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함장실이 아니라 전투지휘실로 갑니까?”
빈우가 오다 의원을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블랙 랜스의 전투지휘실이었다.
“네, 오르 함장님께선 여러 가지 이유로 함장실이 아닌 이곳 전투지휘실에서 지내십니다.”
전신이 헬레나 겔로 된 사이보그에다 뇌가 배에 이식된 지마 오르 함장에겐 딱히 함장실이 필요 없다. 이러한 이유로 블랙 랜스엔 함장실 자체가 필요치 않았다.
빈우와 오다 의원이 전투지휘실로 들어가자 혼자 있던 오르 함장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다 히토미 의원님. 블랙 랜스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함장님.”
오다 의원은 전신이 녹색 금속으로 이뤄진 오르 함장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까 방에서 통신화면으로 봤으니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나 직접 만나보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사이보그를 꽤 많이 만나본 그녀도 이렇게 금속 재질 티가 그대로 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제가 찾아뵈려 했습니다만 마침 오셨으니 지금 의원님을 탑승자로 등록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뇌 칩의 접속을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다 의원은 방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오르 함장과 간단한 인사만 나눴을 뿐이었다. 이후 이런저런 일이 겹쳐 제대로 된 승함 수속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그녀의 등록을 마친 오르 함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두뇌 칩의 등록을 해서 함 내 설비 사용이 가능합니다만… 민간두뇌 칩이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구도 문제입니까?”
빈우의 질문에 오르 함장이 화면을 띄웠다.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의 두뇌 칩이다. 생체재질의 바이오칩에다 빈우나 동료들의 머릿속에 박힌 칩에 비하면 크기도 작다.
“아뇨. 보안규격 때문에 그렇습니다.”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은 전부 군용 두뇌 칩을 넣고 있다. 이것들은 군용 프로그램의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며 내구도 또한 우수하다. 반면 오다 의원의 두뇌 칩은 일반적인 두뇌 칩이다. 내구도는 둘째 치고 블랙 랜스 같은 군 기밀시설에서 쓰는 보안 프로그램들과 호환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진지한 표정을 지은 오르 함장이 오다 의원에게 설명과 경고를 시작했다.
“의원님, 본 함은 허가된 인원 외에는 두뇌 칩을 이용한 무선 통신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송구스럽게도 민간 칩을 사용하시는 의원님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어서 화면 위로 군용 프로그램들이 나열됐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현재 상원의원이시고 감사의 자격을 지닌 분이시라 의원님께는 군용 프로그램들이 깔리지 않습니다. 유사시 사용자의 사고와 육체를 제한하는 부분 때문에 아마 거부당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군용 OS들은 사용자에게 간섭을 꽤 많이 한다. 전투나 부상 시에 원활한 문제해결을 하기 위함이다. 익숙해지면 자신의 의지를 우선시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제약이 있다는 항목에서 상원의원의 두뇌 칩에 깔린 보안 프로그램이 거부하는 것 같다.
굳이 깔고자 한다면 이케가미 상원의원처럼 전용 시설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된다. 그러나 조사대상이 된 태스크 포스 373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역시나 저희 쪽 군용 보안 프로그램이 의원님 것과 충돌하는군요. 불편하시더라도 연락이 필요할 경우엔 되도록 함 내 통신 터미널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까 팀장님을 부를 때 연결이 안 됐던 거군요.”
문득 히토미는 아까 방에서 빈우를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상하게 회선이 연결되지 않아 방 안에 있던 통신 터미널로 빈우와 통신을 했었다.
“실은 그때 근처의 경비 로봇이 미등록 회선을 감지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저는 의원님의 탑승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경계를 즉시 해제했지요. 따라서 앞으로는 통신 터미널이나 지급된 통신기를 사용해 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오르 함장은 작은 통신기를 하나 건네주었다. 보안 칩이 필요한 외부 통신기로, 예전에 모니카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고풍스럽구나.”
옛일이 생각난 빈우의 작은 속삭임에 오르 함장이 작게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오다 의원만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함 내 통신 터미널의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 반드시 숙지하고 계십시오. 또한, 블랙 랜스에서 외부와 통신을 하시려면 반드시 저와 팀장님의 허락을 맡으셔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본 함에서 생활하신다면 수면 시 이루어지는 의정활동 갱신은 포기하셔야 할 겁니다.”
“함장님, 그건 제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헌데 그 외에도 의원님께서 알고 계셔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그렇죠. 아셔야 할 것이 좀 있지요.”
그 말 다음으로 빈우와 함장 두 명은 골똘히 생각했다. 일반적인 군함이라면 민간인이 탑승했을 때의 매뉴얼이 있어서 그걸 주면 된다. 하지만 블랙 랜스는 미완성의 프로토타입인 데다 기밀작전 중이라 일반적인 경우와는 궤를 달리한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조사차 나온 상원의원이니, 마구잡이로 비밀이나 접근 금지 딱지를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은 수행원이 없는 VIP가 기밀 임무를 띤 군함 내에서 생활할 때의 주의점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비슷한 전례를 찾은 오르 함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다지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다. 중요하다 싶은 사항들은 직접 말했지만, 나머지는 자료를 넘겨주어 참고만 하란 식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진짜 본론이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저의 신체는 녹색입니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 오르 함장의 몸은 녹색 헬레나 겔이다.
“허나 만약 녹색을 띠고 있지 않은 저를 만나면 그것의 행동에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의원님께서 아시는 제가 아닙니다.”
“네? 녹색 말고요?”
이해하지 못한 오다 의원이 질문을 하려고 할 때 옆에서 빈우가 끼어들었다.
“함장님, 선수 부분 짝수 층. 그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층에 대한 주의는 오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따로 말씀드릴 필요가 없군요. 요즘 그것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져서 골칩니다.”
“어이쿠, 저런.”
분명 오다 의원의 기억에 빈우가 말하기를 선수 부분 짝수 층은 엘리베이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라도 서게 되면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 신신당부하기도 했고. 근데 지금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게 녹색이 아닌 오르 함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히토미는 그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무서워서 물어보기 싫기도 한 양가감정에 휩싸였다.
“함장님, 또 뭔가 없을까요?”
“어디 한번 떠올려보죠. 중대한 사항이니.”
히토미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기다렸지만, 군인 두 명은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블랙 랜스는 군인들이 살기에 쾌적하진 못해도 딱히 불편하진 않은 곳이다. 그러니 민간인의 관점을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오다 히토미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마냥 좌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빈우와 오르는 머리를 굴리며 행여 문제가 될 만한 사항들을 열심히 찾았다.
“팀장님, 의무실 얘기는 하셨습니까?”
오르 함장의 지적에 빈우가 화들짝 놀라 오다 의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한다.
“아, 맞다. 의원님. 의무실은 방음처리가 잘되어 있어 바깥으로 소음이 나지 않습니다. 만약 의무실을 지나시다가 비명이나 그와 비슷한 소리를 들었을 땐,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멀리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통신기를 쓰지 마시고 근처의 통신 터미널로 가서 가까운 팀원이나 경비 로봇을 호출하십시오.”
뜻 모를 팀장의 충고에 오다 의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을 기다렸으나 이번엔 오르 함장의 설명이 끼어든다.
“또한 함 내의 경비 로봇은 반드시 홀수로 움직입니다. 한 대, 세 대, 다섯 대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 외의 경우는 경비 로봇이 아니니 유념하십시오.”
설명하는 사람들은 태연하지만, 설명을 듣는 사람은 점차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이 군인 놈들은 핵심적인 내용만 대충 말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물어보자니 다음 내용이 더 무서울 것 같아 뭘 물어보지도 못하겠다.
“의원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빈우의 말에 설명을 곱씹던 오다 의원이 흠칫 놀란다. 방금까지 듣고 있던 거주 구역 이동 시의 주의사항도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저기, 근데 왜 제 방만 다른 분들하고 떨어진 거죠?”
드디어 오다 의원이 질문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떨리고 있었다. 작다곤 해도 구축함이다. 거주 구역도 꽤 여유가 있는데 팀원들은 뿔뿔이 떨어져 있고 그중에서도 오다 의원의 방은 외따로이 있다.
“그야… 살 사람은 살아야죠.”
빈우는 차마 ‘그런 미친놈들 무리 속으로 의원님을 던져놓을 순 없잖습니까.’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각종 시설이 오밀조밀 모인 블랙 랜스의 특성상, 적의 공격 한 방에 팀원들이 깡그리 전멸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조금씩 거리를 둔 것이기도 하니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또 일부 팀원은 다른 이유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일단 우지는 전투기 파일럿이지만 대기조도 아닌데 격납고 근처에서 숙식한다. 오르 함장은 보다시피 전투정보실에서 생활 중. 아예 기술실 근처에 자리를 잡은 모니카는 거기서 연구에 여념이 없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이들을 제외한 화력 조원들이다. 이들은 전원 거주 구역의 사관용 개인실에서 생활한다. 다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조금씩 떨어진 편이다.
일단 인공지능이랑 로봇 오타쿠인 위르겐은 방에 있는 개인 사물 중에 들키면 조사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은 물품이 꽤 있어서 아웃.
파트리샤는 움직이는 사고 덩어리니까 바로 아웃이다. 그 년을 오다 의원과 가까이 뒀다간 무슨 일이 나게 될지 모른다.
부팀장인 아룹은 성격이 좋은 편이고 나름 정상적인 사람이지만, 전신 사이보그에다가 거친 놈들하고 생활하던 게 몸에 익어서, 일상생활의 행동 한계가 강화 군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즉 연약한 오다 의원이 그와 어깨라도 잘못 스쳤다간 바사삭하는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부팀장이 밥을 깨작거리는 모니카에게 ‘대위님, 이거 드셔보시겠습니까.’ 하면서 어깨를 툭 쳤다가 그게 제삿밥이 될 뻔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다 의원의 숙소는 다른 이들에게서 좀 떨어진 곳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이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차라리 뭐가 문제인지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겠는데, 오다 의원은 무슨 꿍꿍인지 말을 굉장히 아끼고 있었다.
이래저래 설명을 마친 빈우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겁에 질린 오다 의원을 방에 데려다주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까 있었던 조사에 대해 레드우드 사령관에게 보고하려고 할 때 마침 그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야, 이 새꺄.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화면에는 레드우드 사령관이 낮게 으르렁대고 있었다.
“뭐가요? 제가 뭘요?”
세상 억울하다는 듯이 반문하는 빈우에게 레드우드의 고함이 내려꽂힌다.
-방금 오다 의원님이랑 통화했다. 기가 확 죽어있던데? 사실대로 말해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이라뇨. 블랙 랜스에서 지내신다기에 주의사항 몇 가지를 알려드린 것뿐입니다.”
자신의 무고를 부르짖는 빈우를 화면 너머로 보던 레드우드 중장이 의자에 기대며 짧게 말했다.
-불어.
앞뒤 다 자른 레드우드의 저 말은 빈우에게 앞뒤 하나도 빼먹지 말고 모조리 이실직고하란 의미다.
그래서 빈우는 차근차근 다시 설명했다.
“일단 선수 부분 짝수 층에 가지 말란 것부터 알려드렸습니다.”
-헬레나 겔로 채워놓은 데 말이냐? 의원님이 강화해도 내구도는 별 차이 없잖아. 그 몸으로 들어갔다간 터질 텐데. 또 오르 함장 예비 신체 있는 곳이잖아. 못 가시게 해라.
“예에, 그러니까요. 그리고, 녹색 아닌 함장님 의체는 본인이 아니라는 것.”
“그래그래. 다른 색은 예비용이잖아. 흠, 또?”
두 사람이 쑥떡 찰떡 얘기할 때 아나스타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커피를 따라준다.
“의무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도망친 다음에 경비 부르라는 것도 말했습니다.”
-소리? 무슨 소리?
“그거 뭐냐, 함축 코일건 축전기가 근처에 있어서 소음 난다고 보고서 썼잖습니까.”
-아, 그거냐? 아이구야. 빨리 손봐야겠네. 미안하다. 내가 요즘 바빠서 거기까진 신경 못쓰겠다. 그래도 큼직한 건 다 말했네.
“경비 로봇은 홀수로 다닌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나머지는 작업용이니까 불러봐야 의미 없지. 그거 말고 다른 건?
레드우드는 빈우의 설명을 들으면서 미간을 점점 찌푸렸다. 빈우로서는 나름 위험한 곳에 관해 설명한 건데 그게 오다 상원의원에겐 고깝게 들린 것 같다. 감히 소령 나부랭이 따위가 이래라저래라하니 심기가 불편하셨겠지.
“으음, 마지막으로 거주 구역 내에서 이동할 때의 주의점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이게 조금 심기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복도에서 계단하고 손잡이 나오는 거 얘기할 때 분위기가 좀 이상해지던데요?”
“뭐라고 얘기했길래?”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구석으로 가서 얼굴 가리고 있으랬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레드우드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민간인이 군함에서 당하는 사고 중 제법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함 내 중력 전환 시 벽에서 나오는 손잡이에 얼굴을 얻어맞는 사고다.
-휴, 군함이 원래 그런데 귀하게 자란 분이라 언짢으셨나? 분명히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경고했는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어쩔까? 지금이라도 끌어내려?
“너무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조금 있다가 찾아봬서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하겠-응어?”
자못 진지한 표정을 한 빈우의 뒤통수로 짝하는 소리와 가벼운 충격이 느껴졌다.
“아오, 이 화상아! 진짜 못 데리고 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