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태스크 포스 373의 이번 작전은 전파 방해에 스텔스 상태로 들어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보호행성에서 일어난 저번 발 가르단 하스의 작전과는 달리 이번 라출노그 항성계의 작전은 타국, 그것도 동맹국 내에서 무단으로 일어난 일이다. 들키면 외교적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자는 없어야 하고, 증거 또한 없어야 한다. 남겨지는 증거는 샤다이의 것으로 보이도록 조작한 것들뿐이다.
이제 우지는 아까 뿌려두었던 전파방해 위성들을 회수하러 갈 참이었다.
-저, 무역선의 잔해와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우지가 머뭇머뭇 질문했다.
라출노그 7과 소행성대 사이에서 엔진 고장으로 위장해 표류하는 척하다가 포격함에 격추당한 중앙정보국 소속의 위장 무역선을 지칭하는 것일 터였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다 죽은 아군이다.
“당연히 두고 와야지. 우리가 여기 왔었다는 흔적을 남기면 안 돼.”
-…알겠습니다.
빈우의 말에 우지의 대답은 한 박자 늦었다. 아군의 시신을 남겨두고 떠나자니 그게 마음에 못내 걸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우지는 저 멀리 보이는 무역선의 파편과 잔해를 보며 마음속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자기가 뿌렸던 소형 위성들을 하나씩 수거했다.
그때, 우지의 센서 화면에 무언가가 잡혔다.
“응?”
지금은 비밀작전 중이라 능동센서를 쓰지 못해 감지범위와 정밀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우지가 발견한 것은 분명히 라출노그의 배였다.
롱소드의 컴퓨터는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 배가 라출노그의 얼음 채취선이라는 것과 예상 항로가 이쪽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팀장님, 라출노그 얼음 채취선입니다.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우지는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팀장에게 넘겨주고 명령을 기다렸다. 분명 작전 회의 때 라출노그 민간선박이 나타나면 전파방해나 사고를 가장해서 못 움직이게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태스크 포스 373의 롱소드 파일럿인 시에 우지는 우주전에서는 비길 자 없는 에이스지만 그 외의 부분에선 평균에서 조금 모자란다.
즉 전자전이나 사고로 위장하는 것에는 영 젬병이었다. 아니, 하는 방법은 알지만 이런 비밀작전에서 섬세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할 만한 빈우는 반대 방향에서 블랙 랜스 주변을 경계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 할 사람이라곤 우지 뿐이다.
우지가 팀장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할까 고민하던 차에 빈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격추시켜.
“…네?”
예상과 다른 충격적인 명령에 우지의 대답은 이번에도 한 박자 느렸다. 하지만 반문은 빨랐다.
“팀장님, 이건 민간선박입니다. 굳이 격추시키지 않아도 되지-”
-내가 본 자료의 항행 스케줄에는 없는 배다. 해적선이거나 라출노그 정보부 소속일 가능성을 무시 못 해.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지. 격추시켜. 내가 롱소드의 무장을 레이저로 바꾼 건 이럴 때를 대비한 것도 있다. 나중에 샤다이의 소행으로 조작하기 편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쏴.
빈우의 명령은 달리 강압적이지도 않다. 냉혹하지도 않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담담히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지는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긴장감을 짓누르려 침을 꿀꺽 삼켰다. 귀로는 명령을 들으며 눈으로는 라출노그 선박의 움직임을 좇았다. 이 배는 우지의 마음도 모르고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도 모른 채 이리로 오고 있었다. 라출노그의 기술력으론 아직 롱소드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소행성대의 일을 알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이번 작전에선 아주 작은 변수도 놓칠 수 없다. 만에 하나라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우지는 잘 알고 있다.
얼음 채취선의 뒤를 잡은 우지는 목표를 조준한 다음 조종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수없이 당겼던 방아쇠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표에서 발신되는 전파, 에너지양, 롱소드의 센서가 탐지한 선박의 구조. 모든 것이 목표가 단순한 민간선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지는 그들의 통신을 방수해 보았다. 라출노그 어들이 번역되어 그의 귀로 들어온다.
-아직 통신이 안 되는데.
-통신기 이상은 없어, 태양풍 영향인가?
방해 위성은 치웠지만 전자전기로 설정된 롱소드에 의해 통신 방해는 계속되고 있다. 저 배는 대답 없는 통신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여긴 수집선 가을 무리, 누구 들리는 사람 없나?
‘저들은 군인이 아닙니다. 민간인이에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우지의 목 안에서 맴돈다.
라출노그 군인은 공격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놈들은 연방을 적대했고, 아군의 선박을 공격했으며, 교전을 했으니까.
하지만 저들은 민간인이다. 그것도 동맹국의. 그리고 희박한 확률로 아군에게 위험요소다.
게다가 저 배가 향하는 곳은 아까 태스크 포스 373과 아귀급 포격함이 전투를 치른 주역 부근이다.
-우지.
“네넷! 팀장님.”
-위성의 회수가 끝났으면 돌아와라. 내가 가겠다.
이미 빈우의 롱소드가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우지는 마치 팀장이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의 뒤처리를 하는 것 같아 긴장한 속이 더욱 타오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목표의 뒤를 쫓고 있자 빈우의 롱소드가 우지의 목표를 조준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
곧바로 얼음 채취선에 고온의 레이저가 명중한다. 급격한 온도에 의한 열파괴로 장갑이 터진다. 이어 달아오른 장갑이 녹으며 기화한다. 마침내 우지의 롱소드 화면에서 노란색 목표물이 사라졌다. 격추되었다는 뜻이다.
우지는 자기가 쏜 것임이 아님에도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 문득 할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다.
‘너를 죽이지 않은 것은 너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빈우의 롱소드는 멈추지 않고 다가와 출력을 낮춘 레이저로 잔해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아마 선박의 블랙박스나 생존자를 제거하는 것이겠지.
-우지, 돌아간다.
별다른 질책도 없다. 짜증이나 분노도 없다. 우지는 오히려 그것이 더 불안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빈우를 따라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갔다.
* * *
블랙 랜스 주변의 영역에서 롱소드로 경계를 서고 있던 빈우는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주목표인 샤다이 전열함은 현재 블랙 랜스가 견인해서 이동 중이다. 그리고 방해물들은 철저히 제거했고 증거는 인멸했으며, 나머지는 전부 조작해 두었다. 이 정도면 이후에 올 라출노그와 연방의 조사팀은, 정확히는 슈홀루와 군사정보국의 조사팀은 오늘 있었던 사건을 샤다이의 소행으로 볼 것이다. 아니, 그들은 그렇게 보려 할 것이다.
다음은 포로로 잡은 아앤아 준장. 생존자를 남기지 않기로 한 작전이지만 친 연방파인 데다가 데넥샬 내부의 사정에 정통하고 이번 사건의 이면을 알고 있는 자이니 특별히 살려서 데려가는 것이다. 물론 그는 빈우의 손에 의해 부하와 동료, 그리고 조직의 동지들을 잃었으니 예전만큼 친 연방 행보를 보일지는 의문이다. 허나 그가 연방의 편에 선 것은 연방이 좋아서가 아니라 종족의 생존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협조는 할 것이다. 본심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앞으로 아앤아의 처우는 그 자신의 행보에 달렸다.
그때 오르 함장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팀장님, 10분 뒤면 점프 포인터에 도착합니다. 착함하시겠습니까?
“아니오. 이번에도 외부에서 연결해서 점프하겠습니다.”
올 때는 아무 일이 없어서 그냥 설레발인가 싶었지만 갈 때는 또 모를 일이다.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다.
빈우는 아룹을 호출했다.
“부팀장, 포로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얌전히 따라주시더군요. 대우는 어떻게 할까요?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어도 아앤아는 동맹국의 장성급 인사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협조자이니 사관용 숙소를 라출노그용으로 설정해서 모십시다. 다만 위르겐을 무장시켜서 무인기와 함께 감시하도록 하세요.”
-네.
이어서 모니카로부터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짤막한 보고를 들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 샤다이 함선은 함정이나 유인책으로 보이진 않았고 정말로 라출노그 측, 그것도 데넥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자세한 건 블랙 랜스에 가서 듣기로 했다.
마지막으론 작전과는 관련 없지만 VIP에 관한 일이다.
“아나스타샤, 오다 의원님은 어떠셔?”
-아무 일 없이 잘 계세요.
상원의원인 그녀는 직책도 직책이지만 현재 태스크 포스 373에 오기로 된 특별감사의 선행조사원이다. 팀의 존망에 대한 위험도를 따지자면 뜨거운 감자 정도가 아니라 숫제 핀 뽑힌 수류탄 되시겠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전까지 끝끝내 따라온 그녀에게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팀장인 빈우와 사령관인 레드우드는 줄초상을 치르게 되리라.
* * *
얼마 안 있어 태스크 포스 373은 라출노그 항성계의 비밀 점프 포인터에 도착하게 되었다. 연방 중앙정보부에서 비밀리에 만든 곳인 만큼 주변의 통행은 전무하다. 특수전 사령부의 작전팀인 태스크 포스 373조차 이번에는 특례로 사용한 것이다.
-함장님, 게이트 너머는 어떻습니까?
이곳에서 통하는 게이트는 여러 가지 있지만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이 갈 곳은 디안머 게이트다. 그쪽도 군용 항로긴 하나 보안 레벨이 그리 높은 곳은 아니라 다른 부대와 마주칠 수도 있다.
-현재 디안머 게이트 쪽에 대기하는 함선은 없습니다. 뭔가 걸리시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보통 조함과 항해에 관한 일은 함장인 오르의 관할이다. 헌데 라출노그로 오기 전에 롱소드를 출격시켜 외부에서 점프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굳이 게이트 너머의 상황을 물어보니 오르도 뭔가 이상하단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낌새가 조금 수상해서 말이지요.”
-낌새가 수상하단 말씀입니까….
누군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히 자신의 감이 별로라고 한다면 오르는 그저 귓등으로 흘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정보국의 소령이고 닉스 레벨 3의 요원이라면 허투루 들을 수 없다. 닉스 레벨 3의 요원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고 극한의 전투경험을 겪은 자들이다. 이들이 낌새가 수상하다고 하면 현재의 상황이 진짜로 좆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점프를 보류할까요?
“아뇨, 예정대로 이동합시다. 샤다이 전열함을 끌고 점프 가능하겠지요?
-물론입니다. 샤다이 함선과 롱소드 2기 모두 견인 완료, 같은 관성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점프하겠습니다.
이윽고 태스크 포스 373은 라출노그 항성계에서 점프해 디안머 항성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통상공간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연방의 함선들이었다. 분명히 오르 함장의 말로는 대기하고 있는 배가 없다고 했건만 페가수스 급 강습함 세 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프 항해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설정하는 위성인 점프 포인터는 점프 시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점프 공간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함선은 물론이거니와, 근처에 있는 함선의 정보도 수집해 목적지로 전송한다.
허나 그게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저쪽이 꽤나 비밀리에 움직이는 집단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 페가수스 급들은 무장이 보강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함선 명도 없다. 단지 피아식별 신호만이 인류연방의 전투함이란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솔리드 시리즈.”
몰아봤던 경험이 있는 빈우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저 배들은 페가수스 급에 전투 기능과 순항능력을 보강한 솔리드 시리즈다. 오직 정보 사령본부에서만 쓰이는 함선이고 그중 솔리드 베타는 울토르 프로젝트에 사용되었다.
-팀장님, 혹시 이걸 말씀하셨던 겁니까?
“글쎄, 비슷합니다. 저쪽이 꽤 서둘렀군요.”
현재 솔리드 시리즈를 움직이는 조직은 보안국과 군사정보국이다. 둘 다 현재의 빈우와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곳이다.
-아군입니까?
“그렇게 보이진 않죠?”
-이거 곤란하군요.
빈우는 오르 함장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몸’은 임전 태세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아군함선이고 피아식별 신호에도 아군이라고 보이지만 저쪽은 이미 블랙 랜스를 조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그러면서 빈우가 상대방과 통신을 하려 할 때 저쪽에서 먼저 통신이 들어왔다.
-나는 보안국의 다샤 쿠사키나 국장이다.
난데없이 등장한 최종 보스에 빈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김빈우 소령을 긴급 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