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라출노그는 현재 연방의 동맹인 어류형 종족이다. 과거 연방과 전쟁을 했을 때는 한 수 처지는 과학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류의 집단행동을 연상케 하는 탁월한 함대 운용 능력으로 우주전에서만큼은 연방과 대등하게 싸웠었다. 당시 연방은 제우권을 빼앗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악착같이 라출노그 본성에 장갑 보병을 강하시켜 해양 행성의 밑바닥을 싹싹 긁는 트롤짓으로 힘겹게 승리했다.
이제는 연방의 동맹이 된 라출노그는 현재로선 최강의 함대를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다만 인간에게 여러 인종이 있듯이 라출노그에도 여러 종족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인종 분류가 같은 종족 내에서의 사소한 차이라면, 이들은 아예 다른 종족들이 라출노그란 이름 하에 느슨하게 묶인 집합체라 내부에 연방과 반대되는 세력들이 꽤 있다.
만약 그런 반 연방파에 샤다이가 접근한다면? 그리고 최악의 경우, 샤다이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함대가 우주 최고의 조함술을 가진 종족들에게 주어진다면?
연방의 비상상황이다.
-네. 즉시 가겠습니다.
빈우는 서둘러 사령관실로 내달렸다.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은 대강 이번 작전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태스크 포스 373은 발 가르단 하스에 추락한 리퍼 함선을 회수하기 위한 특수팀이었다. 또한 팀이 상대할 적도 기존의 전술이나 장비로는 대적하기 힘든 리퍼를 목표로 했기에 각종 최신 기술이 들어간 함선과 장비로 무장했다.
사령관인 레드우드는 발 가르단 하스의 작전이 끝나고도 태스크 포스 373을 존속시키려 했으니, 아마 373팀이 앞으로 맡게 될 작전의 성격도 비슷할 것이다.
* * *
잠시 후, 빈우는 요 근래 걸어 들어간 것보다 달려 들어간 게 더 많은 것 같은 사령관실로 다시금 뛰어들었습니다.
“늦었습니다.”
“앉아.”
레드우드는 가타부타 말없이 자료화면부터 틀었다.
“중앙정보국에서 보내온 자료다.”
연방 중앙정보국은 자타공인 연방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빈우의 본가인 군사정보국이 전쟁 중인 외계종족만을 작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이들 중앙정보국은 외계종족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두 척입니까? 위치는요?”
화면에는 한 척의 전열함과 한 척의 모니터함이 찍혀 있었다.
“17시간 전, 라출노그 제 7행성의 소행성대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라출노그는 연방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으므로 연방과 전쟁 중인 세력에 대해서는 공동전선을 펴거나 협조를 한다. 허나 연방의 주적인 샤다이에 대해서는 조금 애매하다.
샤다이는 인류 외의 종족에 대해서는 거의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설령 선제공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무시하며 피하기 때문이다.
과거 연방과 라출노그의 연합함대가 샤다이와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놈들은 연방만 집요하게 공격했을 뿐, 라출노그는 거의 무시했었다. 또 연방에 비해 한 세대 처지는 라출노그의 무장으론 샤다이에 유효한 피해를 주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당시 라출노그는 전장에서 없는 셈 취급되었고, 연방과 샤다이만 죽자고 싸웠었다.
그래도 라출노그는 동맹으로서의 의무는 나름 충실히 이행해 왔다. 샤다이가 자신들의 탐지범위 안에 출현하면 그 즉시 연방에 알려왔으며, 공격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정찰부대의 선두에도 곧잘 섰었다.
“라출노그의 본성은 4행성이고, 7행성은 데넥샬의 개척 행성이 있는 곳 아닙니까?”
자신들의 영역에 샤다이가 나타났음에도 연방에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수상하다. 허나 7행성은 말이 개척 행성이지 추방지에 가깝다.
데넥샬 분파는 과거 라출노그의 주류 종족으로 연방에게 선전포고를 했던 주전파였다. 이후 본성이 함락된 뒤에도 결사 항전을 주장했지만 완벽한 패전 후엔 다른 분파들의 반발과 책임추궁에 본성에서 추방되어 당시 막 개척을 시작한 7행성으로 쫓겨났었다.
그 뒤 본성을 차지한 것은 연방과 싸울 의사가 없음을 피력하고 오히려 협조를 해왔던 반전파, 슈홀루 분파였다. 이들은 그때부터 라출노그의 주류 종족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7행성으로 추방된 이후로 데넥샬 분파는 연방과 라출노그 본성에 대해 겉으로만 협조했을 뿐, 속으론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놈들은 현재 연방 중앙정보국의 집중감시 대상이다.
“그래. 과연 샤다이의 출현을 데넥샬이 모를까?”
레드우드의 질문에 빈우는 고개를 저었다. 7행성의 소행성지대는 개척지의 모자란 물을 보충할 얼음들이 있는 곳이다. 개척민들은, 더구나 우주를 헤엄치는 라출노그들이라면, 자신들의 앞마당인 소행성지대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글쎄요, 샤다이가 스텔스로 숨지도 않았는데 제아무리 라출노그의 기술력이라 해도 이 정도 거리라면 발견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즉 샤다이들이 이 소행성지대에 와 있는 것은 그곳에 있는 라출노그의 허가, 혹은 묵인하에 이뤄진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도 데넥샬 분파의 일방적인.
“설마 이놈들, 본성에 안 알린 겁니까?”
연방과 라출노그의 협정 중엔 교전 중인 적에 공동 대응한다는 조항이 있다. 특히 샤다이에 대해서는 교전은 무리라 해도 반드시 알려주기로는 되어있다. 만약 라출노그들이 소행성대의 샤다이에 대해 알았다면 연방에 연락을 했을 것이다.
“본성 쪽은 이제껏 성실히 경고해왔으니 아마도 개척지 놈들의 독단일 게다.”
레드우드는 빈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자료화면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을 봐라. 이 샤다이의 배들, 아마도 무인으로 추정된다.”
다음 화면에는 정지한 전열함에서 샤다이들이 나와 옆의 모니터함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놈들 특유의 점프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전열함 한 척이다.
“또 이것은 당시 라출노그들의 통신을 감청한 것이다.”
이어서 초음파로 된 라출노그어와 번역된 문자들이 출력된다. 그중 눈에 띄는 문장들이 있었다.
-해류를 이끄는 자들이 왔다.
-슈홀루에게 응징을! 물 위를 걷는 자들에게 복수를!
-해류를 이끄는 자들의 선물을 받아라.
‘해류를 이끄는 자’란 단어에서 확신을 얻은 빈우가 짧게 한숨을 내쉰다.
“물 위를 걷는 자란 수상생활을 하는 종족들을 일컫는 라출노그식 표현이죠. 여기선 아마 우리를 말하는 것일 테고, 해류를 이끄는 자는 샤다이를 말할 때 쓰는 표현 중 하나. 설마하니 샤다이 놈이 라출노그 데넥샬 분파에게 자신들의 배를 넘긴 겁니까?”
“아마도. 그게 아니라 해도 방금 자료에 의하면 저 전열함은 텅 비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요하지.”
화면에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소행성대에 정지한 샤다이의 전열함은 그저 관성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정보국에서 한 건 했군요. 근데 샤다이 놈들은 왜 바로 넘기지 않고 저 소행성대에 숨겨놨을까요?”
“아마 데넥샬에 주둔한 우리 쪽의 눈을 의식해서 최대한 서로 간의 연결점을 없애려는 것 아니겠냐. 아마 우연을 가장해 발견한 다음 날름 삼키거나 극비리에 숨길 예정이겠지.”
“얼음 캐러 갔더니 어이쿠! 샤다이의 전열함이 공짜로, 뭐 이런 시나리오입니까?”
“아무튼 이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그날 출발하던 중앙정보국의 위장 무역선이 기관 불량을 가장해 해당 소행성대 근처에서 표류하고 있다. 당장은 데넥샬놈들이 움직이진 못할 거다.”
데넥샬과 거래를 하는 연방 중앙정보국의 위장 우주선과 무역사무소는 대외적으론 민간소속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등록을 할 때도 탐사 거리가 짧다고 허위로 신고해놔, 지금은 전열함을 발견하고도 못 본 척하며 시간을 끄는 중이었다.
데넥샬과 중앙정보국 둘 다 서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그리고 김 팀장, 공짜란 게 놈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지?”
레드우드 사령관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느낀 빈우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지금 우리 팀에게 여기 있는 샤다이 함대들을 날름 삼키란 겁니까?”
“손상이 없는 샤다이 함선. 군침 돌지 않나?”
군침이야 돌지만 리스크가 크다.
“안전하게 대사관을 통해 정식항의를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는 게 들키는 거고, 손쉽게 샤다이 함선을 훔칠 기회 또한 놓치는 거지.”
연방보다 월등히 앞서는 기술력을 가진 샤다이의 함선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중앙정보국이 안 움직이죠? 그쪽에도 특수작전 부대가 있잖습니까.”
빈우의 말대로 연방 중앙정보국도 기밀작전을 위한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팀은 군에서 인력을 파견, 차출하고 자체적으로도 육성하기도 한다. 여기서 훈련받은 특수부대원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 373이 저번에 이뤘던 전과가 너무 커서 말이지. 보고서를 보더니 안전하게 우리 팀에게 맡기기로 결정 내린 모양이다.”
하긴 태스크 포스 373은 샤다이와 전투를 하며 그 장비를 회수하기 위해 창설된 팀인 만큼 이런 일엔 적격이다.
“흐음, 간다면 외곽 게이트를 쓰는 겁니까? 중앙정보국 쪽에서 쓰게 해주겠대요?”
“말을 꺼낸 게 그쪽이니 당연한 얘기 아니냐.”
라출노그 항성계도 점프 게이트가 하나 있었지만 지금은 연방이 소유한 상황이다. 그 하나뿐인 점프 게이트는 본성인 라출노그 4에만 있어서, 개척지의 데넥샬 측은 통상 항해로 이동해야 했다. 다만 좀 더 외곽 쪽으로 가면 연방이 비밀리에 발견한 점프 게이트가 있는데 오직 중앙정보국만이 쓸 수 있었다. 라출노그 쪽에 들키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다는 매력에 다른 팀들이 사용허가를 바랐건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했던 비싼 게이트다.
빈우가 뭐라 말하려 할 바로 그때 사령관실의 벨이 울렸다.
“아이구야. 오다 의원이시군.”
화면을 본 레드우드가 혀를 찼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오다 의원이 지금 사령관실에 와서 면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쩌실 겁니까? 회의 중이라고 돌려보내실 겁니까?”
지금은 작전 회의 중이라 관계없는 외부인은 돌려보내겠지만, 지금 오다 의원은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러 왔기에 무작정 돌려보내기 껄끄러운 면이 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다.”
레드우드는 화면을 닫지도 않은 채 바로 문을 열었다.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레드우드 사령관님.”
안으로 들어온 오다 의원은 옷만 갈아입은 것이 아니라 아예 씻고 온 것처럼 보였다. 한데 빈우가 있는 것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레드우드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빈우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별말씀을. 우리 특수전 사령부는 의원님께 숨기는 것 하나 없이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그러면서 레드우드는 작전 화면을 오다 의원에게 보여주었다.
“마침 태스크 포스 373이 앞으로 맡게 될 작전에 대해 회의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실은 김 소령님께서 사령관님과 회의를 하고 있다기에 궁금해서 온 참이었습니다.”
오다 히토미가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러 온 목적은 겉으로는 감사 이전의 조사고, 실제로는 연방 내에 암약하는 세력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 세력이 태스크 포스 373을 적대하고 있는 이상, 지금은 그녀에게 협조하는 편이 373 쪽에겐 이득이다.
자리에 앉은 오다 의원은 자료의 내용과 빈우의 설명을 듣다가 점차 표정을 굳혔다.
“이번 작전은 동맹종족의 영토에 군병력을 파견하는 겁니다. 대통령께 허가는 받으셨습니까? 또 외교부를 통해 라출노그 측과는 얘기가 되었나요?”
오다 의원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지만 태스크 포스 373에겐 해당되지 않는 내용들이다.
“애초에 태스크 포스 373은 샤다이의 이상행동에 선조치 후보고 형식으로 신속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입니다. 그러니 지금 같은 상황이면 출동 이유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레드우드의 대답에 이어 빈우도 설명을 거든다.
“게다가 구축함 한 척에 화력팀 하나. 이 정도면 상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특수전 사령부 재량으로 움직일 수 있죠. 더구나 이 내용이 17시간 전의 것인 이상, 작전지역이 동맹국의 영토 내라 해도 작전 승인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라출노그의 적대적 분파에 샤다이 함선이 넘어가는 위급한 상황이다. 현재 연방이 유지하고 있는 파워 밸런스가 무너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차후에 벌어질 외교적 문제를 감내하고서라도 선제 행동에 나서는 게 백배 낫다.
오다 의원은 설명을 들은 다음 잠자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레드우드 사령관이 빈우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빈우는 오다 의원에게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이런 상황입니다, 의원님. 저희 태스크 포스 373은 라출노그 7로 다가가고 있는 샤다이 함선이 데넥샬에게 넘어가기 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이미 넘어갔다면 다소의 무력행동을 사용해서라도 나포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의원님께서 이곳 특수전 사령부에 머물러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작전 당시의 모든 내용은 의원님께 공개할 겁니다.”
실전은 당연히 위험하지만 태스크 포스 373 같은 특수부대가 작전에 들어간다면 위험을 떠나서 예측불허의 상황이 연속된다. 당연히 상원의원 같은 VIP를 실험 함선에 태우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빈우와 레드우드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 오다 의원이 당연히 배에서 내린다고 할 거라 생각했다.
“아뇨. 저도 이번 작전에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오다 의원의 대답은 둘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네에?”
놀라서 되묻는 빈우에게 오다 히토미는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태스크 포스 373이 라출노그로 가는 이번 작전에 저도 따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