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자식이, 간만에 만나서 하는게 다짜고짜 욕이냐?
험한 소리부터 얻어먹은 마커스는 회선이 회선인지라 저번의 피자 얘기는 쏙 빼놓고 있었다.
-그동안 연락도 안 되고. 바빴나 봐?
-언제나 그렇지 뭐.
서로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빈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쿠사키나 국장 좀 살려주라.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빈우는 한숨을 쉬었고 마커스는 쓰게 웃었다.
-그래, 너도 지금 힘들다는 것 알아. 하지만 지금 보안국이 털려버리면 우리 군사정보국도 위험하다.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보안국을 조사하면 우리가 위험하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아마도 이번에 보안국이 자신을 체포하려 한 것이 군사정보국과도 관련이 있는 사건일 것이다. 어쩌면 울토르 프로젝트가 엮여있을 수 있다.
-미안. 외부 요원인 너에겐 말해 줄 수 없어.
현재 빈우는 외부 요원이지만 울토르 프로젝트의 기록 대부분은 열람이 가능하다. 핵심적인 부분은 빼고.
하지만 마커스는 막 잠수에서 부상한 빈우와 서로 백업해주겠다고 약속한 사이다. 저번에도 피자 타이거 쪽을 통해 그간의 대략적인 정보를 보냈었다. 말을 못 한다는 것은 아마 회선 문제로 그러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빈우도 지금 이노우에 국장의 회선을 통해 대화하고 있기 때문에 오다 의원이 태스크 포스 373쪽으로 온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번 보안국의 난폭한 행동에 혹시 군사정보국의 뒷배는 없었는지를 묻지 못하고 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혹시 이거 명령이냐?
자신을 조사하고 있는 상원의원을 상대로 교섭해 사고를 친 보안국을 살려달라니, 외부 파견 요원에겐 상당한 난이도의 일이다. 게다가 현재 빈우는 머리에 특급기밀로 추정되는 정보를 가지고 특수전 사령부의 태스크 포스를 맡고 있다. 여기서 빈우가 특수전 사령부 쪽으로 소속을 옮겨버리면 군사정보국은 닭 쫓던 개가 된다.
-아니, 부탁이다. 할 수 있으면 해달란 거지.
빈우는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보안국이 정말 태스크 포스 373을 적대하는 비밀세력이라면 여기서 밀어붙이는 것도 좋지만, 군사정보국이 같이 두들겨 맞을 수 있다면-자신의 백업을 맡은 마커스에게 영향이 간다면-잠시 상황을 보는 게 낫다. 일단은 오다 의원과 상의를 해봐야겠다.
-알았다. 일단 오다 의원님과 얘기를 해보겠는데, 큰 기대는 하지 마라.
-고맙다.
어차피 오다 의원도 이번 군사정보국과의 통신이 보안국과 관련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으니 빈우는 그녀의 방으로 갔다.
“의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어마맛.”
들어오라고는 하는데 뭔가 안이 소란스럽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빈우가 본 것은 오다 의원이 찻잔을 떨어뜨리는 모습이다. 그것을 바닥에 떨어지게 전에 잡아 다시 그녀의 손에 들려준다.
“와우, 역시 군인분들은 행동이 빠르시네요.”
“강화 덕분이죠. 혹시 커피 내리시는 중이셨습니까?”
테이블을 보니 생성기로 만든 모카포트에 커피 드리퍼까지 별게 다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커피 원두가 없다는 거다.
“저도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오다 의원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저번에 차를 대접받은 답례로 뭘 해보려는 데 잘 안된 것 같다.
“방에 생성기 있지 않습니까? 아나스타샤가 민간인 용으로 설정해 놨을 텐데요?”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야 커피 맛과 향의 영양액을 실제 커피와 구분하긴 쉽지 않다.
“그러게요, 진작 그럴 것을.”
귀까지 빨개져 허둥지둥 도구들을 치우는 오다 의원을 본 빈우는 자기도 나서서 정리를 도와주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까 쿠사키나 국장을 몰아치던 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냉철한 상원의원 오다 히토미와 멋쩍음에 귀가 붉어진 오다 히토미. 이 둘 사이에는 크나큰 거리감이 존재했다.
‘나는 어떨까?’
빈우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믿음직한 동료? 우수한 정보국 요원? 보살핌받아야 할 작은 주인?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한 겁쟁이? 어린이 살해자?
“하실 말씀이 뭔가요?”
어느새 정리는 끝났다.
“네, 예상대로 군사정보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보안국에 대한 조사를 멈춰달라고 합니다. 물론 의원님께 직접 부탁하는 게 아니라 저를 통해 은근히 말을 넣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흐음.”
빈우의 솔직한 보고를 들은 오다 의원은 귀밑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제가 여기 온 목적은 말했다시피 의회 내에 존재하는 비밀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들이 노리는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는 척 협력해서 놈들의 정체를 밝히는 거죠.”
“하긴 보안국의 행보가 상당히 수상하죠.”
“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식명령서를 받아 몰아치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거기서 말을 멈춘 오다 의원이 빈우를 쳐다보았다.
“김 팀장의 생각은 어떤가요?”
어차피 빈우로선 그녀와 협력하기로 했으니 어느 정도 선까지는 같은 길을 걸어주어야 할 것이다.
“군사정보국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지금 보안국을 조사하면 자기들도 같이 엮여 들어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흠, 보안국이 군사정보국 출신인 김 팀장을 긴급체포하려 한 건이, 두 부서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요? 그게 어떤 건지 짐작은 갑니까?”
그러고 보니 오다 의원의 이 질문은 꽤나 늦은 감이 있다. 쿠사키나 국장을 체포한 다음 그녀가 움직인 이유를 빈우에게 추궁해도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협력관계라고 생각해 빈우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일지도 모른다.
“몇 가지 있습니다만, 우선 자율명령서가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그걸로 보안국을 한 방 먹인 적 있죠.”
그리고 빈우는 자기가 꼬불쳐 놓은 여러 종류의 자율명령서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오다 의원의 흥미를 끌진 못했다.
“그건 기껏해야 군 내부 부서 간의 파워 게임 아닙니까? 지금으로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군요.”
정보 사령본부의 피 튀기는 게임도 상원의원에게는 ‘기껏’의 범주에 들어가니 새삼 서로 간의 역량 차이가 느껴지는 빈우였다.
“그리고 다음은 울토르 프로젝트입니다. 현재로선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울토르 프로젝트라면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이 지휘한 클론 병사 프로젝트 아닙니까?”
보아하니 상원의원인 그녀도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면만 알뿐, 눈앞에 있는 사내가 어디까지 연관이 되어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이쯤 해서 빈우는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에게 꽤 깊은 곳까지 밝혀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의원님께서 각오를 밝히셨으니 저도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히토미는 빈우의 표정으로 알았다. 이 이야기가 길어질 뿐만 아니라 깊어지리란 것을.
“네. 부디.”
양해를 구한 빈우는 위험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울토르 프로젝트의 원본과 현장지휘관은 바로 김빈우 자신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하자 오다 의원의 눈이 동그라니 커졌다. 이어 자신이 작전 중 샤다이의 습격을 받고 클론으로 위장했다가, 한 달 전 마카로니에서 샤다이와 결탁한 개척민들을 학살하는 현장에서 기억과 기록을 잃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부분에선 그녀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대략적인 것만 알았던 오다 의원은 경악했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빈우는 오다 의원의 질문을 받아가며 울토르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라 워프 비스트, 그리고 태스크 포스 373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일어난 샤다이의 습격과 민간인이 워프 비스트 변한 것. 이어서 발 가르단 하스로 떠나기 직전 이곳 특수전 사령부를 기습한 대규모 워프 비스트. 마지막으로 보호 행성에서 있었던 일의 전말, 그리고 이케가미 의원과 발 가르단 하스와 나눈 대화까지도.
“이것이 워프 비스트였군요.”
오다 의원은 복잡한 얼굴로 다시 한번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 보고 있었다. 플라스마에 몸을 던지기 직전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발 가르단 하스와 대화하기 위해 워프 비스트로 변이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플라스마에 불타 죽기 직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행성 생명체에 의한 일인 줄로만 알았었다. 겉보기엔 맞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진실이 있었다.
“발 가르단 하스와 김 팀장과의 대화는 그게 전부인가요?”
다시금 상원의원으로 돌아온 오다 의원이 빈우에게 질문한다. 빈우가 발 가르단 하스와 했던 대화는 기록이 없다. 그때의 대화는 행성 생명체가 인간의 뇌를 주물러가며 했던 대화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불분명한 것은 조사 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빈우의 대답은 어찌 보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어서 위험했다. 하지만 오다 의원은 너무 꼬아서 마구 헝클어진 귀밑머리에서 손을 떼더니 싱긋 웃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보안국이 움직인 이유와 군사정보국이 따라붙은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죠.”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울토르 프로젝트입니다.”
그게 마카로니에서 일이 터진 바람에 두 부서는 지금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다.
빈우의 말을 들은 오다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워프 비스트도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빈우 역시 마커스에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보안국이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노린다는 정황 증거가 너무 많다.
“당시 피에르 라캉 중령은 워프 비스트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김 팀장과 태스크 포스 373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왜 보안국이었던 그가 그런 정보를 상부로부터 숨기며 특수전 사령부로 가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김 팀장도 지금 머릿속에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시죠. 또한 태스크 포스 373에는 라캉 중령이 은닉한 정보의 열쇠가 될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 아를르캥이 있습니다.”
“의원님은 보안국이 비밀세력 쪽으로 넘어갔다고 보십니까?”
핵심을 찌르는 빈우의 질문에 오다 의원이 잠시 멈칫했지만 바로 대답했다.
“적어도 의회 쪽 세력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눈여겨보던 상원의원 몇 명은 보안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김 팀장, 군사정보국 쪽은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나요?”
“저는 지금 군사정보국의 파견 요원이라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부서 특성상 보안국이 가지고 있는 정보보다는 많이 수집했을 겁니다.”
“음, 아쉽군요. 여차하면 김 팀장을 연줄로 삼아 군사정보국을 조여 봐야겠네요.”
태연하게 무서운 소리를 하는 오다 의원의 모습에 빈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군 내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보 사령본부라 해도 상원의원의 앞에선 일개 군 부서에 불과하다.
“그런데 의원님께선 울토르 프로젝트와 워프 비스트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원래대로라면 울토르 프로젝트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계획이었고, 워프 비스트는 앞으로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정작 울토르 프로젝트의 지휘자인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은 그것은 인류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워프 비스트에 대한 위기를 미리 알고 그 해결책을 주변의 아무런 도움 없이 홀로 찾아 헤맸다. 마지막엔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워프 비스트의 게이트를 파괴했고, 그의 희생 덕분에 당분간은 워프 비스트의 침공이 없으리라.
“둘의 관계라…. 울토르 프로젝트는 군사정보국의 주도로 보안국 및 정보 사령본부의 부서들, 그리고 군 외의 부서들까지 협력해서 진행되었다면서요? 만약 이 클론 부대가 비밀 세력과 워프 비스트 쪽에 넘어가면 치명적일 겁니다.”
빈우도 오다 의원이 예상한 부분까지는 생각이 닿았다. 그러나 뭔가 치명적인 음모가 아직 어둠 너머에 더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다 의원도 뭔가 꺼림칙한지 이젠 숫제 옆 머리칼을 끌어와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흐음, 아직 워프 비스트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너무 적어요. 변이과정이나 방법, 혹은 예방법 말이죠. 지금은 알려봤자 혼란만 일어날 테니 당분간은 좀 더 기밀로 묶여 있을 것 같군요. 문제는 김 팀장의 가설대로 인류연방 내부에 놈들이 과연 숨어들어왔는지, 숨어들어왔으면 어느 정도까지냐는 겁니다. 자칫하면 우리가 이 사실을 밝히기도 전에 놈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우려가 있습니다.”
보안국이라면 정보의 수집과 가공, 조작에 대해서 연방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잘못 대응하면 애써 모은 정보로 저쪽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될지 모른다.
“저는 일단 의회의 믿을 만한 라인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리고 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팀장님은 어쩌실 거죠?”
“저 역시 군사정보국 쪽에 비빌 언덕쯤은 있습니다. 그쪽을 통해 정보 교환을 해보죠.”
그러면서 빈우는 생성기에서 커피를 뽑아 오다 의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원래의 얘기로 돌아가서, 이러한 과정에서 보안국을 풀어주면서 대가로 군사정보국을 우리 쪽으로 회유해볼까 합니다.”
하지만 커피잔을 받은 오다 의원은 조금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군사정보국은 그쪽 세력과는 관련이 없을까요? 보안국에 대한 조사를 멈춰달란 것을 보면 서로 협력관계인 것 같은데요. 차라리 이 기회에 밀어붙여 정보를 캐내거나 아예 거세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사실 이번에 보안국이 저지른 일만 봐도 쿠사키나 국장은 모가지 당첨이다. 아니, 보안국이란 조직 자체가 새로 개편될 수도 있다. 빈우는 살기등등한 말에 오다 의원의 말에 미소로 화답한다.
“그쪽에 몸담았던 제 경험상, 그 두 부서는 협력관계가 되기 힘들 겁니다. 성격이 너무 달라요. 설령 국장 두 명이 협력하려 한다 해도 밑의 부서장들은 서로 그 꼴을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잠깐의 오월동주죠. 오히려 쿠사키나 국장을 풀어주면 군사정보국 쪽에서 먼저 이 일을 약점 삼아 견제할 겁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잔을 기울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과연 그렇군요. 또 지금 보안국을 흩어버리면 조직 내의 포섭상황을 알기 힘들게 되겠죠. 좋아요, 김 팀장. 당장은 보안국을 살려두고 목줄을 매어둡시다.”
“제 의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생쥐는 호랑이의 손을 빌려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