이라 함은 중요도가 낮은 장기들을 분해해 중요도가 높은 장기들을 복구하는 것이다.
즉, 지금 상황에서 이케가미 의원에게 마이크로 머신을 추가로 주사한다면 이놈들은 그의 골수와 대장들을 분해해, 사라진 심장 순환 펌프와 강화골격들을 복구하려 들 것이다. 원래부터 없는 것인데도.
물론 군인의 육체에서는 내부의 장기들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외부에서 마이크로 머신을 조율해줄 수 있다면 강화를 받지 않은 신체라 해도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지금은 그 장비가 없다.
또 부상을 당하며 입고 있는 우주복 허리 쪽의 주 순환선이 충격을 받은 탓에 간당간당하다.
지금 두 사람이 숨어있는 은신처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바깥과는 달리, 발포 재질의 암석으로 만들어진 동굴 입구를 막아놓은 곳이라, 단열도 잘돼서 온도는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 우주복을 입고 섭씨 400도에 초속 50m의 폭풍이 몰아치는 바깥으로 나간다면 얼마 정도 버틸까.
-탈출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는데.
빈우는 아까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모함인 블랙 랜스가 보낸 암호통신문을 수신했었다. 물론 서로의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여의치 않은 상황 탓에 제대로 된 통신은 아니었다. 블랙 랜스는 탈출할 때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담아놓은 비컨을 뿌려놓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이 비컨이 전파를 은밀히 발신하자 빈우가 그것을 수신한 것이다.
현재 블랙 랜스는 샤다이의 추적을 따돌리고 발 가르단 하스와 발 하스 1 사이에 있는 소행성 지대로 숨어든 상태다. 그리고 오르 함장은 발 하스 1에서 떨어져 나오는 소행성 군이 발 가르단 하스에 접근할 때와 블랙 랜스가 그나마 정상적인 항해가 가능할 때를 봐서 움직인다고 했다.
아까의 블랙 랜스는 얼핏 봐도 침몰 직전까지 몰렸었다. 심한 곳은 외부 장갑이 녹아나 내부 블록들이 그대로 노출될 지경이었니, 그런 배를 이끌고 샤다이의 공격에서 도망친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정도였다. 그런 피해를 입은 지 두 시간 만에 움직이는 건 척 봐도 무리였다. 지금은 조용히 기다리고 버텨야 한다.
눈이 벌게진 샤다이들 사이에서 온몸이 벌게진 이케가미 의원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그때 은신처 동굴의 입구 쪽에 설치해놨던 원격 센서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바람이나 바위의 흔들림은 아닌 무언가의 움직임이다. 빈우가 입구에 설치해 둔 폭탄을 격발을 시킬 준비를 하며 센서와 장갑복을 연결하자 수상한 전자파를 감지된다.
-소이치로.
여러 주파수로 이런 메시지가 날아와 잡힌다. 빈우는 폭탄을 터뜨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일단은 기다렸다.
-소이치로, 여기에 있는 거야?
신호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여러 갈림길이 있음에도 그 신호는 이곳 은신처로 곧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신처의 입구에서 발 가르단 하스인이 둥실 떠서 들어왔다. 특징이라고 하면 몸통 가운데에 우주복 수리용 테이프가 붙어있다는 점.
나타난 것은 이케가미 상원의원과 안면이 있는 원주민 후코였다.
-소이치로, 괜찮아? 많이 다친 거야?
이 발 가르단 하스인은 바닥에 누워있는 이케가미 의원에게로 허둥지둥 날아왔다. 빈우는 그 앞을 막았다. 총을 겨누지 않은 것은 나름 예의일 것이다.
-어떻게 이곳을 찾았지?
경계하는 빈우의 질문에 발 가르단 하스인이 촉수를 들어 흔들거린다.
-어떻게라니? 이상한 ‘목소리’가 이쪽으로 흘러가길래 따라온 거야. 이런 목소리는 소이치로만 쓰는 것이거든.
목소리라…. 아무래도 전자파를 이용한 통신의 보안은 발 가르단 하스인에게 그다지 쓸모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용건은?
자리를 비키며 경계를 풀었지만 아주 푼 것은 아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발 가르단 하스인은 연방의 전자장비를 떡 주무르듯이 만지는 종족이다.
-약속을 지키려고 온 거야.
-약속?
그러고 보니 이케가미 의원은 거주지를 떠나기 전 부상을 입은 후코를 향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해달란 부탁을 했었고 후코도 그 답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응, 답을 들어서 전해주려고 했었어. 마침 소이치로가 다시 돌아왔길래. 그런데….
누워있는 이케가미 의원에게 다가간 후코에게서 나오는 전파 출력이 약해진다.
-소이치로. 다친 거야?
-응. 좋지 않아.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들어온 전파는 꽤나 슬피 들렸다.
-그럼… 소이치로는 돌아가는 거야?
분명히 다른 신체와 문화를 가진 외계종족이지만 그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막아야지.
-그럼 어서 해. 어서 소이치로를 고쳐줘.
그러다가 문득 빈우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이케가미 의원은 발 가르단 하스에 일 년간 있었고 이 후코란 발 가르단 하스인은 그동안 그와 알게 된 원주민인 듯했다. 게다가 아까 오발 사고 때의 반응을 보면 둘 사이의 교류는 꽤 각별한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후코는 이케가미 의원이 설치한 거주지나 다른 장비들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의료 팩 하나만 있어도 그의 상태는 대단히 호전된다.
-후코, 혹시 이케가미 의원이 썼던 장비라거나 아까 같은 거주지는 다른 곳에 더 없어? 그게 아니라도 달리 그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
-도울 방법? 있어. 해도 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나온 대답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응. 서둘러서 해줘.
빈우의 말을 들은 후코는 잠시 신호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케가미 의원의 사물을 찾는 것이라면 연방의 주파수를 쓸 텐데, 그게 아닌 걸 보니 아마도 자신의 동족들에게 보내는 신호인 듯했다. 발신을 마치자 후코는 빈우에게 다시 신호를 보냈다.
-됐어. 친구들이 와준대.
-그래? 다행이군.
곧이어 은신처에 불쑥 나타난 후코의 친구를 보고 빈우는 껄껄 웃었다.
-어머니! 왜 저를 낳았습니까, 차라리 달걀이나 낳아서 계란 후라이나 해 드시지요.
그리고 코일건을 들어 이케가미 의원의 머리를 겨눴다. 연방의 전 상원의장이라면 연방의 기밀이란 기밀은 다 취급했던 사람이고, 머릿속에는 치명적인 자료들이 잔뜩 들어있다.
연방에 주적인 샤다이에게 넘겨줄 순 없는 노릇이다.
점프로 은신처에 나타난 샤다이는-스팸 4기와 리퍼 2기는-그쪽대로 빈우를 보고 굳어버렸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잠깐 기다려.
그때 후코가 두 진영 사이를 가로막았다.
-싸우지 마. 그런 하찮은 일보다는 소이치로의 일이 먼저야.
조막만 한 동굴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종자들 사이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후코는 마치 사자 우리 속에 던져진 풍선 같았다.
그때 리퍼 하나가 앞으로 불쑥 나섰다. 방금 점프해와서 빈우를 보자마자 부들대던 놈이다. 몸 여기저기의 흔적을 보니 마지막 전투에서 발로 걷어차 구덩이로 밀어 넣은 놈 같다.
통신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빈우의 눈에는 그놈이 삿대질만 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주변의 샤다이들이 녀석을 말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놈이 갑자기 클레이모어를 빼 들었다. 대검의 날에 플라스마가 맺히자 몇몇 녀석들이 나서서 앞을 가로막았고 빈우는 선제공격 타이밍을 재었다.
-그만.
후코의 격렬한 신호와 함께 클레이모어가 꺼졌다. 정확히는 플라스마가 사라져버렸다.
-나빠, 나쁜 사람이야. 내가 말했지. 소이치로의 일이 먼저라고. 한 번만 더 그러면 너희와의 계약을 끊어버리겠어. 별 심장의 불길을 다시는 못 빌리게 심장의 주인에게 이를 거야.
지금 후코는 드물게 화를 내고 있었다. 샤다이는-특히 그중에서도 클레이모어를 빼 들었던 리퍼 놈은-척 봐도 알 정도로 쩔쩔매고 있었다.
손대지 않고서 샤다이의 무기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존재라니 놈들이 저럴 법도 하다.
‘그건 그렇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연방군은 대체 뭘 믿고 토끼몰이 작전 따위를 벌인 걸까? 알았으면 절대 안 했겠지?’
본의는 아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자신의 총으로 후코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버린 빈우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제까지 373 팀원들이 고의로 원주민을 해친 적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차 했으면 팀원들 모두가 전원 꺼진 장갑복을 관 삼아 줄초상 그랜드슬램을 치를 뻔한 것이다.
-그리고 그거.
몸을 돌린 후코가 소이치로를 겨누고 있는 빈우의 코일건을 가리킨다.
-왜 그러는 거야? 실수인 거야? 소이치로의 친구 아냐?
-…친구야. 하지만 소이치로가 저들에게 넘어가선 절대 안 돼.
-걱정하지 마. 내가 막아줄게. 소이치로를 지켜줄게.
여기서 거절한들 코일건의 전원은 물론 지금 입고 있는 장갑복의 전원마저도 꺼질지 모르는 일이다. 빈우는 얌전히 코일건을 거두고 이곳의 주도권을 후코에게 넘기기로 했다.
-여기 있는 소이치로가 다쳤어. 고쳐줘.
후코가 샤다이들에게 말하자 그중 하나가 대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빈우에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후코가 전해주었다.
-…그건 무리래. 지금 소이치로를 고칠 수 없대.
하기야 종족이 다르니 바로 고치는 것은 무리겠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샤다이라도 불가능은 있는 모양이다. 잠시 소강상태로 있던 와중에 후코가 무슨 신호를 수신했는지 반색한다.
-다행이야. 소이치로를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어. 곧 여기로 온대.
빈우가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다시금 동굴 안에 점프 반응이 일었고 역시나 리퍼 3기가 도착했다. 한데 도착 후에 보인 모습, 주변 경계라던가 몸놀림으로 봐서 좌우의 두 놈은 보통 놈이 아닌 듯했다. 특히나 왼쪽에 있던 놈의 어깨에는 특이한 문양이 있었는데, 블랙 랜스로 귀환할 때 셔틀로 강하해온 놈에게도 있던 문양이었다.
아마도 같은 녀석이리라. 연방의 정예 특수부대원인 373 팀원들을 순식간에 무력화하고 이케가미 의원을 납치해간 녀석이다.
그때 가운데에 있던 리퍼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진짜 보통이 아닌 놈은 이 가운데의 리퍼였다. 먼저 도착해 있던 샤다이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리고 좌우의 리퍼들이 대하는 태도가, 이 녀석의 지위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 높은 지위의 리퍼는 후코에게 다가가 대화를 잠시 나누더니 빈우를 쳐다보고 말을 걸었다.
-보았던 갑옷인데. 설마 본인인가?
컨커러의 통신기로 들어온 말은 기억에 있는 음성이다. 이어 녀석은 헬멧의 외피를 벗겨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혹시 나를 알고 있나? 나다. 알탄훼아나.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이름을 말하지 않았었지.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재회를 한 빈우는 자기도 역시 장갑복 헬멧의 정면 가드를 열었다.
-오래간만이군. 김빈우다. 그건 역시 네놈들 짓이었냐.
빈우가 오스카스테이션에서 사로잡아 특수전사령부로 넘겼던 여성형 샤다이가 지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짓? 누구의 무슨 짓? 아, 그래 동포의 도움으로 나는 그곳에서 탈출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다.
무슨 트로이의 목마도 아니고 연방 전력의 중핵 중 하나인 특수전사령부를 홀랑 날려버린 원인이 돼버린 빈우는 이를 갈았다.
-기다려. 지금은 더욱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 텐데.
그러면서 알탄훼아나가 손으로 가리킨 곳엔 누워서 사경을 헤매는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이 있었다.
-이케가미 소이치로.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약속한 자다. 구해야 한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좌우에 있던 리퍼 둘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하나는-셔틀을 습격했던 놈은-빈우의 앞에 마주섰고 나머지 하나는 이케가미 의원 쪽으로 갔다. 그것을 본 빈우가 움직이려 하자 앞에 마주 섰던 녀석이 부드럽게 손등을 들어 올려 빈우의 앞길을 막았다. 마치 싸울 의사는 없다는 듯한 제스쳐였지만 빈우는 공격 일보 직전이었다.
-소이치로를 구하는 거야. 믿어줘.
결정적으로 후코의 말이 빈우를 멈췄다. 자세를 바로 한 빈우가 이케가미 의원 쪽을 보자 앞을 가로막았던 리퍼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그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케가미 의원 앞에 앉은 리퍼는 마치 물 같은 액체를 상처 부위에 붓고 있었다. 그리고 덩어리져 뭉쳐진 물덩이의 끝을 잡고 어떤 조작을 하자 상처 부위에 박혀있던 파편들이 밖으로 빠져나왔고 물덩이가 우주복 안쪽으로 들어갔다.
-흐으음.
편안한 이케가미 의원의 한숨이 빈우의 통신으로 들려왔다. 그의 신체 신호도 한층 호전된 게 보인다. 그걸 보며 빈우가 한숨 돌리자 알탄훼아나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완치될 테니 안심해.
한데 미소를 짓던 그녀가 뭔가를 깜빡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샤다이와 인간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아니지. 안심하란 말은 너무 일렀나?
미소의 끝이 고소로 마무리되자 주변의 리퍼들의 기세도 확연히 변한다.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대화가 약속된 자. 보내주어야겠지. 허나 김빈우는 우리와 약속이 있지 않나?
-…그래, 선약이 있었지.
빈우가 이를 악물며 웃었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샤다이 9명. 그것도 리퍼 5기, 스팸 4기에다 그중에서도 리퍼 둘은 단신으로 373 팀원을 압도했던 놈이다. 과거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만났던 리퍼들처럼.
-안돼. 소이치로의 친구야. 해쳐선 안 돼. 더는 싸우지 마.
아이러니하게도 태스크 포스 373팀장의 목숨을 구한 것은 넝마 풍선처럼 보이는 후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