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블랙 랜스는 게이트를 통해 점프한 다음 원래 귀환지인 오브리가도의 특수전 사령부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배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도 지원이나 호위를 요청하지 않았고, 기본적인 정기연락 외에는 어떠한 통신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비밀부대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정보이니만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래도 특수전사령부에 가까워지면서 몇 가지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조지 레드우드 중장의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취임이었다.
“이거 무슨 바람이 분 걸까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룹의 질문에 빈우도 딱히 뭐라 확실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까.
“글쎄요. 캐서린 시슬 사령관께 무슨 변고가 생긴 게 아닐까요?”
조심스러운 빈우의 추측에 부팀장 아룹도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조지 레드우드는 자신이 가진 역량의 한계를 파악하고 후배인 캐서린 시슬에게 사령관의 자리를 양보했었다. 그랬던 그가 사령관의 자리에 올랐다면 자의든 타의든 시슬 대장이 물러났다는 얘기다. 만약 그녀가 워프 비스트에 당했다면 미리 알려주었겠지.
태스크 포스 373으로서는 자신들의 직속 상관이었던 조지 레드우드가 승진한 것이라 얼핏 좋아 보이지만, 그 전에 워프 비스트의 사건도 엮여있어 이게 정확히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특수전사령부에 도착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레드우드 중장은 태스크 포스 373의 귀환을 되도록 자신의 취임식에 맞춰 오라고 넌지시 일렀었다. 아무래도 자기 직속팀을 어수선한 분위기에 숨겨 귀환시키려는 속셈인 듯했다.
“영감답지 않게 무슨 일이래.”
소식을 전해 들은 파트리샤가 콧방귀를 뀌며 뒤로 기대어 눕자 위르겐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선 안 될 곳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특수부대에서 잔뼈가 굵어 온 조지 레드우드인지라 평소 행실도 딱 그대로였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자주 한다. 아군한테.
뒤로는 외계종족의 모가지를 썰었다면 앞으로는 통합작전사령부의 별들과 박치기-문자 그대로의 박치기-를 하는 조지 레드우드였다. 그랬던 그가 기가 죽어 자신의 직속부대를 숨기려 하다니. 성격이 거칠기론 자신들의 상관과 오십 보 백 보하는 대원들로선 영 탐착지 않은 것이다.
* * *
그렇게 조용하면서도 불편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블랙 랜스와 태스크 포스 373이 오브리가도의 궤도기지에 입항했을 무렵, 때맞춰 조지 레드우드 중장의 사령관 취임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름 심기가 불편했던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은 신임사령관의 취임 연설을 보고선 자신들의 지금까지 해왔던 예상이 완전히 틀렸음을 바로 알게 되었다.
취임식 같은 지루한 행사 따윈 대충 치르고 지나가는 특수전사령부답지 않게, 이번에는 좀 크게 벌이는지 지상이나 궤도상에 거대한 홀로그램들이 떠 있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니 한쪽은 연방의 직할령과 자치령, 그리고 동맹 종족들을 포함한 아군의 세력들이고 반대쪽은 연방의 주적인 샤다이와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 또는 주제넘게 연방에 시비 거는 기타 약소 종족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영상들을 배경으로 하며 조지 레드우드 중장의 대형 홀로그램이 연설을 시작한다.
“보라, 우리의 세계와 마주 보는 또 다른 세계를.”
하늘 높이 치켜든 레드우드의 두 손이-그의 홀로그램이-인류 연방과 외계 세력을 감싸 안아 아우른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던가! 또 얼마나 쓸모없는 싸움을 해왔던가!”
시작부터 뭔가 수상한 낌새가 보이는 내용이다. 좋게 말해서 수상한 낌새고 솔직히 말하면 노망난 것 같다.
“여기서 선언한다. 나는 지금까지의 낡은 굴레를 끊고 새로 태어나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그 말을 들은 빈우는 저 양반이 왜 저러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령관이 되더니 뭔가 바뀌었나 싶은 것이다. 주변 팀원들의 생각도 별반 다를 게 없는지 다들 황당한 표정이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 저들의 세계로 쉴 새 없이 장갑 보병 군단을 보내리라, 이제는 시간 낭비 없이 알차게 싸울 것을 다짐한다!”
아유, 우리 영감님이 그럼 그렇지.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은 물론이고 연설을 듣는 특수부대원들도 이심전심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디안머들의 집 앞에 교각 전차가 되어 질주하는 전차의 파도로 해수욕을 시켜주고 싶다. 북망산의 구름다리가 되어 연중무휴로 샤다이 손님을 받고 싶다. 편도행 요단강 크루즈 함대를 연결하는 주교가 되어 우주 곳곳의 종족들을 태우고 싶은 것이다!”
파트리샤는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고 위르겐은 숫제 환호성을 지르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부팀장인 아룹도 별반 다르진 않아서 흐뭇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있다. 다만 우지와 모니카 정도가 도발적인 연설에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팀장인 빈우는 이어지는 레드우드 중장의 연설을 들으며 열심히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 저 연설 내용이 단순히 적성 외계종족만을 향한 것이 아닌 것을 알아챈 것이다.
‘요약하면 빡쳤으니 깝치면 뒤진다, 이건데 문제는 대상이 누구냐, 하는 거지.’
저 연설 내용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특수전사령부는 정규전이나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작전은 잘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움직일 땐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지 저렇게 대놓고 하는 선전질은 절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뻔하다. ‘위은쓸납학? 아직 안 칩니다, 안 쳐요.’랬다가 뱅가드 연대가 자기들 기함을 모성에 바로 갖다 박았었고, ‘목타하요? 진정하시고, 그건 정규부대가 맡을 겁니다. 우리 차례는 없을 듯?’ 이런 소리 씨부릴 때 이미 단검뿔 토끼가 목타하 모성에서 귀족원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즉 특수전사령부는 말보다는 손이 빠른 족속들이다.
한데 영상 속의 신임사령관 조지 레드우드 중장은 혀를 놀려 샤다이를 회 치고 디안머를 족치는 거로 모자라, 집적거리는 나머지 종족들을 도매로 둘둘 말아 착즙기로 갈고 있었다.
보통의 사령관이 저런다면 립 서비스니 입만 살았니, 하겠지만 조지 레드우드는 협박은 잘 하지 않는 성격이고-그 시간에 팬다-일단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킨다. 특히나 이런 선전포고 같은 거.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다. 나는 우리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들에게 절대 무너지지 않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방금 레드우드는 아군도, 연방도 아닌 우리란 단어를 썼다. 즉, 오늘의 연설 내용은 외계 종족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처럼 들리지만 뒤에서 호시탐탐 수작질 부리려는 아군 반대세력을 향한 경고 메시지도 되는 것이다. 지금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은 자신의 직속팀인 태스크 포스 373뿐만이 아니라 전임 사령관 캐서린 시슬에게도 이런저런 뒷공작을 벌였던 놈들에게 ‘걸리면 진짜 죽는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대놓고 싸움을 부추기는 사령관의 주변을 보니 연설을 듣는 대원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또는 근묵자흑 근주자적, 혹은 청출어람 청어람.
이 상황에서 어울리는 고사성어나 속담이야 많겠지만 가장 어울리는 말은 역시나 개판 오 분 전이렷다.
“씨팔! 믿고 있었다고 이 영감탱이!”
“깝죽거린 새끼들, 다 뒤졌어!”
“가는 거야? 이제 우리 보내주는 거야? 가서 우리 빼고 다 죽이면 되는 거지?”
연방 최고의 실력을 갖춘 대원들은 자부심 또한 쩔어준다. 그 말인즉슨 해야 할 땐 확실히 해내지만, 반대급부로 평상시엔 군기가 개판이란 소리다.
레드우드 사령관의 취임식에 심심해서 라던가, 할 일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참여했던 대원들은 연설의 서막 때엔 부루퉁했었다. 그런데 사령관이 고삐 풀고 불을 피워 재끼니 이 미친 망아지들은 숫제 장작을 지고 광란의 도가니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자기들 안마당에 워프 비스트가 침공했었으니 오죽 심기가 불편했을꼬. 그렇게 호시탐탐 한 놈만 걸리란 심보로 잔뜩 별러왔을 텐데 그게 지금 여기서 폭발한 것이다.
달아오르는 아비규환을 지켜보던 빈우는 사태가 진정되면 배 바깥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와 씨. 근데 이거 영감님 제대로 훼까닥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파트리샤의 말대로다. 흥분해서 핏대를 세우는 레드우드의 모습에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중장이란 자가 자신의 첫발을 내딛는 취임사에 저런 과격한 언사를 할 정도면, 태스크 포스 373이 없는 사이 어떤 대사건이 터졌는지 궁금하다.
과거엔 캐서린 시슬 사령관이 누름돌이 되어 이 망나니들을 찍어 누르고 있었는데 현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에겐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면 계획적으로 이럴 수도 있다.
‘좆 됐네, 요새 통합작전사령부 파벌이 어떻게 되더라.’
이건 비단 빈우 뿐만이 아니라 레드우드의 연설을 듣고 있는 특수전사령부 장교들 머릿속에도 떠오르는 생각이다. 특수전사령부를 필두로 정보 사령본부와 각종 방면군 함대 사령부들은 통합작전사령부에 속해있고 서로가 전투부대의 정점인 만큼 자주 부대낀다. 오늘의 연설을 듣고 그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참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지금 빈우가 가장 걱정해야 하는 건 잠시 후 자신이 저기 연단 위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전쟁영웅을 마주해야 한다는 거다. 이럴 땐 병풍 하나나 둘쯤 데리고 가서 바람막이로 쓰는 게 제일인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팀장님. 보고할 때 우린 필요 없겠지요?”
부팀장인 아룹이 눈치채고 먼저 저런 말 할 정도니 얘기는 끝났다. 파트리샤도 슬금슬금 일어나서 빠지고 있다.
“네에, 저 혼자 가도록 하죠.”
사선을 같이 넘나든 전우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빈우는 한숨을 쉬며 아나스타샤가 채워주는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 * *
“사령관 취임, 축하드립니다.”
“고맙다.”
예상외로 신임사령관과의 독대는 담백하게 이뤄졌다. 하긴 자기 직속 팀원들에게 분풀이를 할 이유는 없겠지.
“우리 팀이 출항한 뒤로 워프 비스트가 터졌다면서요?”
빈우의 질문에 떠올리기 싫은 사건이 생각난 레드우드 사령관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 너희들이 가고 얼마 있지 않아 24 함대원들이 갑자기 워프 비스트로 변했다. 3번 항구는 난리도 아니었지. 정말 제대로 한 방 먹은 기습이었어. 그래도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불쌍한 24 함대원들 제외하곤 우리 쪽 피해는 전혀 없었다. 다만 그 와중에 감금하고 있던 샤다이 포로가 탈주했지만 말이다. 아마 처음부터 그 년이 목적이었지 싶은데 그 샤다이 년이 튀면서 캐서린을 정신 공격하는 바람에 사건이 커졌다.”
레드우드 사령관의 말에 따르면 당시 24함대를 쳐내는 테스트를 하고 사령관 집무실에서 시슬 대장과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샤다이의 정신공격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시슬 대장님께? 그랬습니까. 저는 떠나기 직전에 포로와 대화를 했습니다만.”
“그랬지,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나빴다고 해야 하나. 내가 그때 샤다이 포로 년의 사살 명령을 내렸었는데 그쪽으로 샤다이들이 점프해 와서 포로를 데리고 튀었었다.”
자칫 시간이 꼬였으면 빈우도 당시의 전투에 휘말렸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어서 24함대의 벤자민 소여 소장이 소란스러운 집무실로 막무가내로 들어왔다가 워프 비스트로 변하고, 동시에 궤도기지의 3번 항구에서도 24 함대원들이 워프 비스트로 변해 기지로 공격해 왔다고 한다.
“일단 시에라 줄루 델타를 발동하고 워프 비스트를 모조리 쓸어버리긴 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2함대가 정보 사령본부의 특수부대를 대동하고 달려왔거든.”
2함대면 연방군 최정예 함대다. 1함대도 규모와 장비 면에서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론 화성과 태양계를 방어하고 있느라 움직일 수 없으니, 사실상 가용할 수 있는 함대 중에선 2함대가 최강의 전력이다. 그만큼 특수전사령부에서 일어났던 워프 비스트 사건이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작정하고 샅샅이 조사하더라. 기지 구석구석, 사람 머리털 한올 한올까지.”
인간을 괴물로 변신시키는 정체불명의 현상이 발생했으니 당연한 순서다. 만약 특수전사령부에 있던 다른 병력들도 감염이 되었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테니까.
“순순히 따르셨습니까?”
“그럼 어쩌겠냐. 그 상황에선 시키는 대로 해야지.”
사령관이 정신공격을 당하고 아군이 워프 비스트란 괴물로 변하는 상황이었다. 치료방법은커녕 감염경로조차 아는 것이 없기에 휘하 부대원들이 어찌 될지도 모른다. 레드우드로선 그 ‘권유’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감염이나 여타 증상은 아직 나타나진 않아서 코드는 해제했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도 없다더라. 그리고 사건이 진정되고 캐시는 정상적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자기 스스로 물러났다. 아마 자신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내린 결정일 게야.”
24함대의 워프 비스트 변이, 캐서린 시슬 사령관에 대한 정신공격, 외부 함대의 침입과 조사, 그리고 사령관의 퇴임. 특수전사령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도 단단히 난 일이다. 그러니 레드우드 사령관이 취임 연설 때부터 길길이 날뛴 것은 자신이 분했던 것도 있지만 부하 대원들을 보듬고 달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참, 그래. 그쪽 24함대 본부에선 별일 없었고? 우리 쪽에서 미리 연락을 했기에 꽤 경계태세였을 텐데 말이다. 다른 함대들이 가서 강도 높은 조사를 한단 얘기는 들었다만.”
“흐음, 24함대 본부하곤 아예 눈도 안 마주치고 진행했습니다. 헌데 사령부에서 도망친 샤다이 말입니다. 발 가르단 하스에서 만났습니다.”
“뭐라?”
놀랐던 레드우드 사령관의 얼굴은 이어지는 빈우의 보고를 들으며 복잡하게 썩어들어갔다. 그만큼 발 가르단 하스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연방의 어둡고 예민한 부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