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그녀의 충격적인 발언에 레드우드 사령관은 미간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한숨을 푸욱 내쉬며 상원의원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의원님. 물론 의원님께선 특별감사의 자격으로 오신만큼 태스크 포스 373의 모든 행동을 조사하실 권한이 있습니다. 허나 실전에 따라가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의원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요. 일반적인 작전이라면 비교적 후방에서 안전하게 보실 수 있으시겠지만 아시다시피 373은 구축함 한 척에 화력팀 하나, 전투기들로 이뤄진 소규모 팀입니다. 의원님께서 계신 곳이 바로 최전선이 된단 말입니다.”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레드우드 사령관이 그답지 않게 최대한 온화하게 만류해 보았건만 오다 의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빈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의원님. 각오란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약간 날 선 듯한 빈우의 목소리에 오다 의원이 움찔한다.
“저희는 언제나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가짐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최고의 훈련을 받고 최고의 장비를 갖추 특수부대원조차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사라지는 곳이 전장입니다. 그들에게 각오가 부족했을까요?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장병이 놀라서 자기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더듬는 걸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들에게 정말 각오가 부족했을까요?”
딱히 적의가 느껴지는 말투는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오다 의원에게 설명했을 뿐. 다만 그 사실들이 그녀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오다 히토미는 그 사실들이 마치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원님은, 연방의 상원의원들은 연방 시민들 민의의 집합입니다. 많은 지식을 섭렵하고 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을 얻은 다음, 각 행성에서 하원 의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신 분들입니다. 당연히 신변의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 귀한 몸이란 말입니다. 허나 제 팀이 하는 작전은 극히 위험합니다. 팀원 어느 누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비전투원인 의원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거기서 잠시 쉰 빈우는 오다 의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실제로 저번 작전에서 저는 상원의원이신 이케가미 소이치로 의원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죠.”
그리고 빈우는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자료를 하나 공개했다. 이케가미 의원의 최후가 담긴 영상이다.
“정말 각오가 되셨다면, 이케가미 상원의원의 마지막을 보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레드우드 사령관은 눈살을 찌푸렸을 뿐, 딱히 만류하진 않았다. 허나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었다. 그리고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건가요?”
“통보입니다. 물론 통보만으로 협박이 될 수 있죠.”
오다 의원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보여주세요.”
빈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당시의 영상을 재생했다. 전부 빈우의 시각과 청각으로 구성된, 발 가르단 하스에서의 기록이다.
-이제 알았어. 이제… 이제야 간신히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가 되었구먼….
마침 영상의 시작은 이케가미 의원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고 있는 장면부터였다. 신체의 각 관절이 꼬이고 송곳니와 손톱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한다.
그 순간 영상의 주체인 빈우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가 코일건으로 샤다이를 겨눈다. 대상은 당시 임시 협력자였던 샤다이, 알탄훼아나였다. 영상 속의 그녀는 마치 인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악, 분노, 슬픔, 후회.
-무슨 짓이야!
빈우의 조준을 느낀 후코의 전자파 외침과 함께 빈우의 장갑복이 작동 정지한다. 잠깐의 정지 후 빈우가 다시 이케가미 의원을 보았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얼굴이었지만 정말 상쾌한 눈빛이었다. 치열한 접전을 치르다 마지막 순간에 역전해 승리를 거머쥔 자의 눈빛이었다.
-딸에게, 히토미에게 전해주게. 아빠가 미안하다고.
눈빛과는 달리 목소리는 슬프고 공허했다. 그 모습을 본 오다 의원은 숨을 멈추었다. 영상 속의 이케가미 의원이 플라스마 줄기로 몸을 내던졌을 때 그녀는 열린 입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영상 속의 빈우도 소리쳤다.
-의원님!
빈우의 화면이 급작스럽게 변한다. 이케가미 의원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통로가 좁혀오자 암석 사이에 짓이겨져 꼼짝달싹도 못 하게 되어 버렸다.
다음 순간, 빈우는 장갑복을 벗고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적대적 환경을 감지한 각종 경보들이 격렬하게 울린다. 고온의 불산 가스 속을 컥컥대며 필사적으로 달린 빈우는 녹아내리는 이케가미 의원의 몸을 간신히 구해냈다. 그리고 빈우가 그를 안아 든 순간 그의 마지막 말이 전파를 통해 빈우에게도 전해져왔다.
-히토미, 히토미, 미안하다, 히토미, 히토미….
이미 화면 속의 영상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당시의 빈우가 시각 쪽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부상은 시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은 자명하다.
빈우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장갑복에 도착한 다음 이케가미 의원의 신체를 바닥에 내려놓고 장갑복을 다시 입었다. 두뇌 칩으로 장갑복의 시각정보가 들어오자 그제야 주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보인 것은 두뇌 방의 플라스마 줄기가 뻗어 나와 빈우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플라스마에 휩싸이자 고온을 감지한 컨커러의 방어막이 작동했다. 그 여파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장갑복의 손안에서 이케가미 의원이 타 녹아 사라진다.
-꼴… 좋구나… 내… 승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우의 눈 앞에서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육체가 사라지는 것에 따라 말도 띄엄띄엄 끊긴다. 마지막으로 두개골이 땅에 떨어지며 그의 마지막 유언이 빈우에게 전해진다.
-히토미….
이케가미 의원이 플라스마에 휩싸여 사라져가며 한 마지막 말. 그것은 채 끝맺어지지 못했다.
영상을 틀고 있던 빈우가 여기서 영상을 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덜덜 떨고 있는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본 빈우는 데자뷔를 느꼈다. 지금 오다 히토미는 마치 방금 영상 속의 샤다이, 알탄훼아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감정은 바로 경악, 분노, 슬픔, 후회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충격이 심하셨던 모양이군요.”
빈우의 그 말에 오다 의원은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한다.
“이, 이런 건 보고서에 없었지 않나요?”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 이 부분은 문서로만 이뤄졌을 겁니다.”
덤덤한 빈우의 대답과 달리 오다 의원은 초조해 보였다.
“이케가미 의원님께서, 달리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까?”
오다 의원은 평정을 가장해 질문을 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것은 절박함이었다.
“몇 가지 있긴 합니다만 보고서에 적힌 것 외엔 대부분 자신의 딸에게 보내는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일이라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그런가요.”
눈 앞의 히토미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치마를 꽉 쥐기만 했다. 잠시의 정적을 깬 것은 레드우드 사령관이었다.
“의원님. 방금 보신 영상으로 인해 불편하셨다면 제가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오다 의원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그런 그녀에게 레드우드 사령관은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쩌시겠습니까? 다음 작전에도 태스크 포스 373을 따라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곳 오브리가도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태스크 포스 373을 따라가겠습니다.”
곧바로 나온 대답에 빈우와 레드우드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음은 누가 설득할 것인가에 대해 무언의 회의를 하려 할 때, 오다 의원이 다시 말했다.
“각오라고 말씀하셨지요?”
빈우를 바라보는 오다 의원의 눈에는 분명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방금 돌아가신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원, 그래요. 전 상원 의원장이시기도 하죠. 그런 분이 두뇌 칩에 보안 프로그램을 삽입 당하고 아무런 동료도 없이 보호 행성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홀로 일 년간을 버티시다 결국 돌아가셨죠. 왜일까요?”
나직한 음성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다. 무언가의 격한 감정이 오다 의원의 안을 뒤흔들고 있다. 그녀가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하지만 미처 다스리지 못한 감정들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왜 그러한 감정이 생겼냐는 것이다.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이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으며, 전부 적이었기 때문이죠.”
빈우 역시 오다 의원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케가미 소이치로 전 상원의장은 온건파였다가 주전파로 돌아선 다음 외계종족의 말살을 위해 딸까지 버려가며. 아, 실례했습니다.”
흥분했던 오다 의원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외계종족과 공존에 비중을 두던 연방은 그가 상원의장이 되면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신설되거나 변경된 각종 법안들은 모두 외계종족들을 향한 화살이 되었고, 공격을 위한 빌미가 되었죠.
물론 이케가미 상원의장이 선출되던 당시 연방의 분위기가 주전론으로 흘러간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하원의 흥분이 사그라진 때조차 그는 다시금 의장으로 재선출되어 여전히 주전파의 선두에 섰습니다.
한데 그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반전파로 되돌아서고, 천애 고독의 처지가 되어 보호 행성에서 죽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물론 빈우도 그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고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오다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연방 내의 비밀 결사 때문이겠죠.”
오다 히토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연방 내부에는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세력이 암약하고 있습니다. 이케가미 의원의 죽음, 태스크 포스 373에 대한 방해. 그리고 이건 추측이지만 반전파의 무명의원이었던 이케가미 의원이 주전파로 돌아서자, 급격히 부상한 것에도 이들이 관련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지금 그들이 노리고 있는 태스크 포스 373에 온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제 임무를 위한 각오가 되어 있다고 물으셨나요? 예! 되어있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맺은 오다 의원을 보던 빈우는 팔짱을 끼고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이케가미 상원의원의 뒷배에 모종의 세력이 있었다면, 이들이 울토르 프로젝트에도 손을 뻗어놨을 가능성 또한 대단히 높다. 그렇다면 지금 이전 울토르 중대장이었던 빈우의 머릿속에 트리니티 패턴으로 잠긴 자료는, 놈들에게 매우 군침이 도는 자료일 것이다.
또한 빈우는 그녀가 말한 비밀세력과 워프 비스트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사람이 변해서 탄생한 워프 비스트가 말이다.
만약 오다 의원이 정말로 비밀세력의 정체를 파헤치려 한다면 그녀는 태스크 포스 373과 빈우의 든든한 아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이 진실이란 보증은, 그녀가 비밀결사가 아니란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내민 손을 무턱대고 잡는 섣부른 짓을 할 순 없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의원님의 결의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의원님께서 소임을 다하실 수 있도록 저도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인 빈우는 이번엔 레드우드 사령관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블랙 랜스에 오다 의원님을 모시고 작전에 임해야겠습니다.”
레드우드는 사연이 있다고 해도 어떠한 검증도 없이 무턱대고 오다 의원을 동행시키자는 빈우의 의견에 눈썹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는 빈우가 앞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뒤로는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 또한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레드우드는 자신이 뽑은 부하를 믿었다.
“어차피 팀장은 너다.”
대답은 그것으로 족했다. 빈우는 즉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가시죠. 블랙 랜스까지 모시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태스크 포스 373은 라출노그 7행성의 샤다이 함선을 확보하기 위해 출동하겠습니다.”
“음, 부탁한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자세한 것은 가면서 조율해도 된다. 빈우는 오다 의원을 모시고 밖으로 나와 블랙 랜스로 향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동하던 중에 오다 의원이 빈우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팀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이케가미 의원께서 말씀하셨던 나머지 말, 그러니까 딸에게 했던 말들을… 나머지 내용들을 들을 수 있을까요?”
빈우는 잠시 고민했다.그냥 고인의 유언이라면서 가족 외의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있다. 허나 그러기엔 그녀와 이케가미 의원 간의 연결점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너무 많았다. 정작 당사자는 부정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상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스스로 가져가게 놔둘까, 아니면 주면서 선심을 쓸까.
마침내 결심한 빈우는 말을 꺼냈다.
“선친의 마지막이 궁금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오다 의원이 놀라서 멈춰 섰다. 그것도 뜬금없는 헛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 숨겼던 사실이 들켰을 때 나오는 경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