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78화 (78/301)

78화

“그런데, 지금 이때 태스크 포스 373에 상원 감사가 온단 말씀이죠?”

“내 말이.”

레드우드의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왜죠? 왜 팀에 감사가 들어오는 겁니까? 혹시 뭐 켕기는 거 있으십니까? 팀 만들 때라던가.”

빈우가 걱정하는 것은 태스크 포스 373의 인원을 징발할 때 레드우드가 좀 과하게 설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실제로 모니카는 거의 납치하다시피 끌고 왔고 컨커러나 XPS는 시제품이다. 그러고 보니 모니카를 데려다준 셔틀이 블랙 랜스를 조사하려 했다고 오르 함장이 말했었다. 같은 과학기술국 소속인데도 말이다.

“켕기는 거? 그게 한둘이냐? 그래도 감사가 나올 정도까진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그렇다 한들. 여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지금 왜? 그리고 더 심했던 다른 팀들 건은?”

그거야 지금까지 불쌍한 전임자가 막아줬겠죠, 라는 말이 빈우의 목에서 나오다가 간신히 멈췄다.

“으음, 그건 뜯어 먹힌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확실한 건 일단 상원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목표물은 묵사발 난다는 거다.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할 수 있는 방법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고작이다.

빈우는 팀장으로서 어떻게든 덜 박살 날 방법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이번 건, 말이다.”

생각하느라 좀 길었던 빈우의 침묵을 레드우드가 끊었다. 그런데 묘하게 뜸 들이면서 말을 꺼내는 모습이 뭔가 그답지 않은 행동이다.

“어떻게… 네 특기로 잘 처리할 수 없을까?”

“네?”

무슨 뜻인지 몰라 반문하는 빈우에게 레드우드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린다.

“그게 말이야, 그 왜 있잖아? 정보국 요원들이 목표에 슬쩍 접근해서 쓱싹 해버리는 거 말이다.”

조금 충격적인 말에 빈우는 가만히 조지 레드우드 중장을 마주 보았다.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레드우드는 빈우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 있다. 군에 평생을 바친 맹장이 저렇게 꺼리는 내용이 달리 뭐가 있을까. 빈우도 대강 눈치를 챘으나 입맛이 썼다. 결국, 이런 방법-구린 방법-을 써야 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그거 말입니까….”

말꼬리를 낮게 흐린 빈우의 대답 뒤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빈우는 열심히 생각했다.

‘이미 레드우드 사령관은 결심했다. 시슬 대장이 합동참모본부로 떠난 마당이니 그가 특수전사령부의 머리이자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니까. 만약 다른 경우라면 설령 명령이라 해도 딱 잘라 거절하겠지만, 내가 팀장으로 있는 팀의 일로 부탁을 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지.

한데 태스크 포스 373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나? 역시 상대는 울토르 프로젝트와 워프 비스트에 관련된 정보를 노리는 건가? 아니면 이번 감사가 우리 팀을 방해하는 세력의 공격이라면, 레드우드 사령관은 그에 대한 반격으로 이런 강경책을 쓰는 건가?’

장고 끝에 마침내 빈우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지요.”

“오, 정말이냐.”

빈우는 반색하는 레드우드 사령관 앞으로 다가앉으며 조용히, 필요한 질문을 시작했다.

“그쪽에서 오는 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특별편을 타고 내일 14시에 우리 특수전사령부에 도착 예정이다.”

“20시간 정도 남았군요.”

내일 바로 온다고 하니 이쪽이 대응하지 못하게 아예 작정하고 오는 셈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항로는?”

“여기.”

빈우는 오다 상원의원을 태운 여객선이 오는 항로와 시간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 가장 최적의 방법을 계산해냈다.

“알겠습니다. 게이트를 타고 이쪽으로 넘어오기 전에 끝을 보죠. 제가 셔틀을 타고 나가서 중간에서 만나겠습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항로지도에 콘솔 조작이 아닌 손으로 직접 위치를 표시했다. 이런 일에는 되도록 증거를 남기지 않는 편이 좋다.

“음? 네가 먼저 나가는 거냐?”

“네, 오브리가도와 점프 게이트 간의 거리는 가깝습니다. 작업할 만한 시간이나 장소가 없지요.”

“흐흠, 작업이라.”

수많은 비밀작전을 해왔던 레드우드 사령관조차 작업이란 단어에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그라 해도 익숙지 않은 이런 일이나 은어에 대해선 역시나 거부감이 드는 듯하다.

“네, 하지만 저쪽에선 게이트까지 오려면 통상항해로 제법 와야 하죠. 그때 제가 여기서 장갑복을 입고 잠복하고 있다가….”

빈우가 가리킨 곳은 소행성 지대다. 몸을 숨기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물론 보안을 위해 경비 위성 등이 있지만 어차피 아군의 위성, 밖에서의 들어오는 열 명의 도둑은 막아도 안에서 나가는 한 명의 도둑은 막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그 도둑이 될 빈우의 손가락이 상원의원이 타고 오는 여객선을 푹 찔렀다.

“여기서 제가 침투해서 바로 작업하겠습니다.”

작업.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실제 군사정보국에서 암살이나 기타 음지의 일들을 한데 뭉뚱그려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어엇! 중간에서? 와아- 대단한데.”

평생을 특수부대에서 살아온 레드우드 이 양반이 갑자기 호들갑을 떤다. 그럴 법도 한 게 특수전사령부에선 비밀작전을 한다 해도 이런 더러운 일은 주로 군사정보국 쪽에서 도맡아 한다. 그래서 자기에게 꺼림칙한 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구린 일을 시키는 빈우에게 미안해서인지 평소엔 않던 행동들이다. 빈우는 레드우드의 어색한 미소를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네. 이런 건 보는 눈이 적을 때 빨리해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와, 이 새끼 보면 볼수록 대단한 놈인데?”

감탄사를 터트리며 낄낄거리는 레드우드의 모습은 숫제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뭔가 이상하지만 빈우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리고 워프 비스트의 사체를 몇 개 구할 수 있을까요?”

“그야 어렵지 않지만 그건 왜?”

“이것도 한 방법인데, 현장에서 워프 비스트가 나타나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행들도 함께 처리할 수 있죠. 하지만 다른 변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어디까지나 예비 계획 중 하나로 잡아두겠습니다.”

여기서 지금까지 빈우의 설명을 잘 듣던 레드우드 사령관의 고개가 모로 돌아간다. 그리고 표정도 뭔가 이상하게 변한다. 그걸 본 빈우 역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엉? 잠깐. 이 새꺄, 잠깐만 기다려봐. 뭐가 좀 이상하다? 너 내 말 제대로 알아들은 거 맞냐?”

확실히 이쯤 되면 뭔가 수상하다. 유사 이래 상관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 중 베스트 10안에 들어가는 말이 나온 것이다.

“…아마 알아들었지 싶습니다만. 사령관 각하께서 생각하신 바를 다시 한번 정확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빤히 보는 빈우의 시선에 레드우드는 민망한지 괜한 헛기침을 한다.

“아니, 그 왜, 어흠, 너희들이 쓰는 미인계 있잖아. 나이대가 비슷한 남녀 간에 만나서 살살 꼬셔서 전향시키거나 정보를 캐내는 거 말이야. 너도 얼굴이 좀 반반하고 하니 이 오다 상원의원한테 작업 들어가서 사태를 조금 원만하게 할 수 없냐는 거지.”

그 말을 들은 빈우는 고민했다. 여기서 쓰레기는 미인계를 떠올린 조지 레드우드일까, 암살을 떠올린 김빈우인가. 확실히 빈우는 좀 얼굴이 돼서 정보부서에는 안 맞는다는 말을 종종 듣긴 했었다. 그래서 피자 타이거에서 모델을 하기도 했었고. 그랬던 빈우의 잘생긴 얼굴이 차츰 일그러졌다.

“너희들은 그런 거 안 해?”

조심스레 물어보는 레드우드의 질문에 빈우는 짜증 내며 대답했다.

“영감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듯합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하아…. 아니 근데 이 영감탱이가 쳐 돌았나. 부하를 팔아먹네? 그리고 그게 그리 쉽게 될 거라 생각해요? 포섭 작업하려면 사전 조사에다 주변에 밑밥 깔고 얼추 반년은 걸립니다.”

“새끼, 말본새 봐라. 인마 그러니까 내가 조심조심 물어본 거잖아.”

간신히 진정한 빈우는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건 한다 해도 연방 중앙정보국에서나 하겠죠. 애초에 외계인들 뒤통수에 칼 꽂는 우리가 그런 걸 왜 한답니까? 아, 보안국에서 그런 거에 대해 대응훈련을 한다고는 들었습니다만.”

레드우드는 부하의 설명을 듣고는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정신을 차렸다.

“아니, 잠깐만. 그럼 넌 뭐 하려고 그랬어? 중간에서 뭐 어쩌려고 한 거야? 작업이란 게 무슨 작업인데?”

이번엔 빈우가 대답이 궁해졌다. 그래서 말 대신 자신의 손날을 세워서 목에 대고 슥 그었다가 삭 당겼다. 그 제스쳐를 본 레드우드의 반응은 좀 늦게 터졌다. 하도 황당해서.

“씨발, 이 미친놈아. 상원의원을 왜 죽여. 이 새끼가 돌았나! 반란이냐? 어?”

“아니, 몰래 슬쩍, 쓱싹 하라면서요.”

“젊은 남녀 둘이 만나서 좀 잘해보라는 소리를 어떻게 암살로 알아들어, 이 또라이 새꺄.”

이래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차츰 의사소통의 열기가 과해져 손짓, 발짓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손짓과 발짓이 상대방의 얼굴까지 가기 직전에 두 사람은 간신히 진정했다.

“그만하자. 우리끼리 이게 무슨 바보짓이냐.”

레드우드는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모로 다행이라고 한숨 돌린 빈우도 자리에 앉았다. 근데 빈우는 아까부터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근데 히토미라면 좀 걸리는 게 있습니다.”

빈우가 운을 떼자 레드우드가 솔깃한다.

“응? 혹시 아는 사람이냐?”

“아뇨. 죽은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의 딸 이름도 히토미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레드우드 사령관의 눈빛이 묘해진다.

“그래? 동명이인이 아닐까? 히토미란 이름이 드문 건 아니잖아? 또 성도 다르고.”

“결혼해서 성씨가 바뀌었을 수도 있죠. 혹시 모르니 일단 부팀장을 불러보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간단한 신상 조사로 나올 정보지만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상황으론 껄끄러운 일인지라 우회로를 써야 했다.

“부팀장. 지금 즉시 사령관실로 오세요.”

빈우의 호출에 아룹의 대답은 약간 시차를 두고 나왔다.

-이번엔 또 누가 돈가스 먹을 차롑니까?

생각도 못 한 부팀장의 질문에 빈우는 잠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어떻게 비치고 있는 걸까 하고.

“그건 아니고, 그냥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아룹의 통신이 끊기기 전에 들린 비명은 아무래도 우지와 위르겐의 것인 듯싶다.

잠시 후, 사령관실에 도착한 아룹에게 빈우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과거 이케가미 의원이 상원의장일 시절 그의 경호를 맡았던 아룹 라마누잔 원사가 골똘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 당시 의원님께선 사모님과 사별한 뒤로 홀로 살고 계셨고 따님이 있단 것은 발 가르단 하스에서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엇, 그래요?”

실은 빈우도 상원의장이었던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면식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울토르 프로젝트에 관련되어 만났기 때문에 가족사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다.

“오다 히토미 의원의 개인 정보는 가족관계까지 막아놨군요. 우리가 조사대상이니 그렇다 쳐도 한 다리 건너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감사가 떴다는 얘기에 아룹도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글쎄요, 자칫 들켰다간 미운털 오지게 박힐 텐데 말입니다.”

빈우가 앓는 소리를 내자 레드우드가 퉁명스레 끼어들었다.

“이미 미운털이 박혔는데 한두 개 더 박힌들 무슨 상관이냐.”

“아니 이미 처맞을 게 확정된 상황이니까 어떻게든 덜 아프게 맞으려고 이 고생을 하는 거 아닙니까.”

빈우의 반론에 레드우드 사령관이 끙하고 팔짱을 끼더니 자신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역시 미남계는 안 되겠지?”

“아, 이 영감님 끈질기네. 그런 거 요즘은 외주 준다니까요.”

레드우드과 빈우 두 사람이 투덕거렸다. 점차 얘기가 길어질 분위기로 흘러가자 아룹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녁 시간이고 하니 팀원들 모아 밥 먹으면서 머리를 맞대보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에 사령관과 팀장의 시선이 모였다.

“김 팀장, 팀원들에게 알려도 되겠어?”

“소규모 팀이니 아는 게 좋겠지요.”

“그래. 우리 식구들끼리 어떻게 방법을 모색해보자.”

그렇게 해서 태스크 포스 373은 사령관을 대동한 불편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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