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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66화 (66/301)

66화

행성 자체가 생명체란 말에 빈우는 이케가미 의원이 보여주는 수많은 플라스마 연결도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일부라 해도 상당한 집적도다. 발 가르단 하스의 지표에서 핵까지 이르는 나머지 부분이 모두 저 정도라면, 이 복잡한 신경망에서 지성이 탄생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말씀대로 인간의 뇌 신경계와 유사하군요.

-그래, 정보 생명체지. 아까는 속여서 미안하네. 그때는 자네를 확실히 믿을 수가 없었어.

아까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발 가르단 하스의 생태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었다. 두뇌 칩에 박힌 보안 프로그램을 어떻게든 우회해서 진실을 전달하려고 했던 그때, 이케가미 의원은 행성 가르단이 항성 발과 하스를 공전하며 그 영향력으로 후코와 같은 발 가르단 하스인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두뇌 칩의 영향을 받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척 화제를 돌렸었다.

‘어떻게 여기까진 말할 수 있군.’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아귀도 같은 정치판을 살아온 그였기에 할 수 있는 기지였다.

물론 제아무리 정보국 요원인 빈우라 해도 거기까지만 듣고,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어서 이케가미 의원이 울토르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을 하려 할 때는 실제로 두뇌 칩의 프로그램에 강제를 받아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없었다.

허나 이케가미 의원에게는 결국 빈우를 속인 셈이 되어 이렇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단지 말씀 도중에 끊긴 거지요.

이케가미 의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을 뿐. 지금은 한배를 탔으니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 봐주니 고맙네.

헛웃음을 지은 이케가미 의원이 말을 잇는다.

-그러면 아까의 얘기를 계속하지. 초기의 가르단은 지하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플라스마 폭풍이 들쑥날쑥 하는 원시행성에 불과했다네. 분기점은 발과 하스 사이를 공전하면서 예의 사이클이 생기고 발 가르단 하스인들이 생겨났을 때였지. 물론 초기의 이들은 그저 떠다니기만 하는 단순한 가스 풍선에 불과했다네.

화면은 발 가르단 하스의 사이클이 반복되며 생기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행성 가르단에 원시 지성이 탄생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아주 미약했을 거야. 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행성의 전자 정보가 사이클이 거듭될수록 그 정보가 이 원시 풍선 생명체들에게 점차 전이되어 갔단 점일세. 플라스마 회로의 정보들이 어떻게 가스 군집체로 복사되었는지는 아직 연구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지.

이케가미 의원이 가리킨 것은 그의 발 가르단 하스인 동료 후코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후코는 문자 그대로 이 행성에서 탄생한 생명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발 가르단 하스인들은 제각각 물려받은 지능을 가지고 살아가다 생을 다했을 때 자신의 고향에 그간의 기억과 정보를 돌려주지. 그리고 이 전자 정보들은 행성 안으로 돌아가 거대한 플라스마 두뇌를 거치고 조합되어, 다시 풍선으로 복제되고 분리된다네.

이케가미 의원이 보여주는 자료에는 발 가르단 하스의 플라스마 신경계가 분할되고 복제되어 작은 풍선으로 나뉘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각각의 풍선들이 독립된 경험을 쌓고 마지막으로 수명이 다한 뒤에는 다시 행성으로, 하나의 뇌로 돌아가는 사이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까 후코가 발한 전자파가 기억이 난다. 자신들은 돌아가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고 했었다. 그 말은 죽어도 다시 그대로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한 수순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행성 발 가르단 하스는 새로운 지식과 지능을 갈망했겠지. 그리고 그 향상성은 발 가르단 하스인들에게도 이어졌을 거고. 그때부터 발 가르단 하스인들은 점차 변해갔어.

화면 속의 발 가르단 하스인들이 차츰 변해간다. 단순한 구조였던 가스 풍선에 차츰 전자 탐지기관이 생겨나고 이어서 자기장 조절기관을 가져나가는 게 보인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는 발 가르단 하스인 후코일세. 이들은 움직일 수 없는 모성을 대신해, 행성 내부에 있는 플라스마 신경계의 분화와 신경절의 관리 등을 돕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자연선택과는 또 다른 의미의 자연선택이랄 수 있다네.

여기까지 들은 빈우는 현재 발 가르단 하스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이 행성의 공전이 멈춘 것은 꽤 심각하군요. 이 별, 그러니까 가르단이 발과 하스의 두 항성 사이에 끼어 움직이지 못하면, 새로운 발 가르단 하스인이 태어나지 못할 것이고 그건 행성의 관리자 교체 사이클의 붕괴, 나아가 행성 정보 생명체의 위기가 아닙니까?

-응?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케가미 의원은 빈우의 말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존재는 다른 존재였다. 빈우의 등 위에서 그 자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 가르단 하스를 이곳에 멈추고 모든 별을 이곳으로 모으는 것은 우리다. 다친 이의 부탁을 받고 여기까지 와 치료를 하는 중인데 무슨 모함이냐!

빈우는 알탄훼아나의 노기 서린 항의를 무시하고 이케가미 의원에게 질문했다.

-흐음, 의원님. 아까 하셨던 ‘우리가 이곳을 끝장낼 뻔했다’란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 음, 4 주전 샤다이 시민군 함선 한 척이 연방군과 교전하다 이곳 발 가르단 하스에 추락했고 당시 일어난 엄청난 폭발로 행성 외부 신경계가 제법 심한 손상을 입었었지.

거기서 무시당한 알탄훼아나가 다시 끼어들었다.

-네 놈들이 동포의 배를 쫓고 나포해 반물질 폭탄을 넣어 이 발 가르단 하스에 터트렸지 않느냐? 그로 인해 유구한 세월 동안 쌓고 길러왔던 플라스마 신경계들이 사라졌다. 수십억 년에 걸쳐 수많은 지성체들에게 향유되어왔던 정보들이 사라지고 행성 생명에 존망에 처했다. 그랬기에 발 가르단 하스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 유치한 잡종 놈아!

-우리가 아니라고. 이 안테나 귀쟁이년아.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둘 사이에 몸을 던진 것은 이케가미 의원이었다.

-자자, 김 소령과 알탄훼아나 호민관. 다들 진정하시오.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러면서 이케가미 의원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군이랄 수 있는 빈우 쪽이었다. 연방 내부의 일을 잘 아는 그였던 만큼 짐작 가는 게 있으리라.

-음, 그러지요. 아군은 이전부터 추적하던 리퍼 함선을 토끼몰이 작전으로 밀어붙여 이곳 발 하스 항성계까지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작전지역이 루비콘 라인과 겹치는 바람에 4주 전 순찰하던 비홀더 전대와 리퍼 함선이 조우. 쌍방 간에 전투 후 비홀더 전대는 리퍼 함선에 반물질 폭탄을 설치하고 이 발 가르단 하스로 추락시켰습니다.

빈우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 알탄훼아나 쪽을 돌아다 보았다. 이제 네 차례라는 뜻이다.

-그때 공격을 받은 시민군의 함선은 정예중의 정예였다. 그대들의 병기로는 해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것이기에 방심했건만, 그게 원인이었지. 설마 그 갈보의 추종자들이 덤벼올 줄이야.

아무튼 탑승원들은 전원 사망.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일어난 폭발로 발 가르단 하스에 심대한 피해가 왔다는 것이다. 폭발은 지표에서 일어났지만 하필이면 폭발물이 반물질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플라스마들이 대량으로 소실되었다. 피해를 입은 발 가르단 하스는 자체적으로 회복하기 무리라고 판단해 우리를 불렀지. 한데….

이번엔 알탄훼아나의 시선이 이케가미 의원 쪽으로 향했다.

-어느새 선객이 와 있더군. 그것도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하려는 자가. 도착한 구조팀은 당연히 이케가미 소이치로를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하려 했지만, 관리자에 의해 저지당했다.

-관리자란 후코를 말하는 걸세. 그 아이는 다른 발 가르단 하스인들에 비해 권한이 꽤 큰 편이지.

작은 목소리로 빈우에게 설명하는 이케가미 의원을 힐긋 본 알탄훼아나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이어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거래를 제안하더군. 자신을 방해하지 않으면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할 기회를 주겠다고. 수십억 년을 살아온 대 현자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 샤다이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그녀의 말로 미루어 보와 아무래도 발 가르단 하스의 치료를 돕는 것 정도로는 대화를 할 수 없는 것 같다. 좀 더 큰 대가가 필요하거나 다른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관리자를 통해 답이 와야 했으나 당시 발 가르단 하스가 입은 상처가 꽤 컸기에 치료가 먼저였지. 그래서 우리는 탐사선 열 척을 보내어 각각 발과 하스를 발 가르단 하스에 접근시킨 다음 나머지 행성들도 끌어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발 하스 항성계에 일어난 이상 현상은 추락한 샤다이 함선 한 척에서 일어난 장치의 오작동이 아니라 샤다이 함선 열 척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현상이라고 한다. 어차피 연방에게는 한 척이나 열 척이나 의미 없는 수치이기에 그게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배 하나로 행성을 끌어오는 놈들에게 함부로 싸움을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이고, 안심되는 것은 지금은 발 가르단 하스와 형제 행성들이 충돌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두 항성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발 가르단 하스에 집중되고 형제 행성에게서 행성 구조체를 끌어와 소실된 부분을 채우는 데 쓴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연 치유에 맡기는 거지. 헌데!

알탄훼아나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빈우를 향한다.

-네 놈들이 여기에 온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발 가르단 하스에 공격을 가하다니! 후안무치한 놈들!

거기까지 들으니 그녀가 왜 저리도 분노하는지 알 것도 같다. 태스크 포스 373은 나름 사건 뒤처리를 하려고 온 것인데 상처만 잔뜩 헤집어 놓은 격이 된 것이다.

사고는 비홀더 전대가 쳤지만, 그들이 보기에 지구제국과 인류 연방은 그놈이 그놈일 것이다. 연방은 구 지구제국의 후신처럼 과오를 무작정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고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좋아, 그러면 여기선 평화적으로 말로 해결을 보지. 이케가미 의원과 네가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하고 나면 우리는 바로 여기를 뜨겠다. 그러면 너희들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여기서 치료를 마저 도와줄 수 있는 거지. 어때? 서로 좋지 않나?

-그런 짓을 하고도 몸 성히 보내줄 성싶으냐!

빈우의 말을 들은 알탄훼아나는 노성을 토했지만, 시선은 힐끔힐끔 후코를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으으음! 관리자의 비호 덕에 목숨을 부지한 줄 알라. 우리 눈앞의 놓인 막중한 임무만 아니었더라도!

어찌어찌 분을 삭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이야기를 잘만 진행하면 될 것 같다. 이제 태스크 포스 373은 원래의 목적인 리퍼 함선의 정보와 자재, 그리고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의 신변과 그가 발 가르단 하스로부터 얻은 정보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이케가미 의원이 발 가르단 하스와 나눌 대화는 아마도 울토르 프로젝트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성공했으면 연방의 새로운 창이 되었을 중요한 프로젝트였지만, 지금은 그 창날이 연방을 찔러 프로젝트의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는 빈우 자신도 깊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 이케가미 소이치로, 그대의 차례군.

알탄훼아나의 말대로 빈우와 그녀가 말했다면 이제는 이케가미 의원의 차례다. 두 사람의 대화가 과열되자 이케가미 의원이 중재하며 서로 이야기를 풀어보자고 했으니, 이제는 이케가미 의원이 자신의 목적과 이제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차례다.

그때 빈우의 머릿속을 퍼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케가미 의원의 목적, 그리고 지금 여기서 그것을 들을 상대.

-안돼! 의원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그러나 이미 늦었다.

-큭, 커어어….

이케가미 의원의 상태가 이상하다. 마치 등줄기에 얼음을 넣은 것처럼 어깨가 얼굴에 딱 붙는다. 눈은 질끈 감기고 찡그린 코에는 주름이 가득 생긴다. 그 아래 입은 쩍 벌어져 다물릴 줄 모르고 고개는 좌우로 핑핑 돌아간다.

-허어억! 허허으!

목구멍에선 밭은 숨소리만 새고 팔다리는 발작을 일으켜 관절이 팍팍 꺾인다.

-이런 제길!

빈우가 땅바닥을 구르는 이케가미 의원의 상태를 살핀다.

이는 보안 프로그램의 강제진압 발동에 착용자가 격렬히 저항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이케가미 의원의 두뇌 칩 속에 있는 보안 프로그램은 그가 적성대상인 샤다이에게 중요한 정보를 말하려고 하자, 바로 착용자의 자유를 빼앗는 강제진압 상태로 들어갔고 이케가미 의원은 그것에 격렬하게 저항하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소이치로! 소이치로!

갑작스러운 이케가미 의원의 발작에 후코가 걱정스레 다가왔다.

-아니, 이케가미 소이치로. 괜찮은가? 설마? 네 놈이?

알탄훼아나도 그의 발작에 놀랐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빈우를 경계했다. 아까 기밀 유지를 위해 이케가미 의원을 죽이려 했던 전적이 있는 빈우였으니 의심할 법만도 하다.

-네놈들이 허방다리 짚는 것은 우주적으로 유명한데 넌 특히 더하구나. 난 아냐.

빈우는 투덜거리면서도 이케가미 의원의 두뇌 칩에 접속해보려 했다. 그러나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상원의원의 두뇌 칩이다.

현재 빈우가 가진 자재와 실력으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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