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씨발! 팀장님, 그걸 왜 먹여요. 기선제압 같은 거 하지 말자고 했잖습니까.”
373 팀원들이 모인 회의실에서 위르겐이 소리 높여 질타한다. 겁에 질린 목소리다.
“아니라니까! 오다 의원의 신체 강화 정도를 살펴보기 위해서였어. 상대방이 어떤 육체에 어떤 프로그램이 깔렸는지는 알아야 이쪽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또 저쪽에선 저쪽대로 제대로 된 정보도 안 주잖아.”
빈우는 필사적으로 설명하지만 다른 팀원들에겐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워낙에 전과가 많다 보니 다들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근데 그거 맛있지 않아? 난 괜찮던데.”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모니카가 말했다. 그녀도 군인이고 군용 강화를 받았기 때문에 군용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오늘 문제가 된 마카롱도 제법 먹어본 적이 있다.
“그거 먹을 때는 괜찮은데 나중에 입안에서 남은 맛이 느껴지면 좀 그래요.”
그나마 좀 먹어본 우지가 설명한다. 파일럿 특성상 장거리 비행을 나가면 마카롱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기에 팀원 중에선 가장 많이 먹어본 사람이다.
“그럼 그 기름 냄새랑 화학 약품 냄새가 마카롱 거였어?”
과학기술국 시절, 모니카는 시간에 쫓길 때 가끔 군용 마카롱으로 끼니를 때웠었다. 하나만 먹어도 든든해지고 기운이 넘쳐흘렀으니 꽤 괜찮았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다른 선배들은 질겁을 했지만. 그리고 먹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입과 위에서 괴상한 냄새가 올라오긴 했어도 그녀는 그게 작업실에서 나는 냄새로만 알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토해서 다행입니다. 두 개면 2만 칼로리니까-”
빈우는 나머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상원의원의 소화기관은 강화가 안 되어서 자칫하면 소화기관에 무리가 왔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혐오스러운 시선의 교차 사격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나스타샤도 차암 착하지. 시킨다고 그걸 들고 있어요. 나 같으면 그거 팀장님 얼굴에 던져버렸을걸요.”
파트리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누굴 놀릴 때마다 사악한 미소를 짓는 그녀였지만 상원의원에게 군용 비상식량을 먹이고 토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나스타샤로부터 별다른 연락은 없군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랄까요.”
부팀장 아룹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팀원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아샤에겐 간호하면서 정보 수집하라고 일러뒀으니까 좀 있으면 올 거랍니다.”
그러나 빈우가 촐싹대며 나불대자 팀원들이 다시금 폭발했다.
“아나스타샤한테 그런 거 시키지 말라고요!”
막내인 위르겐이 자신의 목숨까지 도매금으로 내놓는 빈우의 행태에 식겁을 하며 다시 비명을 지른다. 안 그래도 감사의 사전 조사로 나온 인물인데 여기서 뭘 더한단 말인가. 토하게 한 것도 모자라 비서용 안드로이드를 붙여서 조사를 한단다.
“네? 제가 뭘요?”
막 방안으로 들어온 아나스타샤가 길길이 날뛰는 위르겐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그녀는 팀원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잠시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녀가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자 흥분했던 팀원들이 서서히 진정했다. 제각각 연방에서 한가락 한다는 특수부대의 파괴 병기들이지만, 언제나 화사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다가오는 아나스타샤를 보면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래, 아샤. 어땠어?”
빈우의 말은 오다 히토미 의원에 대해 보고를 하란 뜻이다.
“네, 의원님께서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으실 수 있게 도와드린 뒤 간단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방에서 잠시 쉬고 계십니다.”
“갈아입힐 때 도와줬다고? 그럼 그때 확인해봤어?”
“물론입니다. 유방 말이죠?”
“그래, 유방.”
아나스타샤의 말에 팀원들은 짧은 시간 동안 도대체 커브를 몇 번이나 트는지 모르겠다며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과 메이드의 심도 깊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일단 유두는 함몰입니다.”
“흐흠, 그 정도 사이즈면 그럴 법도 하지. 색은?”
“연한 분홍입니다.”
“튼 살은?”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약간. 옆과 아래에는 없습니다.”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은 팀장과 그 비서의 대화에 못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진지한 얼굴로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의 가슴에 대해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배에 임신 선은?”
“없습니다. 옆구리에 튼 살도 없었고요.”
“미용으로 제거했을 가능성은 없나?”
“옷을 입혀드리면서 조심스레 촉진해 보았는데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성기 쪽의 색과 형태는 어때?”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아쉽군. 소변 검사도 할 걸 그랬나?”
점점 듣는 이들의 낯이 붉어지는 대화가 오고 갔다. 듣다 못 한 모니카가 나섰다.
“저, 저기요오.”
모니카가 간신히 손을 들고 나서자 빈우가 화색을 하며 반긴다.
“오, 그래. 모니카. 네 생각은 어때? 말해봐.”
저지를 위해 나섰다가 졸지에 참여하게 된 모니카가 간신히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지금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니카의 말을 듣고 빈우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몰라? 왜? 너 과학기술국이잖아? 정보 사령본부 사람인데 몰라?”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왜 모르냐는 투의 반문에 모니카는 앉은키가 한층 더 작아졌다. 그리고 빈우의 질문은 다른 이들을 향했다.
“파트리샤?”
“에헤헤, 저도 한 가슴 한다고 자부합니다만, 감히 상원의원님께 비빌 레벨은 아닙니다.”
“뭐래, 미친년이. 부팀장?”
“으음…. 오다 의원님의 신체 정보에 관한 얘기란 것까진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 부인과 쪽 화제라 따라가기 힘듭니다.”
지금 빈우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도끼질을 해버린 두 사람은 팀장의 표정에 계면쩍어할 따름이다.
“팀장님. 저는 안 물어보십니까?”
현장팀 중에 제외당한 위르겐이 조심스레 질문한다.
“옳지. 그래그래, 위르겐. 네 생각은 어떻냐?”
빈우가 미소를 띠며 물어보자 위르겐도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음, F? 아니 아니. G컵?”
“K컵! 이 눈깔 고자 새끼야아아.”
뭔가 핀트가 안 맞는 곳에서 분노한 빈우가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탄한다.
“씨발, 너 뱅가드잖아. 너희들 강하하기 전에 여자 가슴 사진 치고 강하하잖아. 근데 왜 모르는 건데.”
지금 빈우의 사진을 찍는다면 ‘부하의 전사 소식을 들은 지휘관’이란 제목의 작품이 하나 탄생할성싶다. 그 정도로 빈우는 억울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좀 심각한데….”
새삼 진지하게 고뇌하는 빈우의 독백에 팀원들 역시 서서히 심각하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핀트는 맞지 않았지만.
잠깐 고민하던 빈우는 고개를 들어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좋아. 잘 들어. 일단 신장, 머리카락 색, 체격 등의 신체 정보는 대상 판별을 위한 좋은 자료다. 직접 두뇌 칩을 조회하지 않아도, 혹은 원거리에서도 낮은 해상도로 보아도 이것들을 조합해 상대방의 신원을 알아내거나 유추할 수 있다. 특히나 이렇게 큰 가슴의 경우는 찾아보기 드무니 표본이 상당히 줄어들지.”
그리고 빈우가 띄운 영상은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의 것이다.
“이렇게 가슴이 큰 이유 몇 가지를 설명하마. 첫 번째는 유전이다. 유방의 경우는 모계 쪽 유전을 따라가기 때문에 가족력을 추정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환경. 성장기를 저중력에서 보낼 시 신장이 커지고, 골밀도가 낮아지며 여성의 경우에는 유방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 허나 어깨 쪽에 무게로 인한 튼살이 있다고 하니 이는 제외. 일반적인 중력 하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설명을 해주니 왠지 첩보물의 한 장면 같다. 빈우와 아나스타샤가 왜 그렇게 여자 가슴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눴는지 알 것도 같다.
“다음은 임신했을 때도 유방이 커진다. 허나 유두의 형태나 색, 배의 임신 선이나 튼 살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임신이나 출산의 경험은 없어 보인다. 자녀는 없는 것으로 추정. 입양 가능성은 알 수 없음.”
여기까지 설명한 빈우는 팀원들을 한번 돌아보았다. 혹시 이번에도 못 알아들었나 싶어서다. 다행히도 집중하는 팀원들을 보니 이번에는 잘 알아듣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렇게 조각 정보를 모아가면 핵심에 다다를 수 있지. 참, 그리고 세 번째는 수술이나 약물에 의한 것인데….”
그러면서 빈우가 아나스타샤를 돌아보자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고개를 젓는다.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혀 드리며 촉진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수술의 흔적은 없습니다.”
아나스타샤는 일반적인 이란 말을 덧붙였다.
“작정하고 숨긴 수술이라면 아샤, 너는 탐지가 힘들겠지?”
“네. 지금의 제 감지능력으론 거기까지 탐지하기 힘듭니다.”
아나스타샤의 대답에 빈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오다 히토미 의원의 정체를 알지 못해도 기본적인 주변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제법 큰 성과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의 대화에서 좀 더 유효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지. 그리고 그 범위를 좁혀나감에 따라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쉬워진다.”
애초에 열람 신청만 하면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상원의원에 대한 정보다. 그러나 군인인 데다 조사받는 입장이 된 태스크 포스 373으로서는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이쪽에서 공개된 것 이상의 정보를 열람하거나 조사하려 시도한다면 이를 빌미로 저쪽에서 세게 나올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다 히토미 의원에게서 가장 큰 신체적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시 가슴이다. 이 정도 크기의 가슴은 꽤 드물지. 이것이 수술이나 미용에 의해 커진 것이라면 이를 시술한 곳에서 해당 내역을 조회해서 그녀의 개인 정보를 알 수 있다.”
“그거 불법 아니에요?”
모니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한다. 이런 식의 뒷조사는 당연히 불법이기 때문에 걸렸다가는 제대로 박살 난다. 그러나 빈우는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이런 정보들을 직접 수집하는 것은 불법이지. 그러므로 합법적으로 공개된 정보만을 취합해 답을 추리해 내는 게 중요하다.”
대강의 설명을 끝낸 빈우가 팀원들을 한 번 휙 둘러보았다. 그리고 각자의 적성에 맞춰 적절한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입이 열리질 않는다.
빈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부팀장인 아룹 라마누잔 원사를 시작으로 파트리샤 피아프 중위,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를 훑어본다. 전투기 파일럿인 시에 우지 일병은 선택지에 없다는 듯 바로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빈우는 모니카 보르자 대위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나냐?”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빈우의 한탄에 팀원들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해야 하는 거냐?”
그리고 이어진 팀장의 한탄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는 골머리를 싸쥐는 빈우에게 애도를 표했다.
현재 태스크 포스 373에는 빈우가 설명한 정보작업을 할 만한 인원이 없다. 원래 이런 임무는 후방지원팀이 맡아서 하게 되는데 지금의 태스크 포스 373은 후방팀이 없으며 앞으로도 생길 기미가 아예 안 보인다. 그렇다면 있는 인원만으로 어떻게든 해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팀원 중에서 이런 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군사정보국 소속이었던 빈우가 이런 일에 조금 경험이 있을 뿐이다.
사실 군사정보국은 이름에 정보란 단어가 들어가긴 하나 작전대상은 적대적인 외계 종족에게 한정된다. 방첩이나 보안 쪽 임무는 보안국의 전문분야라 빈우는 그쪽으로 파견 임무를 나가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가락뿐이다.
“팀장님, 힘내세요.”
파트리샤로서는 드물게 진심이 담긴 위로였다.
“오냐, 힘내야지. 부팀장.”
“말씀하십쇼.”
“고 잉그리드 베리만 여사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없습니까?”
잉그리드 베리만은 이케가미 소이치로 전 상원의장의 아내다. 그리고 아룹은 이케가미 상원의장의 경호원을 했던 경력이 있기에 물어보는 것이다.
“의원님께선 사모님의 얘기는 그리 많이 하지 않으셔서 딱히 정보랄 게 없습니다. 사진만 몇 번 본 정도입니다.”
“가슴 크기는 어떻던가요?”
빈우의 질문에 아룹이 멈칫한다. 만약 오다 히토미가 잉그리드 베리만의 딸이라면 그녀의 어머니인 잉그리드 여사의 가슴도 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얼굴 사진만 봤던 터라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제가 뒤져본 과거 영상에서도 전신사진은 없었습니다.”
성과가 없자 빈우는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근데 오다 의원이 이케가미 상원의원의 딸이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요?”
우지가 조심스레 물었다. 빈우가 이전부터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오다 히토미 간에 부녀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는 데 필요 이상으로 머리를 굴리는 것처럼 보여서 하는 질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부녀관계면 대응할 방법이 상당히 달라지지. 골치 아파.”
그러면서 빈우는 자신이 수집했던 자료를 띄웠다. 짧은 시간치곤 꽤 많은 자료들이다. 그러나 빈우가 그것을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팀장님?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때마침 오다 의원으로부터 빈우에게 연락이 들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