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이노우에 고토는 다시 한번 보고서를 검토해 보았다. 사흘 전 우연히 조우했던 위은쓸납학의 세대 우주선과 그 탑승자들에 대한 보고서다.
당시 이노우에 국장이 직접 지휘했던 군사정보국과 그들의 조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지만 고토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달리 적혀 있었다. 군사정보국이 삼백여 년 전 모성을 떠나 우주를 떠돌며 식민지를 건설했던 위은쓸납학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미연에 알고 행동에 나선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위은쓸납학은 이미 연방에 의해 멸망한 종족이라 위험도는 낮지만 유전조작을 하지 않은 품종들이어서 삼백 년 전과 상태가 같기에 생물학적 가치는 좀 있었다. 예를 들어 쉬바 생산용이라던가. 그나저나 삼백 년 동안이나 통상항해를 하며 다른 종족을 만나보지 못했다니 운이 좋았던 걸까, 나빴던 걸까, 하며 고토는 피식 웃었다.
“음음, 이 정도면 되겠지?”
고토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서류를 닫았다. 이 핑계라면 국장인 자신이 직접 움직인 것에 대한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한 건 마무리한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화면을 전환했다.
“문제는 이거란 말이지.”
화면을 보는 정보국 국장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날카로워진다. 이번에 위은쓸납학에 왔던 진짜 이유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폐허 속에 보이는 연방군용 탈출 포드의 파편들이었다. 그것도 솔리드 베타, 울토르 중대에서 쓰였던 물건이다. 사용기록은 철저하게 지워져 있는 데다 파편뿐이어서 언제 쓰였는지는 알기 힘들다. 이것만으론.
울토르 중대는 2217년 7월 11일 위은쓸납학 항성계에서 잔당 토벌전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롱소드와 그라디우스는 소행성대의 위은쓸납학 해적들을 찾아 모두 출격한 상태였는데 마침 낙오된 놈들의 함선 하나를 발견했었다. 마땅한 병력투사수단이 없었던 클론들은 두뇌 통신회의로 탈출 포드를 사용해서 적함으로 침투하는 방법을 썼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 탈출 포드는 그때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 엉뚱하게 위은쓸납학의 모성에서 발견되었으니 의심이 간다.
‘과연 여기에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울토르 중대의 지휘관이었던 김빈우 소령은 2216년 6월 8일 포말하우트 점프 게이트 안에서 샤다이, 리퍼에게 습격당했다. 그날 육성 중이던 예비대를 제외한 클론 중대원들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지휘관인 빈우 또한 전사했다. 그러나 2217년 12월 27일 마카로니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빈우가 사실은 클론으로 위장해 정체를 감추고 있었고, 습격 당시의 기록은 트리니티 패턴으로 묶어 자신의 머릿속에 심어놨다는 것이다.
‘수상하지.’
왜 빈우는 아군으로부터까지 정체를 감췄어야 했을까. 도대체 그가 가진 정보가 무엇이기에 그런 방식까지 써가며 정보를 숨겼어야 했을까. 아마 그날 샤다이와 접촉하면서 무언가 치명적인 정보를 알아낸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것이 저절로 풀릴 때까지 멍하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군사정보국은 바깥에서 자기 나름대로 조사를 해야 한다.
아쉬운 것은 그날의 습격 이후로 울토르 중대는 군사정보국의 손을 떠나 여러 부서를 전전하며 소방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빈우가 클론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시기의 일은 보고서 형식으로 전달만 받았을 뿐,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토는 울토르 중대의 과거 행적 중에서 의심 가는 곳부터 차근차근 뒤밟는 중이다.
그중 한곳이 바로 여기 위은쓸납학 모성이었다. 또한 이 죽음의 행성은 과거 이노우에 고토와 김빈우가 닉스 레벨 3의 시험을 치르며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
‘그때는 꽤 열혈한이었단 말씀이야.’
처음 만났을 때의 빈우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면 바로 폭발해 맞서는 성격이었다. 망설임 없이, 후회 없이. 고토는 빈우의 성장기 시절 어떤 사건이 그런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막연하게 추측했다.
하지만 군사정보국에 들어와서 빈우는 많이 바뀌었다. 성격은 둘째 치고서라도 사물과 사건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불가능한 역경에 마주치면 일단은 뒤로 빠져 관찰한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않고 목표의 약점을 파악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이 유리해질 시기를 기다리거나, 안 오면 만든다. 아마 이번에 발견한 탈출용 포드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는 클론으로 위장한 상태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마치 라캉 중령 같군.’
보안국의 피에르 라캉 중령은 이런 시나리오를 짜는데 전문가였다. 그는 사건의 역학관계를 치밀하게 계산해 자신이 설계한 계획이 마치 도미노처럼 흘러가도록 했다.
‘그런데 탈출 포드는 왜 파괴되었지? 증거인멸이라고 생각하기엔 허술하고. 설마 누가 이미 가로챘나? 아니면 협조자가 있었나? 포드에 데이터가 들었을까, 아니면 명령이 주입된 클론이 들었을까? 흐음, 클론이라….’
빈우가 늘 전선에서 싸웠기에 사람들은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클론 부대의 지휘관이 될 만큼 그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대단히 능통하다는 점이다. 별다른 테스트 없이 인간과 위장된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공지능의 상태마저 판별해 낸다. 빈우라면 클론을 만드는 것은 무리라도 이미 생성된 개체를 세뇌해 자신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증거가 부족해. 퍼즐 조각이 모자라.’
마치 고생대 생물의 화석을 발견하는 것 같다. 단편적인 부위 하나하나를 모아 대상을 완성한다.
‘아니 아니, 차라리 그림 없이 투명 아크릴로 만든 직소 퍼즐 같군.’
증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조작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그것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누가 왜, 어떻게 조작했는가 하는 식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다만 사람이 실수하는 게 골치 아프다. 손가락뼈를 발가락뼈로 착각한다던가, 송곳니를 발톱으로 착각한다던가. 혹은 투명 아크릴 조각이 앞뒤가 바뀐다던가.
‘하지만 김 소령의 행동이 꽤 혼란스럽군. 뒤로 빠지는 것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하고 어느 쪽이지? 뭐, 트리니티의 부작용으로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빈우를 쫓는 입장인 이노우에 고토는 그의 사고를 최대한 예상해 앞으로의 행동을 유추할 계획이었다. 헌데 마카로니에서 부상한 빈우는 무언가 뒤섞여 있었다. 친구인 마커스와 보호자였던 안드로이드는 빈우 본인이 맞다고 했지만, 고토가 보기엔 자신의 부하는 정보국 이전과 이후의 모습들이 혼재된 성향을 보였다. 그래서 빈우의 행동을 특정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런 복잡한 고토의 생각을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끊었다.
“아, 타이 차장. 무슨 일인가?”
마커스 타이 소령은 빈우의 사관학교 동기이자 고토의 우수한 부하다. 헌데 지금 그의 얼굴이 꽤 굳어 있었다. 노크도 없이 급히 방에 들어온 것을 보면 그만큼 중대한 사안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다샤 국장이 작전 중이던 태스크 포스 373을 강제수사하려 했답니다.”
“뭣이? 끄응….”
이노우에 국장은 머리를 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으로 뿌린 대로 거두리라, 란 말이 떠오른다. 물론 뿌린 사람은 이노우에 고토, 자기 자신이다.
‘뒷감당을 어쩌려고 그러나. 안 그래도 레드우드 사령관이 칼춤을 추면서 벼르던데.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당했던 게 컸나. 살짝 밀었기로서니 이렇게 훅 나갈 줄이야.’
다샤 국장은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감시 대상이던 피에르 라캉 중령을 잃었고, 그를 감시하던 안드로이드들을 빈우에게 빼앗겼다. 물론 빈우가 나중에 시신과 안드로이드들을 돌려주긴 했지만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는 정체조차 모른 채 물 건너갔다.
그날 다샤 쿠사키나 국장은 군사정보국에 쳐들어와 한판 뒤집어엎었었다. 부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면서 고토를 마구 쏘아붙였는데 그녀답지 않게 이성을 잃은 모습이 뭔가 수상했다.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활동 범위가 각자 전쟁 중인 외계종족과 아군 조직 내부로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평상시엔 보안국이 군사정보국을 감시하고 수사한다. 보안국의 내부수사가 필요할 땐 보통 군사정보국에서 인원이 파견 나가기 때문에 둘 사이의 분위기는 굉장히 살벌하다. 반면 활동영역이 겹치는 회색지대에선 어쩔 수 없이 둘이서 찰떡같이 협력해야 하는, 애증의 관계가 된다.
그래서 그날 고토는 왜 그리 흥분하냐며 그 이유를 넌지시 물어봤었다. 그런데 다샤 국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찾고 있던 것, 흥분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뒤에서라도 찔러보지 않으면 이노우에 고토가 아니다.
보안국장이 감췄던 것이 못내 궁금했던 정보국장은 며칠 뒤, 짭짤한 정보 몇 가지를 다샤 국장에게 던져주었다.
바로 빈우가 가진 명령서 중 보안국에 치명적인 것들은 이쪽에서 무효화 했다는 것과 빈우의 행동 중에서 트집잡힐 만한 것 몇 가지를 콕 집으며, 이에 관해선 군사정보국에서 뒤를 봐주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으로 마음을 풀라면서 덧붙이며.
물론 고토는 부하를 팔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한들 보안국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빈우에게 조심스레 치근덕거릴 것이고, 빈우 또한 별로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안국이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덤으로 빈우의 트리니티 패턴에도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즉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 이란 식으로 다샤 국장을 자극했던 것인데 태스크 포스 373 같은 특수전 사령부의 작전팀에 강제수사를 할 줄이야. 너무 갔다. 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좀 세게 나가는데, 숨기고 있는 게 심각한 것인가?”
“좀 세게 나간 정도가 아닙니다.”
마커스의 말에 고토가 움찔한다.
“본인이 직접 솔리드 시리즈를 끌고 나서서 김 소령을 긴급체포하려 했답니다.”
세상이 아찔해진 이노우에 고토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미친년.”
보안국이 정보국의 파견 요원, 그것도 특수전 사령부의 작전 중인 팀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했다니. 이건 많이 나간 수준이 아니라 막 나간 것 아닌가. 한술 더 떠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은 발 가르단 하스 건으로 상원의 특별감사가 나가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숟가락을 얹으면 결코 좋은 꼴을 못 볼 텐데 보안국이 그 짓거리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마커스의 표정을 보니 아직 끝난 게 아닌 듯싶다.
“문제는 당시 태스크 포스 373에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도 있었다는 겁니다.”
“무엇이 어째!”
경악한 이노우에가 의자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태스크 포스 373의 조사원으로 나간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은 분명 현재 특수전 사령부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래야 하는 게 상식적이고 실제로 들어온 정보도 그렇다.
“오다 의원이 태스크 포스 373과 같이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네.”
이노우에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백 퍼센트 빈우의 계략이다. 물론 빈우는 이렇게 급하게는 안 짠다. 밑밥만 슬슬 뿌렸겠지.
문제는 여기서 자신의 계략과 빈우의 계략이 시너지를 일으켰단 것이다. 자기는 자기대로 다샤 국장을 자극했고, 빈우는 또 녀석대로 떡밥을 뿌렸던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 되자 리스크와 리턴을 저울질하던 다샤 국장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 다소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행동에 나서고 만 것이다.
“이거 곤란한데.”
보안국이 이렇게 먼저 돌출행동을 하면 곤란하다. 이웃집이 시끄러우면 이쪽도 눈치가 보인다. 게다가 지금 이노우에 국장이 직접 조사하고 있는 사건은 울토르 프로젝트다. 보안국도 깊게 연관된 건이라 주변의 시선이 모이면 앞으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생긴다.
“일단 서둘러 돌아가야겠군. 빨리 김 팀장에게 연락해야겠어.”
빈우도 태스크 포스 373의 일원이기에 상원의원의 조사를 받는 입장이다. 그리고 다샤 국장의 강압적인 수사를 받은 터라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단 급한 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꺼야 했다.
“참, 탈출 포드의 조사 말입니다만.”
“오, 어떻던가?”
원래 가야 할 곳의 정반대 방향으로 날아온 울토르 중대의 탈출 포드. 마커스는 그것에 대한 세부조사를 지휘하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고 고토에게 온 참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의 것이라 쓸 만한 정보를 찾기가 힘듭니다.”
고토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기에 실망도 하지 않았다. 반년 전에 파괴되어 방치된 잔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자세한 조사는 나중에 더하기로 하고 일단은 귀환하도록 하세나. 그리고 타이 차장, 돌아가면 김 팀장에게 연락 좀 넣어주게. 다샤 국장과 보안국의 건을 되도록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이야.”
“김 팀장이 말입니까? 그쪽도 지금 탈탈 털리고 있을 텐데요? 차라리 생쥐 보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라고 하시죠.”
오다 의원과 빈우 간의 내막을 모르는 군사정보국 쪽으로선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생쥐는 살기 위해 방울을 달아야 하지.”
국장의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마커스는 곧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