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네. 당시 부상이 꽤 심각하셔서 말씀 하나하나 유언인 셈 치고 새겨들었습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아뇨. 그에 관한 건 보고서로도 충분합니다.”
조사를 나온 사람치고는 이상한 반응이다. 빈우를 조사할 때 하나의 사실에 대해 여러 각도로 관점을 바꾸어가며 꼼꼼하게 질문했던 그녀답지 않다.
허나 이것으로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오다 히토미와의 관계에 관해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근거가 모자라다.
그래서 빈우는 이어지는 조사에서도 자연스레 이케가미 의원과 관계된 화제를 꺼내며 오다 의원의 반응을 살폈다. 그때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하지만 빈우는 오다 의원이 보이는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케가미 의원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반대파벌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손 쳐도 상원의원치고는 좀 이상한 반응인데.’
슬슬 대화에 전환점을 찍기 위해 빈우는 두뇌 칩으로 시간을 봤다. 딱 적당한 시각이었다.
“의원님.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네? 어머, 그러고 보니.”
조사에 집중하다 보니 벌써 식사시간이 되었다. 시간을 확인한 오다 히토미 의원이 화들짝 놀란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시간을 끌었네요.”
“아닙니다. 이건 저희 팀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 이런 일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저의 배에 모시고도 대접이 소홀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평상시대로라면 아나스타샤나 다른 알람이 알렸어야 했지만 빈우가 일부러 막아놨었다.
“우선 식사를 하시고 그다음 계속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식당으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오다 의원은 지금까지 진행했던 조사자료를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식사를 이리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응? 여기서요?”
“네. 원래 이곳은 식당이기도 하니까요.”
빈우는 통신회선으로 아나스타샤에게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나스타샤가 식사가 담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어머나아.”
오다 의원은 아나스타샤가 차려주는 저녁상에 놀란 미소를 지으며 감탄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에선 자글자글 맛있는 소리가 난다. 접시 위에는 생선구이와 야채 튀김, 계란찜과 채소 절임들이 저마다의 색과 향을 뽐내며 정갈히 담겨있다.
“음.”
결정적으로 밥그릇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모습을 드러내자 오다 의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찬다.
“나름 신경 썼습니다만 입에 맞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이 정도 대접을 받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빈우가 준비한 일본식 가정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식사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세상에, 이거 전부 다 직접 만든 거군요.”
“네. 제 비서 안드로이드가 솜씨를 발휘했죠.”
군함 내에서 생성기가 아닌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게 되어 놀란 오다 의원은 그 음식솜씨에 다시 한번 더 놀라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라고 했지? 아까도 그렇고 정말 고마워.”
“감사합니다. 의원님.”
빈우가 보기에 오다 히토미는 일본식 식사방식에 꽤 익숙했다. 그것도 두뇌 칩으로 입력된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이런 문화권에서 살아서 자연스레 체득된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나. 정말로 밥을 잘 지었네.”
오다 의원은 젓가락에 들린 하얀 쌀밥의 윤기에 감탄했다. 그리고 입에 넣고 잘 씹어 맛을 음미한 다음 삼켰다.
“의외군요. 군인 여러분들은 일반식사는 잘 하질 않는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열량이나 영양에 비해 부피가 크지요. 저희에게 이런 식사는 일종의 취미나 기호품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빈우는 단정한 손놀림으로 젓가락을 움직여 생선 가시를 바르고 있었다.
‘젓가락 잘 쓰네.’
오다 히토미는 빈우가 보여주는 모습에 작게, 그리고 여러 번 놀라고 있었다. 아까의 다도도 그렇고 이번 저녁 식사에서 보여주는 식탁예절로 미루어 볼 때 김빈우 소령의 교양 수준은 꽤 높은 듯했다.
‘군인이라면 모두 살상 병기로 알고 있었는데 꼭 그런 건 아니구나.’
빈우가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들에 히토미가 놀라고 있을 때 그녀 앞의 살상 병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메이드를 불렀다.
“깜빡했네. 아나스타샤. 나 밥 한 그릇 더 줘.”
“네 주인님.”
아직 빈우는 밥을 다 먹지 않았다. 그런데 밥을 더 달라고 한다. 그래도 히토미에겐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역시 군인이라 밥을 많이 먹는구나, 아니면 끊기는 게 싫은 모양이다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밥이 놓였다. 빈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음?’
의외의 물건에 히토미는 잠시 당황했다. 빈우가 꺼낸 것은 바로 담배였다.
‘식사 중에 담배를 꺼내던가?’
조사차 오기 전 동료 의원이나 정보를 통해 군인들의 행동 양식에 대해서 몇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담배에 관한 것인데 구세대 군인들은 자기 함선의 공기정화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담배를 종종 피운다고 했었다. ‘보십시오. 우리 배는 안전합니다’란 의미로.
헌데 빈우는 조사 중에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식사를 끝나고 피우는 것도 아니었다. 밥을 먹던 도중에 담배를 꺼낸 것이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지 빈우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친 빈우는 잠시 담배를 입에서 뗐다.
“왜 그러십니까? 식사에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라도?”
“아아- 아니에요. 담배를 보는 것은 오래간만이라.”
“그렇습니까.”
담배를 꺼낸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완곡하게 돌려 물은 히토미의 질문에 빈우는 그저 손에 들린 담배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피워도… 되겠지요?”
“아, 네. 그럼요.”
얼떨결에 떨어진 히토미의 대답에 빈우는 싱긋이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선 상원의원의 앞에서 실례를 저지른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지금까지 히토미가 보기에 빈우는 꽤 친절했으며 예의도 알고 교양도 높았다. 그런 사람이 식사 도중에 담배를 피운다니. 그것도 상원의원 앞에서. 더군다나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굴고 있으니 히토미는 오히려 자기가 이쪽의 예절에 대해 뭔가 모르는 게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났지만, 히토미는 내색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한두 모금 빨았을까. 갑자기 빈우는 피우던 담배를 밥 위에 꽂아 껐다.
“흡.”
그 모습에 히토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음?”
빈우는 놀란 히토미를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황을 보면 자연스럽게 행동한 빈우에게 히토미가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실례. 놀라셨군요. 이건 먼저 떠난 전우의 넋을 기리는 겁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요. 향을 올리는 거죠. 전투식량도 아니고 이런 고급스러운 일반식은 저희도 드문 터라.”
빈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히 가르쳐 주는 말투 같다.
“아! 아아, 네, 그렇군요. 그래요. 식견이 짧아 몰라봤습니다.”
히토미는 허둥지둥 납득을 하며 다시 시선을 자신의 밥그릇으로 돌렸다.
하지만 빈우는 담배가 밥에 닿는 순간에 그녀가 보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 순간 잠시나마 오다 히토미의 눈동자에 그녀 마음속의 색깔이 비춰 보였다. 그것은 사람의 안에서 터부시되는 무언가가 건드려졌을 때 나오는 색깔이었다.
다시 식사를 시작한 빈우의 머릿속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발 가르단 하스의 이케가미 의원의 거주지에 있던 사진이 떠오른다. 그 사진 안에는 볏단을 한가득 안고 빠진 앞니를 자랑하듯 함박웃음을 짓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케가미 의원은 딸의 사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딸의 이름을 히토미라고 했었다.
과거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벼농사를 했었고 쌀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딸인 히토미도 배워서 쌀을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밥을 조금 남기면 딸의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했던가.
그리고 지금 빈우의 눈앞에 있는 상원의원 이름은 오다 히토미다.
그제야 볏단을 가득 끌어안고 함박웃음을 짓는 꼬마 소녀 히토미의 얼굴이 지금 오다 의원의 얼굴과 겹쳐져 보인다.
이케가미 의원이 연루된 발 가르단 하스 사건.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기 위해 온 오다 히토미 의원.
단지 히토미란 이름이 걸려 떡밥을 던졌을 뿐인데 뭔가가 걸려든 것 같다.
‘여기서 바로 밝혀야 할까?’
만약 그녀, 오다 히토미가 정말로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딸이라면 그의 마지막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빈우는 아직 조금 더 뜸을 들이기로 했다.
약간의 해프닝은 있었으나 식사는 순조롭게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시면 이제 숙소로 안내해 드리지요.”
그러나 오다 의원은 부드럽게 거절했다.
“감사합니다만 길은 알고 있습니다. 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오다 히토미는 나름 몇 번 오가며 자신감이 붙은 모양인데 아쉽게도 블랙 랜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배가 아니다.
“실례합니다만 의원님. 본 함은 군함입니다. 의원님께서 아무리 군사 시설에 생활하기 위한 강화를 받으셨다지만, 혼자서 움직이시기엔 조금 위험합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자연스레 오다 의원을 따라붙으며 설명했다.
“블랙 랜스는 롱 훅 프로젝트로 구형함인 탄호이저급을 전면 개수한 함선입니다. 허나 프로젝트 진행 도중 급히 차출되었기에 함선 내 몇 곳이 마무리가 덜 된 상황입니다. 전투력 면에서는 아쉬운 면이 없고 일상생활에 차질이 없기는 해도 군함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거나 본 함에 대해 잘 알고 계시지 못한, 그러니까 의원님 같은 분께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하다고요?”
오다 의원으로서는 첫 대면에서 군용 마카롱을 먹고 거하게 토했다가 허겁지겁 배 안으로 모셔진 다음, 안드로이드인 아를르캥이 여기까지 안내해 왔으니 제대로 주의사항을 들을 틈이 없었다.
“네. 가면서 말씀드리지요.”
빈우는 조금 겁먹은 오다 의원을 앞장서서 안내했다. 그녀의 눈엔 왔던 복도를 돌아가는 중이라 딱히 위험해 보이는 것은 없어 보이지만 팀장이 그렇다고 하니 그리 믿을 뿐이다.
“한데 의원님. 숙소에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네. 아주 멋진 방이었습니다.”
아까 오다 의원이 씻고 옷을 갈아입었던 숙소는 373 팀원들과 오르 함장이 급히 꾸민 곳이었다. 다행히 달리 불편한 곳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정말 이 블랙 랜스에 계속 묵으실 예정입니까?”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조사할 373팀과 되도록 가까이 있고 싶습니다.”
몸을 강화하고 군함에서 묵을 생각이라니 보통 각오가 아니다. 그것이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할 각오인지, 아니면 연방 내에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결사를 조사할 각오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렇다면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층수가 적힌 버튼들을 가리켰다.
“본 함의 선수 부분 짝수 층은 방어력 향상을 위해 신형 헬레나 겔로 충전되어있습니다. 때문에 선수 부분의 엘리베이터는 홀수 층만 운행하지만, 알 수 없는 오류로 인해 짝수 층에 멈추게 되면 다시 문이 닫힐 때까지 절대 문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비상 통신기로 즉시 가까운 팀원이나 경비 로봇을 호출하십시오.”
헬레나 겔은 전기신호에 반응하는 유동체로 인공 근육이나 장갑 등에 쓰이는 물질이다. 평상시에는 말랑말랑한 젤리의 강도지만 적절한 조치와 전력이 들어가면 강화하지 않은 인간의 육체를 으깨는 건 우습다.
“그렇다면 그 층들을 왜 막아놓지는 않습니까?”
“유사시 우리가 그리로 들어갈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다만 맨몸의 의원님께는 조금 위험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헬레나 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르 함장님은 만나보셨습니까?”
태스크 포스 373에 오기 전 오다 의원은 팀원들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보았다. 그중에서 함장인 지마 오르 소령은 자신의 뇌를 배에 이식한 전신 사이보그라 하여 꽤 인상이 깊었었다. 그 오르 함장도 전신이 헬레나 겔이라고 했다.
“아뇨. 아까 방에서 통신으로 인사만 드렸지 아직 직접 뵙지는 못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오다 의원이 약간 겁먹은 듯한 눈으로 복도를 쳐다본다. 이곳은 분명 홀수 층이고 선수 부분은 아니며 저쪽 모퉁이만 돌면 아까 나왔던 히토미 자신의 방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무서웠다.
“으음… 의원님께서 바쁘지 않으시다면 잠시 인사차 들리는 게 어떨까요?”
“아 참, 그게 예의에 맞겠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빈우는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다른 층으로 몰았다.
“또 하나. 블랙 랜스는 기밀 작전함이기에 일반적인 외부와의 통신은 두절됩니다. 저나 함장님의 허락 하의 통신은 가능하지만, 수면 시 이루어지는 의정활동은 아마 힘드실 겁니다.”
“어? 그게 사실입니까?”
연방의 시민들은 대부분 하원의원이기에 자신의 일상생활 중에서 시간을 쪼개어 의정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자는 동안에는 연방 전 영토에서 이뤄진 의회 내 정보 흐름을 정리해 두뇌 칩에 입력하고 정렬한다. 이러한 이유로 수면 중 두뇌 칩의 의정 정보 정렬은 꽤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당연히 감수하겠습니다.”
힘들어하는 오다 의원의 목소리에 빈우가 곁눈질로 흘긋 보니 그녀의 얼굴은 꽤 굳어 있었다.
딱히 겁준 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을 그냥 알려만 준 것인데 오다 히토미 혼자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으니 조금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