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79화 (79/301)

79화

보통 사령관 정도 되면 고급 간부들과 따로 식사를 하거나 가끔 장교 식당에 가지만, 전임 사령관이던 시슬 대장이나 현 사령관인 레드우드 중장은 주로 일반 식당에 가는 편이었다. 허나 지금은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을 대동하고 간부 식당에서 작전 회의 겸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령관님은 미인계를, 팀장님은 아예 암살하려 했다고요?”

빈우의 설명을 들은 파트리샤가 기가 막혀서 코웃음을 쳤다.

“뭐, 첩보 영화 찍습니까. 달리 부드러운 방법은 없었습니까?”

옆에서 거드는 위르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적의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지는 뱅가드의 입에서 부드럽게, 라는 말이 나온 걸 보면 어지간히도 독했다 싶다.

“그러니까 너희들을 부른 거 아니냐.”

민망해진 빈우가 접시의 스테이크를 난폭하게 썰며 말했다. 팀의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중차대한 안건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다니 배짱도 좋다. 실제로 장갑 보병이 아닌 우지와 모니카는 쫄아서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있었다. 그때 식사를 깨작거리던 우지가 손을 든다.

“감사라면 먼저 장부부터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의외의 질문이지만, 질문자인 시에 우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치 정부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빈우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일단 회계 같은 것은 전부 AI에 의해 전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건드릴 거 없다. 구린 돈 같은 건 우리 사령관님 스타일이 아니라 패스. 무엇보다 이미 그런 건 저쪽에서 다 수집했을걸. 아마도 이번 감사는 우리 팀을 이전부터 방해하던 세력의 공격 같아. 그러니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올 거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데가 어디 있겠느냐만, 저쪽이 작정하고 먼지로 만들어주겠다고 나서면 이쪽이라고 얌전히 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음, 근데 이런 건 저희 같은 비전문가보다는 이런 일에 대해 잘 아시는 다른 분들께 여쭤보는 게 나을 텐데요?”

이번엔 안절부절못하며 포크를 만지작거리던 모니카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한다. 정론이긴 한데 지금 상황에선 그다지 좋진 않다.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다양성과 의외성이 필요한 때다. 가끔 비전문가들에게서 허를 찌르는 아이디어가 나오거든. 그리고 전문가들이랄 수 있는 참모진들이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빈우가 다음 대답은 사령관인 레드우드에게 넘겼다. 그러자 나이프로 삿대질 당한 레드우드가 대답을 이어간다.

“아직 참모진을 완전히 내 편이라 믿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물론 특수전사령부의 간부진들은 레드우드가 부사령관일 때부터 같이 일해 왔고 한솥밥 먹어온 사이라, 전투에서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정치적 관계가 엮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한 수 무르게 되는 것이다.

“뭐,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지 않습니까. 자기 사람들로 채우려면 시간이 걸리죠.”

빈우의 말에 레드우드는 끙, 하고 팔짱을 낀다. 그는 파벌보다는 실력 위주로 사람을 썼기 때문에 자기와 안 맞는 사람이나 반대 파벌이라 해도 우수하다고 판단되면 중용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정치싸움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시슬 대장께서 합동참모본부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상원과의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오르 함장의 질문도 일리가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군에 직접 명령을 내린다기보다는 대통령과 의회, 그리고 국방부 장관들에게 조언을 하고 의견을 내는 부서다. 그래서 그쪽과의 라인이 상당히 돈독하다.

“아직 의자도 없는 양반한테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오다 의원은 내일 옵니다.”

빈우의 말에 뭔가 깨달은 듯 파트리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기요. 오다 히토미 의원이라고 했죠?”

“그래.”

“혹시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과 무슨 관계가 있지는 않나요?”

파트리샤도 들었던 풍월이 있는 터라 그 점에 대해서 질문했다. 태스크 포스 373은 이케가미 소이치로 전 상원의장의 사망과 관련이 있기에 그의 딸 이름이 히토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오다 히토미 의원과 이름이 같다는 것에 자연스레 초점이 맞춰졌다.

“나도 그 점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으로선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빈우의 말대로 현재 오다 히토미 의원에 대한 정보는 간단한 신상 정보와 약력뿐, 가족관계에 대해선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또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도 사별한 아내에 대해서만 알려져 있을 뿐 자녀 관계에 대해선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행여 숨겨놓은 딸이라거나….”

조심스러운 우지의 말은 빈우가 부정했다.

“그랬다면 반대 세력에게 예전에 물어 뜯겼겠지. 그 양반 초임 의원 때엔 적이 꽤 많았거든. 그때만 해도 딸과는 같이 살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부팀장의 말에 의하면 상원의장일 시절에는 홀로 살았다더군.”

그 말에 아룹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다.

“네. 당시 상원의장 경호팀에 속했던 저는 상원의장님께 다른 가족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결혼해서 분가라거나 아니면 의절했을 수도 있지.”

레드우드 사령관의 말대로 정치가의 자식들이 견해차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의절하는 경우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다란 성은 남편의 성일까요? 아니면 어머니의 성?”

모니카의 질문에 빈우는 간단한 자료를 식탁 위에 띄워 보인다.

“오다 의원의 남편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어. 이케가미 의원의 아내는 보다시피 고 잉그리드 베리만 여사다. 그녀는 예전부터 두뇌 칩 사용에 부작용이 있었고 그걸 치료하기 위해 나노 머신 시술을 받았다고 되어있군.”

다음 화면은 몇 가지 의료관계 자료였다. 식사시간에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적나라한 이미지에 우지와 모니카는 비위가 상했지만 다른 팀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한데 몇 차례 치료를 받던 중 투입된 나노 머신들이 갑작스레 작동정지를 했고 그것들이 그대로 뇌혈관을 막아 사망했다. 그리고 이케가미 의원은 의정활동에 바빠 아내의 장례식에 오질 못했지.”

여러 각도에서 보이는 뇌스캔 영상과 사망한 잉그리드 베리만 여사의 모습에 모니카는 식사에서 아예 손을 떼버렸다. 그건 옆에 앉아 있던 우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오다 의원이 이케가미 의원의 딸이라면 그것 때문에 의절했을 수도 있겠군요.”

파트리샤는 그걸 보고도 고기를 크게 잘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하긴 이 정도 신경 줄이 아니고선 특수전 부대에 남아있질 못한다. 빈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닫았다.

“그래. 하지만 어디까지나 만일이지.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오다 히토미 의원은 이케가미 소이치로 전 상원의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평상시였다면 약간의 수고를 들여 간단히 알 수 있는 정보지만, 지금의 태스크 포스 373은 오다 히토미 의원을 위시한 상원의 조사를 받는 있는 중이다. 그래서 함부로 정보를 열람할 수 없기에 벌어진 촌극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이자 팀의 직속 상관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의 질문에 팀원들은 딱히 이거다 싶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다들 이런 일과는 별 관련이 없던 사람들인지라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팀장인 빈우에게로 모여갔다.

“응? 왜?”

수상한 분위기를 느낀 시선의 주인공이 밥을 먹다 말고 주위를 둘러본다.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김빈우 소령.

예전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과거에 숨겨둔 명령서를 써서 보안국을 물 먹이고 피에르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인 아를르캥을 뺏어온 전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이곳 특수전사령부에선 피자 타이거 오브리가도 지점-군사정보국의 지점-과 연계해 당시 사령관이던 캐서린 시슬 대장과도 한판 떴었다. 게다가 닉스 레벨 3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특수요원이니 팀원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다.

“아, 걱정하지 마. 일단은 방법이 있으니까.”

팀원들의 시선에서 무언의 기대감을 느낀 빈우가 씨익 웃으며 장담했다.

그러나 팀원들은 팀장의 그런 말에 근거 있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빈우는 성과를 낸다. 다만 그 성과를 내는 과정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게 문제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선 깜빡이도 없이 다샤 쿠사키나 보안국장에게 치고 들어갔고 그 결과 보안국장이 정보국장의 멱살을 잡는 사태까지 갔다. 당했던 정보국장은 기뻐했다지만.

이어서 오브리가도 궤도기지에선 브레이크 없이 24함대와 캐서린 시슬 사령관을 들이받았다. 24함대 장갑 보병들은 전원 의무실 신세를 졌고 시슬 사령관에겐 며느리와 손녀의 머리에는 총을 겨누고 협박했다.

이렇듯 아차 했다간 주변의 동료들도 단두대 매치에 도매금으로 끌려나가는 위험한 짓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질러버리니, 보는 사람들로선 심장이 대단히 쫄깃해지는 것이다.

“좀 평화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을 고르면 좋겠구나.”

천하의 레드우드의 입에서 ‘평화적, 상식적’이란 단어까지 나오자 듣는 팀원들이 뒤집혔다.

“그러니까, 아이디어 좀 내보라고들.”

남은 고기를 꿀꺽 삼킨 빈우가 그렇게 말해본들 아이디어가 나올 리가 있나. 애초에 이쪽에서 잘못한 일에 대해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저쪽에서 견제 목적으로 감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다 의원이 홀로 사전 조사를 오는 것도 상원에서 제대로 감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형식상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후식을 준비할까요?”

정적을 깨트린 것은 아나스타샤였다.

“음, 그럴까? 좋아, 다들 차를 마시며 차분히 얘기해보지. 후식은 뭔가?”

레드우드의 질문에 아를르캥이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수레 위에는 전열기가 올려져 있고 그 위로 두꺼운 봉 하나가 수평으로 끼워져 있었다.

“바비큐?”

고개를 갸웃하는 레드우드의 질문에 아를르캥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오. 바움쿠헨입니다.”

그러고는 식탁 옆에 수레를 놓고 돌아가는 봉에 반죽을 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죽이 봉에 얇게 발라져 구워진다. 그 위로 반죽을 덧칠하자 케이크가 점점 두꺼워져 간다.

“오호, 원래 이렇게 만드는 거였구나. 재밌네.”

파트리샤가 나무의 나이테 마냥 커지는 케이크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군용 영양제나 생성기로 만든 음식이 일상인 팀원들에겐 직접 만드는 음식은 입만이 아니라 눈요기도 된다.

“후후, 운치 있군. 보아하니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은데. 일부러 이렇게 한 건가?”

레드우드도 고소한 냄새에 희미하게 웃으며 커피를 들었다.

“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이렇게 준비를 해보았습니다.”

대답하는 아를르캥 옆으로 아나스타샤가 미리 구워진 바움쿠헨을 팀원들 앞에 나눠주고 있었다.

“아를르캥.”

케이크를 앞에 두고 화기애애해진 식탁 위로 빈우의 목소리가 가로지른다.

“네, 팀장님.”

“오늘의 메뉴와 레시피는 전부 라캉 중령의 것이지?”

그러고 보니 보안국의 라캉 중령도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죽기 전에 어딘가에 숨겼었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열쇠를 자신의 허수아비인 아를르캥에 넣고 태스크 포스 373에 보냈다.

빈우는 아를르캥이 생활하면서 보인 행동 중에 열쇠가 될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중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요리 레시피일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인 아를르캥은 생전의 주인에게 배웠던 요리를 가끔 선보이고 있었다.

“맞습니다.”

아를르캥의 대답 뒤로 레드우드 사령관과 아룹 부팀장의 곁눈질이 다가온다. 행여 빈우가 뭔가 발견하지 않았나를 기대하며.

그러나 팀장인 빈우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의 메이드인 아나스타샤를 부를 뿐이다.

“아샤.”

“네, 주인님.”

“나 포크 바꿔줘.”

아나스타샤가 후식용 포크들을 들고 와 사람들이 썼던 식사용 포크와 바꿔주었다. 그리고 빈우는 그녀가 자기 앞으로 왔을 때 식사용 포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빈우는 접시 위에 놓인 바움쿠헨을 새 포크로 베어 입에 가져갔고 그걸 본 파트리샤가 놀려댄다.

“어머? 팀장님은 그거도 포크로 먹어요?”

그러는 파트리샤는 바움쿠헨을 손으로 들고 먹고 있었고 그건 옆의 위르겐도 마찬가지다.

“아이고, 뭐 장교라고 티 내시나.”

“야, 이 썅년놈들아, 테이블 매너.”

빈우는 팀원들의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충고를 할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뭔가 싶어서 그쪽을 보니 바움쿠헨을 손으로 들고 먹던 모니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우리 언제 이러고 놀지 않았었냐.”

발 가르단 하스로 갈 때 농어 파이를 먹으며 비슷한 일을 겪었던 빈우는, 한숨을 내쉬며 커피잔을 들고 단숨에 비웠다.

“아샤, 나 커피.”

그런데 아나스타샤가 식당에 없었다. 아마 주방에 볼일이 있어 간 모양이다.

아나스타샤는 빈우에게 받은 포크를 앞치마의 주머니에 감추고 주방으로 가고 있었다. 주방에 도착한 그녀는 재활용장치 앞에 서서 포크를 꺼냈다. 빈우의 악력에 일그러지고 구겨진 포크다. 그걸 잠시 내려다보던 아나스타샤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재활용장치 안으로 포크를 던져 넣었다.

‘어째서.’

아나스타샤가 어린 주인의 비명을 듣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샤프트에 끼어 돌아가신 마님. 그걸 보고 절규하는 도련님. 그녀는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기계를 끄고 도련님을 끌어안고 달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엄마의 시체에서 날린 피와 자신의 눈물, 오줌에 범벅이 되어 울부짖었던 꼬마는 그날 이후 고기를 먹지 못했다. 입안에서 약간의 고기 냄새가 나도 토했다. 그리고 기계 소리와 진동을 무서워했다. 비슷한 소리만 들려도 겁에 질려 땀을 흘리고 벌벌 떨었다.

몇 년에 걸쳐 아나스타샤는 빈우를 도왔다. 자신의 주인이 그날의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빈우 역시 그녀의 도움에 호응해 자기 마음속의 고통을 이겨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겨냈었다. 이겨냈을 터였다.

이제 빈우는 고기를 잘 먹는다. 기계의 소리나 진동도 더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샤프트에 말려 돌아가신 마님과 바움쿠헨은 달라. 같지 않아. 닮은 게 없어!’

“그런데 어째서.”

아나스타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왔다.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 예전으로 되돌아갈 것 같단 불안감에 마치 인간처럼 몸을 떨었다.

‘예전….’

문득 든 옛날 생각에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입을 악물었다. 주인님이 자신을 무시해도 좋았다. 매몰차게 대하고 멀리해도 좋았다. 다만 그날처럼 빈우가 고통 속에서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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