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일행이 우왕좌왕할 무렵, 이케가미 의원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소이치로!
후코의 놀란 전자파와 함께 이케가미 의원의 헬멧 창에 핏방울이 흩뿌려진다. 혀를 깨문 것이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입에서 캡슐 하나가 떨어진다.
-헉, 헉. 괜찮네. 이제 괜찮아.
간신히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이케가미 의원이 어눌한 말투로 일행을 안심시키려 했다. 허나 빈우는 전혀 안심하지 못했다. 경험자인 그가 보기에 저 캡슐은 십중팔구 설하정맥에 삽입된 해킹 캡슐이다. 혀를 깨물면 혀 밑의 혈관에 든 캡슐이 깨져 그 안에 든 해킹용 나노 머신들이 뇌로 들어간다. 일시적으로 보안프로그램을 우회할 수 있겠지만 뇌와 칩에 영구적 손상이 오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의원님, 가능하시겠습니까?
빈우의 걱정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더 움직일 수 있습니까, 부터 발 가르단 하스에게 그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까지.
-물론. 발 가르단 하스와는 대화할 수 있어.
아무래도 그에겐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다리를 짚고 일어나 몸을 추스르는 이케가미를 본 후코가 알탄훼아나를 재촉했다.
-서둘러줘. 소이치로의 상태가 안 좋아. 빨리 가야겠어.
-아, 알겠소.
일행은 다시 샤다이의 중력장으로 날아 빠른 속도로 목적지까지 날아갔다.
-저기야.
잠시 후, 또 다른 거대 공동의 입구에 도착한 일행들에게 후코가 가리킨 것은 거대한 플라스마 구체였다.
이 구체는 수많은 플라스마 줄기들이 복잡한 형태로 엮이고 꼬여 거대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그 주위로 다수의 발 가르단 하스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저게 지표에서 가장 가까운 보조 뇌야. 여기라면 발 가르단 하스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어.
-오오, 고마워 후코.
그토록 기다렸던 해답을 마침내 눈앞에 둔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감격에 겨워하며 발걸음을 이끌었다.
-잠깐, 가는 것은 소이치로 혼자만이야.
후코가 이케가미의 뒤를 따라가는 빈우와 알탄훼아나를 제지했다.
-이곳은 보조라고 해도 뇌라서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순 없어. 또 지금은 발 가르단 하스가 부상을 입은 상태라서 경계가 더 심해. 일단은 내가 접속해 허락을 맡아 놓을 테니 소이치로가 먼저 가서 대화해.
이어서 플라스마 구체에서 거대한 줄기 하나가 뻗어 나왔고 이케가미 의원이 그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몸과 정신 둘 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지만, 빈우는 다른 이들과 함께 입구 쪽 통로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플라스마 줄기와 대면해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할 기회를 얻은 이케가미 의원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갑소, 발 가르단 하스. 난 연방의 상원의원인 이케가미 소이치로라고 하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아마도 둘 사이의 기밀 회선으로 대화하는 듯했다.
다시금 이케가미 의원의 외침이 들린다.
-발 가르단 하스! 나는 이케가미 소이치로라고 하오. 그대에게 물을 것이 있어 찾아왔소.
잠시 뒤, 이케가미 의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후코, 발 가르단 하스에게서 대답이 없어.
-아니야, 소이치로. 먼저 소이치로가 발 가르단 하스에게 말을 걸어야지.
-응, 그런가? 주파수가 다른 건가?
허둥대며 무선회선을 조절하던 이케가미 의원이 갑자기 움찔하고는 멈춰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저앉더니 경련을 하기 시작했다.
-의원님!
다시금 발작이 일어난 것을 본 빈우는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후코가 급하게 말렸다.
-안돼! 여기서 움직이면 저들이 반응할 거야!
후코가 촉수로 가리킨 곳에서 보조 뇌를 관리하던 발 가르단 하스인들이 빈우에게 감지범위를 좁히는 게 보였다.
-저들의 최우선순위는 보조 뇌의 호위야. 내 부탁은 들어도 명령은 듣질 않아. 그러니 내가 갈게.
-걱정 말게, 김 소령. 안심해, 후코.
그때 갑자기 쉬어버린 이케가미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쉭쉭 대는 그 소리가 불길하다.
-이제 알았어. 이제… 이제야 간신히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가 되었구먼….
부들대며 몸을 일으킨 그가 이쪽을 돌아본다. 목이 정상적이지 않은 각도로 돌아가 빈우와 눈이 마주친다. 허옇게 백태가 낀 눈, 일그러져 송곳니가 튀어나오고 있는 입.
빈우는 저런 것을 본 적이 있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오브리가도의 특수전 사령부에서.
바로 워프 비스트였다. 이케가미 의원마저 워프 비스트에 감염되고 만 것이다.
반사적으로 코일건을 잡으며 알탄훼아나를 돌아본 빈우는 그녀의 얼굴을 순식간에 읽어냈다. 샤다이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비슷하다면 알탄훼아나의 얼굴에 뜬 표정은 경악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후회였다.
그녀도 이 자리의 주연이 아닌듯하니 일단 지금은 여기서 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머뭇거리며 허리의 클레이모어를 더듬는 알탄훼아나의 관자놀이에 코일건을 단발로 쏴 땅바닥에 고꾸라트린 다음, 케이블로 묶으려고 할 때 후코가 말렸다.
-무슨 짓이야!
갑자기 컨커러의 동력에 이상이 생기며 구동계가 정지해 장갑복의 움직임이 멈춘다. 잠깐 정지했던 동력이 다시 살아나자 켜지는 통신시스템으로 후코의 전자파가 들려온다.
-지금 소이치로는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했어. 또 할 거고. 그러니 방해하지마! 절대!
다시 눈을 들자 김빈우와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눈이 마주친다.
한데 워프 비스트의, 아니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눈동자는 아직 살아 빛나고 있다.
저 눈은 의지를 뺏기거나 굴복한 자의 눈이 아니다. 길항을 이루던 승부에서 건곤일척의 수를 던져 승리를 따낸 자의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이 슬프게 웃었다.
-딸에게, 히토미에게 전해주게. 아빠가 미안하다고.
그 말을 끝으로 이케가미 의원이 다가오는 플라스마 줄기로 몸을 던졌다. 그에 맞춰 자기장에 묶여있던 플라스마들이 터져 밖으로 흘러나온다.
자기장에서 풀려난 플라스마들은 외부에 노출되자 급속도로 냉각되어 기체로 상전이 한다.
다음으로 식어서 800도에 달하는 플루오린화수소가 폭발하듯 이케가미 소이치로를 덮쳤다.
-의원님!
-소이치로!
반응이 이상하다. 너무나 빠르다. 지금 이케가미 의원이 입고 있는 우주복은 비교적 레벨이 높은 적대적 환경용 우주복이라, 저 정도의 불산에는 거뜬히 견뎌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우주복은 불산의 증기에 반응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어서 플루오린화수소가 더더욱 고온을 띄더니 플라스마 화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불산에 절여진 이케마미 의원도 달궈져 기화한다.
-비켜!
더 이상 참지 못한 빈우가 후코를 뿌리치고 뛰쳐나갔지만 얼마 가지도 못했다. 갑자기 그가 달리던 통로가 좁혀져 오기 시작한다. 관리자인 발 가르단 하스인의 허락도 없이 보조 뇌 방으로 들어오는 빈우를 보고 막으려 한 것이다.
-안돼! 그는 소이치로의 친구야! 다음 대화자야!
후코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통로가 압박해온다. 발포 암석이지만 주변의 지형 자체가 변해 사방에서 짓이겨 오자 컨커러도 발이 묶여버렸다. 그런 와중에 빈우는 사지를 쭉 펴서 좁혀오는 통로를 간신히 막고 섰다. 어떻게든 컨커러의 출력으로 버터 볼 만한 압력이다.
자세가 안정되자 빈우는 장갑복의 움직임을 고정한 다음 뒤쪽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치명적인 환경에 맨몸으로 마주하자 두뇌 칩이 격렬한 경보를 울렸다. 빈우는 그것을 무시했다. 경보와 함께 돌아오라는 후코의 애타는 통신도 무시했다.
장갑복으로 통로를 확보한 빈우는 어떻게든 이케가미 의원을 살려볼 요량으로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바닥에서 꿈틀대는 상원의원을 안아 올리자 강화된 맨몸의 육체에 고온의 플루오린화수소가 스멀스멀 올라와 감싼다.
피부 내 방탄 섬유 막이 부풀어 오르고 체내의 비상용 마이크로 머신들에게 말 그대로 비상이 떨어진다. 두뇌 칩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 뇌 내 마약을 듬뿍 쏟아붓게 하고 격통을 달랜다.
이어서 빈우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며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비명을 삼켰다.
빈우의 품에서 아직 살아있는 이케가미 의원의 두뇌 칩이 상원의원용으로 보강된 특제 보안 두개골 안에서 전파를 뿌려댄다.
-히토미, 히토미, 미안하다, 히토미, 히토미….
어느 누구도 아닌 딸아이에게로 향한 사과가 빈우에게 들려온다. 답을 들을 수 없는 사과가 답을 할 수 없는 자에게 쏟아진다.
간신히 컨커러에 도달한 빈우는 이케가미 의원의 남은 일부를 바닥에 내려놓고 장갑복 속으로 들어갔다.
산과 열에 피부는 물론이고 눈, 코, 귀, 입. 모든 감각기관이 심각한 치명상을 입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장갑복의 센서가 보고 들은 정보가 빈우의 두뇌 칩에 바로 전해진다.
-소이치로는 어디 있지?
HUD 장갑복의 모든 정보가 경고를 울리고 있다. 두뇌 방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플라스마 구체에서 플라스마 줄기들이 뻗어 나와 이쪽으로 향한다. 설상가상으로 뒤쪽의 통로가 아예 막혀버렸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두뇌 방에 갇혀버린 것이다.
빈우는 컨커러를 움직여 이케가미 의원의 일부라도 구해내려 했다. 손으로 그를 안아 올리고 응급처치를 하려고 했다.
허나 고온의 플라스마가 다시 퍼져 보조 뇌 방을 가득 채우자 컨커러의 방어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해 버렸다. 이제 컨커러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졌지만, 그 대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빈우는 간신히 뻗어 내린 손안에서 이케가미 의원이 산 채로 불타고 녹으며, 기화하는 것을 그대로 봐야만 했다.
-꼴… 좋구나… 내… 승리다….
마지막 남은 두개골마저 달각거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유언이 드문드문 끊기며 빈우의 두뇌 칩에 전해진다.
-히토미… 넌… 아빠…처럼… 살지… 말….
유언은 채 끝맺지도 못하고 플라스마에 휩싸여 사라졌다. 빈우의 고함은 타버린 성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쉭쉭 대기만 한다.
이제 빈우와 컨커러는 숙인 채 방어막이 작동해버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일렁이는 플라스마 속에 놓여있었다. 컨커러의 장갑이 대단하다 해도 이런 고온의 플라스마를 상대로는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
방어막이 작동하고 있는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있지만, 동력이 다해 꺼져버리면 빈우도 곧 이케가미 의원 꼴이 날 것이다. 차이는 마지막까지 걸리는 시간뿐이다.
장갑복의 전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경보음이 종류별로 울려댄다.
이윽고 컨커러의 모든 전력이 소진되어 방어막이 사라졌다.
곧이어 보조 뇌 방의 플라스마가 컨커러와 빈우마저도 덮쳤다.
* * *
“안녕?”
지금 빈우의 눈앞에는 빈우가 서 있었다. 정확히는 빈우의 모습을 한 무언가다. 빈우는 그것의 정체가 발 가르단 하스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넌 설마 발 가르단 하스인가?”
“알잖아? 아니 그래도 대답할게. 맞아, 난 발 가르단 하스야. 그리고 여긴 네 머릿속이고….”
빈우 머릿속의 발 가르단 하스는 빈우의 얼굴을 한 채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역시 전자파 탐지기관 외의 감각기관을 가진 종족과는 대화하기가 힘들군. 왜 다른 외부 감각기관을 거쳐야만 대화가 가능한 거지? 이런 식이면 내 분신체와는 몰라도 나와는 대화하기 힘들어….”
자신의 형태를 흉내 낸 발 가르단 하스가 하는 말에서 몇 가지를 가정해낸 빈우가 질문했다.
“지금 내 두뇌 칩에 직접 접속한 건가?”
“그래, 내 분신체나 샤다이는 신경계와 제법 거리가 있어도 직접 대화가 가능한데 너희 종족과는 그게 잘 안되더군.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 방법을 썼어. 너희들은 내 신경계를 이루는 별 심장의 불길과 극단적으로 접촉해야만 대화가 성립하는군….”
그러면서 발 가르단 하스는 자신의 손안에 하나의 배 형상을 만들어 보였다. 블랙 랜스다. 아까 궤도에서 플라스마에 휩싸여 녹아가던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까는 착각했어. 내 별 심장의 불길에 휩싸여서 애타게 대화를 시도하길래 이케가미 소이치로인줄 알았는데 엉뚱한 사람이 받더란 말이야. 이 자도 네 동료지?”
그의 말대로라면 궤도상의 오르 함장도 발 가르단 하스의 메세지를 받은 것 같다.
“그래. 내 동료다. 단, 그가 너에게 했던 공격은 전부 내가 명령했던 일이야. 그에겐 죄가 없어.”
“그건 신경 쓰지마. 표피만 상한 정도니까. 그리고 그때 너희 동료를 공격할 때 썼던 불길도 샤다이들이 빌려 가긴 했지만 나와 내 형제의 거야. 피차 마찬가지지….”
다행히 발 가르단 하스는 태스크 포스 373이 가한 공격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빈우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말하더군. 너도 나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고….”
“이케가미 의원은 어떻게 되었지?”
빈우의 질문에 발 가르단 하스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그는… 마지막에 나와 대화를 나누었어. 그가 원했던 대로. 뭐, 그전엔 다른 놈의 눈과 귀를 빌려서 대화를 엿들었을 뿐이지만….”
“무슨 대화를 했는지 자세하게 알려줘.”
마치 두뇌 칩으로 대화하는 것 같다.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발 가르단 하스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 내용은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것이야. 네 것이 아니지.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질문과 김빈우의 질문이 겹치는 게 있다곤 해도 너의 질문이라면 네 스스로 질문을 해. 그리고 직접 대답을 들어….”
“질문은 몇 개까지 할 수 있지? 시간제한은?”
일단 시작하기 전에 사전정보를 얻어놓는 게 중요하다.
“일단 너에겐 대화할 자격이 있으니 개수 제한은 없어. 그리고 시간제한? 나는 네 머릿속에서 정보를 보는 중이야. 그러니 시간의 의미는 크게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