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작전이 끝나면 보고서를 써야 한다. 이번에 쓸 보고서 내용은 굉장할 게 분명했다. 여러 의미로. 하지만 그 보고서를 쓸 사람은 빈우가 아니었다.
“말씀 안 하실 겁니까?”
블랙 랜스 안의 회의실에선 세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다.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하는 사람은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다.
“….”
맞은편에서 차가운 얼굴로 침묵하는 사람은 다샤 쿠사키나 보안국장.
‘뭐 차가운 거라도 시킬까?’
중간에서 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김빈우. 분명 이 장소의 주인은 빈우이지만 현재 주도권은 오다 의원에게 가 있다. 그리고 그 오다 의원에게 심문당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연방의 군인들이라면 설설 길 보안국의 수장인 다샤 쿠사키나 준장이다.
천하의 보안국장이 쩔쩔매는 희귀한 광경을 구경하던 빈우의 머릿속으로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빈우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태스크 포스 373이 특수전 사령부로 귀환할 때 간단한 보고를 들었던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은 친히 나와서 자신의 직속팀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가 만나고자 한 상대는 바로 보안국이란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음, 김 팀장. 정말 수고했네.”
그때 레드우드는 바로 앞의 빈우는 안중에도 없고, 샤다이의 전열함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오로지 뒤에 있던 다샤 국장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은 결코 레드우드답지 않은, 티 없이 해맑은 웃음이었다.
사람이 미치면 헤까닥 도는 게 있는데 지금 레드우드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걸리면 장조림으로 만들겠다고 취임연설 때 말한 지가 한 달도 채 안 되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아이고, 부팀장! 저 양반 잡아요!”
식겁한 빈우가 소리치자 아룹과 파트리샤가 재빨리 달려나가 레드우드 사령관을 붙잡고 얽어맨다.
“놔, 놔라. 아무 짓도 안 해. 말만, 말만 좀 하자.”
하지만 웃는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흉악하게 으르렁대고 있으니 그의 성질머리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는 두 사람은 중장을 숫제 깔아뭉갤 양으로 밀어붙였다.
“야야야, 위르겐, 길 터라! 튀자.”
그 사이 빈우는 쿠사키나 국장을 공주님 안기로 들고 블랙 랜스를 향해 도로 도망쳤다. 그 앞으론 위르겐이 달리며 가로막는 건 모조리 후려치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미친 짓입니까아.”
위르겐은 달려드는 아군들을 뭐 씹은 표정으로 맞이하며 드잡이질을 했다. 어차피 다들 한솥밥 먹은 특수전 사령부의 사람들인데 윗선끼리의 시비에 이 웃긴 짓을 해야 한다니 영 내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저쪽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보안국하면 눈엣가시인데 사령관의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벼르던 게 터진 셈이다.
“위르겐 이 새끼야, 너 언제부터 보안국 편들었냐.”
저번 부대에 있던 중위가 위르겐의 팔을 잡고 늘어지자 그의 얼굴에 바로 팔꿈치가 작렬한다.
“까 잡수세요. 누군 좋아서 이런답니까.”
아무튼 놔라, 못 놓겠다. 저놈 잡아라, 잡아봐라 십새야.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태스크 포스 373은 다시 블랙 랜스 안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다행히 레드우드 사령관은 이 이상은 하지 않을 셈인 것 같았다.
“보안국은 무슨 혐의로 김빈우 소령을 긴급체포하려 한 겁니까?”
오다 의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빈우를 잡담에서 끄집어냈다.
“….”
그러나 쿠사키나 국장은 아까부터 묵묵부답이다. 애초에 대답할 마음이 없을 것이다.
“대답하지 않을 건가요?”
“정식으로 명령이 내려온 것도 아닌데 의원님께서 저를 심문하실 권리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의 저는 그저 순수한 ‘선의’로 협조하는 것뿐입니다.”
정확히는 협조라기보다 오다 의원의 보호 아래 있겠다는 의미다. 밖에 나가봤자 빡 돌아간 레드우드에게 무슨 꼴이 될는지 자명하니까.
‘디안머 게이트에선 아차 하는 순간 상황이 역전되어 잠시 긴장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쿠사키나 국장이었다.
분명히 빈우에겐 오스카 스테이션의 것 외에도 조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허나 그가 특수전 사령부로 가서 태스크 포스의 팀장을 맡아버리자 보안국으로선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게 되었다.
헌데 마침 그때 군사정보국에서 협조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빈우의 무기를 못 쓰게 만들고 약점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아마 오스카 스테이션 때의 빚도 갚을 겸 이쪽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속셈이겠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천재일우의 기회로 판단한 쿠사키나 국장은 연방 중앙정보국 쪽에 연락을 넣어 이번 라출노그 성계의 작전을 태스크 포스 373에 맡기자고 강하게 권했다. 그리고 블랙 랜스의 이동 경로까지 알아내고 작전에 임했건만, 그 결과가 이 꼴이다.
갑작스런 상원의원의 등장과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빈우, 그리고 순식간에 역전된 힘의 밸런스. 쿠사키나가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일은 끝나버렸다.
‘나도 참 한심하지.’
그러나 특수전 사령부에 도착해서 보안국 인원들을 레드우드에게 넘기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니 빈우도 갈 데까지 가려는 마음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이번 일을 빌미로 이쪽의 약점을 쥐려는 속셈이겠지. 혹시 이게 이노우에 국장의 함정일까도 생각한 쿠사키나 국장이었지만 이노우에 고토와 김빈우 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제 조사대상을 가로채느라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상원의원인 저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에게 심문할 권리가 없다고요?”
오다 의원의 말에 현실로 돌아온 쿠사키나 국장은 빈우를 흘깃 노려봤지만 정작 그는 ‘내가 뭘요?’란 표정으로 시치미를 뗄 뿐이다.
‘같이 심문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해야 하나.’
만일 이쪽의 사정을 훤히 아는 빈우가 오다 의원 옆에서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댔으면 쿠사키나 국장은 진즉에 뻗었을 것이다. 한숨을 쉰 그녀는 공손히 대답했다.
“분명 보안국의 작전이 강제적이었던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고 보안국은 연방을 위해 음지에서 일합니다. 군 내부의 보안과 기강을 위해선 가끔 양지의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제가 지휘했던 작전은 분명 그럴만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런 실례를 무릅쓰고 강행했던 겁니다. 부하의 실수는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다 의원은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중요한 작전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죠.”
“정식명령이 오면 얼마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제 조사대상인 김빈우 소령에 대해 중요한 혐의가 있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증가와 자료가 있겠군요. 그건 제가 봐야겠으니 내놓으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상원의 특별감사가 조사하겠다면 연방의 어느 부서든 정보를 내놔야 한다. 연방 중앙정보국조차도 상원의 감사가 오면 얄짤 없이 털린다.
다샤 쿠사키나 국장이 궁지에 몰렸을 때, 동아줄을 내려준 것은 빈우였다.
“의원님, 오늘은 이쯤 하죠. 국장님이 어딜 가시는 건 아닐 테니 서두를 필요는 없잖습니까?”
어딜 가진 않는다. 지금 상황에선 듣기에 따라 어디도 가지 못한다, 로 해석될 수도 있는 위험한 말이다. 그 말에 오다 의원은 쿠사키나 국장과 빈우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선선히 일어났다.
“그러죠. 쿠사키나 국장. 우린 먼저 일어나지요.”
먼저 회의실을 나선 오다 의원을 따라나선 빈우는 쿠사키나 국장을 위르겐에게 맡겼다. 그리고 오다 의원과 같이 조금 걷다가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지금쯤은 사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원님, 실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그 말에 오다 의원이 멈춰 서서 천천히 빈우를 돌아보았다.
“김 팀장.”
“네, 의원님.”
오다 의원은 지금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누가 봐도 업무용 미소다. 의회에서 한바탕 벌이기 위해 짓는 표정. 즉 전투태세란 말이다.
“디안머 항성계에서 있었던 일, 팀장님이 꾸미신 거죠?”
역시나 상원의원.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단번에 빈우의 꿍꿍이를 꿰뚫어 본 것이다.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헌데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사실 그때 속인 것이 한두 개가 아닌 터라 빈우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그러나 오다 의원은 다 안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없이 추궁했다. 그 눈빛에 진 빈우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다시피 제 팀에는 적이 많지요. 그래서 놈들을 낚으려고 주변에 떡밥을 뿌리긴 했는데 설마 보안국에서, 그것도 이렇게 빨리 행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여기 이 상처는요?”
오다 히토미가 한발 다가서더니 손을 들어 빈우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빈우가 얻어맞아서 생겼다고 꾸민 자해 상처는 지금은 이미 흔적도 없다.
“여기가 아픈가요….”
이마를 문지르던 그녀의 손가락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빈우의 가슴을 쿡 찔렀다.
“아니면 여기가 아픈가요?”
이젠 표정이 풀려 짓궂게 웃는 오다 의원에게 빈우는 쓴웃음으로 대답했다.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제 생각이요? 어머나 그게 뭘까요? 저는 짐작도 안가는 데요?”
이번엔 되려 자기가 짐짓 모르는 척 호들갑을 떠는 오다 의원을 보며 빈우는 쑥스럽게 사실을 말했다.
“의원님 앞에서 보안국에게 얻어맞는 척했었고, 이건 제가 스스로 만든 상처입니다.”
그 말을 들은 오다 의원의 얼굴은 ‘진즉 그럴 것이지’하고 의기양양해 하고 있었다.
“우리 협력관계 아니었던가요?”
장난스레 다그치는 상원의원 앞에서 연방군 소령이 쩔쩔맨다.
“아유, 당연한 말씀을. 의원님께서도 이렇게까지 협력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흥, 그때 아나스타샤가 미리 귀띔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전 정말 놀랐을 거라고요. 그렇게까지 피를 튀기다니. 뭐, 팀원분들의 훈련을 미리 봐뒀기에 망정이죠.”
빈우가 자세한 작전 설명을 한 것은 태스크 포스 373 팀원과 아나스타샤만이고 외부인인 그녀에겐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아나스타샤를 통해 상원의원에게 어렴풋이 흘리라고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오다 의원은 합을 맞춰준 것이다.
“의원님, 제법 재능 있으십니다?”
“그런가요? 팀장님의 연기가 훌륭해서겠죠.”
그때 빈우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군사정보국의 이노우에 고토 국장이다. 보안국에 이어 군사정보국. 이건 우연이 아니다. 분명 둘 사이에 사전에 뭔가 거래가 있었거나, 그게 아니면 이노우에 국장이 이번 일을 빌미로 거래를 하러 오려는 것일 거다.
“지금 통신 들어왔죠?”
오다 의원이 재빨리 빈우를 지적한다. 내색을 안 한 기밀 통신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그녀도 대단하다.
“맞습니다. 의원님. 날카로우시군요.”
“이번에도 혼자서 비밀통신하고서 또 무슨 작당 모의를 꾸미는 거예요? 그런 건 한 번이면 족하다구요.”
사실 빈우는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오열하고 있을 때, 뒤에서 비밀 통신으로 블랙 랜스를 출항시킨 전과가 있다. 한번 당한 전력이 있으니 신경이 쓰이는 것일 거다.
“실은 군사정보국의 이노우에 고토 국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빈우의 말을 들은 오다 의원은 그녀도 뭔가 눈치챈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질문했다.
“무슨 내용인가요? 보안국과 관련되었나요?”
“아직 받지는 않았습니다.”
오다 의원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방금과는 확연히 다른 어조로.
“좋아요, 김 팀장. 군사정보국장과 통신 후 그 내용이 이번 보안국 건과 관련이 있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세요. 저는 제 방에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경례를 하고 그녀를 배웅한 빈우는 돌아서며 통신을 받았다.
-빈우야, 오래간만이다.
-십새끼가.
이노우에 고토 국장의 회선으로 연락을 한 것은 바로 그의 사관학교 동기이자 절친인 마커스 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