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65화 (65/301)

65화

-이케가미 소이치로만이 아닙니까? 저 침략자도?

알탄훼아나는 인간들의 말에 어느 정도 정통한지 지금 후코에게 능숙히 존칭을 쓰고 있었다.

-아니, 약속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소이치로의 친구야. 만약 기억을 되살릴 수 없게 돌아가면 소이치로가 슬퍼할 거야. 그럼 나도 슬플 거고.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너희들도 기억을 살릴 수 없게 돌려보낼 거야.

‘대충 죽여버린단 의미 같은데….’

전후 문맥으로 뜻을 유추해본 빈우는 샤다이들의 반응이 걱정스러웠다. 아닌 게 아니라 후코의 말에 요주의 리퍼 둘의 기세가 흉험해지며,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할 것처럼 자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놈들이 다시 치솟아 올라오기 전에 알탄훼아나의 손이 불쑥 올라왔다.

-이 땅에서 뉘라서 그대의 뜻을 거스를까요. 따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두 리퍼는 다시금 정중한 자세로 알탄훼아나의 옆으로 돌아가 섰다. 샤다이의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때마침 이케가미 상원의원도 눈을 떴다.

-김! 김 소령!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빈우를 불렀다.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소이치로.

이케가미 의원은 빈우와 후코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후코를 보더니 놀라며 자신이 고쳤던 상처 부위를 살펴본다.

-후코!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상처는? 괜찮은 거야?

-응. 난 괜찮아. 답을 들려주러 왔어.

인간과 발 가르단 하스인 사이의 약속. 그 대답 앞에서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일순 경직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다잡고 후코의 다음 전파를 기다렸다.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어.

-오오!

후코의 그 말이 마치 생기를 불어넣은 듯 이케가미 의원은 비틀거리면서도 급히 일어나 섰다.

-소이치로?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에 후코가 걱정했지만 이케가미 의원은 자기 몸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물론이지. 내 일생의 과업이야. 어서 만나러 가자.

이케가미 의원은 의욕에 가득 차 서둘렀다.

-하지만 소이치로에겐 너무 위험한 일이야. 소이치로의 몸으로는 크게 다칠지도 몰라. 우린 돌아가도 기억을 가지고 이곳으로 나올 수 있어. 그런데 소이치로가 말했잖아. 돌아가면 다시는 이곳에 나오지 못한다고.

후코의 전자신호는 불길함과 슬픔을 같이 담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야.

굳은 결심을 말한 이케가미 의원은 그제야 주변의 샤다이들이 눈에 들어왔는지 잠시 멈칫했다.

-…끈질기군.

그의 탐탁지 않은 중얼거림을 알탄훼아나는 쾌활하게 받았다.

-그대만 할까. 자, 이케가미 소이치로. 그대는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할 준비가 되었소?

-물론.

빈우가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맺어진 밀약이 있는 듯 이케가미 의원과 알탄훼아나 둘 사이의 대화는 착착 진행되어간다.

-이어서, 우리와의 약속 또한 지킬 준비가 되었는가?

-그것도 물론.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샤다이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란 증거는 지금까지 차고도 넘친다.

첫째, 373팀이 거주지에서 나와서 샤다이와 교전을 했을 때 이케가미 의원은 전투를 말렸었다.

둘째, 고지대를 점령한 샤다이들은 이케가미 의원을 ‘모셔가겠다’라고 정중히 말했다.

셋째, 탈출하는 셔틀을 기습한 리퍼는 이케가미 의원을 죽이지 않고 굳이 납치를 했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이뤄진 대화로 미루어보면 이케가미 의원과 샤다이 간에 어떠한 협력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지.

-아주 좋소. 그럼 가실까. 내 직접 모시리다.

아마도 알탄훼아나란 샤다이 여성은 빈우가 알지 못하는 목적지까지 이케가미 의원과 함께 동행하려는 것 같다.

-아니, 이분은 내가 모신다.

빈우가 나서며 걸어오는 샤다이를 가로막았다.

둘 사이의 거래 내용이 어떻든 간 연방의 상원의원을 샤다이들의 손에 넘겨줄 순 없다.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중요하고 민감한 정보를 가진 요인을 순순히 놓아 줄 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울토르 프로젝트를 비롯한 빈우와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는 인물이니 빈우는 반드시 따라붙어야 했다.

-아니, 김 팀장, 이젠 되었어요. 여기서부턴 내가 하겠소.

이케가미 의원은 약간 누그러진 자세로 빈우를 떼어내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그 말씀, 하면서도 전혀 안 먹힐 거라는 거 알고 계시죠? 의원님같이 중요 기밀을 가지고 있는 요인을 샤다이에게 넘기라고요? 조금 전만 해도 댁 대가리를 날릴까 말까 고민하는 마당이었습니다. 거기다 저하고 일이 꽤나 엮인 것 같은데 댁 같으면 여기서 다 내려놓고 튀겠소?

할 말을 잃은 이케가미 의원을 대신해 말문을 튼 것은 샤다이 무리의 리더로 추정되는 알탄훼아나였다.

-흥. 우리의 동포를 엮어서 만든 그 옷으로 따라붙겠다? 이전의 3등급보다야 일신했다지만 그래봤자 고작 5등급 일상복. 주제를 파악하라.

그렇게 빈우와 컨커러를 잔뜩 비웃은 그녀는 자신을 사이에 둔 리퍼들을 자랑했다.

-이것을 보시오. 이 늠름한 모습을. 적어도 15등급 전투복은 되어야 그대를 무탈하게 보필할 것이외다.

빈우는 갈망한다.

그러면 3등급 일상복을 입은 놈들한테 털리는 너희들은 뭔데, 라고 말하고 싶다. 격하게.

그러나 실제로 나온 말은 정중했다.

-아가리 닥쳐, 쌍년아. 그건 네년이 아니라 이분이 결정할 일이지.

-안돼. 자네는 오면 안 되네. 절대

협조성 없는-처음부터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던-이케가미 의원은 한사코 빈우를 떼어내고, 이 상처 입은 발 가르단 하스인 후코와 저 부들거리는 샤다이 여성 알탄훼아나와 동행할 생각인 것 같다.

-의원님, 뭔가 사태파악이 안 되시는 모양인데….

-위험해! 죽을 수도 있어.

빈우와 마주한 이케가미 의원의 눈에서는 경고와 각오가 서려 있다. 아마 죽을 수도 있다는 대상엔 그 자신도 포함되어있으리라.

-그럼 의원님도 그 위험한 곳으로 죽으러 가는 겁니까?

-하나 물어봄세.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이케가미 의원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내가 아까 자네에게 김빈우 본인이 맞냐고 물어보았지?

보안 프로그램의 허점을 찾아 모든 수를 동원하던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기절하기 전에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딸아이 얘기를 할 때 자네의 눈빛과 반응을 보았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알 수 있었지. 냉혹한 연방의 군인 김빈우도 한켠에는 인간성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오늘 만난 자네는 과거 내가 알던 김빈우에 비하면 꽤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새로운 면이었지. 그리고 그걸 보고 나는 생각했다네. 과거 나와 함께 우… 울… 카스텔라를 먹었던 자네 또한 오늘 밝혀질 일에 대해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한박자 쉬고 이어진 이케가미 의원의 말은 빈우가 애써 피하려 했던 사실을 후벼팠다.

-헌데, 마지막에 카스텔라에 관해 얘기할 때 자네가 지었던 표정은 달랐어. 자네는 놀라지 않았지. 아니, 놀라긴 했지만… 가볍게 놀랐을 뿐이야.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니면 어느 정도 각오했다는 듯이 말일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했던 일의 결정체가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 정도로 그칠 수가 있냔 말일세.

그건 빈우도 느끼고 있었다. 당시로선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면 찜찜하다.

울트로 프로젝트는 빈우 자신을 실험체로 삼아가며 시작했던 프로젝트이니만큼 문자 그대로 몸 바쳐 헌신했던 일이다. 한데 그런 프로젝트를 입안자인 이케가미 소이치로 전 상원 의장에게 부정당했을 때, 빈우는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었다.

원래대로라면 경악이란 단어가 부족할 지경의 충격을 받을 일이다.

추측되는 원인으로는 빈우의 머릿속에 트리니티에 감춰진 정보, 혹은 정보국에서 잠가놓은 정보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아마 빈우 본인은 울토르 프로젝트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지만 상기의 이유로 인해 그 기록들이 잠겨있어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있었던 충격이-정보 접촉에 의한 신경 반응이-같은 이유로 반복되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 반응의 정도가 경감되었을 수도 있다. 비슷한 예로 잠수 전후의 정보국 요원들이 충격적인 일에 대한 기시감을 가지는 것은 종종 보고되어 왔다.

‘울토르 프로젝트에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빈우가 내린 결론이다.

-자네는 카스텔라가 잘못된 거란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말해주게, 난 자네를 믿어야 하나?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호소한다. 전 상원 의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머릿속에 보안 프로그램까지 깔고 혼자서 보호 행성까지 오게 만든 일이다. 그의 반응으로 짐작건대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목적에는 적이 많을 것이고, 그가 숨기고 있는 비밀 또한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로 추측할 수 있는 것들로는 첫째, 이케가미 상원의원이 발 가르단 하스에서 하고 있는 일은 울토르 프로젝트의 숨겨진 진실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 둘째, 이케가미 의원은 그 진실과 마주하면서 울토르 프로젝트를 부정당해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이렇게나 바꾸었단 말인가.’

빈우는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해 비밀리에 이곳 발 가르단 하스에 왔고 일 년간 노력해서 그 결실이 맺어질 찰나, 과거 같은 프로젝트를 했던 빈우와 만나게 되었다. 거기다 빈우는 울토르 프로젝트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는 이케가미 자신의 편에 서질 않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뭐, 의심할 법도 하군.’

이케가미 의원이 앞으로 하려는 일,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는 그 계획의 최종목적이니만큼 더더욱 수상한 빈우를 떼놓고 싶을 것이다.

-의원님, 저 또한 의원님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자신 또한 뇌에 조작을 당했다는 의미다.

-의원님은 지금 그것에 대해 알고 있지만, 말씀하지 못하시죠. 허나 저는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갈망하지요. 제 마지막 일이 부정당한 이유를.

빈우의 말을 들은 이케가미 의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포기하며 말했다.

-여기서 자네를 떼어놓으려 했다간 내 목이 날아가겠군. 그게 누구의 의지든 간에.

-순전히 제 의지입니다.

서로 눈을 노려보던 두 사람 중 먼저 눈을 돌린 사람은 한숨을 내쉰 이케가미 의원이었다.

-따라오게. 이후의 일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지게나.

-그럽지요.

두 사람이 합의를 보자 다른 하나가 반발했다.

-이곳에 갖은 흉행을 한 자를 주인과 만나게 한단 말인가? 그게 너희들의 법도인가?

이케가미 의원은 격분하는 목소리를 의연하게 받았다.

-그 또한 나의 업에 관련된 자이니 자격은 있다. 또 그가 한 죄과에 대해선 발 가르단 하스가 알아서 할 일, 우리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아니면 혹시 새치기당해 질투하는 건가? 걱정 말게, 자네 자리는 있으니.

-질투는 무슨.

알탄훼아나가 투덜거리며 납득하자 이케가미 의원이 후코에게 다가갔다.

-후코, 이제 준비가 되었어. 나와 이 두 사람이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할 거야.

-…알겠어. 가자.

후코가 앞장섰다. 그 뒤를 이케가미 소이치로, 김빈우, 알탄훼아나 세 명이 따라갔다. 그리고 동굴을 따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느리군. 제가 모셔도 되겠소이까?

둥둥 떠다니는 발 가르단 하스인은 이동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고 인간 둘도 도보로 이동하고 있자 알탄훼아나는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난 괜찮아. 소이치로는?

-도와준다면야 고마운 일일세. 김 팀장은?

-해보거라.

알탄훼아나는 이죽거리는 빈우를 한번 노려보더니, 일행을 자신의 중력장에 넣고 공중으로 띄운 다음 빠른 속도로 동굴 속을 날아갔다. 폭풍이 몰아치는 지표면과 달리 지하는 조용한 편이어서 중력장을 이용한 비행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제법 큰 공동에 도착했다.

-오오.

공동 안에 펼쳐진 절경에 이케가미 의원이 감탄했고 빈우도 역시 감탄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일렁이는 고온의 플라스마가 자기장에 엮여 실타래 마냥 꼬여있었다. 그것은 길게 이어져 공동 곳곳에 난 동굴을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그 위를 발 가르단 하스인이 기어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보았나? 이 행성 가르단 밑에는 저런 플라스마 줄기가 끝도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네. 내가 아주 말초적인 부분만 수집했는데도 이 정도일 정도로 말일세.

이케가미 의원이 보여주는 화면에는 잔뿌리처럼 보이는 플라스마 줄기들이 행성 지표 밑에 빽빽하게 심겨 있는 게 보였다.

-이건 마치….

마치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플라스마 타래의 모습을 본 빈우는 한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마치 인간의 뉴런 같지 않나?

이케가미 의원의 말대로다. 행성 발 가르단 하스 아래에 끝도 없이 뻗어있는 플라스마 연결도는 마치 인간 뇌 속의 뉴런을 연상케 했다.

-의원님, 설마….

-그래, 이 행성 발 가르단 하스는 하나의 생명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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