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팀장님, 둠 치킨에서도 근무하셨더군요.”
“아, 그거 말입니까?”
빈우의 표정은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라는 표정인 반면 파트리샤의 얼굴에선 김이 빠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는 군사정보국 소속인 내가 왜 연방 중앙정보국 쪽에 갔냐는 거죠?”
“네.”
“그게 말입니다, 조금 거시기한데.”
그러면서 빈우는 이쪽으로 걸어와 파트리샤 앞에 놓인 닭가슴살 하나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생성기가 아닌 자연산 닭가슴살, 물론 소스는 군용 영양보충제며 둠 치킨의 인기상품 중 하나다.
“알다시피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은 각각 정보 사령본부 산하의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이 정보수집 및 요원파견 목적으로 굴리는 회사입니다. 처음엔 영내 식당으로 시작했죠. 군 시설이 가는 곳마다 가니까 활동하기 편하거든.”
정보조직에 있어 합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거점의 확대는 매우 귀중하다.
“그러다가 슬슬 덩치가 커지며 민간 영역으로 나서다 보니 회색지대가 생겼고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얼굴마담으로 세운 바지사장들께서 너무 일을 잘해주셔서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군기지 주변은 민간구역이다. 군납회사가 활동하면 안 되는 곳이긴 하지만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은 편법을 써서 군기지 외에서도 장사를 하고 있었고 인기도 꽤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길 법도 하다. 다른 정보 부서에서 직접 견제라던가 상부 기관에 감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태클이 들어올 수도 있다.
아룹과 파트리샤는 빈우가 설명할 문제에 대해 궁금해졌다.
“장사가 너무 잘 돼.”
빈우가 심각한 얼굴로 뚱딴지같은 말을 하자 집중했던 둘은 서로 마주보았다.
“정확한 금액은 기밀이라 말은 못 하는데, 회사의 수익이 정보 사령본부에서 할당되는 예산에 비교해서 무시 못 할 수준까지 올랐어요. 민간에서 신나게 팔아 재끼다가.”
그건 좀 문제가 있다. 위장용으로 내세운 부서가 너무 유명해지거나 규모가 커져 주목을 받으면 본래의 활동이 곤란해진다. 아룹과 파트리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쯤 해서였죠. 둠 치킨이 치고 들어온 게. 얘들이 군납 업체로 입찰했을 때 사령본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우리 쪽에선 이걸 선전포고라고 봤죠. 근데 까고 말해서 정보 사령본부랑 중앙정보국이랑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하거든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보 사령본부가 하위부서 닥닥 긁어 덤벼도 저쪽에선 중간급 두어 개 나오면 거기서 정리되는 수준이야.”
당연한 얘기다. 군수회사와 일반 민간 기업을 비교하면 견적이 나온다. 시장의 차이가 체급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쪽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교전 관계에 있는 적성 외계인 세력에 대해서만 첩보 활동, 방첩 활동을 하는 연방군 산하 정보 사령본부와 비교하면 연방 중앙정보국은 아예 독립적인 부서로 존재하고 활동 영역도 연방 외 모든 구역이다.
“당시 분위기 진짜 뭐 같았죠. 만나서 하는 얘기라곤 뭐, 중앙정보국이 미쳤냐? 아니 우리가 너무 해 먹어서 빡쳤나? 이런 거였으니.
그래서 일단 흔들어 볼 셈으로 요원을 파견하는 시늉을 하기로 하고 제가 입사 지원했는데 붙었네?”
당시 정보국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당연히 떨어지리라 생각하고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 정도로 빈우를 지원시켰던 건데 그게 철썩 붙었으니 말이다. 즉 정보 사령본부에선 중앙정보국이 이쪽의 도전을 받아들인 셈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아니, 솔직히 군사정보국 대위가 지원한다면 얘들도 눈치챌 건데 말입니다. 이게 붙다니. 그래서 대체 무슨 꿍꿍인가 싶어 보니까 이 새끼들이 나를 또 몰라?”
“어? 왜 몰랐대요?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를 못 하겠다는 파트리샤의 질문에 빈우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사과에서 나에 대한 정보가 의도적으로 누락됐다더라. 그래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뽑은 거야.”
“흠, 정보국에서 손을 쓴 겁니까? 아니면 보안국?
아룹의 질문에 빈우는 계면쩍다는 듯이 옆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뇨, 중앙정보국 안에서 지네들 파벌끼리 치고받는 중이라 그 와중에 제 정보가 공중에 뜬 거였습니다. 그래서 뒤늦게야 제 정체를 알고선 이번엔 중앙정보국 안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지요. 이 새끼들이 우리랑 해보자 이거지? 이러면서.”
연방의 내로라할 첩보부서들에서 이딴 슬랩스틱 코미디를 했단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룹과 파트리샤는 몹시 우울해졌다. 바로 이 두 사람이 저 영구와 맹구들이 보내는 정보를 기반으로 작전을 나가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 낸 건가 싶은 아룹이었지만 말은 낸 김에 끝을 봐야 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된 거였습니까?”
“둠 치킨의 민간업자가 실적 올리려고 비밀리에 입찰을 넣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서로 간에 연락을 안 하고 저 꼴리는 대로 꼬장 피우고 자존심 세우다가 일이 점점 커졌던 거죠. 먼저 연락했으면 좋게 끝났을 일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우리끼리 어버버 하는 꼬락서니를 본 상원에서 감사 나와서 좆 됐습니다.”
“어이쿠.”
“옴마야.”
상원에서 감사가 나왔다는 얘기에 무서울 게 없는 아룹과 파트리샤도 어깨를 움츠렸다. 주로 음지에서 활동하는 특수전 사령부 소속인 만큼 보안국이나 기타 수사기관의 접근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이들이지만 상원에서 나오면 얘기가 다르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드물게 아룹이 말을 더듬었다.
“지금 있는 대가리 위쪽으로 싹 물갈이했습니다. 군사정보국의 이노우에 고토 국장이나 보안국의 다샤 쿠사키나 국장이나 둘 다 준장인 거 보면 답 나오죠. 그리고 한 번만 더 이딴 짓거리 하면 세무조사 나올 거라며 으름장을 놓던데요. 뭐 우리야 세금이랑 크게 인연이 없다지만 중앙정보국은 아예 자지러지더군요.”
부서 터트리는 데 제일가는 방법은 역시 금전 관계 조지는 거다.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은 비교적 규모가 영세한 편에 군납이라 면세다. 반면 둠 치킨은 자체적으로 항성 간 물류유통을 하는 큰 회사에다, 중앙정보국에서 활동자금을 세탁하는 곳이기도 해서 세무조사로 깃털 하나만 뽑아도 곡소리가 난다.
“그래서 대화가 중요해요. 서로 간에 궁금한 거나 켕기는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상담해서 트러블을 사전에 방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발 가르단 하스의 사건 직후, 지금 상황에선 꽤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다. 빈우는 다시 닭가슴살 하나를 쏙 집어먹으며 파트리샤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또 다른 질문? 여기서 쑥떡 찰떡 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 봐.”
“발 가르단 하스에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질문은 빈우의 발에 채이던 파트리샤가 아니라 옆에 있던 아룹에게서 나왔다. 그것도 갑자기 본론으로.
아룹이 아까 둠 치킨에 대해 질문을 꺼낸 것은 떠보기 위함이었다. 빈우가 어느 정도의 기밀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발 가르단 하스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련된 대화를 피한다면 아룹은 더는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작전과 직접 관계된 일이 아닌 데다 정보국 소속의 빈우가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물어선 안 되고 알아선 안 되는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케가미 의원님과 제가 발 가르단 하스에서 겪었던 일 말이죠?”
“네.”
허나 빈우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의외로 쉽게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마침 두 사람이 전산실에 있길래 안성맞춤이다 싶어서 이리로 온 거죠.”
전산실은 장소의 특성상 비밀임무를 띠는 블랙 랜스 안에서도 보안 레벨이 상당히 높다. 즉 블랙 랜스 자체가 태스크 포스 373의 모함인데도 일부러 이런 곳을 골라서 하는 얘기라면, 그건 꽤 위험한 내용이란 뜻이다.
“일단 먼저 경고부터 하죠.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반드시 두 사람만 알아두세요. 다른 팀원에게 발설해서 휘말리게 만들면 안 됩니다. 우선 위르겐은 복무기간 끝나면 대학에 복학할 거고 모니카는 이쪽과는 상관없는 연구직, 우지와 오르 함장님도 제가 알려줄 일과는 인연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잠깐의 침묵 뒤 아룹과 파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발 가르단 하스는 단순한 보호 행성이 아니었습니다. 내부에 복잡한 플라스마 신경계를 갖춘 정보생명체였습니다. 추정 연령은 수십에서 백억 년 이상. 아마 지구제국의 황제와도 접점이 있는 것 같고 보호 행성으로 기록된 것은 의도적인 은폐로 보입니다.”
갑작스러운 정보에 아룹과 파트리샤는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 빈우가 헛소리나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그래서 잠자코 듣기로 했다.
“오래 산 만큼 정보도 많고 머리도 좋은 모양이에요. 이케가미 의원은 워프 비스트의 해결법을 알기 위해 발 가르단 하스를 찾아갔습니다. 헌데 이미 의원 주변에 적이 많았던 터라 두뇌 칩에 보안을 위한 행동 강제 프로그램을 넣고 나서야 혼자서 움직일 수 있었죠.”
워프 비스트라면 태스크 포스 373도 한번 교전한 적이 있다. 오브리가도의 특수전 사령부는 놈들에게 기습을 받기까지 했고. 이케가미 의원은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 대해서 이미 위험성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 것이다.
직접 경호를 담당했던 아룹은 그 정도 되는 인물이 두뇌 칩에 강제를 받아가며 홀로 움직였단 사실에,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이 그렇게 없었을까 싶었다.
“이케가미 의원은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하기 위해 일 년 정도 교섭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근데 4 주전 토끼몰이 작전의 여파로 발 가르단 하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홀더 전대의 반물질 폭탄이 발 가르단 하스의 플라스마 신경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거죠. 그래서 발 가르단 하스는 협력관계에 있던 샤다이들에게 도움을 청해 항성계 내부의 행성들을 끌어와 복구에 필요한 자재들을 섭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온 거네요.”
드물게 냉정해진 파트리샤의 말에 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시 이케가미 의원은 샤다이와도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다. 발 가르단 하스와의 대화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모양인데, 의원은 자신이 받은 대화 기회를 샤다이에게도 주기로 하고 안전을 보장받은 듯싶어.”
그렇다면 샤다이와 이케가미 의원들의 수상한 행동들이 이해가 간다.
“난 이케가미 의원과 지표로 추락한 뒤 샤다이들과 함께 발 가르단 하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한데 발 가르단 하스와의 대화는… 우리에겐 쉽지 않더군요. 아마도 플라스마를 다루는 능력과 관계가 있는 듯한데….”
잠시 뜸을 들인 빈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케가미 의원은 그런 이유로 처음엔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발 가르단 하스가 대화를 하기 위해 이케가미 의원을 워프 비스트로 변형시켰습니다.”
“뭐라고요!”
아룹이 놀라서 순간 큰 소리를 냈지만 빈우는 상관치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워프 비스트는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할 능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 가르단 하스가 이케가미 의원을 변신시켰던 거죠. 그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워프 비스트는 아마 인간에게 일종의 게이트를 열고 거기서 오는 생명체로 보입니다. 이케가미 의원에겐 이미 게이트가 있었고 발 가르단 하스는 그 게이트를 열어서 변신시킨 거죠.”
사망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잠시나마 모셨던 상원의장이 워프 비스트로 변했다는 말에 아룹은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빈우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위로를 했다.
“미안합니다, 부팀장.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케가미 의원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닙니다. 팀장님이 못하셨다면 누구도 못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