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93화 (93/301)

93화

빈우는 태연스레 돌아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실례, 너무 티를 내시더군요. 허나 달리 말씀을 하지 않으시기에 이쪽도 예의상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머뭇거리던 오다 의원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네. 제… 결혼 전의, 제 성은 이케가미였습니다.”

드디어 나온 고백에 빈우는 짧게 흠, 하더니 오다 의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오다 히토미는 우물쭈물하며 변명했다.

“압니다. 예전에 팀장님께서 물어보셨을 때 저는 모른 척 했지요. 하지만….”

거기서 빈우는 오다 의원의 말을 끊었다.

“아뇨.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족 간의 일이지 않습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다만.”

덧붙인 빈우의 말에 오다 의원이 움찔한다.

“의원님의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짐작과 확신은 다르지요. 저희는 조사받는 입장이라 의원님의 개인 자료에 접근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무턱대고 줄 순 없다. 간절히 원할 때 줘야 이쪽도 얻는 게 있다.

“아, 네. 물론이죠. 이거면 되겠습니까?”

오다 히토미가 띄운 자료는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이케가미 히토미의 부녀관계를 증명하는 가족서류, 그리고 결혼하면서 성이 바뀌었다는 혼인 증명서, 마지막으로 이혼 증명서였다.

이혼하고도 본래의 성씨가 아닌 남편의 성을 쓰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정도 정보라면 차고도 넘친다.

“충분합니다, 의원님. 그러면 이케가미 의원님의 마지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리지요. 허나 당시의 자료는 전부 기밀이라 복사에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작전 후에 복사본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제 방에서 보여주세요.”

뜻밖의 제안에 빈우가 고개를 갸웃한다.

“의원님의 방에서요?”

“…안될까요?”

그렇게 질문하는 오다 의원은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자 조급해하는 딸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아닙니다. 가시죠.”

잠시 후 오다 의원의 방으로 초대받은 빈우는 발 가르단 하스에서 이케가미 의원과 나누었던 대화와 영상들을 모두 보여주었다.

-혹시 따님인가요?

-딸은 관계없어!

영상 속 빈우의 의뭉스러운 질문과 날 선 이케가미 의원의 고함. 오다 의원은 여기까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히토미, 응, 그래. 아빠다, 아빠야….

허나 부상 당한 몸으로 잠꼬대를 하는 이케가미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부터 그녀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세 살 때 입던 옷 그대로였어. 바짓단은 무릎 밑에까지 올라오고 위에 입는 수면 조끼는 짧뚱해져서 배꼽이 보이더구먼. 그걸 보면서, 내가 참….

아버지의 웃음을 보던 딸은 웃으면서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그날 아침에는 오래간만에 둘이서 아침 식사를 같이했는데, 내가 입맛이 없어서 밥을 좀 남겼기로서니 이번엔 히토미가 나보고 방방 뛰더란 말이야. 허허.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더니, 아무렴 닮고말고. 그러니 행동을 조심해야지. 지금이야 추억이지만 그때는 굉장히 곤란했었다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던 딸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손은 들어 눈물을 닦고 그 아래의 입술은 울음에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점차 오다 히토미의 감정이 북받쳐 온다.

-히토미… 넌… 아빠처럼… 살지… 말….

시신도 남기지 못한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거기서 오다 히토미는, 이케가미 히토미는, 딸은 무너졌다.

“아빠… 아빠아….”

나직한 흐느낌이 점차 커진다. 어깨가 들썩이다 얼굴을 감싸고 오열한다. 이내 히토미는 책상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빠.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아버지의 죽음을 그저 보기만 했던 빈우는 딸의 울음만큼은 다독이며 달래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빈우가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오다 의원이 심호흡을 했다.

“아닙니다. 저도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심정, 이해합니다.”

“어머, 그러셨군요.”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한 오다 의원은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낸 듯 홀가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저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라출노그로 따라갈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그녀의 기운찬 목소리를 들은 빈우는 잠시 이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빈우의 얼굴을 본 오다 의원은 더럭 겁을 먹었다.

솔직히, 오다 히토미는 김빈우 소령이 무서웠다. 첫 만남부터 마카롱을 먹여 토하게 하질 않나, 배 안에서의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준다 해놓고선 띄엄띄엄 알려줘 공포감을 한껏 조성했다. 게다가 방금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부하의 얼굴로 김치를 담갔으며, 어떻게든 숨기려 했던 가족관계도 대번에 알아본 사람이지 않은가.

“음. 저어, 팀장님?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오다 의원의 조심스러운 재촉에 빈우도 역시 조심스레 대답했다.

“의원님. 이미 저희는 출항해서 작전지역으로 이동 중입니다만?”

나긋나긋한 빈우의 목소리완 달리 오다 의원의 반응은 격렬했다.

“…네에엣!”

경악한 오다 히토미가 허둥댄다.

“아아아, 언제 출발할 건지, 아무런 말씀도 안하셨잖아요오.”

“거 무슨 말씀을. 아까 사령관님 앞에서 동행한다고 하셨고, 또 제가 모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어어, 아니, 하지만 아무런 명령도 안하셨는데에.”

“그야 의원께서 영상을 보시는 중이라 기밀통신으로 명령했습니다.”

아무리 오다 히토미가 각오를 했다 해도 이건 너무했다. 오다 의원이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울고 있는 순간, 빈우는 뒤에서 슬쩍 출항 명령을 내린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작전 중이니 배 안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아까 아나스타샤가 주의사항을 다시 말씀드렸을 테니 꼭 따르시고요. 그럼 편히 쉬십시오.”

“악! 잠깐만요! 가지 마세요.”

오다 의원은 밖으로 나가려는 빈우를 황급히 붙잡았다. 적지로 향하는 군함 안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한 것이다.

“의원님? 지금 저는 작전 지시를 하러 가야 합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절 두고 혼자 가지 마세요. 아니, 같이 가요.”

빈우는 오다 의원이 벌벌 떨며 자신에게 달라붙는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어. 이미 동행을 하기로 했으니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만, 이제부터 제가 의원님을 완벽하게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은 미리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오다 의원은 울며 겨자 먹듯이 빈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 * *

작전 회의는 격납고에서 하기로 했다. 팀원들은 이미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고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빈우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빈우가 오다 의원을 데리고 격납고로 들어오자 팀원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상원의원이 비밀작전을 나가는 군함에 동행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저기서 파트리샤가 뭐라고 입을 벙긋벙긋한다. 굳이 통신을 쓰지 않고 왜 입을 쓰나 싶어 입술을 읽어보니 내용이 가관이다.

‘납치? 납치?’

빈우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다 오다 의원의 얼굴을 본다. 그녀의 표정을 본 빈우는 파트리샤가 오해할 만했다고 납득했다. 불쌍한 상원의원께선 겁에 콱 질려 계셨으니까. 하지만 빈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께서 이번 작전에 동행하기로 하셨다. 의원님의 안전은 중요사항이지만 작전 목표에 우선하진 않는다. 명심하도록.”

빈우는 뒤에서 들리는 밭은 숨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앞에서 쏘아지는 시선들도 마찬가지로 씹었다.

“17시간 전, 라출노그 7행성의 소행성 지대에서 샤다이 함선이 발견되었다.”

빈우가 아까 보았던 자료를 팀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다 보고 난 팀원들은 금세 냉정해졌다.

“샤다이와 데넥샬이 손을 잡은 겁니까?”

아룹은 영상을 본 것만으로 이미 상황을 추측해 내고 있었다.

“그에 대해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다른 확실한 세 가지는 첫째, 샤다이들이 저기에 자신의 배를 두고 갔고. 둘째, 라출노그들은 그것을 모를 리 없으며. 셋째, 아직 우리에게 통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열함 한 척에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닙니까? 굳이 우리가 갈 필요가 있을까요?”

이제 샤다이라면 이를 가는 위르겐이지만 질문은 냉정하다.

“배보다는 기술이다. 라출노그가 샤다이의 기술을 역설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배를 넘겨주는 마당에 기술까지 안 넘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라출노그가 샤다이 급의 기술력을 가진 군함을 보유하게 된다면 현 연방의 파워 밸런스는 대번에 무너진다.”

한 세대 처지는 기술력을 조함 실력으로 메워 연방과 대등하게 싸웠던 라출노그다. 반면 샤다이는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전쟁기술이 맹탕이라 연방과 드잡이질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는 라출노그의 데넥샬 분파에 초월적 기술력을 가진 샤다이 함선이 주어진다면? 연방은 일방적으로 무너질 것이다.

“현재 샤다이와 라출노그 간의 통신은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나 슈홀루쪽의 시선을 염두에 둔 듯하다. 허나 라출노그들의 통신을 보면 샤다이와의 접촉을 암시하는 부분들이 있다. 아직까진 주변에 있는 우리 무역선들 때문에 라출노그들이 행동하지 않고 있으니 지금이 기회다. 우리 팀은 최대한 빨리 라출노그 7의 소행성대로 가서 거기 있는 샤다이 전열함을 나포한다.”

지금까지 연방이 파손 없이 온전히 샤다이 함선을 나포한 적은 없다. 함대전을 하든 장갑 보병을 투입하든 격렬한 전투 끝에 만신창이가 된 고철 더미를 끌고 가는 게 고작이었다.

자신들이 뺏어야 할 보물의 가치에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은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파트리샤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저기, 근데 라출노그 7은 데넥샬의 앞마당이지만 엄연히 동맹의 영토잖습니까. 우리 뭐 허락이나 맡고 작전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파트리샤는 슬쩍 오다 의원의 눈치를 보았다. 상원의원이 뭔가 알고 있지 않냐는 듯. 허나 아쉽게도 오다 의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데넥샬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뺏거나 박살 내고 튄다. 뒤처리는 외교부에서 할 거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이유는 알겠지? 방해자와 목격자는 완전히 제거한다. 저 전열함은 저기에 간 적도 없이 바로 우리 손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예상했던 답변이 나오자 팀원들이 한숨을 푸욱 쉰다.

아무리 전쟁을 했다고 해도, 그리고 지금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데넥샬은 라출노그의 분파고 라출노그는 연방의 군사동맹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샤다이의 기술이 데넥샬에게 넘어갔다간 결코 좋게 끝나지 않기에 이러는 것이다. 만약 데넥샬이 샤다이 함선을 생산하는 순간 연방은 삼진아웃이고 나발이고, 동맹 끊고 함대를 출동시켜 라출노그 7에 전함으로 마세를 찍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본성까지도 도매금으로 와장창이다.

“목표는 소행성대에 은닉되어 있으며 해당 주역 근처에 연방 중앙정보국의 위장무역선이 추진기 고장이란 명목으로 표류해 시간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최대한 방해를 한다 쳐도, 중앙정보국 쪽 예상으론, 어디 보자. 데넥샬 놈들이 샤다이 전열함 도달 예상시간이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라출노그 항성계 외각의 기밀 게이트를 통해 간 다음 최고 속도로 항해한다 해도 6시간은 걸린다. 애매하군.”

남는 시간은 고작 2시간. 그 안에 태스크 포스 373은 샤다이 전열함에 들어가 내부를 수색하고 함선을 들고 튀어야 한다.

“저어, 먼저 슈홀루 쪽에 알리면 안 됩니까? 그러면 라출노그 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 같은데요.”

이번엔 우지가 상식적인 방법을 꺼낸다. 사실 동맹의 영토에서 일어난 일이니, 연방은 해당 사실을 알려주고 동맹 스스로 해결케 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쪽에서 요청이 올 경우에나 정식적인 절차를 걸쳐 파병하는 게 상식이다.

“라출노그 4에서 7까진 게이트가 없으니 그들의 기술력으론 1000시간 이상이 걸린다. 전열함이 데넥샬의 손에 들어간 다음엔 이미 늦다. 우린 라출노그 항성계 외곽 게이트로 점프한 다음 최고속도로 라출노그 7로 간다.”

여기까지 말한 빈우는 작전도를 띄웠다.

“라출노그 7은 과거엔 녹지 행성이지만 라출노그인들이 살기엔 부적합했기에 그들은 개척사업을 했다. 지금은 상당수가 습지로 바뀐 상태지.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물은 바로 이곳 소행성대에서 채취한다.”

빈우가 가리킨 곳은 라출노그 7의 소행성대와 그 안에 있는 전열함의 위치였다.

“라출노그의 탐지기술로는 본 함 블랙 랜스를 탐지할 수 없다. 함장님, 블랙 랜스로 전열함을 견인하는 데에 무리는 없겠죠?”

발 가르단 하스에선 리퍼 함선도 견인한 적이 있는 블랙 랜스다. 허나 지금 블랙 랜스는 그때 입었던 손상을 아직 완벽하게 수리하지 못한 상태로 부랴부랴 출격한 상황이다. 출항전 오르 함장으로부터 작전에 지장이 없단 말을 들었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입니다. 행성 중력에서 끌어 올릴 필요 없으니 손쉬운 일입니다.”

오르 함장의 확답을 받은 빈우는 이번엔 화력팀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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