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이케가미 소이치로, 연방의 상원의장이자 울토르 프로젝트의 지휘자다. 그가 지금 빈우의 앞에서 걷고 있다. 두 사람이 걷고 있는 동굴 속은 고온의 플라스마가 넘실대며 인간들을 집어삼키려 한다.
“어딜 그리 가십니까?”
뒤따르던 빈우의 말에 이케가미 의장이 멈칫한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걸어가며 대답했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거지. 내가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위험합니다. 그만두십시오.”
그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아는 빈우는 만류해보았지만, 일생의 목적을 눈앞에 눈 이케가미 상원의장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내 예전에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자네들만 있으면 연방은 안심이라고.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이전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네. 근데 말일세, 그 길이 틀렸다지 뭔가.”
빈우는 그 길이 왜 틀렸는지 모른다. 이케가미 상원의장과 같이 찾았던 길인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틀렸다고 멈춰 설 순 없지 않나. 어서 바른길을 찾아가야지, 안 그런가?”
이케가미 의원은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리고 플라스마도 더욱 가까이 그들을 감싼다.
빈우가 품을 뒤져 계란 밥을 하나 꺼내 들고는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그럼 이거라도 잡숫고 가십시오.”
하지만 이것도 이케가미 의장의 발걸음을 잠시 멈춘 게 고작이다. 잠시 시간 벌이만 되었을 뿐,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고맙네만 딸아이가 살 좀 빼라고 성화여서 말이지. 자네는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네.”
건강이란 말에 빈우는 기가 찬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 건강은 무슨 놈의 건강이란 말인가.
“곧 죽을 텐데도 말입니까?”
“허허, 사람 앞길은 모르는 법이지. 설령 길 끝에 뭐가 있을지 안다 해도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안단 말인가.”
“도대체 그 길의 끝에 뭐가 있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의장님은 뭘 하시려는 겁니까?”
그제야 바삐 걷던 이케가미 의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은 다 불타 녹아내리고 고강도 합금 두개골만이 남아 달각거리고 있다.
“자네는 무얼 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빈우는 대답이 궁해졌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머뭇거리던 빈우에게 해골이 재차 묻는다.
“자네에겐 사명이 있지 않나.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더 큰 사명이. 자네는 그 길을 어찌 가려는가? 아니, 갈 길이 이리도 먼데 자넨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겐가?”
“개꿈을 꾸고 있지요.”
눈을 뜬 빈우는 목표물이 도착했다는 알람을 끄고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연방 표준시 2218년 1월 26일 오전 04시 28분. 모든 회선은 정상 작동 중, 지금 그가 보고 있는 화면들은 부뉴엘 가의 식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현지시각으론 오후 6시 08분으로 저녁 식사 시간이다. 빈우는 알람이 뜬 화면에서 목표물을 찾았다.
목표물인 프란시스코 부뉴엘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그는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가족들과 간단한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다지 중요한 얘기들은 없었다. 가내수공업에 관한 대화가 이어질 뿐이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장남 간의 대화가 점차 거칠어진다.
-아버지는 잘못하고 계신 거예요.
연방에 유학 갔었던 청년, 미겔 부뉴엘이 식탁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한다. 흔히 보이는 개척지의 열성적인 청년이다.
-잘못? 회사를 키우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잘못이란 말이냐!
아버지인 프란시스코가 아들을 꾸짖는다. 빈우는 먹다 남은 계란밥 맛 에너지바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다른 화면들도 한 번 훑어봤다.
바로 옆에 앉은 딸 레오노르는 싸움을 외면한 채 식사에만 열중한다. 아빠와 오빠의 싸움에는 관심 없는 척하지만 둘의 싸움에 신경이 쓰여 제대로 식사를 못 하고 있다.
-두 사람 다 그만 하세요. 하비에르가 들어요.
프란시스코의 아내인 신디 부뉴엘이 다투는 부자를 조용히 타이르며 막내아들인 하비에르 부뉴엘에게 숟가락을 내민다. 하비에르는 턱받이에 이유식을 절반쯤 흘리면서도 열심히 받아먹는다.
-키우고, 먹여 살리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요.
약간 목소리가 낮아진 미겔이 투덜대며 의자에 앉았다.
반면 프란시스코는 숟가락을 탁자에 거세게 내려놓으며, 그만큼 거칠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외쳤다.
-잘못이라고? 밖에 나가봐라. 돔 밖으로 나가봐라. 해가 지면 얼어 죽는 이 땅에서, 연방이 버린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온 아비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냐!
-그래도 그건 범죄라구요.
다시 부자 사이의 싸움이 재개될 조짐이 보이자 신디가 다시금 말리려 일어섰다. 하지만 배고픈 막내아들이 그녀의 손을 잡는 바람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부자의 목소리가 점차 거칠어지자 레오노르는 시선을 접시에만 고정시켰고, 하비에르는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엄마인 신디가 어르고 달래보지만, 막내아들은 자신의 코앞에 다가온 숟가락보다는 아빠와 형의 커다란 고함이 더 신경 쓰였다.
형은 놀아주는 방법은 몰랐지만 언제나 자기와 놀아주려고 노력했었다. 아빠는 여러 가지 장난으로 자기를 기쁘게 만들어 주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은 적었다. 그런 두 성인 남자의 싸움을 보던 하비에르는 옆에 있던 누나가 울먹이는 게 보이자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고 히죽 웃었다. 그러면 누나는 언제든 깔깔 웃어주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시무룩한 하비에르의 문득 코끝에서 고소한 향기를 느끼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들어온 숟가락을 오물오물 깨문다. 그러면서 입은 숟갈을 물고, 눈은 계속 아빠와 형 쪽으로 향했다.
그때 아빠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아저씨의 손에는 ‘지지’가 들려있었다. ‘지지’는 하비에르가 가장 궁금해하는, 형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는데 한번은 운 좋게 형의 침대 위에 놓여있던 ‘지지’를 잡았을 땐 큰 난리가 났었다. 언제나 장난감을 양보했던 형이 우악스럽게 ‘지지를 뺏어가자 하비에르는 놀랍고 서러워서 울었다.
하지만 엄마도 누나도 그 장난감을 ‘지지’라고 하며 절대 못 만지게 했고, 그날 형은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났었다.
그런 ‘지지’가 처음 보는 아저씨의 손에 들려있단 사실은 하이베르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동그래진 하비에르의 눈에는 사라진 가족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지지, 지지.”
다가온 아저씨가 지지를 들지 않은 손으로 하비에르의 눈을 가렸다.
신난다.
“까꿍.”
하비에르는 처음 보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까꿍 놀이를 했다. 눈을 가린 아저씨의 손을 잡고 얼굴을 바깥으로 내밀며 히죽 웃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웃지 않았다. 지금까진 누구나 다 웃었지만 이 아저씨는 웃지 않았다.
이럴 때 해결책을 알고 있는 하비에르는 크게 방긋 웃었다. 그러면 엄마도 아빠도, 형도, 누나도 모두 굳은 얼굴을 풀고 웃어주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웃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아기 앞에선 빈우는 다시 총을 아이의 이마에 겨눴다. 그답지 않은 일이다. 겨누고 바로 쏜다. 목표물 앞에서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지, 지지.”
혀 짧은소리를 내며 총을 만지려는 아기, 하비에르 앞에서 빈우는 총을 치웠다.
이 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이마에 구멍이 나 죽은 어머니처럼 마약을 만들지도 않았다.
형처럼 청부살인업자도 아니었다.
누나처럼 해커도 아니었다.
어깨에 총을 맞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아버지처럼 마약을 팔지도 않았다.
굳이 있다면 죄로 번 돈으로 먹고살았다는 것이다.
그때 프란시스코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는 빈우를 향해 소리쳤다.
“누, 누구야! 뭐 하는 새끼야!”
빈우는 피투성이가 된 그에게 다가가 총에 뚫린 어깨를 꾸욱 짓밟았다. 격통이 달리자 프란시스코가 거센 비명을 질렀다. 숨이 찬 그가 더 이상 소리치지 못하게 되자 빈우는 발을 치웠고, 아빠의 고통에 찬 외마디에 막내아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아아-.”
“하비에르, 하비에르!”
아들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든 하비에르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가 보게 된 것은 머리가 박살 난 아내와 아들과 딸의 시신들이었다. 오직 막내만이 살아남아 의자에서 울고 있을 뿐이다.
“너, 왜, 어디서 보낸 거야.”
상처 난 왼쪽 어깨를 부여잡은 프란시스코의 말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아들을 어디서 치료했는지 말해.”
“무, 무슨 소리냐.”
프란시스코는 답을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챈 빈우는 허리를 숙여 상처가 없는 프란시스코의 오른 어깨에 자신의 왼손 집게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쑤셔 박아 건 다음 마약상을 들어 올렸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아비의 비명소리로 덮자 빈우의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이어 손가락을 구부리자 쇄골이 부서지며 프란시스코의 입에서 비명과 거품이 더욱 토해진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프란시스코는 양손을 쓰지 못하고 바닥에서 버둥댈 뿐이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 그는 정신적인 충격에 경악했다.
‘반응 속도와 완력. 틀림없다. 이 자는 군인이다. 연방의 군용인간이다.’
연방의 군인이 자치 행성에 와서 민간인을 죽인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프란시스코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자기 집의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 ‘결코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리란 것을.
“대답해.”
지금 부뉴엘 가의 식당에선 아기의 울음, 아버지의 신음, 불청객의 다그침으로 이뤄진 삼중주가 연주되고 있다. 그리고 지휘자의 피 묻은 손가락이 울음소리를 가리켰다.
“어디서 치료했지?”
아내와 아들과 딸을 잃은 프란시스코 부뉴엘은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오직 고통만 줄 뿐이다. 이번에 그는 걷어차인다. 몸속에서 갈비뼈가 부러지며 섬뜩한 소리를 낸다. 다시금 비명을 지른 프란시스코는 급하게 애원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말하면 살려주실 거죠?”
가장의 부탁에 빈우는 최대한 자비로운 해결책을 내려주었다.
“아들은 고통 없이 바로 죽여주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던 프란시스코가 소리치려 할 때, 빈우가 낮게 소리쳐 끊었다.
“버텨봐, 내일이면 네 아들놈은 경쟁업체에 넘어가서 촬영회를 할 거다. 데뷔작이 은퇴작이 되려나?”
이 바닥에서 부뉴엘 가의 경쟁업체랄 수 있는 것은 없다. 굳이 꼽자면 프랑코 가 정도. 하지만 그쪽은 스너프 필름을 찍는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프란시스코는 피와 눈물 그리고 침과 오줌을 흘리며 애원했다. 아들은 거기서 피만 빼고 흘리고 있다. 하지만 빈우에게선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말해.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하비에르 부뉴엘을 어디서, 어떻게 고쳤지?”
어차피 빈우는 하비에르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워프 비스트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하비에르 부뉴엘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대장님. 정말 아기를 죽이실 겁니까?
갑작스레 들어온 통신이 빈우에게 짜증을 일으킨다.
“그러면 네가 할 테냐.”
차갑고 흉포한 목소리에 대답은 없다. 식당에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다. 아버지의 흐느낌이 들릴 뿐이다.
“하비에르, 하비에르, 괜찮다. 괜찮아. 아빠가 있지? 응, 그래. 울지마, 울지마라, 하비에르. 곧 괜찮아질 거야.”
아버지는 열심히 아들을 달래려 한다. 둘의 앞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시스코는 헛된 희망을 찾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정말 자신의 앞길을 모르는 것일까? 빈우가 가르쳐 줘야 하나?
-대장님, 아기는 치료가 되었지 않습니까. 굳이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빈우는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가 주눅 든 목소리로 애원하자, 슬슬 분노가 치밀었다.
“닥쳐.”
놀란 프란시스코가 입을 다물었다. 하비에르도 울음을 멈추고 딸꾹거리기만 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하비에르 부뉴엘을 어디서, 어떻게 고쳤지?”
프란시스코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들을 죽게 하리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답해야 한다. 아들을 위해서.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프란시스코는 빈우가 만들어 놓은 길 안에서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마약상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빈우는 그를 먼저 보내주었다.
하비에르의 눈엔 아저씨가 ‘지지’를 들었고 아빠가 잠자는 게 보였다. 그리고 ‘지지’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장님.
다시금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 빈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찰리하나팔. 경찰에 연락해.”
그리고 빈우는 총을 바닥에 버렸다.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가스압 발사식 권총. 지문은 프랑코 가에서 주로 쓰는 히트맨의 것으로 위조되어있다. 오늘 부뉴엘 가에서 있었던 일은 경쟁업체인 프랑코 가에서 벌인 일 정도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빈우는 다시 울려 퍼지는 하비에르의 울음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섰다.
‘내 앞길에는 뭐가 있으려나.’
눈 앞에는 석양에 푸르게 달아오른 돔의 표면이 보인다. 빈우는 돔의 출구로 향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마카로니의 마리 라캉과 자크 라캉. 리처드 허드슨과 엘리자베트 허드슨. 오늘 부뉴엘 가. 이 세 가족은 모두 워프 비스트와 관련이 있다. 정확히는 워프 비스트화 되는 것의 치료다. 하비에르 부뉴엘은 치료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 아기에게선 워프 비스트의 흔적은 전혀 없었고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였다. 엘리자베트 역시 치료되었다고 했지만, 아직 곳곳에 워프 비스트의 흔적이 있었다.
‘자크 라캉, 엘리자베트 허드슨, 응우옌 반쭝, 하비에르 부뉴엘.’
리처드의 집에서 찾았던 자료 중 치료 대기자 목록에는 자크 라캉과 하비에르 부뉴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자크 라캉의 로봇 육체는 그 치료의 일환이었을까? 워프 비스트화 된 몸을 버리고 뇌 이식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자크 라캉이라 불렸던 건 뇌도, 두뇌 칩도 없는 단순한 로봇이었다.
아직 수수께끼는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좀 더 자료를 모을 뿐이다. 그 자료의 대가는 무엇일까. 빈우는 알고 있지만 굳이 더 떠올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