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94화 (94/301)

94화

“이번엔 부팀장이 화력팀을 지휘하세요. 부팀장, 파트리샤, 위르겐, 모니카 네 명이 전열함 안으로 들어가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샤다이를 수색하고 제거합니다. 저는 우지와 함께 롱소드로 주변 경계를 하겠습니다.”

“어, 팀장님. 제 롱소드에 팀장님이 타실 자리는 없습니다.”

뜬금없는 빈우의 말에 우지가 긴장했다. 복좌식이나 병력수송을 위한 화물칸이 달린 롱소드가 있긴 하지만, 우지의 기체는 단좌식에 완전 전투용이라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 나는 내걸 타고 나가야지.”

이어지는 팀장의 핀잔에 팀원들은 그가 닉스 레벨3의 전투원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정예 중 최정예라 불리는 닉스 레벨 3의 대원들이 다루지 못 하는 연방의 병기는 없고, 습득하지 못한 전투기술 또한 없다. 또한 그들은 군사 부문 외에서도 다종다양한 지식을 쌓아 올린다. 문자 그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작전 수행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전략 병기인 것이다.

“그런데 팀장님, 작전 중에 오다 의원님의 경호는 누가 맡습니까?”

모니카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긴장한 오다 의원을 보며 질문했다.

위르겐에 모니카까지 다 나가면 블랙 랜스에는 오르 함장과 오다 의원만 남게 된다. 그 외에는 아를르캥과 아나스타샤 같은 안드로이드와 기타 작업용, 경비용 로봇뿐이다. 상원의원이면 연방의 VIP이니만큼 그녀의 안전에는 정말로 만전을 기해야 하는데, 어째 남는 인원들이 영 어설펐다.

“작전에 집중해. 의원님의 경호는 함 내 경비 로봇에게 맡긴다.”

예상대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팀장의 대답에 팀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들의 걱정은 정작 당사자인 오다 의원의 불안감에는 비교할 게 못된다.

“의원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곁에 있을게요.”

빈우의 쌀쌀맞은 말에 바짝 얼어붙은 오다 의원의 옆으로 아나스타샤가 다가가 말을 걸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정말? 그래 줄 거야? 고마워.”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히토미는 사령관실에서 각오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비장하게 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출항하자 겁에 질린 자기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아나스타샤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가 블랙 랜스에 처음 와서 해괴한 안전수칙을 듣고 겁에 질렸을 때, 직접 찾아와 오해를 풀어주고 안심시켜준 안드로이드 메이드가 이번에도 옆에 있겠다 하자 히토미는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좋아. 아나스타샤, 의원님을 방에서 잘 모시고 있어. 작전 중 의원님의 신변을 지키고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모셔라.”

“예, 주인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나스타샤의 머리 위로 주인의 차가운 명령이 다시 따라붙었다.

“단,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청소’할 준비도 잊지 마라.”

“…예, 주인님.”

아나스타샤가 메이드인 이상 청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방금 주인의 명령을 들은 안드로이드는 표정을 지우고 정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또한 아룹 부팀장의 얼굴도 미미하게 굳었고 다른 팀원들의 표정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청소라는 단어 뒤로 무언가가 더 있는 것처럼.

이런 모습들을 본 오다 의원은 왠지 ‘청소’란 단어의 어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이상하거나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질문하지 않아 곤욕을 치렀던 오다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질문할 때라 생각해서 나섰다.

“팀장님,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네. 작전에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하십시오.”

오다 의원은 긴장한 팔을 주무르며 힘을 북돋고 나서야, 묻고 싶었던 것을 간신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방금 말씀하신 청소가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질문을 받은 사람은 태연한데 정작 표정이 굳는 건 주변 팀원들이었다. 이를 본 오다 의원은 뭔가 자신이 실수를 했나 싶었다.

“당신은 연방의 상원의원이십니다. 뇌와 두뇌 칩 속엔 연방의 기밀들로 가득 차 있지요. 최악의 경우 의원님께서 적대적 종족의 손에 넘어가면 연방에 치명적인 피해가 옵니다. 해서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중요 정보나 VIP가 적의 손에 넘어갈 상황이 되면 청소, 뭐 알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소각과 제거를 합니다.”

상원의원은 정말로 후회를 했다. 차라리 묻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몰아쳤다.

“아, 아, 아나스타샤는 아, 아, 안드로이드인데, 으흠, 스슷, 살인이 가능한가요?”

오다 히토미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려 했지만 그건 얼굴뿐이었다. 그녀의 몸과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 망할 군함 안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제 개인 비서입니다. 명령에 따라 군용 OS로 움직이죠. 그리고 살인이 아닙니다. 해당 블록을 자폭시키는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고통은 없을 겁니다.”

전혀 안심이 안 되는 소리를 나불대는 군인을 보고 있자니, 겁에 질린 상원의원 속내에서 부아가 솟구쳐 올랐다. 자신이 이 팀을 조사하러 온 입장이긴 해도, 서로 협조를 하기로 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줘 나름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니 분이 차오르는 것이다.

‘겁먹지마. 여기서 화를 내야 해. 꾸짖어야 해. 팀장 앞에서 강한 모습으로….’

아쉽게도 그건 오다 의원의 희망 사항일 뿐, 하고 싶었던 말은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의원님?”

“왓!”

누가 옆에서 팔을 잡아당기자 잔뜩 긴장했던 오다 의원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군가 싶었더니 아나스타샤였다.

“제 주인님 말씀에 너무 겁먹지 마세요. 만약 제가 ‘청소’를 하게 된다면 그땐 정말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탄 블랙 랜스는 격침 직전이거나 적들이 침입한 상태이고, 또 여기 계신 팀원분들도 전부 전사하셨을 겁니다. 그래야만 제가 ‘청소’를 할 수 있거든요.”

즉, 그때 오다 히토미의 앞에 남은 미래라곤 죽음, 혹은 더 나쁜 게 있을 뿐이란 말이다. 무서운 내용이었지만 말투가 부드럽고 상냥한 덕인지 오다 의원은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단지 거기서 더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의,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겁니다. 의원님께서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그리고 거기 주인님아, 라출노그의 고문 방법을 굳이 재생하실 필요는 없어요. 의원님, 저런 거 보지 마시고. 저를 보세요.”

“어, 응.”

화를 삭히는 게 선명히 느껴지는 아나스타샤의 나직한 꾸짖음에 빈우가 허둥지둥 영상을 껐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보충했다.

“어흠, 제 설명이 부족했군요. 죄송합니다. 물론 저와 제 팀원들은 의원님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만 연방의 안전을 위해서도 같은 노력을 한다는 점 역시 헤아려 주십시오. 때문에 방금 말했던 것과 같이 의원님께서 보시기에 다소 불편한 방법을 준비는 하겠습니다만, 그게 실제로 쓰일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냥 규정상 인공지능에게 위기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을 미리 명령한 것뿐이니 안심하십시오. 아나스타샤의 말대로 그때는 명령내릴 사람이 아마 없을 겁니다.”

그제야 오다 의원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를 다시금 깨달았다. 저들은 군인이었다. 연방과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적대적 외계인들과 싸우는 자들. 목숨을 빼앗는 자로서 기능하는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 역시 각오하고 있을 것이다.

‘아까 사령관실에선 연방 내의 비밀결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군함에 탄다는 각오를 했다고 큰소릴 쳐놓고선, 이게 무슨 꼴이람.’

공포와 부끄러움, 그 외에 여러 가지 감정을 다스린 오다 의원은 자세를 바로 했다.

“아뇨. 저야말로 여러분들의 임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언제 겁에 질려 말을 더듬었냐는 듯, 바로 의연해지는 모습에 팀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울고불고하는 VIP를 달고 작전에 나가는 건 누구라도 사양이다.

“야, 모니카. 너 생각 나는데?”

파트리샤가 모니카를 툭툭 건드리며 놀린다. 저번 작전 때 모니카가 오다 의원과 비슷한 해프닝을 겪었던 걸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모니카는 변명할 거리가 있었다. 장비만 운반하는 줄 알고 왔다가 그 자리에서 납치당하다시피 끌려왔고, 전투 훈련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전문 기술 사관의 신분으로 특수부대의 비밀작전에 끌려갔으니 징징거릴 만도 했다.

부끄러운 기억을 들추자 약이 오른 모니카가 뭐라고 반격하려 했지만, 작전 회의가 재개되었다.

“주목. 이제 세부사항을 설명하겠다.”

빈우가 팀원들의 앞에 띄워진 작전지도에 표시를 한다.

“블랙 랜스는 후방에서 드론을 살포하여 광대역 전파방해를 한다. 그리고 나와 우지의 롱소드는 작전지역 외곽을 순찰하며 접근하는 모든 목표를 배제한다.”

아까 빈우는 이번 작전에 방해자와 목격자는 제거한다고 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동맹종족의 민간인이라면 손을 대기가 꺼려진다.

“만약 라출노그의 자원 채취선 같은 민간 선박이라면, 전파방해나 운석 충돌을 가장한 사고로 작동 불능상태로 만든다. 다만 항로가 수상한 군용기라면 즉시 격추하고 생존자는 모두 제거한다.”

그나마 민간인을 살해하는 상황은 피했지만, 이번 작전에 관계된 라출노그 군인들은 얄짤 없이 죽인단다. 지금 빈우는 데넥샬을 아예 샤다이와 내통하는 적군으로 보고 있었다.

“이번에 화력팀은 12기의 무인 어벤져를 이끌고 그라디우스에 탑승해 적함에 침투한다.”

그라디우스는 장갑 보병을 적함으로 쑤셔 넣기 위한 장갑 돌격정이다. 우주 전 전용으로 만들어진 기체라 행성 진입, 이탈능력은 없으나 장갑도 튼튼하고 자체 무장도 꽤 우수해서 제한적인 우주 전투가 가능하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무인 어벤져는 전열함 내부를 수색하기 위한 용도다. 아무래도 쪽수가 많으면 수색이 빨라지니까. 저번 리퍼 함선과 달리 이번 전열함은 정상적인 상태라 혹시 내부에 적이 있을지도 모르고 수색할 곳도 많다.

“화력팀은 전열함에 들어간 다음 아군 외 모든 생명체는 제거한다. 현장에서의 자세한 사항은 부팀장에게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태스크 포스 373이 도착하기 전 애먼 라출노그 민간인들이 샤다이 전열함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들의 생사가 부팀장인 아룹에게 달리게 된 것이다.

“이후 전열함을 블랙 랜스로 견인, 즉시 이곳을 이탈한다.”

빈우는 그 외에도 각종 돌발 사태에 대한 대처 방법이나 이탈, 도주 경로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동맹종족의 영역에서 허가 없이 치르는 비밀작전인 만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만약 들켰다간 꽤 큰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물론 라출노그와의 동맹은 연방이 확실히 우위에 서 있기에 억지로 누를 수는 있다. 원인이 라출노그 쪽에 있기도 하고.

하지만 엄연히 타국의 주역에 허가받지 않은 군사작전을 행했다는 사실이 다른 동맹 종족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그 여파가 걷잡을 수 정도로 커질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허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 작전을 강행한다는 면에서 작전의 중요도와 위험성을 알 수 있다.

“다른 질문?”

빈우가 조용한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태스크 포스 373의 작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작전은 24함대의 방해를 받으며 팀이 제대로 갖춰지지도 못한 채 출동했고, 이번 작전도 촌각을 다투는 사태라 블랙 랜스가 완벽하게 수리되기도 전에 튀어 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부대에서 뽑힌 정예대원들은 갖은 고난을 뚫고 작전을 성공시켰다. 당연하게도 이번 작전 역시 그럴 것이다.

“좋아, 해산. 각자 위치에서 대기한다.”

그 말을 뒤로하고 각 팀원들은 움직였다. 오르 함장은 이곳의 육체를 수납하고 전투지휘실의 육체를 활성화 시켰으며, 아룹 이하 화력팀은 격납고의 그라디우스로 가 장비들을 점검하고 장착했다. 그리고 빈우는 우지와 함께 롱소드 쪽으로 향했다.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팀장님.”

오다 의원이 자기 방으로 가기 전 빈우를 부른 것이다.

“건투를, 빕니다.”

힘을 내봤지만 긴장한 목소리다. 빈우는 그저 웃으며 대답할 뿐이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