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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81화 (81/301)

81화

-물러서지 마라, 여기가 무너지면 바로 부화장이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필사적으로 부대를 독려하던 장교의 머리가 날아간다. 이어서 사람 절반만 한 크기의 유에네스 병사들이 달려들자 인류의 부대는 삽시간에 무너져 내린다.

잠시 지상의 전투 장면이 이어진 다음 화면은 행성궤도로 바뀌었다.

“지구다.”

아스탄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니, 나지막한 비명이다. 영상기록물에서만 보던 지구의 모습이 곳곳에서 불타고 파괴되고 있었다. 외계인의 군함들은 지구의 행성궤도에서 포격을 퍼부었고 지상의 인간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유린당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산맥들이 무너지고 깎여나갔으며 고요히 물결치던 바다는 검게 물들어 타오른다.

-여기까지 하죠.

김빈우는 영상을 끈 다음 쇼크를 받고 굳어버린 아스탄의 앞에 앉았다.

-이후 당신들 초원 동맹 연합은 우리 유에네스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항복을 받아들였고요. 지금 당신들 고향 행성은 평화로우니 안심하십시오.

이어서 나타나는 영상은 다시 지구의 모습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시일이 흘렀는지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류의 삶이 아스탄의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스탄과 새벽 파도의 승무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발전된 삶이다. 당연하다. 좁은 세대 우주선 안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해봐야 본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본 함은 이곳 항로를 순찰 도중 정체불명 함, 그러니까 당신들의 세대 우주선을 발견하고 절차에 따라 공격을 했습니다.

그 말에 아스탄은 다급히 질문했다.

“우리 배는, 새벽 파도는 어찌 되었소. 승무원들은?

-자자, 진정하십시오.

서두르는 아스탄에게 김빈우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너무 오래전의 배라 알아보지 못한 게 저희의 실수입니다. 따라서 일단 절차에 따랐다고 하나 본 함의 공격으로 일어난 피해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또 부상자들은 저희가 치료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물론 선체의 수리와 보상도 확실히 하겠습니다.

다음 화면에는 병실에서 치료를 받는 승무원들과 해병대원, 그리고 사탈로사 해병대장이 보인다. 그제야 안심하는 아스탄 선장에게 빈우가 다시 말을 걸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란 말에 아스탄은 다시 긴장했다.

-부끄럽지만 우리 유에네스는 파벌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파도 있지요. 이들은 휴전협정의 효력이 이 항성계에 제한된다는 점을 악용해서, 항성계 바깥으로 나간 이민 선단을 공격하고 개척민들을 학살하는 쓰레기들입니다. 이는 비록 협정 위반은 아닐지언정 엄연히 중죄입니다.

이어지는 엄청난 정보들의 홍수에 아스탄은 익사 직전이다. 고향 태양계에 돌아오자마자 유에네스란 외계 종족의 공격을 받았고 그들과 고향의 인류는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구와 인류의 패배.

어느 것을 믿고 어느 것을 의심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김빈우의 말은 계속된다.

-실례지만 항법 데이터를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일부 남겨진 자료에 이주를 했던 행성들이 있더군요. 현재로선 당신들이 과거에 이주했던 행성들조차 지금 당장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호전적인 우리 군벌로부터 그들을 지켜야 합니다. 부디 그들을 지킬 수 있도록 이주 행성의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알려만 주신다면 즉시 구조대를 보내 보호하겠습니다.

아스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저 말을 믿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까 지워버린 이주 행성의 위치는 최고 기밀이다. 특히 외계 종족과 인류가 전쟁을 하고 패배한 현시점에선 그들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 보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빈우의 말에 의하면 인류의 개척 행성을 찾아 공격하는 분파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 유에네스는 이주민들을 지킬 수 있도록 그곳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한다.

아스탄이 대답 없이 한참을 고민하자 김빈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어금니를 뽑아내어 아스탄의 앞에 내려다 놓았다. 특이하게 붉은색의 피에 하얀색의 이다.

-가장 안쪽의 이, 당신들의 말로 ‘진실’이란 뜻도 있지요.

지금은 바랬지만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약속표시다.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를 뽑은 자리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피가 김빈우의 입을 넘쳐흐르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해야 합니까.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당신들과 우리 종족은 평화를 이루고 있고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 부디 당신들의 동포를 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우리 종족의 손에. 제발! 우리가 더는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스탄은 애원하는 김빈우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저들 종족이, 인간들의 문화에 해박한 김빈우가 이렇게까지 애원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다시 한참을 고민하던 아스탄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좋소. 다만 조건이 있소.”

-무엇입니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바싹 다가앉는 유에네스의 표정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기계에서 나오는 음성은 기쁨에 찬 목소리였다.

“구조대에 우리 인간들도 포함해주시오.”

-당연한 말씀을. 갑작스레 외계 종족과 마주치면 이주민 분들이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새로운 고향에서 떠나란 말을 들으실 리도 없겠지요. 애초에 구조대에는 본성의 초원 동맹 연합분들도 포함될 예정이었습니다.

그 말에 조금 안심한 아스탄 선장은 새벽 파도에 의해 이주했던 세 곳의 개척 행성 위치를 김빈우에게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즉시 구조대를 편성하고 파견해 이주민들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더 질문해도 되겠소?”

-네. 얼마든지 하십시오.

“당신들 기술력으로 개척 행성까지 가려면 얼마 정도 걸리오?”

-글쎄요. 저는 항해 쪽은 전문이 아니라 정확히 모르지만, 사나흘이면 족할 겁니다.

“사나흘!”

놀란 아스탄이 탄성을 터트렸다.

“사나흘….”

다시 나온 말은 같은 단어였지만 내포된 의미는 한탄이었다. 백여 년이 넘는 항해가 단 3일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 그동안 새벽 파도가 했던 여정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나긴 항해 동안 불의의 사고로 칠흑의 바다에 삼켜져 갔던 동포들의 희생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더구나 새벽 파도와 선조들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를 헤매는 동안, 고향은 엄청난 발전을 했고 전쟁을 치렀으며 결국엔 항복했다. 그리고 그 머나먼 길을 지금은 단 3일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세대 우주선에서 평생을 살다간 선조들의 삶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그 마음, 충분히 짐작합니다. 세대 우주선의 딜레마는 어느 종족마다 있지요.

아스탄이 멍하니 빈 찻잔을 보며 실의에 빠져 있자 김빈우가 위로한다. 머릿속이 혼란한 와중에도 김빈우의 말에서 질문할 거리를 찾은 것은 아스탄의 본성 덕분일 것이다.

“어느 종족이라… 이 우주에 또 다른 종족들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얼추 스무 종족은 되지요.

이젠 더 놀랄 힘도 없다. 새벽 파도는 우주에서 300년을 헤맬 동안 단 하나의 외계 종족도 만나지 못했는데 지금은 20여 종족이 있다고 한다. 과거 선조들이 모험을 떠났던 시간의 가치가 점차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차 한잔 더 부탁하오.”

힘겹게 내민 아스탄의 찻잔을 받은 김빈우가 다시 차를 달여 준다.

-혼란스러우실 테니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계십시오. 일단 이주하신 분들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조처를 한 후 다시 오겠습니다.

김빈우 소령은 연신 감사를 표하며 새벽 파도와 이주 행성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반드시 보장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다음 방을 나섰다.

아스탄을 남겨두고 문밖으로 나온 이노우에 고토 국장은 혀로 어금니 자리를 핥아보았다. 낫겠다고 생각을 한순간 이미 출혈은 멎었고 상처는 아물고 있다. 간질간질한 재생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굳이 직접 심문을 하셔야 했습니까?”

입을 우물우물하는 고토의 뒤로 마커스 타이 소령이 걸어왔다.

“어흠. 타이 차장, 윗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나.”

이노우에 고토 정보국 국장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돌아보았다. 이렇게라도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지 않으면 책상에서 녹슨다는 게 고토의 지론이었다.

“그래. 국장님께서 이를 뽑아가며 모범을 보이셨는데, 그렇게 얻은 정보가 가짜면 어쩌시렵니까?”

“에잉, 거짓말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건 하책일세. 애초에 상대가 거짓말을 못 하게 만든 다음 질문을 하는 게 상책이지. 타이 차장, 위은쓸납학의 이주 행성에 대한 정보를 즉시 통합전투사령부에 보내도록. 그리고 나머지는 지금 처리하게.”

이노우에 고토 국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커스의 뒤에 섰던 장갑 보병들이 안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던 위은쓸납학 선장을, 아스탄 선장을 사살했다. 그리고 이들이 탄 배 솔리드 감마에서 포격이 쏟아져 나가 세대 우주선인 새벽 파도를 강타한다.

새벽 파도는 도시 크기의 거대한 우주선이지만 위은쓸납학의 삼백 년 전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구형함이다. 중요한 곳마다 핵미사일이 꽂히자 금방 선체가 붕괴하고 시민들이 죽어간다.

“한데 얻은 정보를 검증도 안 하고 보내도 됩니까?”

마커스는 침몰하는 세대 우주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질문했다. 보통 정보를 얻었다면 그 진위를 판단하고 나서야 보고를 한다.

“위은쓸납학의 이주 행성에 대한 정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런 수고를 하나. 그래도 말일세, 이렇게나마 재수 좋게 핑곗거리를 구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와 솔리드 감마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구실로는 차고도 남아.”

처음부터 본래의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 연막을 위한 위은쓸납학의 이주 행성 정보는 맞으면 좋고 틀리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가명으로는 왜 빈우의 이름을 쓰신 겁니까?”

마커스는 휘하 부대원들에게 세대 우주선의 잔해에 강하해 생존자를 말살하도록 명령을 내린 다음 자신의 상관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이노우에 국장이 히죽이 웃는다.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벌써 잊었는가? 메소드 연기일세, 메소드. 그게 이번 작전에 꼭 필요하단 말일세. 목표의 심리를 파악하고 모방하면 그 행동도 예측할 수 있거든.”

그 말에 마커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앞서 걸어가는 고토 국장을 따라간다.

“솔리드 베타가 공격받은 포말하우트 게이트는 사건 당시 근처 행성까지 싹싹 훑지 않았습니까? 근데 굳이 지금 여기 위은쓸납학 항성계까지 올 필요가 있습니까?”

마커스의 의문은 당연하다. 위은쓸납학은 연방과의 전쟁 후 문명으로서는 완전히 멸망했다. 고작해야 해적 규모의 잔당이 간신히 명줄만 잇고 있을 뿐, 모성과 식민행성은 완전히 파괴되어 암석지대가 되었고, 그동안 쌓아왔던 기술과 문화는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방금 알게 된 세 곳의 식민행성들도 곧 그리될 것이다.

부하의 질문에 고토 국장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뒤로 돌아보았다.

“아무렴 있고말고. 그날 포말하우트 점프 게이트 안에서 울토르 중대가 기습을 받았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조사를 못 했지 않나? 보안국과 과학기술국의 눈치를 보느라 형식적인 것만 했었지. 그다음부터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말일세, 일 년 반이란 시간이 흘러도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호들갑을 떠는 고토 국장을 보던 마커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다음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마무리 작업을 지휘하러 가보겠습니다.”

“음, 잘 부탁함세.”

마커스가 돌아가자 이노우에 고토는 홀로 남은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김 소령, 김빈우 소령. 우린 위은쓸납학에서 처음 만났었지? 그날 자네가 보여준 행동은 정말 놀라웠다네. 무엇이 자네를 그리도 몰아세웠던가? 그리고 공격받던 솔리드 베타에서 자네가 감춰둔 것은 더더욱 놀라웠다네. 왜 자네는 그런 행동을 했어야만 했나?”

2216년 6월 8일 울토르 중대와 솔리드 베타는 포말하우트 점프 게이트에서 점프를 하다 샤다이의 공격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었다. 그리고 그날 빈우는 자신의 머릿속에 트리니티 패턴으로 모종의 정보를 숨기고 자신은 클론으로 위장해서 숨어들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이노우에 고토는 이것이 궁금했다.

어차피 트리니티 패턴으로 숨긴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이기에 이를 배려해서 빈우를 외부 파견 요원으로 보냈다. 허나 명색이 군사정보국인데 멍하니 손 놓고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보국장인 이노우에 고토가 직접 나서서 당시 있었던 일의 자료와 증거를 다시 수집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사소한 자료가 모여 블록이 맞춰질수록 고토 국장은 기대감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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