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77화 (77/301)

77화

“김 소령.”

다시금 딱딱해진 캐서린 시슬의 말투에 빈우도 절로 긴장되었다.

“네, 각하.”

“난 조지 선배, 아니지. 레드우드 사령관을 편들기로 했어.”

얼마 전 캐서린 시슬이 사령관이었을 때, 그녀는 외부 세력의 요청으로 태스크 포스 373을 방해했던 적이 있었다. 빈우가 레드우드에게 듣기론 그 당시 시슬에게 다가온 자들은 당근과 재갈을 들고 왔다고 했다. 특수전사령관에게 당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재갈을 물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그게 가능한 것은 대통령과 의회, 그리고 간접적으로 가능한 것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정도다.

물론 시슬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자신의 전우이자 선배였던 조지 레드우드의 편을 들어주려고 노력은 했었다. 헌데 지금은 자신의 입으로 아예 레드우드 사령관의 편에 서겠다고 했으니 합동참모본부로 가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외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레드우드와 태스크 포스 373의 활동에 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사령관께는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자네에게도 말해줘야겠지. 그때 나에게 제안이 온 것은 합동참모본부에서였다.”

문제는 가겠다는 곳이 숫제 호랑이 굴이다. 행여 포섭된 건가 의심도 들지만, 캐서린 시슬이란 군인의 특성상 그럴 가능성은 작았다.

“그렇다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뛰어드시는 겁니까?”

빈우의 말에 시슬이 빙긋 웃었는데 아까 손녀한테 웃을 때와는 달리 서슬이 퍼렇다.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그녀였지만 몸에서 배어 나오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

“호랑이라… 호랑이라면 칼로 잡을 수 있지. 근데 이제부턴 펜을 들고 잡아야 해.”

캐서린 시슬 같은 강화 군인이라면 진짜 호랑이 정도는 맨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다. 굳이 칼을 쓸 필요는 없다. 펜은 더더욱.

“김 팀장, 왜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시슬 대장이 앞으로 행할 행보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칼은 무력이자 폭력이며 여기서는 군대를 의미한다. 펜은 언론일 수도, 정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건 군대는 아니다.

“우리는 칼을 쥐기 위해 펜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빈우의 대답은 중간과정을 한 단계 건너뛴 대답이었다.

“음? 하하, 그런 해석도 가능하군.”

고개를 갸웃하던 시슬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방은 엄연히 문민 통제다. 아무리 군의 무력이 강하다 한들 그에 대한 명령권은 대통령과 의회에 있으며 이들은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허나 빈우의 말대로 연방의 시민들은 군인이 되면서 하원의원 자격이 정지된다. 그러면 의정활동을 할 수 없고 잠을 자면서 포톤 웹을 통한 의회 정보 갱신도 할 수 없다. 군인이 되면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게 되기에, 단순히 말하자면 군> 정부> 시민의 관계가 역전된다고 보면 된다.

“합동참모본부도 이곳과는 달리 펜을 들고 싸우는 부서였죠.”

“그러게 말이야. 앞으로 힘든 싸움이 되겠어.”

평생 총과 칼로 싸웠던 이가 펜과 종이로 쌓은 마굴로 들어간다고 하니 거기서 기어 나온 빈우는 그녀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할머니이-”

그때 기다리던 나디아가 재촉하자 시슬은 금세 표정을 바꾸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유, 할머니가 너무 늦었지? 금방 갈게. 그럼 김 팀장, 나는 이만 가보지.”

고개 각도가 좌우로 조금 달랐을 뿐인데 표정이 저리도 바뀌는 것을 보면 거기 가서도 잘 버틸 듯싶기도 하다.

* * *

빈우는 화기애애한 가족들의 테이블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와 공원을 향해 걸었다. 조금 걷자 예전에 시슬 대장의 며느리와 손녀를 목표로 했던 곳이 나왔다. 그때 여기서 캐서린 시슬의 며느리와 손녀가, 엄마와 딸이 정말 재미있게 놀았었다.

빈우는 신발을 벗고 잔디밭으로 들어가 산책했다. 공원 저 멀리까지 깔린 푸른 잔디를 보고 있으니 고향의 보리싹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직은 무뚝뚝했던 아나스타샤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아샤가 다 때려치우고 고향에 가서 보리농사나 하자고 했었지.’

강화된 육체를 가지고 민간사회로 돌아가기는 번거롭다. 이것저것 시험도 봐야 하고 육체사용에 대한 인허가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기적인 관리와 점검이 가장 번거롭다. 아직 신체 강화의 비중이 많은 병사라면 모를까, 군데군데 군용부품을 삽입해놓은 경우라면 주기적인 교체와 점검을 해줘야 한다. 그게 싫다면 원래의 육체로 복원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을 다 떠나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군용화된 정신을 가진 채 민간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점이다. 비록 사용자의 두뇌 칩에서 군용 프로그램들과 전투용 OS들이 지워졌다 해도 거기에 익숙해진 정신과 반응으론 일상생활이 힘들다. 특히나 전장에서 적대적인 외계종족과 직접 전투를 했던 장갑 보병의 경우 같은 인류종족 외에는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심지어 연방과 교류를 하는 동맹종족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어 빈우의 부하인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의 경우 다시 대학으로 복학하게 되면 유학 온 타 종족들과 마주치게 될 텐데 마주치는 순간마다 깜짝깜짝 놀랄 것이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군대물 쫙 빼고 다시 사회물 먹이느라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복무기간이 길어질수록, 계급이 올라갈수록 사회로 돌아가긴 더욱 힘들어진다.

조지 레드우드나 캐서린 시슬은 연방군의 창설 원년 멤버라 할 수 있고 평생을 군에 바쳤다. 또 이미 군이 자신들의 인생이 되어버렸기에 나갈 생각 자체가 없다.

그러나 빈우 같은 경우는 다르다. 이들 같은 정보 사령본부 소속 요원들은 머릿속에 감춰진 위험한 정보 때문에라도 제대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군사정보국은 기억을 못 하고 기록만 가능하기에 두뇌 칩의 기록만 제거하면 된다지만 말이 그럴 뿐, 실제로는 요원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세탁 당하는 경우에나 가능할 정도다.

같은 정보 사령본부의 모니카 보르자 대위도 아직은 방위산업체나 군과 연결된 연구소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지만, 소령 정도 되고 나면 그 스스로가 군의 전략자산이 되기 때문에 민간사회로 나가기 힘들다.

“에라, 썅.”

쓸데없이 떠오른 생각 때문에 기분을 잡친 빈우가 투덜대며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강화된 안구에 아직 궤도에 남아있는 3함대의 모습이 보인다. 특수전사령부에 대한 차단과 조사는 끝났다지만 아직 감시 여력은 둔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저 우주 함선들의 웅장한 모습을 보노라면 지상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전함 한 척이면 행성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구축함만 해도 지역만 좁히면 행성의 지도를 갈아엎을 수 있다. 허나 저런 화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이 우주에, 연방의 앞에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이곳 특수전사령부다. 단순히 적에게 비밀로 하는 작전에서부터, 밝은 곳으로 결코 드러나선 안 되는 어두운 작전들까지 도맡아서 하는 부대들의 본거지다. 특수부원들 한명 한명이 극한의 훈련을 수료하고 최신예 장갑복을 입게 되기까지 구축함 급의 예산이 들어간다. 그리고 쓰이기에 따라선 전함, 혹은 함대에 버금가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이런 곳이 워프 비스트의 기습을 받았으니 일단은 쉬쉬하고는 있지만, 안으로는 군이 발칵 뒤집혔으리라.

덧붙이자면 그런 문제를 은밀히 해결하기 위한 곳이 바로 빈우가 속했던 정보 사령본부나 연방 중앙정보부 같은 정보부서다. 몇 단어도 안 되는 짧은 내용의 정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이 쓰였고 또 얼마나 많은 요원들이 죽어갔던가.

그리고 태스크 포스 373이 하는 일은 그 양쪽에 발을 걸친 민감한 작전들이다. 더구나 팀의 뒤로는 정체와 의중을 알 수 없는 세력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마커스와 연락이 된다면 시야의 폭이 확연히 넓어질 텐데 빈우의 사관학교 동기는 아직 연락 두절 상태였다.

-김 팀장.

빈우의 생각을 끊고 레드우드 사령관의 호출이 들려온다. 나직하지만 사납고 차가운 음성. 싸움을 목전에 둔 목소리다.

-예, 사령관 각하.

빈우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나른했던 몸과 마음이 바로 전투태세를 갖춘다.

-당장 내 방으로 와.

왜, 무엇 때문인지 설명도 없이 부른다. 그렇다면 꽤 급하고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지금 곧 가겠습니다.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은 질문 없이 서둘러 이동해 궤도 엘리베이터를 탔고 잠시 후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사령관 집무실로 갔다. 인사도 없이 급히 안으로 들어간 빈우가 마주한 것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다른 손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는 레드우드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태스크 포스 373에 상원 감사가 나온단다.”

갑자기 폭탄 발언이다.

“아이, 씨발!”

빈우가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했다. 대장의 면전에서 소령이 터트린 욕설이지만 레드우드 사령관은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돌려 말하자면 그 정도로 사태가 심각한 것이다.

하원에서 시험을 쳐 자격을 얻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상원의원은 연방 민의의 정점이고 권력의 결정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의회에서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구성하는 감사는 연방 그 어디에도 갈 수 있으며 그 어떠한 비밀도 들출 수 있다. 게다가 일단 심의를 거쳐 통과된 안건이라면 이들 상원 감사원들이 자신이 맡은 목표물에 대해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없다.

보안국 조사조차도 나왔다 하면 염병하는 마당에 상원 감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 부서가 휘청휘청한다. 그런데 워프 비스트의 기습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특수전사령부에 굳이 상원에서 나오고 거기다 일개 특수팀에 불과한 태스크 포스 373을 수사한다? 뭔가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아마 이 사단이 지금, 이 타이밍에 발생했다는 것은 이제껏 레드우드의 딴죽을 걸었던 세력이 본격적으로 숨통을 죄러 행동을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니미 좆 같네….”

빈우가 연이어 욕지거리 섞인 한숨을 푸욱 쉬며 자리에 앉자 레드우드 사령관이 자료를 넘긴다. 이번 감사로 오게 될 상원의원에 대한 기본정보다.

“이번에 감사역으로 오는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다.”

화면에 뜬 여성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며 일견 부드러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저 상원의원께서 이곳 특수전사령부를 들쑤시기 시작하면 어딜 봐도 이가 갈릴 인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보내준 자료가 굉장히 부실하다. 인원은 상원의원 한 명에 정보도 기본 신상정보뿐이다.

“설마 혼자 오는 건 아니겠지요?”

“사전 조사로 한 명만 먼저 온다는데, 아마 우리 간 보거나 흔드는 거겠지.”

보통 상원에서 감사가 나오면 예닐곱 명의 상원의원-의전서열이 대장급인 거물들-이 수행원과 조사관들을 데리고 들이닥친다. 그리고 실무를 담당할 조사관들은 목표로 잡은 조직에 대한 전문가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약점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오다 의원에 대한 다른 정보는요?”

“지금 준 거 빼곤 없어, 안 줘.”

“야, 이거 한번 해보자 이거네.”

빈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툴툴댄다.

일단 상원의원에 대한 기본적인 신상이나 활동에 대해선 연방 시민 누구나 신청해서 열람이 가능하지만 군은 예외다. 게다가 조사대상인 레드우드와 태스크 포스 373에게는 더더욱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식 열람 신청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정보 수집을 할 수는 있겠지만, 안 그래도 조사를 받는 마당에 그런 짓거리를 했다간 후환이 두렵다.

“우리 쪽에 워프 비스트가 생긴 거에 대해선 다 조사하고 갔다고 하셨죠?”

다시 한번 자료를 읽으며 빈우가 질문했다.

“그래. 너 없을 때 정보국과 과학기술국에서 샅샅이 훑고 갔다.”

레드우드의 말대로 워프 비스트가 발생한 장소가 장소니 만치 조사팀이 특수전사령부의 곳곳을 탈탈 털어 조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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