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06화 (106/301)

106화

“그래… 있지.”

그렇게 말한 이노우에 국장이 자료화면을 연다.

“이번에 우리 쪽에선 울토르 중대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중, 위은쓸납학의 모성에서 이걸 찾았어.”

쿠사키나 국장은 파편만 보고도 그것이 무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울토르 중대의 탈출용 포드?”

“추락 시기는 작년 11월 11일 위은쓸납학의 잔당소탕작전 때로 추정돼. 당시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포드 하나를 찾았지. 하지만 주변엔 파편뿐이었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몰랐어. 지금까진.”

서로의 퍼즐이 맞아 들어가자 쿠사키나 국장도 심각한 표정이 된다.

“설마… 설마 저기에 클론이 들어있었을까?”

“아직 조사 중이야. 나도 지금까진 김 팀장이 무슨 자료를 빼낸 것이라고만 추측했었지.”

두 사람이 조사한 정보를 조사하면 다음과 같다. 울토르 중대에서 빠져나온 클론이 마리 라캉과 리처드 허드슨을 비롯한 연방의 첩보 요원들을 암살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작년 11월 11일이라면 김 팀장이 클론으로 잠수하고 있을 때군. 이봐 고토. 김 팀장, 아니 찰리하나팔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어?”

“이미 했지만 딱히 수상한 점은 없어. 다만….”

“다만 뭐?”

고민하던 이노우에 국장이 말문을 열었다.

“타이 차장의 보고로는 솔리드 베타 안에 미등록 안드로이드가 있었다고 해.”

마커스는 이노우에 국장에게 팬티 이야기는 에둘러 얘기하면서 그것을 입었던 미등록 안드로이드 건을 보고했었다.

“뭣? 그게 사실이야? 왜 아직 말하지 않았나?”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어. 혹시라도 그걸 심은 쪽이 증거를 잡기 전에 도망치면 곤란하잖아.”

일이 골치 아파지자 쿠사키나 국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자에 기댔다. 여기저기 소방수로 불려간 울토르 중대. 그 클론들의 두뇌 칩에 각 부서들이 여기저기 숟가락을 꽂는 바람에 사고가 터졌다. 어떤 부서가 도중에 안드로이드 하나를 집어넣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조사했다면서, 짐작 가는 곳은 있나?”

“빈우의 비서와 같은 쿠델카 모델로 추정돼. 아직은 그것뿐이야.”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침묵에 들어갔다. 제아무리 정보 사령본부의 국장들이라지만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인 사건을 앉은 자리에서 풀기엔 시간도 자원도 모자라다.

“고토,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자.”

“그전에 다샤, 보안국은 지금 이 범인을 추적 중이지?”

“물론이지.”

“그렇다면 내가 용한 사람 하나 추천하지.”

고토의 제안에 다샤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군사정보국은 외계인 전문부서, 보안국은 군 내부 수사 전문이다. 클론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건은 보안국과 연방 중앙정보국이면 충분하다. 그래도 그녀는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누군데?”

“김빈우 소령.”

놀란 쿠사키나 국장이 펄쩍 뛴다. 수사대상이 될 자에게 뭘 시킨단 말인가.

“뭣? 너 제정신이야? 아니, 잠깐만.”

잠시 당황했던 그녀의 머릿속에 빈우의 정보가 떠오른다. 군사정보국 요원, 닉스 레벨 3, 울토르 중대의 지휘관 그리고.

“그래. 내 부하, 김 소령은 인공지능의 천적이야. 전투 OS에 의해 움직이는 클론이라면, 더구나 자신의 클론이라면 독 안에 든 쥐지.”

빈우는 자신이 부상해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도 라캉 중령과 응우옌 중령의 허수아비를 바로 간파했고, 한술 더 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해서 퇴장시킬 정도의 실력자다. 만약 자신의 클론이 일으킨 일이라면 파죽지세로 추적할 것이다.

득실을 따지며 머뭇거리는 다샤에게 고토가 은근한 어조로 설명한다.

“게다가 김 팀장이 파견 요원이긴 하지만 태스크 포스 373을 군사정보국 쪽으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놓으면 접촉하기 쉬워. 나중에 그가 가지고 있는 워프 비스트에 관한 정보도 어떻게든 수집해서 그쪽으로 넘겨주도록 하지. 설마 그 정보가 다른 곳에 노출되면 안 되는 건가?”

“아직 세간에 알려지면 안 돼. 사태의 위험성을 알 텐데?”

“흐음…. 그렇다면 우리 쪽과 특수전 사령부, 그리고 보안국 쪽으로만 정할까? 아차, 오다 의원이 있으니 상원으로 유출될지도 모르겠는데? 김 팀장에게 좀 압박을 가해야겠어.”

쿠사키나 국장은 자신보다 더 부하를 부려먹는 이노우에 국장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다가 자신은 오다 의원에게 찍혔고 고토는 자신을 풀어주는 대가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런 수작을 부릴 궁리를 하고 있다.

한숨을 쉰 보안국장이 다시 질문한다.

“일단 그 정보의 외부 유출이 심해지지만 않으면 돼. 그렇다 해도 김 팀장은 지금 샤다이를 전문으로 맡는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이야. 이번일 같은 추적 임무에 나설까?”

거기에 이노우에 국장은 걱정도 팔자라는 듯,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다행히 우리 군사정보국과 특수전 사령부는 옛날부터 돈독한 관계였어. 부탁할 방법은 많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다만 알다시피 너는 상원 쪽의 감시를 받을 거고, 나는 오다 의원에게 협조한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에 조심해서 접근해야 해.”

“그렇다면 김 팀장에겐 알릴 건가? 범인이 자신의 클론이라고?”

“아니, 보안국에서 알아낸 정보 가지고 전문가인 그에게 선입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나? 자신이 밝혀낼 텐데 굳이 알릴 필요는 없지. 우리 김 팀장이 얼마나 섬세한데.”

“독한 놈…. 알았다.”

두 국장은 자세한 이야기는 여길 빠져나간 다음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이노우에 국장을 쿠사키나 국장의 방에 집어넣은 빈우는 마커스와 걸었다.

“너 국장이랑 내 뒷조사하고 다녔다며?”

“그래, 극비리에 진행되는 임무여서 너한테 제대로 연락도 못 했다.”

백업을 해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못 했다면 통신까지 제한이 걸리는 임무에 투입됐었단 의미일 터였다.

“무슨 일인데?”

“울토르 중대의 과거 행적 조사. 그리고 찰리하나팔일 때의 네 것도.”

“그런 건 원래 보안국 관할 아니냐?”

“울토르 프로젝트가 우리 쪽 주도로 한 것이었으니까.”

하긴 외계인을 상대로 더러운 전쟁을 하기 위한 부대였으니 군사정보국이 적임이다.

“일단 작년 11월 11일에 있었던 위은쓸납학의 잔당소탕 때, 솔리드 베타에서 탈출 포드 하나가 엉뚱한 방향으로 발사된 적이 있다.”

“흐음?”

그때 빈우는 자신이 찰리하나팔이란 클론으로 전투에 참가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난 그때 선발대로 갔기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했던 그건 잘 몰라. 두뇌 통신 범위의 밖이기도 하고.”

“그렇지. 문제는 그 포드가 공격 방향이 아니라 위은쓸납학의 모성에 추락했다는 거다. 안엔 아무것도 없었어.”

당시 울토르 중대는 위은쓸납학의 함선을 공격할 기체가 없어서 탈출 포드를 강습수단으로 삼았다. 헌데 포드 하나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포드는 파괴되었는데, 추락 이후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하지만 증거인멸이라 보기엔 허술하고 탑승자의 사체나 장갑복 잔해도 없었어.”

“단순한 실수일까, 누군가가 무엇을 빼돌리려 한 것일까.”

빈우와 마커스는 안다. ‘이거 믿지 마라’ 라고 적힌 여성용 팬티를. 조사 결과 아나스타샤가 입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쿠델카 모델로 추정되는 안드로이드가 입었다는 사실만 알뿐. 울토르 중대는 샤다이의 기습 후, 이 부서 저 부서 불려가며 두뇌 칩을 조작당했던 만큼 어떤 부서가 비밀리에 집어넣은 안드로이드일 수도 있다.

“마커스. 그 누군가가, 혹시 팬티의 주인일까? 자신이 탈출했거나 아니면 통신보안 레벨이 높은 솔리드 베타에선 외부로 연락하기 힘드니, 거기에 데이터를 담는 방법을 썼을 수도 있어. 그 포드의 출입기록은 어때?”

“글쎄다. 일단 솔리드 베타의 내부 감시 영상에선 수상한 점이 없긴 한데 말이지. 아무도 탄 적이 없다.”

그러면서 마커스는 빈우를 응시했다. 부상하자마자 함 내의 금지구역을 싸돌아다니며 감시 영상마저 마음껏 조작했던 빈우를. 그 시선을 느낀 빈우는 멋쩍게 변명한다.

“으음, 나 정도 실력이라도 내부를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힘들어. 너도 솔리드 베타의 보안수준을 알잖냐. 아아, 젠장, 그러고 보니 다 내부자잖아.”

“어쨌든 국장은 너를 주시하고 있어. 머릿속의 트리니티 프로그램도 그렇지만 너의 잠수에도 수상한 점이 많거든. 그래서 열심히 뒤를 캐는 중이시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냐?”

방에 가서 진득하니 얘기를 할 줄 알았던 마커스는, 빈우가 방을 지나쳐 블랙 랜스의 출입구 쪽으로 향하자 물었다.

“그게, 동기 좀 만나려고?”

“동기?”

동기라면 아마도 사관학교 동기일 것이고, 빈우에게 동기라면 마커스에게도 동기다. 마커스는 특수전 사령부에 있는 인물 중에 누굴까 생각해 봤지만, 빈우가 말한 인물은 영 엉뚱한 인물이었다.

* * *

“아앤아.”

특수전 사령부 안에서 라출노그인 용으로 설정된 방에 연금되어 있는 아앤아를 보며 마커스는 나직이 탄식했다.

-오랜만이군, 마커스.

십여 년 전, 의욕에 가득 차 연방의 사관학교에 유학을 왔었던 라출노그의 엘리트 사관은 지금은 총기를 잃고 방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헤엄쳐 오를 기운도 없는지 바닥에서 대답하고 있다.

“빈우야, 이거… 어떻게 된 거냐?”

오래간만에 만난 동기의 비참한 모습에 마커스가 말을 더듬었다. 라출노그 방면은 중앙정보국 관할이기도 하고, 라출노그에서 벌어졌던 작전은 갓 벌어졌던 사건이라 군사정보국의 마커스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

“라출노그의 데넥샬 분파에 샤다이가 전열함을 공짜로 넘긴다면서 접근했다. 아앤아 준장은 그 배를 회수하는 부대의 부장이었고, 태스크 포스 373이 끼어들어 중간에서 가로챈 거지.”

빈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작전의 개요도를 보여주자 마커스는 그간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동맹국 내부에서의 작전, 샤다이와 접촉한 반대파벌. 분명히 생존자는 남기지 않는 작전이었으리라.

“아앤아 준장은… 포로인가?”

“아니, 협력자. 그의 말에 따르면 이전부터 데넥샬 내부에서 연방에 우호적인 조직이 있었고 자신은 그 조직의 일원이라더라. 당시 함상 반란을 해서 전열함을 연방 쪽에 넘기려고 계획했지만 내가 끼어드는 바람에 망했지.”

마커스는 그 말을 듣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앤아의 사관학교 시절을 보면 납득이 간다. 연방을 쓰러트리기 위해 마음속에 칼을 품고 유학 왔던 그는 현실의 격차를 보고 절망했다. 라출노그는 무슨 수를 써도 인류연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앤아는 변했다. 어떻게 하면 연방과 라출노그가 보다 확고한 동맹 관계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무슨 수를 써야지 연방에 적대적인 동족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연구했다.

‘난 반드시 라출노그를 바꿀 거다. 그리고 인류연방과 같이 번영해 갈 거야. 그때는 너희들도 나를 도와다오.’

연방의 사관학교에 유학한 아앤아는 엘리트다. 돌아가면 출세 가도를 달릴 게 분명하다. 그리고 연방에서 빈우와 마커스가 파이프라인이 되어 그를 도우면 아앤아의 꿈은 이뤄질 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질 못했다.

아앤아는 고향으로 돌아간 뒤 위험한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주변으로 고립되어 하마터면 사회적으로 매장될 뻔했고,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서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빈우와 마커스는 군사정보국으로 들어가게 되어 라출노그쪽의 일과는 멀어지게 돼버려 서로 간의 연락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커스는 안타까운 마음에 유리 벽으로 다가섰다.

“아앤아 준장, 지내시기에 불편함은 없습니까?”

그 말에 라출노그인이 아가미를 씰룩이며 초음파를 발산한다.

-빈우가 여러모로 신경을 써줘서 편해.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말 편하게 해.

번역기로 나오는 것은 메마른 웃음이 섞인 힘없는 말이다. 그를 보면서 빈우가 말을 꺼냈다.

“아직은 특수전 사령부에서 간단한 조사만 했을 뿐이다. 조만간 중앙정보국에서 온다고 하는데. 마커스, 어떻게 할래?”

마커스는 빈우의 말뜻을 알아챘다. 일부러 자신을 이리로 데리고 온 것도.

데넥샬 분파가 중앙정보국에 끌려가게 되면 좋은 꼴을 볼 리가 없다. 그게 제아무리 협조자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군사정보국이라면 어떨까? 라출노그가 중앙정보국 관할이긴 해도 무력접촉이 있던 걸 핑계 삼아 특수전 사령부에서 직접 이송된다면 둘러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떻게든 친구를 구할 방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커스는 괴로웠다. 연방 중앙정보국과 군사정보국은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격이 다르고 파워가 다르다. 게다가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 준장이 지금 울토르 프로젝트의 뒤처리에 매달려 있는지라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힘들면 어쩔 수 없지.”

빈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커스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오랜 친구인 그에겐 들킨 모양이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

그리고 유리 벽 너머의 친구도 눈치챈 모양이다.

-너희 종족이… 너희들의 반 만큼만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앤아의 푸념이 번역기를 통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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