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갑작스런 보안국의 출현에 태스크 포스 373은 당황했다. 보안국이란 말 그대로 군내의 보안과 기강을 담당하는 부서다. 군사기밀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거나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부서이며 그 때문에 종종 불시에 군부대를 수사하거나 감시한다.
다만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부대, 특히 태스크 포스 373 같은 특수팀은 아무리 보안국이라 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만약 수사를 하려면 작전이 종료된 다음에나 가능하고 그것도 상원이나 참모본부들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작정하고 오셨구만.”
빈우는 툴툴대며 롱소드를 몰아 블랙 랜스에 착함했다. 보안국이 규정상 이쪽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무장을 하고 쳐들어온다면 조금 곤란하다. 사고를 치더라도 그것을 감안할 만큼 눈앞의 목적을 중요하다면 얼마든지 억지를 부리는 곳이 보안국이다.
놈들은 특수전 사령부의 신임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의 정치력이 비교적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저지르는 일의 후폭풍이, 보복이 비교적 단순하리라 예상하고는 일을 저지르는 것일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쌈박한 취임 인사’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고를 친다니 이놈들도 참 대단하다 싶다.
“설마 이렇게 온다고?”
아룹은 격납고에서 자신의 무장을 점검했다. 그것은 파트리샤도 마찬가지.
일반 부대나 함선에 보안국이 무작정 들이닥쳐 용의자를 체포해 가는 것은 그쪽 18번이다.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은 특수전 사령부 소속이라 그런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들어는 본 적이 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출신들이라, 잊을 만하면 들어오는 보안국의 태클에 이를 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이제 어쩌죠.”
파트리샤가 한번 거하게 사고 칠 요량으로 아룹에게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팀장인 빈우에게서 바로 들려왔다.
-모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초대해.
팀원들 앞으로 빈우의 롱소드가 내려왔고, 뒤쪽으로는 우지의 롱소드가 착함궤도로 들어서고 있었다. 롱소드가 격납고에 고정되자 팀장인 빈우가 조종석에서 뛰쳐나왔다.
그를 보며 부팀장인 아룹이 히죽 웃으며 다가와 질문한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으신 겁니까?”
그 질문에 빈우가 멈칫하더니 곤란한 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으음, 뭐라고 할까. 떡밥을 뿌려놓긴 했는데 그거 먹으려고 이렇게 물 밖까지 솟구쳐 나올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파트리샤가 옆에 있던 공구를 집어 던졌다.
“아오, 그런 거 있음 미리미리 말 좀 해놓으라고요!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에요!”
“아악! 내가 퍼질러 놓은 게 한두 개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다 말하냐! 그리고 중요한 건 다 말했잖아. 이건 사전작업만 조금 거, 뭐시냐, 밥하려고 쌀 씻어놨는데 저쪽이 숭늉 달라고 깽판 치는 거라고.”
하긴 발 가르단 하스에서 빈우는 아룹과 파트리샤 두 사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놨었다. 그런 빈우가 말하지 않았다면 말할 이유나, 때가 아니었으니 안 한 것일 테다.
바닥에 떨어진 공구를 줍는 빈우에게 아룹이 다가가 조용히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번 사태를 전혀 예상 못 하신 겁니까?”
그 질문에 빈우가 계면쩍게 웃었다.
“뭐, 확률이 아주 낮았으니까요.”
그 말에 파트리샤는 전원이 안 들어간 진동 블레이드를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빈우는 그녀에게 삿대질을 했고, 바로 아룹의 태클이 들어가 씩씩대는 파트리샤를 격납고 바닥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은 함 내 통신으로 손님 맞이할 수작질을 준비했다. 확률이 낮다 해도 미리 예상은 했던 만큼, 준비사항을 청산유수로 나불대는 빈우의 모습에 파트리샤는 멍한 눈으로 격납고 천장을 바라보며 시발거릴 뿐이다.
준비할 시간은 잠시, 함장인 오르가 보안국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솔리드 함선중 하나가 블랙 랜스에 다가와 도킹했다. 곧이어 어벤져를 입은 보안국 요원들과 쿠사키나 국장이 블랙 랜스로 들어왔다.
호가호위라 했던가. 으스대는 게 보일 듯 말 듯 한 보안국 요원들의 움직임에 파트리샤는 혀를 찼다.
특수전 사령부의 단검뿔 토끼나 실리콘 나이트 등은 기밀작전을 하는 만큼 정보 사령본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중에서 특히 정보 사령본부 산하 부서인 군사정보국과는 합동작전이 꽤 많은 편이고, 보안국에서도 협조-를 빙자한 방해-가 심심찮게 들어오는 편이다.
다만 군사정보국은 그쪽에서 모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특수부대들이 작전을 짜거나, 아니면 한솥밥 먹으며 사선을 거니는 경우가 많아 전우란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보안국은 열심히 임무를 마치고 오면 자기네 쪽으로 별도의 보고서를 내라는 둥, 기밀 사항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며 불쑥 쳐들어와 꼬치꼬치 캐묻는 둥 뒤에서 앉아만 있다가 간섭한다는 이미지가 강해 껄끄럽게 본다.
다만 정식 수사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는 특수전 사령부 자체가 거친 면도 있거니와 부사령관이었던 조지 레드우드가 보안국의 간섭을 싫어해, 놈들이 어쭙잖게 집적거리면 거칠게 내쫓았었다. 물론 특수전 사령부 특제 마사지를 곁들여서.
하지만 이게 가능했던 것은 전임사령관 캐서린 시슬이 절묘한 정치력으로 특수부대를 필요로 하는 여러 부서들과 줄타기를 하며 보안국을 견제한 덕분이다. 예를 들어 자신들과 친한 군사정보국을 서로 애증의 관계인 보안국과의 방패막이로 쓴다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보안국을 어떻게든 트집 잡으려 안달이 난 연방 검찰청에 귀띔을 넣는다던가.
하지만 든든한 방패막이였던 시슬이 사라진 지금은 그것도 힘들다. 레드우드 사령관이 제아무리 맹장이라 해도 직접 총과 칼을 쓰는 전쟁이 아닌 이런 정치싸움에선, 몸통은 치지 못하고 기껏해야 피부와 깃털에만 피해를 줄 뿐이다. 이런 싸움에선 웃는 얼굴을 하고 상대방의 내장을 빨아먹을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런 인재가 태스크 포스 373엔 아주 드물다.
물론 드물 뿐이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바로 그 드문 인재인 빈우는 팀원들을 거느리고 격납고에서 보안국을 맞이했다. 그리고 보안국의 장갑 보병들이 거친 몸짓으로 걸어와 빈우의 앞에 섰고, 그 뒤로 보안국의 국장인 다샤 쿠사키나 국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작정하셨네?’
빈우의 생각대로 보안국은 작정을 하고 왔다. 태스크 포스 373이 작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무장을 한 보안국 함대가 수사를 명목으로 쳐들어온 것은, 뒷생각을 하지 않는 위험한 강수다.
물론 태스크 포스 373이 이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작전 중이니 나중에 오시오, 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허나 국장인 다샤 쿠사키나가 직접 왔다는 것은 부서빨, 계급빨로 눌러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만약 거절하면 무력으로라도 제압하려 들 것이고, 그것을 감수할 정도의 목적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이다.
“김빈우 소령. 자네를 긴급체포한다.”
빈우의 앞에서 다샤 국장이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오스카 스테이션의 설욕을 갚으려는 것인지 그녀의 눈에선 차가운 불꽃이 튀고 있었다.
“혐의가 뭔데요?”
빈우의 질문에 불꽃이 더 거세진다. 한쪽 눈썹을 한껏 치켜세운 다샤 국장은 격납고 안의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장갑복을 벗은 비무장 상태로 보안국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듣는 귀가 많군. 기밀이라 말해 줄 수 없어.”
“왜요? 그렇다면 나를 체포하는 근거는요? 나는 지금 작전 중인데요?”
다샤 국장은 빈우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더니 비웃으며 대답했다.
“현재 연방의 안보에 중차대한 위기가 있기에 부득이하게 귀관을 체포하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아아, 거기까지. 오케이.”
빈우가 갑자기 다샤 국장의 말을 끊고 신호를 내리자마자,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이 손을 머리 위로 깍지 낀 다음 주섬주섬 무릎을 꿇었다. 이 행동에 보안국 요원들이 어리둥절해 할 때 빈우가 냅다 질렀다. 바로 앞에 있던 장갑 보병의 흉부 장갑에 거세게 박치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서 피를 뿌리며 뒤로 나뒹굴었다.
“자네 지금 뭘-”
다샤 국장이 소리치려 할 때, 그 소리를 가르는 비명이 있었다.
“김 팀장님!”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 아나스타샤와 함께 격납고를 들어오자마자 본 것은 아군 장갑보병들에게 무장해제당한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과 막 얼굴을 얻어맞고 뒤로 넘어지는 김빈우였다.
“당신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상원의원의 고함에 보안국 요원들이, 다샤 국장이 얼어붙었다.
‘어째서 오다 상원의원이 여기에!’
다샤 국장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분명히 오다 상원의원은 특수전 사령부에 남아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이번 작전을 강행한 것이다. 애초에 상원의원이 이 배에 있었다면 이런 위험한 행동은 하질 않았다. 정신을 추스른 다샤 국장이 서둘러 나섰다.
“의원님, 제가 설명을-”
“의원님! 조심하십시오! 이 녀석들, 보안국입니다.”
다샤 국장이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 할 때 빈우가 헉헉대며 그 말을 끊었다. 그리고 쿨럭이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게 누가 보면 뭇매라도 맞은 것 같다.
그제서야 다샤 국장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빈우에게 낚였다는 것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다 의원님. 저희 보안국은 김빈우 소령에게-”
하지만 오다 의원은 다샤 국장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현재 태스크 포스 373의 모든 인원은 상원 특별감사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선행조사원이고요. 지금 보안국은 상원이 하는 일에 재를 뿌리는 겁니까?”
다샤 국장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원의원의 눈빛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의원님과는 다른 혐의로 움직이는 겁니다.”
“그건 제가 판단합니다. 자료를 모두 저에게 넘기세요.”
불쑥 내미는 오다 의원의 손바닥을 보고 다샤 국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보안국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결국은 군의 하위부서, 상원에서 나서면 박살난다. 덧붙이자면 상원 내부에서도 보안국을 한번 손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파벌들이 차고 넘친다. 오늘의 일이 알려진다면 반대하는 파벌끼리라도 결혼을 하고 덤벼들 것이다.
다샤 국장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송구합니다만 보안국의 기밀 자료입니다. 그렇게 함부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김빈우 소령과 관련이 있는 자료지요? 말했다시피 저는 태스크 포스 373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김 소령에 대한 자료를 내놓으세요.”
대답이 궁해진 다샤 국장이 구석에 몰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오다 의원은 자신의 뒤에서 난 비명을 들었다. 아나스타샤의 비명소리다. 오다 의원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지금까지 자신을 정성껏 돌봐주었던 안드로이드 메이드가 장갑 보병의 발치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 누구 앞에서….”
보안국 장갑 보병은 제풀에 비명을 지르고 바닥으로 넘어진 안드로이드 메이드를 보고 황당해하고 있다가 노기 어린 상원의원과 눈을 마주치고는, 아이고, 말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다 의원은 다시 다샤 국장을 돌아보더니 뺨을 후려쳤다. 짝하는 소리가 격납고 안을 울려 퍼졌다. 그걸 본 보안국 요원 중 한 명이 충성심에, 그리고 반사적으로 움찔하면서 총을 들려다 멈췄다. 재수 없게도.
하지만 그걸 본 빈우가 놓치지 않고 비명을 질렀다.
“저저, 저 새끼 봐라! 보안국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스크 포스 373의 대원들이 행동을 시작했다. 맨몸으로 일어서더니 장갑 보병들의 무장을 빼앗아 겨눈 것이다.
“움직이지 마! 이 반란군 새끼들아!”
“옳거니, 이 새끼들! 상원의원님을 납치하려고 수작을 부렸구나!”
“의원님을 지켜! 꼼짝 마!”
고함을 지르며 덤비는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에게 보안국은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미 특별감사의 임무를 띤 상원의원이 373쪽에 있다는 사실에서 게임은 끝났다.
“저항하지 마! 저항하지 말랬지.”
커다란 외침에 오다 의원이 돌아보자 거기엔 아룹이 저항하는 장갑 보병과 힘겹게 몸싸움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자 보안국 장갑 보병은 순순히 끌려갔다.
하지만 그 보안국 요원은 정말 억울했다. 그렇다고 자신은 맨몸의 아룹에게 순전히 힘으로 휘둘리고 있었다, 라고 변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나스탸사, 괜찮니?”
오다 의원이 안드로이드 메이드를 부축하자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주인을 걱정했다.
“전 괜찮아요. 그냥 넘어진 것뿐이에요. 그보다 주인님을 봐주세요.”
그제야 오다 의원은 빈우가 보안국 요원에게 얻어맞고 쓰러진 것이 생각났다. 그녀가 서둘러 빈우에게 달려가자 그는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금세 상처가 아무는 강화 군인의 얼굴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는 것을 보니 보안국이 작정하고 린치를 가한 모양이다.
오다 의원이 보기에 빈우는 엄청난 실력을 지닌 군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항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는 것은 보안국이 부당한 권력으로 묶어놓고 폭력을 가한 게 틀림이 없었다. 보안국이 성과는 훌륭히 내지만 그 뒤로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도 익히 들었던 터라 히토미는 이를 악물었다.
“김 팀장, 괜찮은가요?”
상원의원이 손수건을 꺼내 군인의 상처에 대자 그는 오히려 히토미를 걱정했다.
“의원님은 괜찮으십니까? 저들이 해코지를 하진 않았습니까?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걱정 마세요. 저들은 저한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빈우는 안심한 듯 싱긋 웃더니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의원님, 지금 보안국에 시간을 줘선 안 됩니다. 저들이 증거를 인멸하기 전에 뭣 때문에 이런 짓을 했는지 빨리 밝혀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팀장님.”
일어선 오다 의원은 옷매무새를 한 번 가다듬더니 보안국 국장을 차갑게 노려봤다.
“다샤 국장. 저를 따라오세요.”
사냥을 하러 왔다가 졸지에 사냥당하게 생긴 다샤 국장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다 의원의 뒤를 따랐다. 빈우는 가볍고도 경쾌한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