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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69화 (69/301)

69화

“내 운명이… 워프 비스트와 마주치게 될 운명이 이케가미 의원 때문에 바뀌었다고? 헌데 그건 이미 첫 번째 질문과 관련된 것 아닌가? 그가 워프 비스트로부터 우리 인류를 구해달라고 했으니 네가 그걸 들어주면서 나도 놈들에게서 멀어진 것 아냐?”

“그래, 분명히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계단을 내려온 자들로부터 너희 종족을 지킬 방법을 원했지. 허나 아까의 예처럼 우연일 때의 경우라면 모를까 너처럼 계단을 내려온 자들과 밀접하게 관계된 놈들은 가만히 있어도 필연적으로 놈들에게로 찾아가게 돼 있어. 하지만 그는,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단순한 해결책만이 아니라 반격의 기회마저 선택했지. 대가는 바로 그의 희생, 죽음으로.”

이케가미 의원의 죽음이라면 워프 비스트로 변하다가 보조 뇌의 플라스마에 타 죽은 것이다. 발 가르단 하스는 그것을 대가이자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줘.”

“네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세히 해주지.”

발 가르단 하스가 둘 사이에 띄운 영상은 보조 뇌가 있던 공동에서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갈망하던 이케가미 의원이었다.

-만나서 반갑소, 발 가르단 하스. 난 연방의 상원의원인 이케가미 소이치로라고 하오.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나와 대화를 하려고 왔을 때 그는 영 방법을 모르더군. 대화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 카르마가 있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되돌려 보낼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어? 난 꽤 부상을 입었으니 기운을 회복해야 할 테고.”

-발 가르단 하스! 나는 이케가미 소이치로라고 하오. 그대에게 물을 것이 있어 찾아왔소.

이어서 빈우의 감각기관이 당시의 발 가르단 하스의 것과 약간 동기 되었다. 그 당시 보조 뇌가 감지하고 있던 것은 입구에 있던 빈우와 알탄훼아나, 후코 그리고 바로 앞에 있던 이케가미 의원이다. 이것들이 단순한 시각정보가 아니라 복잡한 스펙트럼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헌데 이케가미 의원의 스펙트럼이 조금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빈우의 것이지만 간혹 알탄훼아나와 비슷한 파장이 섞여 나왔다.

“그래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잠시 살펴봤더니 웬걸, 그의 몸에 계단을 내려오는 자들이 내려올 준비가 되어있더란 말이지. 그래서 그놈들이 집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도록 내가 손을 조금 썼지. 놈들은 나와 대화할 자격이 있거든. 그리고 다음엔….”

이케가미 의원의 스펙트럼이 급변한다. 그리고 그의 형상이 변해간다. 워프 비스트의 것으로.

“네가 이케가미 의원을 워프 비스트로 변신시킨 거였나?”

“그래, 내가 계단을 연결해서 그를 변신시켰다. 평상시의 너희 종족들이라면 이리 쉽게 변신시킬 수 없지만, 계단이 연결될 기미만 있으면 쉬운 일이지. 워워, 그렇게 생각하지 마, 결론을 말하자면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대단히 만족했어. 왜냐면 나와 대화가 가능했으니까.”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발 가르단 하스는 조금 전의 일을 회상하더니 감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정말, 정말 대단한 업을 가진 존재였어. 얼마나 많은 생명이 그의 손에 살아났을까,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그의 결정에 죽어갔을까. 너희들의 황제 이후로 찾아온 자들 중에 이 정도의 업을 가진 이는 없었지. 없고말고, 비견될 이라면 너희 대통령 정도겠지.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말이야, 그 와중에도 그는 계단을 내려온 자들에게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부탁까지 했다는 거야. 뭐, 나와 대화를 할 사람이었으니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걱정 말게, 김 소령. 안심해, 후코.

-이제 알았어. 이제… 이제야 간신히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가 되었구먼….

이케가미 의원은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순간, 이미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이다.

“질문과 부탁은 모두 네 가지였어. 하나는 말했다시피 계단을 내려온 자들로부터 너희 종족을 지킬 방법. 두 번째는 놈들의 정체. 세 번째는 알탄훼아나에게도 대화의 기회를 줄 것. 마지막은 중요하지 않으니 이야기가 좀 진행된 다음에 해줄게.

뭐, 그에겐 질문할 게 잔뜩 있었지만, 시간이 그만큼 없었던 게 아쉬웠어. 만들어진 계단으로 놈들이 미친 듯이 내려왔으니까 좀 있으면 몸을 빼앗길 상황이었지.”

이케가미 의원의 목이 돌아가고 눈이 뒤집히고, 이와 손톱이 날카로워져 간다.

“해결책에 대한 여러 가지 답을 들은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반격의 기회를 선택했어. 나를 이용하는 방법이었지. 난 보통 답만 가르쳐 주고 직접 움직이지는 않지만 내가 자초한 일에다 직접 가르쳐 준 방법이니 나 스스로가 마무리 지어야겠지. 뭐 그래도 딱히 어려운 것은 아니었어. 그의 몸에 계단이 생겼고 그게 나와는 직접 연결이 되었으니까.”

이케가미 의원의 몸속으로 발 가르단 하스의 플라스마 신경계가 들어간다. 그제야 빈우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 생긴 계단으로 발 가르단 하스의 신경계가 휘감아 올라가는 것을. 그리고 신경계들이 계단을 부수고 불태우는 것을.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몸을 통해 계단에 접속해 손을 좀 썼지. 완전히 부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못 쓰게 만드는 건 가능해. 그래서 아까 말했던 것처럼 당분간 너희 종족들에게 새로운 워프 비스트의 발현은 없을 거야. 당분간은.”

“설마… 이케가미 의원이 자신의 죽음을 택했다는 거야?”

“내가 그 방법을 알려주니 망설임 없이 선택하더군. 물론 딸의 일로 잠시 후회하긴 했지만 말이야.”

-딸에게, 히토미에게 전해주게. 아빠가 미안하다고.

-히토미, 히토미, 미안하다, 히토미, 히토미….

“그는 자신의 업이 딸에게 이어질까 두려워했어. 자신의 죄가 너희 종족에게 넘어갈까 봐 노심초사했지.”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몸을 대가로 워프 비스트의 발현을 막고 그들에게 반격까지 한 것이다.

빈우는 문득 이케가미 의원이 보였던 미소가 떠올랐다. 워프 비스트에 몸이 잠식되면서도 한 방 먹였다며 지었던 미소가. 그리고 들린다. 자신의 손안에서 죽어가던 그의 마지막 말들이.

‘꼴… 좋구나… 내… 승리다….’

‘히토미… 넌… 아빠…처럼… 살지… 말….’

“계단은 뭘 의미하지?”

빈우의 질문에 발 가르단 하스는 쓴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했다. 워프 비스트와 관련된 정보라 그런지 아예 묶여있는 모양이다.

“좋아, 그렇다면 이케가미 의원은 왜 워프 비스트의 정체를 해결방법 뒤에 물었지? 보통은 문제나 대상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해결방법을 알아내는 게 순서 아닌가?”

“일단 계단을 내려온 자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케가미 소이치로도 짐작하고 있었더라고, 그도 울토르 프로젝트에 크게 관여했으니까. 자세한 정체를 나중에 물은 것은 자신 다음 질문자가 알탄훼아나이기 때문이지. 계단을 내려온 자들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 알고 난 다음에는 그 내용에 따라서 약속을 어겨서라도 질문 기회를 뺏을 속셈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뭐 뺏지는 않았어.”

알탄훼아나. 샤다이의 호민관이라고 했다. 오스카 기지에서 라캉 중령을 죽이고 빈우에게 사로잡혔다가 오브리가도 궤도기지에서 워프 비스트를 부르고 탈출했다.

하지만 아까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스펙트럼이 알탄훼아나의 것과 유사하게 변했었다. 이는 워프 비스트가 샤다이의 것이란 증거일 수도 있지만 이케가미 의원이 워프 비스트로 변할 때 알탄훼아나가 보여준 표정에 따르면 또 다른 내막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울토르 프로젝트와 워프 비스트, 샤다이는 어떠한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워프 비스트는 샤다이의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군.”

“김빈우. 여긴 네 생각이 다 들리는데… 아니지.”

“왜?”

고개를 들자 빈우의 얼굴을 한 발 가르단 하스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너의 잠겨있는 기록에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려 하지 마. 풀릴 기미가 보이니까. 바깥에서라면 몰라도 여기서 네 보안이 풀려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짐작이 안가. 확실한 건 너한테 대단히 안 좋은 영향이 미친다는 거지. 난 두 번씩이나 내 밥상을 뒤엎긴 싫어.”

조금 전 빈우는 죽어가는 이케가미 의원을 구했었다. 의도치 않게 둘의 대화를 방해한 셈이다.

“혹시 내가 이케가미 의원을 구하면서 뭔가 잘못된 게 있나? 넌 아까 이렇게 말했잖아. 내 운명의 예정이 이케가미 의원 덕분에 바뀌었다고. 안전하다곤 하지 않았지.”

“빨리도 묻는다. 헌데 늦은 만큼 날카롭군.”

그때 빈우의 뒤로 팔이 불쑥 나타나 그의 목덜미를 감싼다. 그리고 촉촉한 입술이 빈우의 귀를 핥으며 속삭인다.

“어머나? 걸음도 빠르셔라.”

돌아보지 않아도 뒤에 있는 것은 야시시한 메이드 복을 입은 아나스타샤임을-그 형태를 한 워프 비스트임을-알 수 있다.

“나, 못 움직이는데. 나, 업히고 싶은데에?”

뒤에서는 워프 비스트가 속삭이고 앞에서는 발 가르단 하스가 구시렁댄다.

“축하한다. 너는 계단을 내려오는 자들보다 앞질러가게 되었어.

뭐, 길 가다가 뒤돌아서면 높은 확률로 워프 비스트가 있을 거다. 더 이상의 발현을 막았지만 이미 내려온 놈들은 어떻게 못 해.”

망사로 된 장갑이 빈우의 가슴을 쓰다듬고 혀가 목덜미를 핥는다. 아나스타샤의 혀가 자신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빈우는 움찔거린다.

“하지만 너와 그들은 한때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 당분간 그들은 고향으로 내려오기 힘들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넌 그들의 목적지로 먼저 가게 될 거야.”

목적지, 울토르 프로젝트, 샤다이, 워프 비스트. 빈우의 생각이 많아지자 머릿속이, 아니 주변이 그의 기억과 기록으로 혼잡해진다.

“야, 인마. 밥상 뒤집지 말라니까.”

짜증 내는 발 가르단 하스의 말에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빈우가 다시 질문했다.

“이케가미 의원의 마지막 부탁은 뭐지?”

그 질문에 발 가르단 하스가 지은 표정은 빈우의 기억에 있는 자신의 표정이었다. 생일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찬 식탁을 보며 지었던 미소다. 놈은 그 미소를 짓고 빈우를 보고 있었다.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마지막 부탁 말이지? 그건 김빈우, 네가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과거에 알던 정보국 소령이고 울토르 프로젝트에 찬성하고 있다면 바로 죽여달라고 했어.”

여기는 빈우의 머릿속이지만 바깥에 있는 빈우의 육체는 고온의 플라스마에 바비큐 되고 있으며 시시각각 오버 쿡 되는 상황이다. 발 가르단 하스가 시간만 끌어도 불쌍한 장갑 보병은 겉과 속이 모두 바삭바삭해진다.

“좆 됐네, 손도 발도 못 쓰고 여기서 뒤지겠구먼.”

빈우는 열심히 자신의 모습을 한 발 가르단 하스를 쥐어 패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새끼 봐라, 아가리하고 손발이 따로 놀잖아? 말 좀 듣지? 죽일 거면 그냥 여기서 태워버리지. 왜 힘들게 너랑 말씨름해야 하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빈우는 잠자코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발 가르단 하스는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살펴본 김빈우 넌… 이케가미 소이치로에게서 봤던 김빈우와 확실히 달라. 인격도 그렇고 카르마의 방향성 자체가 틀려. 마치 젊은 날의 김빈우로 회춘한 것 같다고 할까?”

“인격이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역시 원인은 트리니티 때문일까, 아니면 정보국에서 잠가 놓은 울토르 프로젝트 때문일까. 만약 트리니티가 풀린다면….”

“아니, 위험하니까 그런 생각 좀 그만하라고. 너 정도면 꽤 진미이긴 한데… 앞날이 더 기대된다.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보내줄게. 네 동족들과 부대끼며 좀 더 많은 카르마를 쌓아줘.”

“잠깐, 아직 내 질문은 끝나지 않았어.”

그때 갑자기 다가온 발 가르단 하스의 집게손가락이 빈우의 이마 속을 쑥 파고들었다.

“말했지? 너 지금 간당간당해. 여기서 조금만 더 핵심정보에 다가갔다간 머릿속의 정보가 풀려버린다? 실제 세계가 아닌 바로 여기서. 그러면 앞날이 창창한 진수성찬이 엎어진다고. 난 그 꼴은 못 보지. 가, 가서 죽이고 죽여. 네 카르마를 쌓고 또 쌓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나에게로 다시 와. 내가 도와주지.”

아까부터 느껴지던 거지만 발 가르단 하스는 상대와의 대화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었으나 역시 가장 우선하는 건 자신의 식사다.

“안 온다면?”

“네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지. 너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니까.”

히죽 웃는 그의 말을 끝으로 빈우 주변의 풍경이 사라졌다. 발 가르단 하스에게서 쫓겨났다.

* * *

“주인님? 주인님!”

눈을 뜨자 아나스타샤가 보인다. 그녀의 눈물이 빈우의 얼굴에 떨어진다.

“아샤?”

빈우는 아나스타샤가 흘리는 눈물을 맞으며 두뇌 칩으로 시간과 위치 정보를 조회해 보았다. 시간은 발 가르단 하스의 플라스마 신경계에 휘감긴 때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이고 위치는 발 가르단 하스 궤도의 블랙 랜스 의무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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