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어, 여기가 태스크 포스 373의….”
“기지입니다.”
빈우는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오다 의원을 도와주었다. 지금 일행은 블랙 랜스 앞에 와 있었다.
“군함인데요?”
“네. 태스크 포스 373의 기지입니다.”
빈우의 처음 계획은 특수전 사령부 궤도기지 안으로 오다 의원을 모셔가 다과나 하면서 탐색전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먼저 태스크 포스 373의 기지부터 가자고 했다. 그래서 373의 팀장은 상원의원을 이리로 이끌게 된 것이다.
“실은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게 되면 각 팀은 사령부 안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거점을 부여받는다. 태스크 포스는 해당 임무를 위해 각 부대에서 적절한 인물들을 뽑아 구성한 팀이기에, 자기들만의 독립된 명령체계가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기밀 유지를 위해서다.
헌데 373은 이런저런 트러블이 얽혀 후방팀이나 거점 등이 채 정해지기도 전에 도망치듯 뛰쳐나갔어야 했다. 나가 있는 동안에는 특수전 사령부에 워프 비스트가 침공하는 바람에 지원팀을 꾸리고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직속 상관이던 레드우드가 부사령관에서 사령관이 되어버려 더는 태스크 포스 373에만 집중을 하기 힘들어졌고, 사령부 외부에서도 조금씩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빈우는 팀의 거점을 아예 블랙 랜스로 잡아버렸다. 이렇게 하면 보안상 이점도 얻을 수 있고 소규모 팀인 만큼 신속성도 얻을 수 있다.
다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닌 법. 블랙 랜스는 어디까지나 구축함이라 내부 시설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롱 훅 프로젝트를 거쳐 전면개수를 받았다고 하나 그것은 전투력 부분이지 함 내 복지시설 부분은 생색만 낸 수준이다.
“아, 그랬군요.”
빈우의 이런저런 설명에 납득한 오다 의원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면 제 숙소는 어디인가요?”
이어진 오다 의원의 질문에 빈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연방 상원의원이라면 의전서열로 따져서 4성 장군이다. 이런 구형 구축함의 너저분한 선실에 처박힐 분이 아니신 것이다.
-함장님, 혹시 블랙 랜스에 상원의원을 모실만한 방이 있을까요?
빈우가 급하게 통신을 날렸건만 답이 좀 늦다.
-그것이… 일단 본 함은 전투력 부분만 강화하면서 불필요한 부대시설은 전부 빼버린 터라, 마땅한 곳을 찾기가 힘들군요.
배와 뇌를 연결해 함선 곳곳을 자신의 몸처럼 파악하는 오르 함장이 힘들다고 말한 것은 없다, 의 완곡한 표현이다. 현재 블랙 랜스에는 함장인 오르 소령조차 함장실이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오르 함장의 신체 특성상 반영된 면도 있지만, 롱훅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이던 블랙 랜스가 진짜 싸움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자마자 레드우드 사령관이 보쌈해 온 영향도 크다.
“어흠. 의원님, 숙소는 저희가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 굳이 이런 험한 곳에서 묵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빈우가 급하게 해결방안을 찾을 동안 레드우드 사령관이 나서서 어떻게 만류를 해본다.
“배려 감사합니다만 저는 태스크 포스 373의 조사를 위해 왔습니다. 팀원분들의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 하는 제 입장도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다 의원의 말에 레드우드가 다시 뭐라고 설득을 하려 할 때 얘기가 끝난 빈우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의원님, 사령관님께서 이 배 안을 험한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드러운 표현입니다. 보통 군함은 군인들을 태우기 위한 것이라 군용강화를 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타기 힘듭니다. 함 내 대기 순환 시스템이나 중력 가속도 등이 전부 강화 신체에나 쾌적한 생활을 제공하는 수준이지요. 물론 민간인들을 위한 구역도 있습니다만, 현재 블랙 랜스는 미완성인 상태라 의원님을 모실만한 여건이 안 됩니다. 그러니-”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이곳에 오기 전에 간이 군용시술을 받았습니다.”
뜬금없는 커밍아웃에 빈우와 팀원의 눈이 동그래진다. 원래 군인이 되면 하원의원은 물론이고 일체의 의정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상원의원이 군용시술을 받았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군용시술을 받으셨다고요?”
빈우가 확인차 다시 물었다.
“네. 군사시설에서 생활할 정도로 받았습니다.”
“실례지만 그 강화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오다 히토미 의원이 공개한 신체 강화 정보는 주로 생존에 관련된 정도이며 전투 강화는 일체 없다. 이 정도의 강화는 험한 곳에서 작업하는 엔지니어들이 받는 정도다. 다만 체내의 응급의료용 장기나 기타 외부 연결기 등이 군용장비와 호환되는 사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상원의원께선 아예 작정하고 왔다는 얘기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 신체를 사용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의 목록들도 볼 수 있을까요?”
신체 강화는 그냥 시술만 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두뇌 칩에 해당하는 프로그램들이 깔려있어야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한다.
빈우의 요구에 오다 의원은 흔쾌히 목록을 제공했다.
“흐음.”
역시나 전투용 프로그램은 없고 체내 호르몬이나 강화 장기들의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들뿐이다.
“좋습니다. 이 정도면 군함 내에서 생활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겠군요. 일단 함장님께 허락을 받겠습니다.”
감사의 조사차 나온 상원의원이 가겠다는데 어디든 못갈까. 형식적인 절차나마 허락이 떨어지자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 블랙 랜스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런 그녀 앞을 빈우가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헌데 의원님, 강화 받은 그 육체를 실제로 써보신 적은 있습니까?”
“네? 아뇨. 시술받은 다음 이상이 없다고 했었고 아직 사용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빈우가 살펴본 바로는 오다 의원이 받은 시술들은 해당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부류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기록에도 최종점검까지만 있지 실사용 기록들이 없다.
“흠, 그럼 시험 삼아 이걸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빈우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여러 가지 색상의 마카롱들이다.
“아나스타샤.”
“네, 주인님.”
빈우의 부름에 자신의 할 일을 알아챈 아나스타샤가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두 손 위에 받치고 다가온다. 그리고 빈우가 그 손수건 위에 마카롱 몇 개를 올려놓자 아나스타샤가 그것을 공손하게 오다 의원의 앞에 내었다.
“의원님, 드셔보시겠습니까?”
집주인이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음료나 음식들을 대접해 우호를 다지는 예절은 인류에게 오랜 기간 내려오는 풍습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는 일종의 의식처럼 행해진다.
예를 들어 먼 곳에서 외계종족의 사절단이 오거나 자치정부의 손님이 방문할 경우 공항이나 항구에서 연방은 음식을 갖춰 손님을 대접한다. 이것은 연방이 집주인의 자격으로 상대를 손님으로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며, 서로의 관계를 주인과 손님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 랜스가 태스크 포스 373의 본거지라고 이미 밝혀놨으니 빈우가 지금 오다 의원에게 마카롱을 내는 행동은 꽤 의미심장하다.
‘손님으로 오시면 우리도 예의를 다해 대접해 드리겠소.’
받아들이기에 따라 선전포고일 수도 있고 휴전 제의일 수도 있다. 그 속내를 읽은 레드우드의 눈빛이 일순 날카로워졌다. 과연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 이 대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머나, 감사합니다.”
그러나 오다 의원은 아무런 생각 없이 뜻밖의 과자에 기뻐할 뿐이다. 속내를 일부러 드러내는 건지 아니면 아예 드러내지 않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생각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레드우드 사령관은 부하의 수완에 작게 감탄했다.
-너, 준비성 좋군. 그런 건 언제 준비했냐.
레드우드가 빈우에게 통신을 날릴 때 상원의원은 미소를 지으며 마카롱 쪽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마카롱을 집어 올리는 순간 예상외의 사고를 치는 부하로부터 답신이 왔다.
-네? 이런 건 다들 가지고 있지 않나요?
빈우가 한 말의 의미를 조금 늦게 파악한 레드우드 사령관과 아룹은 설마 했다. 그러나 두 손에 마카롱을 들고 있는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썩 좋은 상태는 아닌 것에 그 설마가 사실로 일어났음을 깨닫고 자신들의 체온이 급강하하는 것을 느꼈다.
-아룹! 저 미친놈 잡아라!
레드우드가 급히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부팀장이 채 무슨 조처를 하기도 전에 이미 사건은 일어나 버렸다.
“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오다 의원은 마카롱을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 싱글벙글 웃으며 손수건 위로 손을 뻗어 마카롱 하나를 더 집었다. 그걸 보는 아나스타샤의 얼굴에는 측은함이, 빈우를 보는 아룹과 레드우드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떠올랐다.
“음, 맛있어. 빈말이 아닙니다. 연방군 장병 여러분에 대한 복지가 정말 훌륭하군요. 이렇게 맛있는 마카롱은 저도 처음입니다.”
의외면 의외고, 예상이면 예상대로인 반응에 빈우는 정말 눈물을 닦고 싶어졌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속죄의 눈물이다.
“의원님.”
“네 팀장님.”
“먼저 이런 음식을 낸 제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의원님께서 군사시설에서 생활하기 위해 여러 시술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정말 깊이 감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마카롱의 맛은 마카롱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네?”
오다 의원의 이번 대답은 씹고 있던 두 번째 마카롱을 마저 삼킨 다음에 나온 것이다. 더더욱 미안해진 빈우는 설명을 조금 서둘렀다.
“군용 식품. 특히 그런 마카롱 같은 비상식량은 먹었을 때 혀에서 맛을 느끼기 전, 해당 식품에 대한 정보를 인식한 두뇌 칩에서 뇌에 저장된 미각 신호를 재생시킵니다.”
빙 둘러 말했지만 오다 의원은 기차게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이 마카롱은 원래 이 맛이 아니란 뜻인가요? 두뇌 칩에서 출력하는 맛이란 말씀이지요?”
“애석하게도.”
빈우의 대답을 들은 오다 의원이 잠시 가만히 있었다. 이 침묵에 레드우드와 아룹은 기겁했다. 상원의원이 자신에게 군용 비상식을 먹인 군인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면서. 그러나 이 불길한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로 알게 된 빈우는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
“어억, 의원님! 잠깐만요! 끄지 마세요! 끄지 마!”
빈우가 뭘 해보기도 전에 오다 히토미 의원은 두뇌 칩에서 군용 식품의 미각을 재생하는 해당 옵션을 꺼버렸다. 그리고 입안에 남아있는 마카롱을 가장한 군용 연료의 맛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날 것으로 느껴버렸다.
“우웁.”
순식간에 그녀의 눈은 동그래지고 볼은 부풀어 올랐으며 발은 동동거렸고 손은 파닥거린다. 왜 군용 식품에 저딴 옵션이 붙느냐면 맨입으론 절대 못 먹을 맛이기 때문이다.
“의원님!”
아나스타샤가 서둘러 냅킨을 들고 달려가 그녀의 입가를 가렸다. 그러자 참았던 오다 의원이 안심하고 폭발했다.
-우웨에에엑.
상원의원의 입에서 군 강화 신체용 고형 영양제가 질퍽하게 쏟아져 나왔다. 입안에 있던 것뿐만이 아니라 위 안에 있던 것까지,
“다시 켜시면 될 텐데. 아니, 아닙니다.”
그렇게 버벅대는 빈우에게 레드우드가 통신을 하나 보냈다. 그로서는 정말로 보기 힘든 겁에 질린 말투다.
-무서운 놈. 이것도 네놈 계획 중 하나냐.
-아닙니다, 아녜요. 오해입니다.
필사적으로 반론하던 빈우는 자신의 메이드인 아나스타샤가 오다 의원의 등을 두들겨 주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통신으로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선빵으로 기선 제압한 게 아닐까요?
-야, 이 미친놈아.
일행은 간신히 진정한 오다 의원을 데리고 블랙 랜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부랴부랴 마련한 숙소에 아나스타샤와 오다 히토미 의원을 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길길이 날뛰는 레드우드 사령관도 마찬가지로 진정시킨 다음-이때 쌍방 간에 좀 험한 보디랭귀지가 오갔다-돌려보냈다. 나머지 팀원 전원은 잽싸게 작당 모의를 하기 위해 회의실로 모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