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80화 (80/301)

80화

아스탄은 함교에 서서 어두운 우주 공간의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저 칠흑의 공간 속에서 작게 반짝이는 하얀 점 중에 고향인 지구가 있을 것이다.

“선장님, 무얼 그리 뚫어지게 보십니까?”

옆에서 사탈로사 해병대장이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건다.

“지구를 보고 있었다네. 우리가 떠나온 고향을.”

“선조들이 떠나온 고향이겠죠.”

해병대장의 정정에 선장이 피식 웃었다. 그의 말대로 이 배, 세대 우주선인 새벽 파도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항해 중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과거 선조들은 다른 별로 이주를 하기 위해 둥근 땅, 지구라 불린 고향 행성에서 출발해 머나먼 우주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이주가 가능한 별은 너무나도 멀리 있었고 조상들의 이동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그래서 구해낸 답이 바로 세대 우주선이었다. 작은 도시만 한 크기의 거대한 우주선에 많은 사람을 태운다. 그리고 기나긴 우주 항해 동안 세대를 거치며 대대로 이주의 사명과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새벽 파도의 승무원 중에선 직접 지구의 땅을 밟거나 물, 공기를 마신 사람은 없다. 세대 우주선에서 태어나 그 안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지식은 모두 배의 도서관이나 자료실에서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고향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들로부터, 조부모들로부터, 그리고 그 위의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고향의 풍경과 모습 속에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같이 섞여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건 이 배뿐인가? 어언 3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군.”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조종간을 어루만지는 아스탄 선장에게 사탈로사 해병대장이 또 변죽을 놓는다.

“너무 서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이제 막 태양계에 들어갔을 뿐입니다. 지구까지는 한참 남았지 않습니까.”

“하하, 이 사람아. 자네는 기대가 되지 않나?”

“기대보다는 불안합니다.”

이 세대 우주선인 새벽 파도의 선장들은 언제나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생도 중에서 뽑혔다. 반면 해병대장은 언제나 회의적이고 신중한 생도 중에서 뽑혔다.

선장의 임무는 무엇일까. 배를 지키고 승무원을 지켜야 한다. 허나 이 새벽 파도의 선장은 무엇보다도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단 사명이 있었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을 갈라서라도 동료들을 이끌고 신천지까지 가야 한다.

해병대가 싸워야 할 적은 누구일까. 있지도 않을 외계종족? 아니, 그보다는 장시간에 걸친 항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동포들이다. 이들은 믿고 의지해야 할 동료들마저 잠재적인 반란세력으로 보고 있으니, 다른 일들에 대해선 더할 것이다.

그래서 새벽 파도의 역대 선장과 해병대장들은 항상 상반된 성격을 가져왔다. 하지만 각자의 단점으로 상대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그 시너지에 의해 지금까지 험난하고 긴 항해를 이겨낼 수 있었다.

“사람이 바뀌고 배가 바뀌었습니다. 고향이라고 바뀌지 않았을까요?”

“모든 것은 바뀌지.”

해병대장의 말에도 선장 아스탄은 아랑곳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이제 태양계로 돌아왔으니 지구와 교신을 재개한다.”

그의 명령에 통신담당 선원이 감개가 무량한 표정으로 지구로 미리 저장해놨던 연락문을 보냈다. 새벽 파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귀환선언문이다.

과거 새벽 파도는 태양계를 떠날 때 고향인 지구와 일체의 통신을 끊었었다. 더는 뒤를 보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다.

그리고 300년이 지난 오늘, 새벽 파도는 다시 고향 항성계로 돌아와 여행을 떠난 고향 지구에 귀향을 알리는 연락을 보내는 것이다. 비록 아스탄 본인을 포함한 모든 승무원들은 새벽 파도의 귀향길에 태어난 사람이라,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선택지를 골랐던 당사자들은 아니다. 그러나 조상의 염원을 물려받은 이들이니 드디어 목적지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충족감을 느끼고 열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신이 올 때까지는 한참 걸리겠지.”

여기서 지구까지는 광속으로도 제법 먼 거리다. 연락이 닿고 다시 회신이 오기까지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새벽 파도가 가려면 더욱더 긴 세월이 걸릴 것이다.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군요.”

사탈로사의 말대로 귀환선언문이 발신된 다음 새벽 파도의 모든 이들은 기쁨에 겨워 환호하고 있었다. 해병대장의 앞에는 새벽 파도 곳곳을 비추는 화면들이 떠올라 있다. 거기엔 흥분해서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럼 본격적으로 축제를 시작해 볼까.”

아스탄이 선내방송을 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기나긴 귀향길 도중 마침내 태양계에 들어섰다는 것은 하나의 분기점이다. 승무원과 시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그리고 기념을 위해서 배의 사람들은 축제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선장이 방송을 시작하려던 찰나, 강렬한 충격이 아스탄과 사탈로사를 휩쓸었다.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니다. 함교 내의 모든 인원은 물론이고 거대한 세대 우주선 새벽 파도 전체에 이제까지 없었던 충격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상황을 보고하라.”

선장의 명령에 승무원들이 허둥대며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보나 마나 운석이겠지. 해병대 출동합니다.”

사탈로사 해병대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함교를 나갔다. 그의 말대로 이 정도 충격이면 꽤 큰 암석군과 충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선 내외 수리작업에는 해병대원이 필요하다.

“대피경보발령! 축제는 취소. 배의 수리가 먼저다.”

아스탄도 명령을 내리며 새벽 파도의 상황을 점검했다.

‘바보 같으니! 축제를 앞두고 해이해졌던 탓인가. 암석군이 배에 다가올 때까지 몰랐다니.’

아스탄은 허리의 칼날을 부여잡으며 분을 삭였다.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라 냉정하게 지휘를 해야 할 때다.

“선장님! 정체불명의 함선입니다.

경악의 함성과 동시에 함교의 주 화면에는 이상하게 생긴 함선이 나타났다. 얼핏 겉모습만 봐도 설계 사상이 인류의 것은 아닌 듯했고, 크기는 새벽 파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저 정도 크기의 배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왔는데도 탐지를 못 했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다. 저쪽이 의도적으로 모습을 감추고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저 배가 새벽 파도에 일어난 충격의 원인일 가능성 또한 대단히 높아 보였다.

“뭐지, 어느 소속의 배지?”

“설마 지구에서 온 배인가? 우리를 쫓아내려고?”

정체불명 함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함교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전원 진정해라. 파손 부위의 응급 수리를 서두르고 부상자를 치료해라.”

그다음이 문제다. 선장인 아스탄은 저 배와 어찌 통신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 상대의 정체와 목적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에….’

아스탄이 생각을 가다듬고 재차 명령을 내리려 할 때 정체불명의 함선이 공격을 시작했다. 아니, 재개했다. 공격의 개수는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그 위력만큼은 일방적이고 압도적이다. 정체불명 함의 공격에 새벽 파도는 저항도 못 하고 유린당한다. 300여 년간 우주를 항해하고 임무를 수행한 배가 고향 항성계에 들어오자마자 외계인의 기습에 파괴되어 간다.

“반격하라. 모든 함포 발사! 미사일 발사!”

아스탄의 명령에 암석을 요격하기 위한 함포들이 적함을 조준했다.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암석 대비용 무장이었기에 대부분의 함포는 금방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자기 가속 탄, 집속 광선, 탄두 미사일 등의 무장이 적함을 향해 날아갔지만 적은 전혀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적당하게 조절된 적의 공격에 새벽 파도의 무장들이 하나둘씩 파괴되어간다. 이어서 적함에서 나온 소형정 몇 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무력화된 새벽 파도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소형정에서 외계인들이 나와 배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장! 외계인이오! 외계인들이 새벽 파도를 공격하고 있소.

다급한 사탈로사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울린다. 새벽 파도의 부서진 곳을 통해 침입한 외계인과 수리를 위해 출동한 해병대가 충돌한 것이다.

“해병대장,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그러나 대답이 없다. 설마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다시 부른다.

“해병대장! 사탈로사 해병대장!”

통신기의 음량을 올리자 그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는 것은 굉음과 비명이다. 동포의 단말마다. 아스탄은 통신을 끊고 급히 새 명령을 내렸다.

“즉시 지구와 모든 이주 행성에 대한 항법 정보를 지워라. 선장 명령이다.”

압도적인 과학력을 지닌 적대적 외계인이 인류의 이주 함선을 나포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최악의 경우 놈들이 항로 데이터를 추출해 고향과 이주 행성에 대한 정보를 가져간다면?

“삭제를 기다리지 마. 아예 부숴버려라.”

아스탄이 직접 항법장치를 부수려 칼날을 뽑아 세웠을 때, 함교의 문이 부서지고 외계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아스탄은 정신을 잃었다.

* * *

새벽 파도의 선장인 아스탄이 정신을 차린 곳은 어두컴컴한 방이었다. 주위를 살펴보자 방안에는 별다른 가구는 없었고 몸에 난 가벼운 상처들은 치료가 되어있었다. 아스탄이 일어나 방을 이곳저곳 살피고 있자, 문이 열리며 외계인이 하나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인간과 비교해 허리까지 오는 작은 체구에다가 다리는 둘 뿐이다. 그리고 허리에 칼날은 없으니 군인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외계인인데 허리의 칼날 유무로 계급을 분간할까?’

-아스탄 선장님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말없이 가만히 생각하던 아스탄에게 외계인이 다시 말을 건다. 능숙한 언어사용에 놀란 아스탄이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 외계인은 친절한 어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유감이군요. 저는 인류연방 소속의 김빈우 소령이라고 합니다.

제법 정중한 어투다. 실제로 말은 그 외계인의 가슴에 달린 작은 기계에서 났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인류란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 의외의 상황에 아스탄이 움찔하자 김빈우란 이름의 외계인이 정정한다.

-실례. 대부분의 종족들이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또 고향 행성을 지구라고 부르지요. 통역기의 오류는 너그러이 봐주시길. 흠, 저희 종족과 국가 연합체는 당신들 종족에겐 으음, 유에네스라고 불립니다. 참고로 당신들 종족은 저희에겐 위-은쓸-납-학이라고 불립니다.

위은쓸납학, 초원 동맹 연합이란 뜻이다. 헌데 왜 저 외계인들은 우리 인간을 초원 동맹 연합이라 부르는 것일까. 한 가지 의문이 아스탄의 머리를 스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차부터 한잔하시죠.

그러면서 김빈우는 다기와 딸기를 꺼냈다. 인간들의 다기라 그런지 유에네스족인 그에겐 꽤 컸다. 그래도 그는 솜씨 있게 딸기를 짓이겨 찻잔 바닥에 빈틈없이 바른 다음, 말린 딸기 뿌리를 잘 그을려 찻잔 바닥에 켜켜이 쌓았다. 마지막으로 찻잔에 물을 붓고 불 위에 올린 다음 한숨 달여서 아스탄 앞에 내었다.

-부끄러운 솜씨입니다만, 어떻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아스탄은 찻잔을 들어 맛을 음미했다. 김빈우란 유에네스의 딸기 차 달이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재료와 다기는 분명 새벽 파도에서 가져온 것이겠지만 이렇게 다도에 조예가 깊은 것을 보면 김빈우는 인간의 문화에 꽤 조예가 깊은 듯했다.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습니다.

아스탄이 차를 다 마시고 나자 김빈우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익숙지 않은 행동이지만 그것이 유에네스들에게 있어 사과의 의미란 것은 아스탄에게도 대충 전해졌다.

-실은 저희 유에네스와 당신들 초원 동맹 연합은 얼마 전까지 전쟁을 했었습니다.

충격적인 발언에 아스탄의 허리에 달린 칼날이 움찔한다. 인류와 전쟁을 하고 있다는 외계종족 유에네스. 그들은 지금 태양계에 와있으며 방금 인류의 세대 우주선인 새벽 파도를 공격했다.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크기의 유에네스 군함은 새벽 파도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들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고 이쪽의 공격은 아예 통하지 않았다. 그런 유에네스와 전쟁을 했다는 지구와 고향의 인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스탄은 생각하는 게 두려워졌다.

-진정하십시오.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김빈우가 부랴부랴 해명한다. 아스탄이 진정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그것을 기다린 김빈우는 다시 말을 했다.

-전쟁은 우리 유에네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인류는, 위-은쓸-납-학은 항복선언을 했지요.

이어지는 충격적인 소식에 아스탄이 멍하니 있자 김빈우가 둘 사이에 입체영상을 띄운다.

-믿지 못하실까 봐 부득이하게 이런 영상으로 설명해 드립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다리가 둘 달린 작은 외계인-유에네스-들이 갑옷을 입고 도시로 쏟아진다. 그리고 새벽 파도에 실린 기록보다 훨씬 진보된 무기와 장비를 갖춘 인류의 전사들이 허리의 칼날을 세우고 맞서 싸우러 나간다.

“아아.”

인류의 전사들이 일방적으로 죽어 나가는 모습에 아스탄은 한숨과 비명을 내쉬었다. 한눈에 봐도 유에네스의 과학력은 인류의 것보다 뛰어났다. 허나 그보다 더 차이가 나는 것은 전투 실력이었다. 인류는 훨씬, 아니 압도적인 전투 실력을 지닌 유에네스의 상대가 되질 못 했다. 척 봐도 정예병으로 보이는 전사들마저 사방에서 쏟아지는 협공에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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