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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97화 (97/301)

97화

신형 아귀급을 목표로 잡은 빈우는 그쪽을 향해 롱소드를 몰아갔다. 아직은 적이 이쪽을 발견 못 한 터라 기습하기에 절호의 상황이다.

조준을 마친 빈우는 동축 레이저 건을 발사했다. 민감한 전자장비들을 다수 장착하느라 주포는 자기장과 반동이 심한 코일건 대신 레이저 건으로 교체된 상태였다. 광속으로 날아간 공격은 적함에 착탄, 고열로 장갑을 녹인 다음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그리고 멍하니 있는 포격함에 연달아 공격을 가한 빈우는 뒤늦게 날아오는 대공포화를 피해 암석군 뒤로 숨었다. 롱소드가 제아무리 현존하는 최강의 우주 전투기라 해도 일개 전투기에 불과하다. 저런 대형함을 잡으려면 다수의 공격기로 어뢰를 퍼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가 지금 무리해서 혼자 공격을 가한 것은 놈들의 발을 묶고 블랙 랜스가 오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저것들 왜 저래? 일이 잘 풀리네.”

주변의 운석 사이사이로 숨으며 치고 빠지던 빈우의 눈에 라출노그의 포격함에서 호위정들이 분리되는 게 보였다.

라출노그의 함선 운용 기본 교리는 대형함 한 척에 다수의 소형함이 붙어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것이다. 평상시에 소형함들은 대형함으로부터 연료를 공급받으며 추진기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떨어져나와 대형을 이뤄 근접전을 시도한다. 그리고 대형함은 각자의 특색에 따라 후방에서 포격을 하거나, 보급을 한다.

물론 이때 대형함의 기동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이쪽은 샤다이 전열함의 나포와 놈들의 도주를 막으려고 찔러본 것인데, 저쪽에서 작정하고 제대로 싸우려고 드니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운석군 사이로 대형을 짜 포위해 오는 적 호위정들은 전혀 고맙지 않았지만.

“대형을 짜는 폼이 나름 잘 훈련받은 듯하다만-”

라출노그 호위정은 롱소드보다 크다. 주 추진기는 상대적으로 빈약하지만, 대신 지느러미를 연상케 하는 보조추진기들이 동체 곳곳에 달려있어 이를 사용해 훨씬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또한 놈들은 통신 없이 서로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 각자의 생각을 파악하고 전할 수 있다. 미묘한 보조추진기의 움직임이나 동체의 회전만으로도 함대의 대형이나 기동에 대한 의견을 즉각 교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라출노그의 함대 기동은 마치 어류들의 무리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이런 집단 기동은 비단 소형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형함들도 이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연방은 라출노그와의 전쟁에서 함대전만큼은 딱히 우위를 점하지 못했었다.

아귀급에서 떨어져 나온 호위정들은 마치 프랙탈 도형을 연상케 하는 편대 움직임을 하며 빈우의 롱소드를 죄어오려 했다. 그러나 주변에 방해물이 많은 소행성대라 놈들은 생각만큼 움직일 수 없어 보였다. 능숙한 수병들이라면 장소에 영향받지 않고 대형을 짰겠지만, 저놈들에겐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실전경험이 부족한가.”

빈우는 라출노그 호위정들의 포위망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빈틈을 뚫고 빠져나갔다.

다만 그 방법은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롱소드의 자동회피를 끈 빈우는 암석군으로 돌진하며 레이저로 커다란 암석 하나를 쏜 다음, 열 폭발하는 파편을 동체로 뚫고 지나갔다.

목표를 놓친 호위정의 무리가 다시 대형을 짜 빈우의 롱소드 뒤로 따라붙을 때, 때맞춰 우지의 롱소드가 참전했다. 녀석은 빈우의 맞은편에서 날아오면서 레이저 건을 발사했다.

“나이스 타이밍.”

빈우는 우지의 사선을 파악했던 터라 슬쩍 방향을 틀었다. 뒤로 날아간 고출력 레이저에 쫓아오던 두어 척의 호위정이 폭발했다. 그리고 놈들이 허둥댈 틈을 타 빈우와 우지는 다시 라출노그의 모함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다행히 샤다이 전열함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라출노그들이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신 연결된 라출노그 포격함에서 대공포화가 올라왔다.

“어차피 샤다이에겐 공격해봐야 소용없다. 포격함을 노려.”

아귀급 포격함은 반격했지만 두 기의 롱소드는 번갈아 주포를 쏘며 착실히 피해를 누적시켰고, 한쪽이 포격함을 공격할 때 다른 쪽은 호위정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혼란을 틈타 4기의 그라디우스들이 접근해 들어간다. 거기에 나눠 탄 장갑 보병들은 373의 화력팀 3명과 무인 어벤져 12기다.

아룹이 보낸 통신에 따르면 먼저 무인 어벤져들을 샤다이 전열함으로 돌입시키고, 화력팀은 신형 아귀급과 전열함 사이의 연결통로를 노린다고 했다. 지금 샤다이 전열함은 곳곳의 입구를 모두 열어놓은 상황이니 무인기들을 집어넣기 수월하고, 연결통로는 라출노그들의 병력이동을 막는 동시에 양쪽으로 쳐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라출노그의 포격함은 여차하면 격침시켜야 하니 굳이 병력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화력팀이 돌입합니다.

우지가 그라디우스로 접근하는 호위정을 격침시키며 말했다.

먼저 무인 어벤져들을 태운 그라디우스가 샤다이 전열함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그라디우스의 기수 부분에는 적함의 장갑을 뚫고 강제로 진입구를 만들 수 있는 굴착 기능이 있지만, 지금은 쓸모가 없었다. 이미 입구가 열려있었으니까.

만약 배 안으로 들어가서 라출노그들과 수중전이 벌어졌다면 아군도 고전했을 터였다. 물이 없는 배에서 상륙복을 입은 놈들과의 전투라면 이길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적의 정신이 무인기 쪽으로 팔린 사이, 373 팀원들을 태운 그라디우스가 샤다이 쪽의 연결통로에 들이받았다. 머리 부분의 굴착기로 통로에 구멍을 뚫자 안으로 화력팀들이 돌입한다. 그리고 아룹의 통신이 들려온다.

-팀장님. 전원 돌입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린 호위정들을 정리하지요. 함장님?”

-지금은 포격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접근하겠습니다.

운석이 흐르는 소행성대에 적과 아군이 섞여 난전을 하고, 적함 안으론 아군 장갑 보병들이 돌입한 상태다. 블랙 랜스로선 함부로 포격을 할 수가 없었다.

빈우는 레이저로 포격함의 대공포를 긁으며 화망을 피해 빠져나갔다. 그런 롱소드의 뒤로 호위정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었고 그것은 우지 쪽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 뒤에 줄줄 달고 어딜 가십니까.

“새끼, 남말하네.”

빈우와 우지를 뒤쫓는 호위정들이 레이저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현재 태스크 포스 373의 롱소드들은 대광학병기용 장갑을 해놓은 터라 한세대 떨어지는 놈들의 화력으론 단시간에 심각한 피해를 주기 힘들었다. 게다가 둘 다 리미터를 해제해 놔서 호위정들은 쫓아가기도 빠듯해 포위는 꿈도 못 꾸고 있다.

-제가 먼저 떼어내 드릴까요?

우지의 롱소드가 엄호를 위해 뒤로 빠지려 할 때 빈우는 궤적 바깥으로 크게 돌았다.

“시간 끌지 말고 타치 위브로 가자. 너 먼저.”

타치 위브란 2기의 전투기가 뒤에 붙은 적을 떨칠 때 쓰는 고전적인 전투기의 방어 기동이다.

빈우의 롱소드가 빠져나가는 것을 본 우지도 거리를 두며 가속을 시작했다.

-시간 문제라면 차라리 우리 할아버지 방법은 어떻습니까?

호위정들의 레이저 공격이 거세짐에 따라 장갑의 피해 경고음도 점차 심하게 울린다. 빈우는 경고음 속에서 우지의 말을 들으며 씨익 웃었다.

이런 집단대형에 쫓길 때, 놈의 할아버지인 시에 쉰이 쓰는 방법이라면 하나뿐이다.

“너랑 나하고 합 한 번 안 맞춰 봤는데 되겠냐?”

물론 빈우도 ‘그걸’ 할 수는 있다. 다만 두 사람의 호흡이 맞아야 하는 고난도의 기동이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자 우지도 히죽 웃는 목소리로 맞받는다.

-제가 맞춰드릴 테니까 걱정 마십쇼.

그 말에 빈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롱소드의 방향을 저쪽의 우지 쪽으로 틀었다.

우지는 발바닥이 땅에 붙어있을 때는 소심한 놈이지만 우주를 고속으로 날아가는 관속에 들어가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놈이 된다. 거기다 실력은 연방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탑 엘리트다.

빈우와 우지의 롱소드는 각자 뒤에 호위정 무리를 달아놓은 채 회피기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방향을 보며 거리를 두고 평행으로 날아갔다. 그때 빈우가 신호를 줬다.

-들어간다.

그러면서 빈우의 롱소드가 우지와의 거리를 한번 벌린 다음 다시 빠르게 접근했다. 신호를 받은 우지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벌린 후 가속을 해 빈우 쪽으로 날아갔다.

두 기의 롱소드가 서로 마주 본 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가 되자 각자 후방으로 기뢰를 뿌린 다음 가속해서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 빈우와 우지는 서로가 떨어트린 기뢰를 뒤로 보내며 각자의 기뢰를 폭발시켰다. 빈우의 기뢰는 우지의 뒤에서, 우지의 기뢰는 빈우의 뒤에서.

폭발의 진동이 기체를 흔들 때, 파일럿들은 출력 레버를 한계 너머로 밀었다.

롱소드들은 관성 제어장치를 비롯한 각종 방어책을 미리 후방으로 돌려놔 큰 피해는 없었다. 덕분에 기뢰의 폭발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급가속하여 상대방을 쫓던 호위정 대형을 뚫고 순식간에 뒤를 잡았다.

라출노그 호위정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이 쫓던 롱소드들이 서로 모이는가 싶더니 폭발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포위를 벗어난 데다, 또 자기들끼리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 버린 탓이었다. 잠시 우왕좌왕하던 그들은 이내 다시 대형을 재정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방의 우주 전투기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빈우는 급가속으로 호위정 대형을 벗어난 다음 기체를 반전시켰다. 기체의 관성 제어장치와 파일럿 슈트의 한계를 벗어나는 부하가 몸에 걸린다. 파일럿용 강화를 한 우지라면 모를까 빈우에게는 버거울 정도다. 그래도 어떻게든 기수를 적 호위정 무리로 향하게 한 그는 기체의 모든 동력을 동축 레이저 건과 양 현의 입자 가속 포로 전부 밀어 넣었다.

곧이어 두기의 롱소드가 만들어낸 죽음의 사선이 호위정 대형 사이로 그어진다. 라출노그들은 갑자기 눈앞에서 적들이 사라지고 뒤에서 공격이 빗발치자, 제대로 대응도 못 한 채 줄줄이 격침되어간다.

물론 이런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해도 단 두기의 롱소드만으론 모든 호위정들을 상대하기엔 무리다. 하지만 라출노그들이 다시금 대형을 짜려 할 때 어느새 가까이 온 블랙 랜스가 공격을 퍼부었다. 아까완 달리 빈우와 우지가 호위정들을 유인해 모아놓고 자신들은 바깥으로 빠진 상황이라 오르 함장은 포격과 미사일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었다.

연방은 구축함의 함축 코일건을 전함의 주포에 맞먹도록 만든다. 그런 위력의 포격이 연사로 쏘아지자 연약한 호위정들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포격의 다음 목표는 라출노그 포격함이었다. 호위정을 전부 잃은 아귀급이 블랙 랜스에게 반격을 해보지만 장갑도, 화력도 압도적인 차이라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빈우는 그걸 보면서 호위정들의 잔해 쪽으로 날아갔다.

“우지. 뒷정리하러 가자.”

-네? 어, 전부 격추한 것 같습니다만.

바로 이해하지 못한 우지를 위해 빈우는 몸소 시범을 보였다. 그의 롱소드가 호위정들의 잔해 속을 탐색하더니 살아남은 라출노그의 탈출 포드를 찾았다. 그리고 쏴 터트렸다.

-엇!

“말했지? 이번 작전에서 적의 생존자가 하나도 있으면 안 돼.”

우지의 짧은 비명을 빈우가 짓눌렀다. 정규군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이지만 태스크 포스 373은 원래 이런 팀이다. 있어선 안 될 곳에서 해선 안 될 짓을 하는 팀.

“서둘러. 이쪽을 빨리 마무리 짓고 포격함 쪽으로 간다.”

-네, 넷.

빈우는 머뭇거리는 우지에게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전투에서 적을 죽이는 것과 전투가 끝난 다음 무저항의 적을 죽이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이 힘든 법이다. 격려나 질책은 나중에 녀석이 힘들어할 때나 해주면 된다.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되었군요.

오르 함장의 통신에 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귀급은 몇 번만 더 공격하면 격침된다. 이쪽이 입은 피해라곤 롱소드의 장갑 정도다.

일이 이렇게 손쉽게 풀린 것은 태스크 포스 373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저 포격함의 함장이 뼈저린 실책을 저지른 탓이 컸다.

그 바보는 롱소드를 격추시키기 위해 호위정들을 출격시킨다는 최악의 수를 둔 것이다. 만약 저 아귀급 포격함이 샤다이 전열함을 이끌고 도망을 치려 했다면 태스크 포스 373은 고생을 좀 해야 했을 거다.

“부팀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열함 내부는 장악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팀장님께서 직접 오셔야겠습니다.

부팀장의 통신에 빈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룹 정도의 실력과 경험이라면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으로 있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계급에 따른 시야의 한계 때문에 현장의 민감한 문제에 있어서 현재 연방의 독트린을 반영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레드우드 사령관은 굳이 군사대학을 나온 영관급 장교를 팀장으로 원했던 것이다.

-포로가 있습니다.

‘이거, 꽤 민감한 사안이겠군.’

분명 작전 투입 전에 생존자는 없다고 했는데 현장 지휘를 맞은 아룹이 굳이 살려놨다는 것은 그 라출노그인의 중요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뜻한다.

“알겠습니다. 지금 가지요. 함장님, 일단 공격을 중지하십시오. 생존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여 생존자가 더 필요할까 싶어 빈우는 일단 공격을 중지시켰다. 불필요하면 그때 가서 죽이면 된다.

빈우는 롱소드를 샤다이 전열함으로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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