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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98화 (98/301)

98화

샤다이 전열함 안으로 들어간 빈우는 포로로 잡은 라출노그인을 만났다. 마치 다리 달린 어항의 모습을 한 라출노그 상륙복 안에는 그가 잘 아는 인물이 있었다.

‘아앤아!’

그 라출노그인은 빈우의 사관학교 동기랄 수 있는 아앤아였다. 정확히는 유학생이지만. 아앤아를 훑어보는 빈우에게 아룹의 통신이 들려온다.

-이 라출노그인은 우리가 돌입했을 때 바로 투항했습니다. 그것도 아군의 피아식별 신호를 쓰면서요. 혹시나 아군 정보국의 요원인가 싶어서 생포했습니다만, 아니더군요.

-잘했습니다 부팀장. 이자는 저와 조금 면식이 있습니다. 사관학교 시절 유학생으로 왔었지요. 잘하면 데넥샬 쪽의 사정을 알아낼 수 있겠습니다.

아앤아는 헬멧의 바이저를 내린 빈우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주변의 반응으로 그가 지휘관, 혹은 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출노그인이 말하려고 상륙복 안에서 조금 움직이자 주변에 선 팀원들의 총구가 즉시 짓눌러 왔다. 빈우가 조용히 손을 들어 제지하자 허락을 받은 아앤아는 서서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라출노그 7 개척지 방위 사령본부의 4함대 소속 아앤아 준장이다. 나는 연방과 적대할 의사가 없다. 오히려 이 샤다이 함선을 본성이나 연방에 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그대들의 무역선을 공격한 것은 함장의 독단이었다.

공용회선으로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단순히 살기 위한 변명은 아닐 것이다. 빈우가 아는 사관학교 시절의 아앤아는 친 연방파였으니까.

물론 처음 만났을 때의 아앤아는 인류 연방에 한 방 먹이겠다는 복수심으로 가득 찬, 자주 볼 수 있는 젊은 데넥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연방 사관학교의 교육을 받으며 젊은 라출노그인은 절망했다. 현실이란 거대한 벽을 물었던 그의 이빨은 부러졌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빈우는 변조된 목소리로 아앤아에게 통신을 넣었다.

-왜 반란을 일으키려 했지? 샤다이 함선은 너희들에게 엄청난 전략자원이 될 텐데? 또 데넥샬은 연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잖아.

그 말에 아앤아는 아가미를 한 번 고르고 설명을 시작했다.

-난 과거, 연방에 유학을 간 적이 있어. 그때 거기서 알았지. 우리는 결코 연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거짓말은 아니다. 그 과정을 빈우가 옆에서 직접 보았으니.

-현실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얼마 있지 않아 엘리트 취급을 받고 요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속내를 숨기고 뜻을 같이하는 유학파들과 모여 조직을 만들었지.

이것도 사실. 당시 데넥샬은 열린 교류의 장을 악용해 연방의 기술을 훔치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같은 세대의 기술력이라면 모를까, 연방과 라출노그에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인프라 차이가 있어 기술을 훔친다 해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현실에 눈을 뜬 소장파 라출노그들-아앤아 같은 자들-이 되려 변절하는 등 데넥샬의 시도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그래도 고급교육을 받았던 이들 중 계속 충성하던 자들은 라출노그 사회에서 제법 중요한 자리까지 갔다. 당장 눈앞의 아앤아만 봐도 젊은 나이에 장성급이다. 개중에 몇몇 유학파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연방과 연결하는 파이프 라인이 되어 주었다. 나아가 연방 정보조직에 포섭된 경우도 있지만 라출노그와 인류 연방이 동맹 관계가 되면서 군사정보국의 관할 밖이 되는 바람에 빈우와는 인연이 없었다.

-라출노그, 그중에서도 우리 데넥샬 분파가 당신들 인류 연방을 암암리에 적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우리 소장파는 연방과 진정한 동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본성과 연방 정보부에게 비밀리에 협조해 왔지.

이것도 빈우가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사실. 자신이 정보국 소속이 되며 그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게 지금의 빈우로선 몹시 아쉬웠다.

-이번 샤다이 함선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큰 사고다. 이전부터 샤다이와 간간이 연락은 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본성이나 연방 쪽에 알릴 시간도 없었어. 알자마자 바로 출항해야 했으니.

그거야 이쪽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냐면 모함이 완전한 수리가 되기도 전에 부랴부랴 뛰어나온 판이다.

-아직 꿈에 젖어 사는 늙은이들은 샤다이의 배만 들어오면 과거의 설욕을 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지만. 나는, 우리 동지들은 달라. 데넥샬이 복수를 위해 일어선다 한들 치열한 전쟁 끝에 다시 패배할 거다. 그리고 라출노그란 이름 하에 있던 모든 민족들은 연방의 손에 모조리 멸종당하겠지. 데넥샬, 슈홀루 할 것 없이.

아앤아는 연방 사관학교에서 유학을 했던 만큼 연방의 기이한 행보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세 번의 양보. 그 끝은 공생과 번영, 아니면 학살과 멸종이다.

연방은 아무리 만류해도 세 번까지는 무의미한 교섭을 멈추지 않았다.

연방은 아무리 만류해도 적으로 삼은 종족의 멸종을 멈추지 않았다.

그걸 아는 아앤아로선 동포의 만용을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종족의 생존을 위해 난 이 배를 뺏으려 했다. 아니, 뺏지 못한다 해도 본성에는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대들이 너무 빨리 쳐들어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믿어다오. 우린 연방과 두 번 다시 전쟁하고 싶진 않아.

아앤아의 말을 들은 빈우는 질문을 던졌다.

-배에 너와 동조하는 자들이 또 있나?

-같은 조직의 동지는 많지 않다. 하지만 민심은 우리 쪽에 있었고 배의 승무원들은 무능한 함장보다는 나를 더 따랐으니, 계획을 성공시킬 가능성은 높았다. 아니, 높았었지.

과거형으로 말을 맺는 라출노그인의 지느러미는 힘이 없었다. 태스크 포스 373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 지금으로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빈우는 질문의 흐름을 바꿨다.

-샤다이 전열함을 회수하기 위해 온 것은 이 아귀급 포격함 하나인가? 다른 배들은 없나?

-기밀을 위해서 우리 배 한 척만 왔다. 원래는 직접 샤다이의 배를 조종해서 돌아갈 계획이었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호위정으로 샤다이 배를 감싸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으니.

-본부와의 통신은?

-연방의 눈을 속이고 비밀리에 와야 했으니 통신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대들의 공격에 본부에 연락을 하려 했으나 통신 연결이 안 되더군. 그대들의 방해겠지?

빈우는 대답 대신 주변의 부서진 상륙복 안에서 장교용 콘솔을 꺼내 들었다. 이것으로 아귀급 포격함의 서버에 접속하면 아앤아가 한 말의 진위 여부와 또 다른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콘솔은 잠겨 있었고 빈우는 아앤아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승인.

짧은 말 하나에 아앤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부장의 권한으로 콘솔에 접속시켜 주었다. 수중 생명체인 라출노그인용 인터페이스지만 빈우는 능숙하게 조작해 자료와 항해기록 등을 검색했다.

샤다이의 연락, 그것에 호응한 데넥샬의 출격, 이어지는 허술한 계획 등. 아앤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자료를 복사한 빈우는 마지막 단계, 청소를 위해 아앤아를 돌아보았다.

-생존자들을 투항시켜 모아 줄 수 있나? 더 이상 전투는 불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지만 동맹 아닌가. 투항하면 신변은 보장해 주겠다.

허나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이 들려왔다.

-빈우냐? 혹시 김빈우?

아앤아의 통신에선 처음에는 의혹이, 마지막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시 조준되는 팀원들의 코일건. 빈우는 혀를 찼다.

인간이 상대의 얼굴과 표정, 목소리로 상대를 파악한다면 라출노그는 지느러미의 형태와 움직임으로 대상을 구분한다. 그래서 아앤아는 빈우의 걸음걸이, 그리고 콘솔을 조작하는 팔과 손의 움직임에서 과거 사관학교 시절의 동기를 알아본 것이다.

빈우는 굳이 감출 필요가 없기에 헬멧의 바이저를 열고 아앤아를 마주 보았다.

-오래간만입니다. 아앤아 준장. 아니, 부장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이렇게 재회하게 되어 정말 유감입니다.

-어디서부터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였지?

그가 힘없이 묻는 것은 아마도 이번 사태의 발단일 것이다.

-우리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둘렀죠. 알다시피 우리 연방은 샤다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니까요. 거기다 우주 함대전으로 이름난 라출노그의 데넥샬 분파에 샤다이 함선이 간다고 하니…. 뭐, 이렇게 내가 오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늘 아침 국이 좀 짜더라, 하는 것 같은 성의 없고 수수한 설명이다. 그러나 아앤아는 그것만으로도 빈우가 이끄는 팀이 어떤 종류의 팀인지, 그리고 그들이 띄는 작전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라출노그 부장은 급하게 빈우에게 부탁했다.

-공격을 중지해 줘. 우리 병사들을 살려다오. 저들은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연방과 싸울 생각은 없어.

-이미 중지했습니다.

빈우는 대답했지만 아앤아는 또다른 답을 원했다. 두 번째 부탁에 대한 대답을.

-…우리 병사들을 살려다오. 내가 협조하지 않았나. 제발.

상륙복 속의 라출노그인은 지느러미를 늘어뜨리며 애원했다. 자신들이 공격하려던 자에게 반격을 받고 거기다 목숨을 구걸하는 치욕이다. 하지만 아앤아는 어떤 모욕도 무릅쓸 수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의 생명을 이런 더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에서 버리긴 싫었다.

허나 빈우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저 침몰 직전의 포격함 내부에는 연방과 우호적인 라출노그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앤아와 같은 조직에 있는 라출노그인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작전은 알려져서는 안 되는 작전이다.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빈우는 아앤아의 각오를 보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미안합니다만. 이번 작전에 생존자는 없을 겁니다. 준장님은 우리와 같이 가시죠.

그 말에 울분에 차 일어서려는 아앤아를 아룹이 걷어차 날려버린다. 이어서 벽에 부딪혀 허둥대는 상륙복을 위르겐이 달려가 구속했다.

-조심. 소중한 정보원이다. 정중하게 모시도록.

빈우의 차분한 말에 위르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앤아는 지느러미를 떨었다. 그리고 저항할 의사를 잃은 라출노그인을 무인기들이 연행해 갈 때 빈우는 블랙 랜스를 호출했다.

-함장님, 아귀급 포격함을 청소합시다. 우지, 너도 생존자를 샅샅이 찾아서 제거해라.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팀원들을 호출했다.

-모니카, 어때.

지금 모니카는 샤다이 전열함의 지휘실에 파트리샤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라워요. 이렇게 손상 없는 샤다이 함선을 가지고 간다면 위에선 뒤집어지겠습니다.

‘다른 의미로도 뒤집어지겠지.’

태스크 포스 373은 동맹국의 영토에 무단으로 들어가 동맹국 군인들을 학살했다. 전투뿐만이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포로들조차도.

아마 이 일의 뒤처리로 군 상층부와 외교부는 피를 토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이번 작전엔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먼저 샤다이 배를 중간에 가로채어 데넥샬의 저항 의지와 수단을 꺾음으로써 라출노그와 연방의 관계는 보다 더 돈독해질 것이고, 온전한 샤다이 함선을 손에 넣은 덕분에 연방의 기술력은 한층 진일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드웨어뿐만이 아니에요. 배에 있던 소프트웨어들도 온전히 접수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리퍼의 것보다는 한 수 쳐집니다. 아, 기술력이 아니라 전투에 대한 효율성에 관한 건데….

모니카는 신이 나서 보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서둘러야 할 때다.

-좋아, 움직일 수 있겠나?

빈우가 중간에 말을 끊자 모니카는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아직은 무리입니다. 좀 더 분석이 필요해요.

-그럼 청소가 끝나는 대로 끌고 이탈한다.

이제 샤다이 전열함은 여기 온 적이 없게 될 것이다. 태스크 포스 373 역시 마찬가지다.

아귀급 포격함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격침되었고, 그것은 연방의 무역선도 마찬가지다.

알 수 없는 이유. 이것은 차후 조사차 온 연방과 라출노그 본성, 슈홀루들에 의해 다음과 같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샤다이의 소행이다. 샤다이가 라출노그 쪽에 침략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빌미로 연방이 라출노그 7에, 데넥샬의 본거지에 함대를 주둔시킬 것은 명약관화하다.

당연히 데넥샬은 반발하겠지. 하지만 그들로선 거부할 수 없고 진실을 밝힐 수도 없다.

연방과 본성 몰래 샤다이와 접촉한 것, 동맹의 민간선박을 공격한 것들을 연방이 파헤치려 들면 곤란해지는 것은 데넥샬이다. 또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이 증거를 인멸해버리면 저쪽엔 심증만 남으니 시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 데넥샬은 숙여야 한다. 그리고 숙이면 숙일수록 연방은 더더욱 짓누를 것이다. 반발할수록 더더욱 찍어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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